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의 상

고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2 views

신앙생활을 잘하라

Notes
Transcript
말씀: 고전 9:24-27 ()
제목:
고전 9:24-27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를 하나의 경기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경기자라는 소재는 사도
바울이나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익숙한 소재였습니다.
왜냐하면 올림픽
이 개최되는 아테네가 바로 고린도의 북쪽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저들은 경기를 구경한 경
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달리는 자의 모습과 관중들의 환호성, 그리고 승
리자가 받는 면류관과 영광 등 경기에 대한 모든 것들을 상세히 알고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고린도에서도 2년에 한번씩 약 8마일 거리의 이스데모스까지 달려
갔다 오는 마라톤 경기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특별한 오락이 많지 않은 때인지라 이
러한 경기가 있을 때마다 아주 흥미 있게 구경들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루어 볼때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은 운동 선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며, 이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운동장에서 달리는 경기자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여러 마리의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하다보면 사냥개들에게서 두 가지의 모습을 본다고 한다.
사냥꾼의 총에 맞아 떨어지는 새를 한 사냥개가 보고 달리면 함께 있던 개들도 덩달아 달린다,
앞서 달리는 개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 달리는 것이고, 뒤에 따르는 개들은 막연한 기대감으로 달린다,
이 두부류의 사냥개들의 다른 모습은!
첫째: 분명한 목표를 보고 앞에서 달리는 개는 일직선으로 달리지만, 뒤 따르는 개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달린다,
둘째: 첫 번째 개는 총에 맞고 떨어진 새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리거나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 개는 떨어진 새를 직접 보았고, 목표가 분명히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따르던 개들은 분명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포기하고 돌아와 버린다고 한다.
짐승이지만 목표가 있는 것과 목표가 없는 모습은 분명히 다르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들도 삶을 살아가면서 방황하고 쉽게 포기하고 넘어지고 상처받는 이유 중 하나는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방황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도 이것을 말씀하고 있다.
오늘 말씀이 쓰여졌던 당시에 그리스와 로마에는 여러 가지 운동경기가 있었다.
권투가 있었는데, 당시는 쇠로된 장갑을 끼고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시합을 계속하는 복싱경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 대단한 인기를 모았던 경기 가운데 하나가 레슬링입니다.
오늘날 “그레꼬 로망형”(Greco Roman Style)으로 불리는 레슬링 경기가 그리스, 로마시대에 행해지던 경기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 맹수와 싸우는 경기도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 동원되는 사람은 주로 죄수들이었는데, 맹수와의 사투에서 살아남을 경우 죄를 사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같은 경기의 희생물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운동장을 스타디움(Stadium)이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그리스어로 스타디오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스타디오란 606.75피트, 약 200m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단어가 스타디움이다.
이러한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는 월계수나 감람나무 잎으로 엮어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씌워주었다.
이 승리의 면류관은 곧 시들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를 가리켜 썩을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1.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본문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육상선수가 사력을 다해 달린 후 우승의 영광을 얻듯, 신앙인도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0:12-13의 말씀에 “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것은 행복을 위한 길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라고 하셨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선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인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4-5)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해 뛰는 운동선수들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과 함께 하셔서 능력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2.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9:26 NKRV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어린이 운동회를 보면 그렇다.
뒤로 가는 아이가 있다. 또,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아이가 있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우리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삶의 방향이 잘못되어지면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두 여인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마더 테레사와 다이애나가 그 사람들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열 일곱 살에 수녀가 되어 칠십여 년을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갔습니다.
그녀는 숨질 때까지 인도의 가난한 자들, 버려진 이웃들과 함께 살았고 그들을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세계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테레사의 장례를 힌두교와 시크교도가 대부분인 인도에서 국장으로 치르면서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극진히 표현했습니다.
장례식에는 종교는 달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 여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수만 명이 줄을 이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앞서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이애나는 찰스 왕태자와 이혼하면서 수백억의 위자료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집트 출신의 최고 갑부와 함께 생활하며,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테레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았고, 다이애나는 자신의 욕구충족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에 일생을 바친 슈바이처와 프랑스의 작가 카뮈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해에 노벨상을 받은 유명인 이었습니다.
슈바이처는 평화상을, 카뮈는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둘은 모두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카뮈는 그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멋진 별장을 구입했고, 고급승용차를 사서 타고 다녔습니다.
카뮈는 그 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든 어느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슈바이처는 그 상금으로 아프리카 랑바레네 병원을 지었고, 그 병원에서 아프리카의 불쌍한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여생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갈라디아서 6:7–9 NKRV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에서 복종하게 하다는 말의 헬라 원어인 '둘라고고' 라는 말의 원뜻을 살펴보면 매우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둘라고고' 는 종이라는 뜻의 '둘로스' 와 인도한다는 뜻의 '아고' 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는 말을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몸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합쳐서 번역을 하면 "몸을 강하게 단련시킨다"는 말이 됩니다.
3. 방향 감각이 분명해야 된다.
고린도전서 9:26 NKRV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달리는 사람은 달려야 할 코스를 분명히 알아둔 다음에 달려야 합니다.
