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마음의 짐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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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Handout
고백 : 우리의 습관화된 마음의 짐을 이해하자
헌금 :
예배를 위하여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 이 시간 예배를 통하여 주의 치료의 빛이 비치기를 기도합니다. 예배 중에 주의 성령께서 일하여 주시옵소서.
봉헌을 위하여
이 시간 준비된 물질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주일헌금과 감사헌금과 십일조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하심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물질을 통해 주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찬양 : 내 갈급함
본문 : 창 25:27-34 (27-32)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우리는 모두 결핍된 인생이죠.
부족함, 결핍, 연약함, 죄가 다 있죠.
그런 연약함 속에,
우리는 돌아볼 기회 없이,
바쁘게 달려가고 있을 뿐이죠.
그게 현재입니다.
우리는 결핍된 인생으로서,
무언가 부족하고,
또 무언가 과중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이 짐에 대해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주어진 시간에 따라,
쳇바퀴 돌듯이,
인생을 걸어가야 할 뿐인 것이죠.
그런 것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에서와 야곱,
두 아이들,
이제는 장성해서 어른이 된,
두 어른들에게도 일어나는 모습들인데,
오늘 특별히 에서와 야곱,
이 두 사람의 특징에 대해서,
한 가지 일화를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27절입니다.
두 사람의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 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장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긍정적입니다.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죠.
그래서 장막의 거주했다.
이러면,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의 장막에 거주하는 것보다는,
활발하게, 활력있게 살았습니다.
그게 두 사람의 특징이었던 것이죠.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용하느냐?
활발하게, 활력있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장막에 거주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이 가정은 편애하는 가정이었습니다.
28절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좋아하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했습니다.
에서는 인정받는 남자였기 때문에
자신감도 넘치고, 활력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반대로,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소극적이고, 주눅든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마음의 짐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내 내면의 고통은 언제 생겼을까?
부모의 양육 유형이 7가지 있습니다.
순모임 할 때 나눌 텐데,
아무튼,
7가지 중에 하나일 수 있고, 7가지 중에 여러 가지가 섞여서 나타날 수도 있고,
저는,
완전주의형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반복해서,
자기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완전주의형 아버지는
항상 조건에 따라서 자녀를 수용하고 받아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는 끊임없이 뭔가를 성취해야 하고,
이루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죠.
항상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재에 무언가를 이룬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이루어야 할 그 무엇에 대해 더 몰두하면서,
현재의 불행을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인생,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칭찬하고, 멋있다고, 잘 되었다고, 성공했다고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정작 자기 자신은 만족할 줄 모르는 인생,
그것이 완전주의형 부모님 밑에서 자란 친구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또한, 방치형 양육 방식이 있는데,
워낙 경제적으로 빠듯하고, 살기가 어려우니까,
사람들이 살면서,
자녀들은 어딘가에 위탁하거나,
그냥 집에 홀로 두거나,
아이들만 집에 있게 하거나,
이런 시간들이 많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치형 양육 방식으로 자란 아이들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갈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깊이 있게 친해져야 하는데,
그런 것을 경험해보지를 못했기때문에,
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한계를 규정짓는 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방임하고,
마음대로 살아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이것 외에도 5가지 유형이 더 있고,
또 이런 유형들이 여러가지 섞여서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여러 가지 유형들의 특징을 잘 살펴보고,
또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어떤 부모 밑에서 자라왔는가?
나는 왜 이런 스타일이 되었는가?
내 마음 속에 불편함과 거부감과 고통은 왜 생기게 되었는가?
마음의 짐이 언제 생겨났을까?
한번 질문해볼 수 있는 것이죠.
*아버지 이삭은 단순한 사람입니다.
복잡하지 않아요.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고,
에서가 좋아하는대로 내버려두는 스타일입니다.
에서가 예배 안 드려도 그냥 두고
기도 안 해도 그냥 두고
그냥 하나님 안 믿어도 내버려두는 스타일.
하나님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지 않고,
에서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도록 하게 하는 스타일,
이런 스타일은
무절제형 스타일인데,
자녀가 원하는대로
자녀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게 하는 스타일입니다.
