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_09:57-09:62_주님을 따라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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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intro
intro
오늘 본문은 주님과 주님을 따라 살아가려는 분들의 대화입니다.
세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주님은 별 말씀 없으셨는데, 본인이 스스로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기롭게 나서는 분입니다.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주님은 따라오라고 하셨는데, 안 가겠다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마지막 한 사람은 어느 정도 주님을 따를 마음은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사실 이 세상에는 지금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불문하고 이제는 전세계 구석구석에서 주님을 따라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독특한 자신의 현실조건 속에서 주님을 따르며 살고 있습니다.
미국, 프랑스, 몽골, 일본, 호주, 브라질 할 것없이 각 나라의 독특한 문화 위에서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모습은 천차만별입니다. 예배순서도 다르고, 기도방식도 다르고, 찬양도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아마존 밀림에서부터, 농경문화, IT첨단사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따라 살겠다는 본인의 믿음고백 한 가지 빼고는 모든 생활방식과 판단기준들이 전혀 다르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같은 주님을 따르는데도, 서로 이해보다는 오해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어떻게 그 자녀들은 이렇게 다 다를 수가 있나 놀라게 됩니다.
나 혼자 지낼 때는, 내 생각이 다 맞는 것 같고, 내 스스로가 이해심이 좀 있는 것같고, 내 사고방식이 그래도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까 나라는 사람이 지극히 작은 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날에 놀라는 것입니다.
_exa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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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동기전도사님들과 하던 농담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전도사는 책 1권읽고, 진리를 깨달아서 스스로 확신에 차있는 전도사라고 했습니다. 누구도 말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확신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맞는 말을 맞다고 하는게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를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가 예수님 믿는 것 빼고는 다 다른데, 서로 어떻게 함께 지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 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같이 살겠다는 본인의 의지입니다.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 나랑 성향이 안맞는 사람. 나랑 입맛이 다른 사람. 어쩌면 내가 보기에 나보다 더 잘난 사람, 혹은 내가 보기에 나보다 한 참 못한 사람, 내가 볼 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 내가 볼 때 하나님과 담 쌓고 사는 사람 등등, 어떤 사람까지 함께, 같이, 지낼 수 있는가가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관건입니다.
대표적으로 사도바울은 왠만한 사람들과는 다 친구로 지내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리스 사람에게나 미개한 사람에게나,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다 빚을 진 사람입니다.
사람은 다 다르지만,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정하는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신앙의 현실이 있습니다.
1_point) 그것은 주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마음 편한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1_point) 그것은 주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마음 편한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1_reason)왜냐하면 주님께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_reason)왜냐하면 주님께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스스로 주님을 따라 살겠다고 나서는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각오는 되어 있느냐고 반문하고 계십니다.
진심어린 고백은 언제나 좋지만, 현실적으로 주님이 가신 길을 같이 걸어 갈 각오는 되어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 살든지 말든지는 각 사람의 선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따르겠다고 결정 한다라면 그 때부터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다르고,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과 사람이 관심있어 하는 것이 서로 잘 맞지가 않습니다. 그것을 맞춰가는 과정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든 각자의 생각이 있고, 각자의 꿈이 있고, 각자의 욕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주님의 생각이 있고, 주님의 꿈이 있고, 주님의 욕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그 상황을 아시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물어보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 때다 싶어, 서슴없이 본인의 기도제목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내 인생에 하나님의 영광이 좀 그럴듯하게 나타나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주님께서 받으실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님 좌우에서 후광이라도 좀 받아서 남들 과는 다른 본인만의 특별한 위치를 좀 달라는 본인의 꿈이었습니다.
어차피 섬기는 인생이라면, 더 많이 가져서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좋지, 자기 굴 하나없는 여우처럼 사는 것이 뭐가 좋겠습니까.
아니 이왕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폼나게 지내는 것이 좋지, 자기 집이 없는 공중에서 빙빙도는 새들처럼 처량하게 지내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물으시는지도 모릅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디 머리 둘 곳도 없고, 마음 편안할 날도 별로 없을텐데 괜찮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 생각에, 주님께서 오병이어를 수시로 일으키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늘 풍족하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매끼니마다 배부르게 먹고, 또 남는 것은 주위에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아름답게 지낼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병이어는 단 한번의 이벤트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들판에 남들이 추수하다 남겨 놓은 밀이삭을 비벼먹으며 지낸 것이 그들의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런 과정을 제자들의 인생 속에 두셨는지는 다 알길이 없습니다.