모처럼 힘든 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어디로 가는지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사느냐를 묻기 전에
왜 사느냐 하는 것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그 최종 목 표까지의 코스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자가 달려가면서 목표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대로 목표를 정하거나, 궤도를 수정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최종 목표를 정한 다음 거기서부터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방향인 것입니다.
따라서 경기자는 이러한 방향을 분명히 한 다음 그리고 향해서 달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운동장에서 달리는 사람이 앞만 보며 달리지 않고 달리다가 말고는이리가나 저리가나 하고 헤맨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법을 지키는 훈
련을 철저히 함으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5 말씀에서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법대로 경기를 하지 아니하면! 다시 말하면 반칙을 하면 지금까지의 모
든 수고가 무효가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 코스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
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그 모든 코스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를 훈련시키는 코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어렵다며
괴로워하거나 힘들다고 원망하지도 마십시오. 나로서는 벅차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내
게 꼭 필요해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못된 버릇, 내 못된 성격, 내 못된 마음씨,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겠기에 나를 훈련시키는 과정에 그 코스를 넣
은 것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 입장에서 이것은 필요 있다, 없다라는 말을 어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내게 주신 이 훈련 과정을 잘 받아들여 언
제 어디서나 법대로 경기를 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추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기기를 원하는 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한다는 매우 중요한 말
씀을 하고 있습니다. 승리란 하루아침에 오는 기적이 아닙니다. 승리를 향한 여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챔피언인 권투 선수가 가끔 저에게 "목사님, 이번만 하고 그만 둘랍니다. 정말 힘들어서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번 링 위에 나가기 위해서 적어도 두달 전부터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전부를 원 코스대로 해야 되는데 링위에 오를 그 시간을 위해서 몸무게를 무려 12킬로 뺀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가서 싸우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훈련과 절제는 평생을 두고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몸도 마음도 절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스포츠 해설자들이 선수들
이 개인 자질을 놓고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것은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
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자기와의 싸움, 즉 게으름과의 싸움, 정욕과의
싸움, 욕심과의 싸움, 심지어는 이기겠다는 마음까지 와도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좋은 선수
는 물론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승리란 결코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길고도 고된 훈련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일 나를 쳐서 복종케 하지 못하면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버림이 된다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번역을 하면 실격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는 실격자가 될까 두렵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경기자가 된 자시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를 위해 우리
는 먼저 나의 목표는 분명한가? 내가 가는 방향은 분명한가? 대상을 분명히 보고 있는가를
살펴 본 다음 그에 필요한 정해진 코스와 법대로의 훈련을 함에 열심을 다해야 할 것입니
다. 그리고 승리를 원하는 만큼 모든 일에 절제를 해야 되겠습니다.
축복이란 결코 우연이나 요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을 가능케 하고 이 훈련을 수
고로 결심케 하는 거기에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고가 헛된 것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28:2 말씀에 보면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며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축복이란
수고 없이 먹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승을 목표로 경기장 선수
와도 같이 잘 훈련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최종 승리를 얻는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쫓아가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헬라 원어로는 '
디오코' 라고 하는데 이것은 보통으로 말하는 정도의 달려간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새번역 성경에서 "온 몸을 앞으로 기울여"라고 한 것처럼 전심 전력을 다해서 달려가는 것
을 말하고있습니다. 저는 달리는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이면 특별히 얼굴을 보게 되는데, 가
만히 보면 웃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대신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뛰는 것을 보게 됩니
다. 그야말로 발악을 하듯이, 그리고 젖 먹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힘을 다 쏟으며 마구 뛰는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자세와 상태로 달려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쫓아 가노라는 말입니
다. 달리는 선수는 내일 걱정, 모레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시간에 있는 힘을 다할
뿐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 4장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보면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
고 믿음을 지켰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는 골인 장소의 직
전에 있음을 말합니다. 이제 한발자국만 들여놓으면 그대로 요단강을 건너갈 시점에 있습니
다. 그리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남은 것은 믿음밖
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 시간에는 벌어 놓은 많은 돈도,
널리 알려진 명예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문제는 오직 하나 믿음을 지켰느냐에 있습니
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
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
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
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
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
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두 본문과 함께 히브리서 12:1에 기록된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
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
한 경주를 경주하며"라는 말씀을 보면서 앞장에 이어 경기자의 다음 모습을 보려고 합니다.
빌립보서 3장에 기록된 본문에 의하면 역시 목표가 뚜렷해야 하고 자기가 바라는 바의 목
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목적은 "위에서 부르
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는 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이
면류관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
수님께서는 전도를 하고 돌아온 제자들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을 하더라며 그간에 자기
들이 행한 놀라운 일들을 자랑스럽게 보고들을 하자, 예수님께서 조용히 하시는 말씀이 "귀
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
하라."고 하십니다. 하늘 나라에 기록된 것! 이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요, 최종 영광이며, 최
종 보상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켜서 생명의 면류관을
다 함께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