자녀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부모가 그저 채워주기만 하는 존재,
그게 무절제형 스타일인것이죠.
이런 자녀는 아쉬운 것이 없고,
노력할 필요를 모릅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대로 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사람을 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적을 두지 않죠.
늘 아군만 옆에 두는 것이죠.
좋은 사람만, 좋게 말하는 사람, 비위 맞춰주는 사람이 주변에 늘 있습니다.
주변 사람을 고맙게 여기지 않고, 함부로 대하고 그렇습니다.
왜요?
자기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필요 없기 때문이죠.
에서에게 아버지는 무절제형의 아버지였다면,
야곱에게 아버지는 거부형의 아버지일 수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야곱을 인정하지 않았던 거죠.
편애하면서,
에서만 인정하고 사랑해주었던 것이죠.
야곱은 이런 상처가 있고, 쓴부리가 있어서,
성장하면서도, 야곱에게 있어 아버지는 친밀한 존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이나, 어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삼촌 라반이
야곱을 속이고, 괴롭혔을 때에도
야곱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책임감이 많았지만,
부정적인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하고 보호할 줄 모르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야곱에게 아버지는 거부형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도 이런 시절에,
부모님이 맡아야 했던 일들에 대해서
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과도한 책임감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쉬든지 놀든지 인생을 즐기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 배워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무조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책임져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
자기자신을 돌볼 생각을 하지를 못하고,
늘 내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책임지고, 애쓰려고 했던 그런 모습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놀거나, 즐거워하는 것이 못 마땅하고,
나 혼자 열심히 일하는 것이 못 마땅해 했던 적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뭐 나쁜 것은 아닌데,
조절이 필요하고,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죠.
*무절제형의 아버지 이삭에게 양육 받은 에서는,
자신의 욕구를 조절할 줄을 모릅니다.
나중에 창세기,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26-28장),
에서가 한 두 명의 여자와 만난 것이 아닙니다.
26장에서는 브에리의 딸 유딧을 만나고,
또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고 그랬습니다.
벌서 2명이죠.
그리고 28장에 가면,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추가로 또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에서는 만족을 모르죠.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살아가게 됩니다.
반대로 거부형의 아버지 이삭에게 양육받은 야곱은 어떻습니까?
야곱은 자기 인생이 없어요.
삼촌 라반에게 얽히고,
또 레아와 라헬에게 얽혀서,
늘 책임지고 또 책임지는 인생,
자기 삶은 없고,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해야 하는, 지긋지긋한 20년의 노예살이를 하게 되는 것이죠.
이게 똑같은 고통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녀를 낳고, 또 편애를 하죠.
야곱도 편애를 하죠.
요셉과 베냐민을 더 사랑하고,
나머지 10 자식들을 덜 사랑하는 야곱이 되었죠.
이거 또 반복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역시 다양한 양육 환경 가운데서 자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강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기도 했고요.
지시적인 어머니, 냉혹하고 냉랭한 어머니 밑에서,
공감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그렇게 방치되다 시피 자란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무절제형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고,
필요한 거 다 갖게 해주는,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거 인정해야 해요.
우리가 이런저런 모양으로 양육 받고 자라왔다는 거 인정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이해하고,
왜 화가 나는지,
왜 분이 나고,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는지,
왜 자기 자신을 돌볼 줄 모르고,
자신에 대해서 가치절하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석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어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대화하면서,
나랑 맞지 않는 사람과 대화할 때에 나타나는 불편한 감정들에 대해서,
그 사람에게 투영하지 않고,
내 과거와 비춰주면서,
내 양육 환경과 빗대어 보면서,
해석하고, 분석하고,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 중에서 지나친 강압형 부모님도 많았을 것 같아요.
자녀들에게 지시하고 감독하고 훈계하면서,
자녀의 일을 항상 지시하고,
자녀 스스로 뭔가 하게 하지 않는,
독립심을 빼앗가는 그런 부모님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러면 어때요?
자기 삶이 없죠.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말할 줄을 모르는 것이죠.
지시받고 명령받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지시된 삶만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죠.
