230707 금요기도회: 시편 14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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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를 구원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죄인인 저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할 수 있게 하심 참 감사합니다. 저희는 하나님을 볼 수도,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존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니 오늘도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원합니다. 이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삶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40 편 말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140 NKRV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그들이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포악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들은 나의 걸음을 밀치려 하나이다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나이다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하지 마시며 그의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스스로 높일까 하나이다 나를 에워싸는 자들이 그들의 머리를 들 때에 그들의 입술의 재난이 그들을 덮게 하소서 뜨거운 숯불이 그들 위에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그들로 하여금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악담하는 자는 세상에서 굳게 서지 못하며 포악한 자는 재앙이 따라서 패망하게 하리이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누리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누군가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덫을 놓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누군가가 모함을 하며 거짓으로 고발할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거냐?”라며 너무나 억울해하며 분을 표출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읽은 140편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40편의 시인인 다윗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다윗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다윗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다윗은 1절에서 “여호와여”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악인에게서 자신을 건지시고 보전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포악한 자’라고 번역한 이 단어는 성경에서 명사와 동사와 함께 67번 나오는 것으로 영어 성경에서는 대부분 ‘폭력’이라고 번역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폭력적이고 포악한 ‘성품’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악한 의도로 실제로 폭력을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악한 의도를 가지고 지금 폭행하는 사람에게서 건져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다윗은 이 폭행하는 사람의 특징에 대해서 말하는데요. 2절부터 보시면 “마음 속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해 매일 모이며,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다윗이 고발하는 폭행자들은 계획적이며, ‘혀’, ‘입술’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말로, 언어로 다윗을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말로 어떻게 공격하는지는 ‘뱀’과 ‘독사의 독’이라는 단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독사의 독 같은 거짓말과 비방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거짓말과 비방으로 지금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벗아나게 해달라고 4절부터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5절에서 악인들은 다윗을 잡기 위해 ‘올무’와 ‘줄’ 그리고 ‘그물’과 ‘함정’을 설치합니다. 이것은 마치 짐승을 잡기 위한 모습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바로 4절에서 ‘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처럼 폭행자들인 악인들은 다윗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거짓말과 비방이라는 함정을 놓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억울해 하고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도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 시에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시면 다윗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라며 주님은 악인들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그러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라며 자신의 간구를 들어달라고 이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확신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신이 과거에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 다윗은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전쟁할 때 모든 신체 부위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위는 ‘머리’입니다. 그런데 그 가장 중요한 부위인 머리를 전쟁 속에서 하나님께서 가려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라며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가려주셨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험 속에서 지켜주셨던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나의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은 다윗의 머리를 지켜주신 구원의 투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8절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가려주실지 구체적으로 요청합니다. 다윗은 여기서 악인들이 다윗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계획한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이유는 그 계획이 성공한다면 스스로 높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악인들의 특징은 자신들의 계획이 성사된다면 자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높이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경험으로도 알고 있듯이 악인들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때마다 우쭐해지고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다윗은 5절에서 악인을 ‘교만한 자’라고 바꿔서 말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교만해진 자들은 더욱 의인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악인들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악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그들로부터 구원해달라고 간구하는 다윗은 더 나아가 악인들에게 내려질 징벌에 대해서도 9-11절에서 기도합니다.
9절에서 다윗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가려주실 것을, 덮어주실 것을 간구했다면 악인들의 머리에는 독사의 독을 품은 그들의 입술의 재난이 덮어지길 기도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머리에는 구원이, 악인들의 머리에는 재난이라는 대조적인 묘사를 사용함으로 시의 형태를 너무나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10절에서 그들의 머리에는 뜨거운 숯불이 떨어져 불과 깊은 웅덩이에 그들이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길 간구합니다. 앞에서 다윗을 해치려고 올무와 함정을 놔둔 악인들이 자신들이 쳐놓은 함정에 빠지길 다윗이 간구합니다. 악인들이 의도한 재앙이 자신들에게 되돌아간다는 개념은 시편과 잠언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더 나아가 거짓 증인들이 거짓으로 고발한 사람에게 계획한 징벌을 자신들이 받도록 정해놓은 율법에서도 등장합니다. 신명기 19장 18-19절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명기 19:18–19 NKRV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다윗은 악인들의 계획이 오히려 악인들에게 돌아갈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비방하는 자는 세상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하고 폭행하는 자는 재앙으로 패망하기를 11절에서 간구합니다.
이 시편에 묘사된 악인들, 폭행자들, 교만한 자들, 비방하는 자들의 계획과 소원이 이루어지고 의인이 고난 당한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의인들이 설 곳이 없다면 누가 의인이 되고 싶어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무너뜨리시고 의인들을 구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기도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12절 처음부터 “내가 알거니와”라고 말하며 그가 알고 경험한 여호와에 관한 믿음의 내용에서 나옵니다. 한 예시로 사무엘상 25장 에 등장하는 나발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은 나발에게 선의를 베풀었지만, 나발은 다윗이 위기의 순간에 처해있었을 때 모르쇠하며 선을 악으로 갚습니다. 이에 다윗이 나발에게 복수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통해 복수를 막으시고 대신 하나님께서 갚아주셨습니다. 사무엘상 25:38 입니다.
사무엘상 25:38 NKRV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이처럼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지금 자신에게 펼쳐진 상황 속에서도 믿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다윗은 13절에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 살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 당하거나 궁핍한 모든 이들의 위로입니다. 의인을 지키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고난 당하고 있는 성도의 위로입니다. 대표적으로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의인의 편이라고 굳게 믿은 욥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인 140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성도는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거짓말과 비방하는 자들이 함정에 빠뜨리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던 경험을 떠올린 다윗처럼 지금까지 지난 세월 동안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을 생각해봅시다. 그런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 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거짓과 비방으로 고발되신 분이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형이라는 함정을 만들고 독사의 독으로 거짓말을 하며 폭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이야기하셨던 것입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심지어 십자가의 죽음에 직면하셨을 때도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한다며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다윗과 마찬가지로 시편 140편의 기도를 그리스도께서는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말하시기보다는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140편과 다른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다윗은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복수를 한 적은 없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악인들을 향한 심판을 하나님께 전부 다 맡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는 믿음 안에서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넘어서서 오히려 악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탁월함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는 얼마든지 거짓과 비방을 일삼는 자들로 인한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억울한 상황 속에서 악인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분노를 표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진 못합니다. 우리는 그 악인을 날마다 묵상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은 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럴 때 시편 140편을 통해 본 그리스도를 기억합시다. 항상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는 믿음 안에서 위로를 얻으셨던 그리스도, 그리고 악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그리스도를 기억합시다. 이런 그리스도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거짓과 비방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위로를 얻으며 오히려 악인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거짓과 비방으로 함정에 빠뜨리려는 상황 속에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모든 심판을 맡기는 믿음 안에서 위로를 얻으며, 오히려 악인을 긍휼히 여기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는 악인을 향해 분노하고 싶고 직접 복수하고 싶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 상황 속에서도 편히 쉬며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며 악인을 긍휼히 여기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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