온 천지의 금은보화가 다 하나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1년에 한 번 내는 성전세 반 세겔이 없으셔서 물고기 입에서 나온 동전으로 겨우 내셔야했습니다. 물고기 입에서 돈을 꺼낼 수 있으신 분이 바위를 쳐서 돈다발을 나게 하실 수는 없었던 것일까요.
주님께서는 주님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2_point) 주님의 관심은 온통 사람의 내면에 있습니다.
2_point) 주님의 관심은 온통 사람의 내면에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라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전인격적인 새로운 변화이기 때문에, 주님의 관심은 온통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든지 말든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따르겠다고 결정을 한다면, 주님은 그 사람의 내면을 사로잡으십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은 머리둘 곳도 없이, 마음편할 날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을 따라 살기로 결정을 하는 사람에게는,주님의 성령이 내면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십니다.
끊임없이 정신을 흔들어 일깨우시고 하나님 나라에 걸맞는 각종 훈련을 진행 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활은 곧 이스라엘 광야생활의 현대판 개인적용 버전과 같습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세상어느 것으로도 기쁨도 되지않고, 위로도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내면을 붙들고 계실때애 입으로 자주 하는 말은 ‘그럴 수도 있지’입니다. 본인이 동의 할 수 없는 사람, 동의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초장에 묵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내면이 성령님쪽으로 기울어지면 ‘그럴 수도 있지’합니다. ‘나도 부족한 것 투성인데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연약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는 관용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렇지만 내면에 자기욕망이 우세해질 때 자주 하는 말은 ‘내가 틀린말 했어?’입니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으면 말해보라는 식으로 격동할 때, 우리의 내면에서 성령님은 밖으로 밀려나는 것입니다.
내면의 싸움이란 ‘내가 틀린말 했어!’ 하면서 나를 주장하던가, ‘그럴 수도 있지!’하며 나를 부인하던가의 기로에 서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항상 치열합니다.
나를 부인한다면 내가 쪼다가 되는 것 같고, 내가 능력없어 보이는 것 같고, 내가 손해보는 것같습니다. 열도 나고, 짜증도 납니다.
어떻게든 설명을 해서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고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내가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하며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밀어내고 분노로 끌어오르기가 쉽습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고, 육체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는 다툼과 깨어짐입니다.
1_point)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마음 편한 날이 없습니다.
1_point)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마음 편한 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면에 싸움이 맨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맞다고 나를 변호하고, 나를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변호를 주님께 맡기고, 나를 부인할 것인가의 기로에 매사사건건 서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하루일과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이빨을 깨물고 나를 부인하는 쪽으로 자꾸 선택해야 합니다. 잘 안지만, 계속 시도해야 합니다.
나를 주장해서 좋은 열매를 맺으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안으로는 다툼이고 밖으로는 깨어집뿐입니다.
나를 부인하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안으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밖으로는 화평입니다.
내면에 계신 성령하나님께서는 강력히 요구하시지만 결코 강요하시지는 않습니다. 내 욕망과 싸울지 말지는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싸우기로 결정하신다면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성령께서는 기꺼이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면, 살아계신 성령의 교통하심이 내면에 일어납니다. 그 내면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상태가 예배자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입니다.
동시에 예배의 목표는 우리의 내면을 지성소로 삼아서, 우리의 내면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면의 싸움으로 주님 말씀에 순응하느라고 자존심이 상하고, 굴욕적인 기분이 들고, 마음에 생채기가 나겠지만, 그 상한심령은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나는 보증수표가 됩니다.
주님께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너를 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머리 둘 곳도 없고, 마음편할 날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르기로 하신다면, 세상을 알지못하는 감추어진 만나를 먹을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될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구체적인 인생의 시간들이 되실 것입니다.
1_point)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편할 날이 없습니다.
1_point)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편할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렇게나 그냥 저절로 세워지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이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을 해야 합니다. 자기 내면의 싸움을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기면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outro
outro
주님을 따르기로 매일같이 결정하시고, 마음 불편하게 살아갈 각오를 하십시오. 힘들겠지만 내면의 싸움에서 이기십시오.
울어도 하나님 앞에서 울고, 욕할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욕을 하고, 다시 힘을 얻어도 하나님 앞에서 힘을 얻으시는 굉장한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왕 주님을 따라 여기까지 지내오셨다면, 지금있는 그 자리에서 내면에 집중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는 저와 여러 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하겠습니다.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따라 살고 싶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변변치 않고, 의지도 박약해서 잘 따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고, 긍휼이 여겨 주셔서 내면생활에서 승리하고,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이 세상 속에서 쉼을 얻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