또,
성공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완전주의형 부모님 밑에서 자랐을 가능성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성취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건적으로 사랑받고, 조건적으로 인정받고,
자기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고,
다른 사람은 칭찬하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자기를 칭찬하지 않고,
그렇게 삶에 대해 기쁨과 희열을 느끼지 못하고,
늘 부족감만 느낀채 살아가는 친구들,
이런 친구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요.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맡기는 것이죠.
나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고,
내가 살아왔던 환경들, 끔찍한 기억들, 사건들을 떠올리게 해주셔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해석하고 바라보고 이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뿐이죠.
심리학에서는,
내가 다 해야 해요.
아니면, 상담가가 대신해주는가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해주시는 거에요.
하나님이 내 과거를 어루만져 주시고, 내 마음의 짐을 덜어가 주시고, 가볍게 해주시고, 일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점점 떠올리게 해주시고,
만져 주시고, 치료해주시도록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이 고통스러운 기억도 떠오르게 하실 수도 있고,
반복해서 아픔을 가져다주는 관계를 허락하실 수도 있고,
그 관계를 통해,
내 내면의 문제를 지적해주실 수도 있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이 선하신 하나님의 개입으로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므로 세상은 사람을 의지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과거와 직면하고,
마음의 짐을 내어 드리고,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구하며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죠.
*이 시간에 찬양할 때,
우리는 다 결핍이 있고 연약함이 있고 아픔이 있고 스스로 지은 죄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 역시,
우리 마음의 짐이 되는 것이죠.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내 친구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죄의 짐이 되는 것이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해서, 가지는 마음의 부담감, 죄책감, 어려움들도 이 시간 하나님께 다 맡겨드리기를 바랍니다.
내 갈급함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지만,
내 상한 심령 어느 것으로도 치료할 수 없지만,
주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치료해주십니다.
우리 이 믿음으로 찬양하며 기도합시다.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짐을 덜어주시고 치료해주시도록
우리 인생에 과거를 주님께 내어 맡기고, 주님께서 돌보시고 인도하시도록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교회와 사역자, 리더십, 여름사역을 위해서
특별히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의 영육의 강건함과 은혜를 부어주시도록
여름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대학부 모든 여름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충만히 임하도록.
청년부를 섬기는 리더 순장 저를 위해.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나이가 들어도 우리의 연약함과 상처는 치료되지 않고 여전히 우리 안에 내재되어, 우리 삶에서 발현되고 반복되는 것을 살펴보게 됩니다. 일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이 또 다른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주여, 우리를 하감하옵시고, 굽어 살피시고, 주의 성령께서 말씀과 생명으로 우리를 회복하시고 깨끗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더욱더 건강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관찰
27 그 나아르(아이)들이 가달(커지다, 강하게 되다)하였다, 에서는 차이드(사냥, 경기)를 잘 아는(야다) 사람이었다, 들의 사람이 되었다, 야곱은 탐(조용한, 온전한, 성실한, 정직한) 사람이었으므로, 오헬(장막)에 야샤브(머물다, 거주하다)하였다.
장막에 거주하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이삭은 에서를 아하브(사랑하다)하였다,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조건) / 리브가는 야곱을 아하브(사랑하다)하였다,
이삭은 ‘조건’적이고
리브가는 ‘조건’이 없다.
29 야곱이 나짓(죽, 국)을 짓(교만하게 행하다, 요리하다, 가식적으로 행동하다)하였다, 그리고 에서가 들에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아옙(피곤한, 지친)하였다
짓 : 주제 넘게 행동하다, 거만하다; 안녕하세요. 음식을 준비하다, 거만하다
아람. זוּד는 음식을 준비한다는 개념(끓이거나 뜨겁지 않게)과 관련이 있는 반면, זִיד(이 연구와 관련된 주요 개념)는 과장되고 오만한 말, 주제넘은 행동, 무례함을 의미합니다.
동사 זוד는 야곱이 에서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창 25:29). 이 단어의 선택에는 야곱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에서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한 주제넘은 행동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암시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A. P. 로스, 창조와 축복, 1988, 449-50).
