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개관
BIble Stduy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48 viewsNotes
Transcript
고린도교인들이 처한 문제들
고린도교인들이 처한 문제들
역사적 배경
역사적 배경
만약에 누군가 고린도후서를 처음 펴서 읽기 시작했다면 그 사람은 티비 프로그램을 중간에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모릅니다. 왜냐면 어떤 맥락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를 읽으려면 무엇보다 고린도전서와 연결해서 읽는 것은 물론이며, 그 전반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총 4개의 서신을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린도전전서(고전5:9) - 고린도전서 - 눈물의 편지 (고후 2:3-4; 7:12) - 고린도후서
[고린도전전서]
고린도전전서는 고린도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에 대한 권면의 내용이 담겨져 있던 것으로 추정이됩니다.
나는 내 편지에 여러분에게 음행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썼습니다.
아마도 고린도전전서에는 고린도의 음행을 비롯한 고린도교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권명의 내용이 담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등의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편지를 보낸 이후에 에베소에 머물면서 바울은 구두와 서면으로 고린도 교회인들이 처한 문제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써보냈습니다.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에서도 살펴 봤지만, 고린도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만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차별의 문제, 성도의 파문에 관한 문제, 성도덕과 음행에 관한 문제, 영적인 은사에 관한 문제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실제적인 해결책이 담긴 고린도전서를 써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원래 유대 지방의 신자들에게 자신이 모금한 헌금을 전달하러 예루 살렘으로 돌아 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마게도냐를 거쳐 에베소로 오면서 직접 고린도를 방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고전 16:5-7). 바울은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디모데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고린도를 방문할 것을 지시했습니다(고전 16:10-11). 디모데가 방문했을 때, 고린도교회는 큰 문제에 직면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이 바뀌어 마게도냐로 갔다가 에베소로 돌아오는 길에 고린도를 방문했습니다 (고후 1:15-16). 아마도 고린도에 기습적인 방문을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 방문 과정에 문제는 더욱 깊어지고 심화됩니다. 바울은 죄를 지은 사람들(고후 13:2)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즉, 그 사람들을 훈계하며 굴욕감을 준것이죠. 훗날, 그 일에 관해 언급할 때, 바울은 자기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근심하게 한 일이라며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고후 2:5). 자신이 정말 분노한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복을 할 바에 차라리 수치를 당하고 떠나는 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최선이라고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고후 1:23-24, 2:1-3)
한편, 고린도에는 또 다른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0-13장은 바울과 고린도 교인간의 갈등들이 나옵니다. 그 유명한 사도권을 변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짓 교사들과의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풍자적으로 그들을 거물급 사도(고후11:5; 12:11)로 비꼬아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저 위대한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거짓 사도들은 대게 유대계 (고후 11:22) 사람들이었고, 자칭 그리스도의 일꾼 (고후11:23)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을 보고 변장한 사탄의 일꾼이며 (고후 11:13-15), 다른 예수를 전하며, 다른 복음을 전하며, 다른 영을 전하는 (고후 11:4)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특별히, 바울과 거짓 사도간에 문제는 교리 문제가 아니라 권위 문제였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거물급 사도들은 바울은 앞에서는 유순한데, 떠나서만 강경하다고 비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후10:1). 또, 그들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고(고후 10:10) 비난했습니다. 몸으로 대할 때 약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1) 몸집이 왜소 했는가?. 2) 신체의 질병이 있었는가?, 3) 말을 더듬거나 언어 장애가 있었는가? 4) 말주변이 없었는가?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거물급 사도들이라 불리우는 사도들보다 카리스마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바울은 그레코-로만 세계에서 인기있던 연설가들에 비해 쇼맨십이 좋거나 능숙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보다 못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합니다.
[눈물의 편지]
어쨋건, 근심 중에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에 바울은 이 고린도 교회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됩니다. 이것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3번째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두 번째 고린도 방문 이후 기록된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는 순종의 표시로 불의를 행한 자를 징계하라는 권면이 담겨 있던 것 같습니다 (고후 2:9; 7:12). 강경한 바울의 지침이 있던 것입니다. 바울은 특히 세 번째 서신을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썼다고 고백합니다(고후 2:4). 바울이 이처럼 강경하게 대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큰 환난과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많은 눈물로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이는 여러분을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 대해 넘치는 사랑이 내게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눈물의 편지’하고도 말합니다.
그렇게 사건이 계속해서 난항을 겪던 도중, 디도를 통해 좋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울의 의도에 맞게 교인들은 모든 행동들을 회개하고(고후 7:9-11), 불의를 행했던 그룹들을 징계했습니다(고후 2:6-7). 바울은 그로인해 기뻐했고(고후 7:4), 그 교회를 다시금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고후 7:16).
