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성읍, 쇠 기둥, 놋 성벽

예레미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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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명 이야기 2. 살구와 끓는 가마솥 3. 준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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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이야기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에게 주신 소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1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13절.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12,1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해 말씀해주시며, 예레미야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가 어떤 소명을 갖고 세상에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쉬고)
어제 전목사님이 말씀을 나누어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고 부르셨습니다. 왜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고 원하신 소명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죠.
제2가족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소명을 붙들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계신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주신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요?
(쉬고)
저는 9살 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단 한번도 그 소명에 대한 의심을 하거나 다른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저의 삶들을 돌아보면, 그 소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아니 더 확신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들을 주셨습니다.
선교사의 삶이 궁금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어 답답해 할 때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선교사의 삶을 필리핀과 인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연무대라는 작은 읍내에서 살아가던 저를 붙잡으시고 흔드시기 시작하시니,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던 제가 다양한 삶의 자리에 놓여서 살아가고 있더라구요.
제가 신대원을 갈 때 주위에 있는 목사님들께서 그러셨습니다. 그리고 신대원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들께서도 저에게 동일한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양전도사는 선교 나가는 것보다 한국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양전도사 부탁인데 한국에서 사역하면 좋겠어”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9살 때 저에게 주셨던 소명의 불이 점점 더 커져가더라구요.
제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을만큼 주신 소명에 대한 마음이 더 선명해지더라구요.
그 이유는 제 삶의 발걸음마다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명을 더 품고 기도하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소명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죠.
(쉬고)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예레미야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살구나무끓는 가마솥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그의 소명에 확신에 확신을 더해주고 계십니다.
예레미야가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그 소명의 삶은 굉장히 어렵고 난처한 일 투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예레미야“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봅니다"라고 답하죠.
하나님은 그에게 “잘 보았다.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한다" 라고 다시 답하십니다.
(쉬고)
예레미야자신의 소명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어려울 때마다 그리고 삶에 위기들이 찾아올 때마다 살구나무를 보았습니다.
살구나무 가지를 보면서 그리고 거기에 달리는 꽃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 그 약속. 소명을 떠올렸습니다.
살구나무 가지소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참 어렵고 너무나 힘들지만, 그리고 그 삶을 조롱하며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가나안 신에 비해 약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든 비난을 버틸 수 있도록 그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많은 봄이 지나갔으나, 많은 살구나무 꽃이 피고 졌으나 아직 그 분의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그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한 것 같고,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예레미야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소명을 붙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살구나무 가지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했고 가슴이 뛰었거든요.”
(쉬고)
그 다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는 “끊는 가마를 봅니다. 그런데 이게 북에서부터 기울어져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질 것이다"라고 답하시죠.
끓는 가마는 죽을 만드는 가마솥입니다. 그런데 심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근처에서 놀고 있는 혹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위험할만큼 기울어져 있습니다.
북쪽에서 재앙이 온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무리가 북쪽에서 온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들은 북쪽이 아닌 동쪽에 있었습니다.
앗수르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패권을 잡게 된 바벨론은 유다 동쪽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동쪽이 아닌 북쪽에서 부터 재앙이 온다고 하셨을까요?
(쉬고)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지형상 북에서 아래로 향해 있기에 공격하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북쪽에서부터 공격을 해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당하는 이유는, 그들의 모든 삶의 영역 특히 종교와 사회적 생활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믿고 따랐습니다.
우상 숭배는 단순한 종교적 문제가 아닙니다.
이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인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맺지 않겠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쉬고)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이야기를 보면, 탕자가 아버지에게 자신이 물려받을 재산을 먼저 달라! 라고 말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재산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의 의미
“아버지는 내 삶에 필요 없습니다. 제발 좀 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쉬고)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이와 같습니다.
“내 삶에 여호와 하나님은 필요 없습니다. 제발 내 삶에 간섭하지 마세요"
“난 당신이 없는 세상이 더 편하고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이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 그들이 나라를 유지할 수 있는 법과 질서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하나님인데,
그 나라를 세워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이 만든 신을 선택한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들이 우상 숭배를 했던 이유는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만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과의 어떠한 인격적 교제가 없었기에, 체험적인 앎이 없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머리로만 알고 끝났습니다.
(쉬고)
예레미야는 이런 재앙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소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다른 신을 선택한 사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쉬웠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이는 그 때에,
하나님이라는 신을 고백하면 온갖 불이익을 당해야하는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사는 삶은 정말로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쉬고)
예레미야의 삶은 굉장한 고난과 어려움 등이 예상되어 있습니다.
그런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겁이 났나 봅니다.
하나님은 연이어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가능할까요?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무섭게 그를 애워싸 비난하고 조롱하며, 그가 전하는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 분명합니다.
예레미야가 맞을 수도 있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하면 공개적으로 당혹스럽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청중 앞에 서는 순간 가혹한 공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쉬고)
그가 소명의 삶을 살고자 하면 분명 굉장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한 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절. “견고한 성읍, 쇠 기둥, 놋 성벽이 될 것이다"
19절.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원할 것이다"
(쉬고)
6월 말에 있었던 청년부 여름수련회 때 저와 청년들은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저와 여러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쉬고)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소명대로 살아가다보면 다양한 삶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참아야 할 때가 있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더 양보해야 할 때가 있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억울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소망이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쉬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예레미야는 험난한 길이 눈 앞에 있지만 하나님을 붙들고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붙들고, 내 삶이 어렵고 힘들고 어두움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나를 견고한 성읍, 쇠 기둥, 놋 성벽”으로 만들어주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일을 감당하러 세상에 나아갔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결정했기에 우리의 삶은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흔적을 지우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며 사는 삶 당연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삶의 소명을 붙들고, 영원한 소망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에게 주신 하루의 삶을 잘 살아내야 합니다.
(쉬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오늘의 삶을 살아가며 나에게 주셨던 소명이 무엇이었는가를 고민하며, 또 그 소명대로 살아가게 해주심에 감사하는 고백을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명이 내가 살아갈 원동력이 되게 해주심에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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