30 내가 라앗(먹다, 게걸스럽게 먹다 / 히필 명령)하게 하라, 원하건대, 그 붉고(아돔) 붉은 것(아돔)을, 내가 아옙(피곤한, 지친)하니, 그러므로 그의 이름이 에돔이라고 불리더라.
31 야곱이 말하기를, 너는 마카르(팔다, 바꾸다 / 명령)하라, 오늘 당신의 베코라(첫 새끼, 장자의 명분)를, 나에게
상속권(베코라) : 장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특권 (창 25:33; 대상 5:1; 대하 21:3). 신약 성경에서 이 개념은 암시 혹은 의도되었을 것이다 (그 관습과 함께).πρωτότοκος, 프로토토코스; 롬 8:29; 골 1:18; 히 1:4–6) 안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위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고: Inheritance.
32 에서가 말하기를, 보라(힌네), 내가 죽음으로(무트) 걷고 있으니(할라크), 이것이 나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 장자의 명분(베코라)가.
33 야곱이 말하기를, 너는 샤바으(맹세하다 / 명령), 나에게, 오늘. 그리고 그가 맹세하였다(샤바으), 그리고 그가 그의 베코라(장자의 명분)을 팔았다(마카르), 야곱에게
34 야곱이 에서에게 주었다(나탄), 레헴(떡)과 아다샤(팥, 콩)의 나짓(죽)을, 그리고 그가 아칼(먹다) 샤타(마시다)하고, 그리고 일어나서 갔다(할라크). 에서가 멸시하였다(바자), 장자의 명분(베코라)을.
포인트
에서와 야곱의 스타일
난폭한 스타일의 에서 (외향적)
조용한 사람 야곱 (내향적)
어떤 부모인가?
부모 스타일에 따른 과거의 모습들을 이해하자
에서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망령 : 믿음이 없는, 신앙심이 없는, 불손한,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한’
성전 밖
: 보통의, 평범한, 세속적인, 누구나 무엇에나 개방적인 이라는 뜻이다.
경계나 울타리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망령된 사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나 넘어설 수 있으며, 매우 평범하고 접근하기 쉬운 문지방과 같다.
그들은 세속적이고, 그들의 삶에는 거룩한 것이 하나도 없다.
에서는 하나님이나 영적인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에서는 분통을 터뜨리며 동생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에서는 이삭에게 축복을 받으려 했지만, 에서가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돌아섰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야곱
일찍부터 교활하고 비열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간교했던 야곱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야곱은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야곱에게는 라반과 그의 아들들이라는 골칫거리, 4명의 여자(라헬 레아, 빌하와 실바)의 다툼과 경쟁, 양떼를 먹이는 힘든 하루, 야곱은 그 모든 것을 인내하며 참아냈다.
심리학자 스캇 펙 “일단 인생이 힘들다는 것을 정말로 알게 되면 - 그리고 그 사실을 정말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 인생은 더 이상 그렇게 힘들지 않게 된다” (아직도 가야 할 길)
하나님은 야곱을 준비시키시려고 다루기 힘든 사람들과 환경들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왼손으로는 우리와 싸우시고, 오른손으로는 우리편을 드신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먼저 정복당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온전히 복을 주실 수 없다.
야곱은 브니엘에서 그는 새로운 약점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
마음의 짐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부모의 부정적 양육방식
지나친 강압형 : 자녀들에게 항상 지시하고, 감독하고, 훈계하며 자녀의 기억을 늘 상기시킨다. 이것은 자녀의 일을 쉽게 해주고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방법인지 몰라도, 그렇게 함으로 자녀가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지나친 강압에 복종하는 것을 어린시절에 배웠다면 그는 어른이 되어도 외부의 압력에 의한 지시를 쉽게 따르거나 혹은 부모가 했던 것 같이 자기가 스스로에게 명령과 훈계를 내리며 자신을 비판적인 태도로 바라볼 수 있다.
부모의 지나친 강압을 거부하는 자녀는 그가 해야 할 것을 망각하거나, 미루거나, 공상 가운데로 회피하거나 혹은 빈둥거림으로써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2. 과보호형 : 강압형의 반대이다.
부모는 자녀의 요구나 떼를 쓰는 것, 충동적인 행동 등을 그대로 받아줌으로 자녀를 다스릴 힘을 잃게 되고, 자녀는 규칙을 무시하고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부모를 조종하려 한다.