[고린도후서]
이에 바울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네 번째 서신을 기록하게 되는데 그 내용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베푼 호의에 안도와 기쁨을 말하며, 처벌받은 사람을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격려합니다(고후2:6-10). 그리고 그 책이 고린도후서 입니다.
구조
구조
고후 1:1-11 서언
고후 1:12-2:11 바울과 고린도교회의 관계
고후 2:12-7:16 바울의 사역 변증
고후 2:12-17 드로아와 마게도니아 사역
고후 3:1-3 바울의 추천서
고후 3:4-6 바울의 확신
고후 3:7-18 새 언약의 사역
고후 4:1-6 드러난 진리
고후 4:7-18 질그릇과 보물
고후 5:1-10 임박한 부활
고후 5:11-6:2 화해 사역
고후 6:3-13 고난의 목록
고후 6:14-7:1 바울의 대적자로부터의 분리 요청
고후 7:2-16 바울의 최종 변증
고후 8:1-9:15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
고후 10:1-13:4 사도직에 대한 변호
고후 13:5-12 마지막 당부
고후 13:13 마지막 인사
바울의 사역
바울의 사역
바울은 이 서신의 대부분을 자신의 사역의 특성과 내용을 논의하는 데 할애한다.
첫째, 그는 무엇보다 자신이 수행하는 사역의 진실성(integrity)을 강조한다(고후 7:2).
그와 그의 동역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거나”(paddlers of God’s word, 고후 2:17), 자기 자신을 전파하거나(고후 4:5),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falsify) 사람들(고후 4:2)이 아니다. 그들은 고난을 인내하고(고후 6:4–5) 하나님의 참된 종(고후 6:4)이요 그리스도의 사신(고후 5:20)임을 드러내는 미덕들을 보임으로써(고후 6:6–7), 아무런 숨김없이(고후 4:2) 성실함(sincerity)으로 일한다(고후 1:12; 2:17).
둘째,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었음을 강조한다.
바울이 그들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표명하거나(고후 2:4; 6:12; 11:11), 그들과 갈등 가운데 있을 때에도 개인적 고통의 경험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을 보면(고후 2:1–4), 직무상으로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그들에게 헌신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그들과의 관계를 마음을 주고받는 사랑의 관계로 표현하면서 그들을 세심하게 배려한다(고후 6:11–13; 7:2; 참조 고후 12:15).
셋째,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으로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보내졌고,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그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고후 2:14, 17; 3:4–6; 4:1, 7; 5:2, 18, 20). 그 일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 일은 새 언약(고후 3:6)을 넘어서서 새 창조(고후 5:17)를 가져오는 영적인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행하시는 일은 과거의 모든 영광을 능가하는 영광을 드러낸다(고후 3:7–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평범한 인간, 즉 고난과 시련을 경험하는 인간에 의해 수행되는 사역이다(고후 4:16; 5:2–4; 6:4–10; 또 고후 11:21–33도 보라). 귀중한 보화가 질그릇에 담겨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 역시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연약한 인간들에 의해 전해지는데, 그들의 삶 또한 그러한 복음이 수반하는 역설(paradoxes)의 형태를 띤다(고후 4:7–12).
구제금
구제금
바울은 이 서신의 두 장을 예루살렘을 위해 모금한 구제금에 할애한다. 고린도후서 8–9장은 신약성경에서 구제금에 관해 가장 광범위하게 논의하는 부분이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자신이 세운 이방 교회에서 구제금을 모금할 것을 유대인 그리스도인 지도자들과 합의한 바 있다(갈 2:10; 참조 행 11:29–30; 24:17). 이 구제금 모금은 단순한 자선 행위만이 아니라, 이방인 성도와 유대인 성도의 일치를 입증하는 기회도 되었다. 바울은 서신 도처에서 구제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롬 15:25–27; 고전 16:1–4), 종종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말과 유사하게 구제금을 요청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9장에서는 구제금 주제가 마치 새로운 주제처럼 도입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을 바울이 구제금에 관해 쓴 다른 두 개의 서신으로 생각하기도 한다(고후 8장은 고린도에, 고후 9장은 아가야 전체 지방에).