이렇게 길들여진 자녀는 더욱더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만 하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안 된다’ 라는 단어가 그에게는 생소하게 들린다.
그러한 자녀는 어린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제재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안 된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자라서 성인이 된 사람의 미성숙한 태도는 종종 그의 충동적인 행동에 의해서 파괴적으로 위장된다. 즉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 먹어댄다든지, 술과 담배를 과하게 한다든지, 정신없이 거리를 헤맨다든지, 쉽게 화를 낸다든지 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3. 완전주의형 : 보통 성공한 사람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성취 수준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 사람에게는 어떤 것이든지 결코 충분치 못하다.
대개 조건적으로 자녀를 용납했던 가정에서 볼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그의 수준 이상으로 성취하기를 기대하고 그러한 기대가 충족될 때만 가치를 인정해 준다. 자녀는 이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고 성취욕에 지나치게 몰두한다. 그는 부모가 기대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저하시키는 태도는 어린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몸에 배이게 된다. 완전주의자는 자신이 성취한 것에 실망하고 생에 대한 기쁨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그가 성취한 것을 칭찬하며 꽤 만족하는데 이런 것이 그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다.
4. 무절제형 :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채워주는 가정에서 생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녀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녀가 원하는 것과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부모가 무절제하게 일방적으로 채워주는 것이다. 수년을 이렇게 과도하게 공급해 주다 보면 아이는 ‘사물’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독창성과 자발적인 능력을 잃어 무감각해진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받는 대가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꾸준히 지속적으로 인내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이 없으면 삶을 비관하거나 혹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고 비위를 맞춰 줄 사람을 계속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나타나도 즉시 싫증내며 무감각하게 대하기 쉽다.
5. 체벌형 : 이것은 종종 강압형과 완전주의형을 합친 형태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벌을 줄 때 스스로 정당하다고 느끼지만 대개 자녀의 행동과 태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 좌절, 인내심의 부족 때문에 화를 내고 만다.
이렇게 부모에게 혹독한 취급을 받은 자녀는 벌을 정당화시키거나 혹은 벌을 자초하는 행동에 익숙해진다.
부모로부터 무관심과 혹독한 취급을 받은 아이는 성인이 된 후 보복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즐거운 관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경우 복수심을 갖기 쉽다.
반면에 부모가 자녀에게 애정을 표시하면서도 지나친 체벌을 함께 수반했던 경우는 후에 자녀가 성인이 되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비판하거나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다.
6. 방치형 :
부모가 자녀에게서 떠나 있거나 다른 일에 몰두해 있어서 자녀의 성장발달 단계에 관심을 가져주지 못할 때 생긴다. 방치형의 부모는 사회의 어떤 게층에서든지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서 방치되었던 경험이 있는 자녀는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의미있는 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하다.
또한 자신이 어린아이였을 때 아무도 필요한 규칙의 한계를 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나 능력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 어렵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자아정체감을 확립해 나가는 면에서도 어려움을 느낀다.
7. 거부형 : 그리 흔한 형은 아니다.
계속해서 거부감을 경험한 자녀는 부정적인 자아개념을 갖게 된다.
성장함에 따라 마음 속에는 쓴 뿌리가 생기고 근심과 외로움과 무력감을 느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는 것에서도 거부감이 형성될 수 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에게 어른이 져야 할 책임을 부과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어린아이로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을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마땅히 누려야 했던 상실된 경험, 즉 부모가 베풀지 못한 용납과 사랑과 칭찬을 그리워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책임을 떠맡으려고만 하고, 여유를 가지고 쉬든지 놀이를 하든지 생을 즐기든지 하는 것은 결코 배울 수 없다.
자신의 생활을 제한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도 구속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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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많이 하면 할수록 도움이 된다.
당신이 찾아내야 할 기억은 계속해서 자주 일어났던 습관화된 경험이다.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대했던 지속적인 태도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라.
어떤 기억은 강한 고통 때문에 그 감점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눌러 놓은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이 남아 있다면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 실재로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허용하라.
기도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달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