여하튼 이 두 장은 교회가 재정 관리를 가르치고 헌금의 정신을 강조하는 데 자주 사용되곤 한다.바울은 구제금을 낼 기회를 하나의 특권, 즉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표현한다(고후 8:1–2).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재물을 나누는 원칙을 고취시킨다(고후 8:13–15).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기”(고후 9:7) 때문에, 헌금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하고(고후 9:5), 각자의 형편에 맞게 해야 한다(고후 8:3, 11–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모금에 풍성하게 참여하도록(고후 8:7), 바울은 그들의 이웃인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적 헌금을 예로 든다(고후 8:1–5). 그들이 마게도냐 교회보다 못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계속해서 그는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고린도 교인들의 열심을 자랑했다고 말하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자신이 난처해지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후 8:24, 9:2–4). 하지만 보다 깊은 차원에서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에 근거하여 모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고후 8:9). 더 나아가 그러한 모금의 궁극적인 근거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의 청지기들(stewards)이라는 확신에 놓여 있다(고전 4:1- 2를 보라).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풍성하게 누리고 있는지 깨닫는다면(고후 9:8; 참조 고전 4:7), 그들이 받은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풍성하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기꺼이 사용할 것이다(고후 9:12–14).
사도적 권위
사도적 권위
고린도후서 전체를 통해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고 또 변증한다.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전서로 되돌아가 거기에 언급된 권위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을 출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고전 5:3–5). 그는 “주님의 말씀”이 아닌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고전 7:12, 25, 40; 참조 7:10), 자신이 이 서신에서 말한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교회의 선지자로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전 14:37–38). 그는 자신을 교회의 이상적인 롤 모델(role model)로 제안하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담담하게 권면한다(고전 11:1; 참조 4:16). 그러한 발언들이 교회의 어떤 이들에게는 강압적으로 여겨졌고, 바울의 적대자들에게는 그를 독선적인 자기 과시자(self-promoter)로 몰아 부칠 빌미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바울이 그러한 권위를 주장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러한 권위를 주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고린도후서에서 우리는 이러한 권력 투쟁의 가능성이 현실이 된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고린도 교회에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고후 11:13) 사람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참된 사도”와 “거짓 사도”를 분간할 수 있는 기준 문제가 제기된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사도들을 세우셨다고 말한다(고후12:28). 어느 누구도 스스로 사도가 될 것을 선택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두 개의 서신을 결합해 보면 바울이 사도직에 대한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는 “참된 사도의 표”(the signs of a true apostle)에 관해 언급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을 상기시킨다(고후 12:12).
• 그는 참된 사도를 “주를 본” 사람, 즉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으로 규정한다(고전 9:1). 바로 이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8 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논의할 때 자신을 부활하신 예수의 목격자들 목록에 포함시킨다. 그가 “맨 나중에…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8)고 말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부활 현현은 이미 끝난 상태이다. 즉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침입자들처럼) 예수가 그들에게도 나타났다고 갑자기 주장하는 자칭 사도(volunteer apostles)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 그는 사도의 역할을 교회를 설립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을 개종시킨 장본인(“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고, 그들이 그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the seal of his apostleship)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도이다(고전 9:1–2). 그는 그들의 믿음의 아버지이고(고전 4:14–15), 그들을 자녀로 훈계할 권리를 가졌다(고전 4:14; 고후 6:13; 12:14). 이런 점에서 그는 자신들의 권위를 추천서로 보증하려는 자칭 사도들을 조롱한다(고후 3:1). 그의 추천서는 고린도 교인들 자신들인데, 이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령을 잉크 삼아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고후 3:2–3). 바로 이런 이유로 바울은 거물급 사도들(실제로는 사도가 아닌)이 그들의 한계를 벗어나 자신의 “활동 무대”(sphere of action)로 들어와 자신이 세운 터 위에서 그들의 권위를 행사하려는 것을 우려한다(고후 10:13–16). 가설적이긴 하지만, 만일 이들이 주님의 칭찬을 받으려면(고후 10:18),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지역으로 가서(고후 10:16), 새로운 믿음의 개종자를 만들어 그들 자신이 세운 교회에서 권위를 행사해야 한다.
• 그는 사도를 권위 있는 전통의 대변인으로서 섬기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그가 “받은 것”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해주었다”고 말했다(고전 15:3; 참조 11:2, 23). 이제 고린도후서에서 그는 “거짓 사도들”(고후 11:13)이 “다른 복음”, 즉 이미 전해진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후 11:4; 참조 갈 1:6–8)고 암시한다. 바울은 말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고후 11:6). 여기서 지식은 무엇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가? 가장 가능성이 있는 대답은 이러한 침입자들과 달리 자신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에 대한 적법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사도라는 점이다.
사도직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개념이 바울에게 절대적 기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로마서 16:7에서 그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사도들 중에 뛰어난”(prominent among the apostles, 개역개정에는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는” 자들로 번역됨-역주) 인물들로 언급한다. 그들이 기적을 행했거나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거나 교회를 설립했다는 어떤 언급도 없이 말이다.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갈등의 상황이었고 그 상황이 바울의 진술에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