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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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를 지켜주셔서 주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는 복된 인생되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배하는 이 시간 온전히 주님 앞에 드려지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주님앞에 영광 돌리는 예배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안에 세상의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닌 주의 은혜를 채우게 하셔서, 날마다 성령충만한 믿음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은혜의 말씀이 되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모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 주의 전에 나와 기도하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만나주셔서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있게 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응답을 받는 은혜의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본문 : 호세아 6:1-6절
제목 :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할렐루야~
오늘도 주의 전에 나와 예배하시는 성도님들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예배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알고 기도할 때 풍성한 응답의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호세아서의 말씀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주전 750년 이후 활약한 선지자입니다. 이 당시는 상업의 발달로 부유한 지도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신앙이었습니다. 이 당시는 바알과 아스다롯의 우상을 섬기는데 이는 매우 음란한 종교였고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우상을 섬기며 영적인 간음을 하며 타락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호세아를 부르시고 음란한 여자인 고멜과 결혼함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으로도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은 주변 강대국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섬기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며 영적 음란과 타락을 하고 있는 백성들을 볼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 하셨겠습니까? 마음 아파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두 가지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먼저 말씀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마음의 상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갔다면 이제는 그 마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으로 향했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것이 불행이고 비참함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말씀을 보시면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이야기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분깃을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를 떠나면 자유와 쾌락을 누릴 줄 알았습니다. 원하는 만큼의 돈을 가지고 나갔지만 아버지를 떠난 후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 돼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는 것입니다. 결국 굶주리며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굶주림 가운데 있게되고 굶주림이 채워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삶은 늘 채워지지 않고 비참한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돌아올 때 어떻게 맞아 주십니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살진 송아지로 잔치를 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인생의 근본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진정한 축복이며 형통한 복인줄 믿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길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과 하나님을 떠나 있는 두 길이 존재합니다.
시편 1편의 말씀에도 두 가지의 길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들의 길과 악인들의 길입니다.
의인들의 길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죄인들의 길에 서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은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안에 형통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에도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회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할 때 우리를 찢기기도 하고 우리를 치시기도 하십니다. 우상숭배로 인해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상황이 되더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낫게 하실 것이고, 싸매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상처, 혹은 여러가지의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낫게하실 것이고 싸매어 주실 것이고, 회복 시켜주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되심을 믿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결국 우리를 위로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 분은 우리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것은 여호와를 알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힘써라는 단어의 뜻은 추격하다, 뒤쫓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추격할때 설렁설렁 걷지 않습니다. 사력을 다해 뛰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도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력을 다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영적인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예배와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함께 영적인 교제를 하는 시간이 되어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에는 오직 하나님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아갈 때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방금 말씀을 읽었던 3절의 말씀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아갈 때 새벽빛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루 중에 가장 어두운 때가 새벽입니다. 우리 인생의 새벽이될 때 우리 하나님께서 새벽 빛 같이 나타나십니다. 우리의 삶이 절망적일 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새벽빛같이 나타나 우리의 절망과 어려움은 사라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때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새벽 빛 같은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면 비와 같은 복을 받게 됩니다.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비는 시들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실 때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이른 비는 씨를 뿌릴 때 땅에 흡족할 정도로 내리는 비이고, 늦은 비는 열매를 결실 할 때 내리는 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에게는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는 것처럼 필요한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의 단비가 되어 찾아 오실 것인데, 언제 그렇게 오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기에 힘쓸 때입니다.
성도님들의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으십니까? 하나님 알기에 힘쓰고 계십니까?
여호와를 힘써 알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번주 우리는 구역종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입니다. 말씀과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없다고 안타까우시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더 깊은 차원으로 알아가기 위해 말씀묵상을 하고 기도의 시간을 갖기 위한 계획을 다 세우신줄 믿습니다. 이런부분이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가까이 하며 하나님 알기에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힘써 하나님을 알아갈 때 회복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이른비와 늦은비의 축복의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는 복된 새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믿음의 모습이 되기 위한 두번째는 “인애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본문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다고 말씀합니다.
인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된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인애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을 기초해 이웃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조건없는 사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애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대한 사랑이 구름과 이슬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구름과 이슬은 쉽게 사라집니다. 구름은 바람이 불면 없어지는 것이고 이슬은 햇빛이 나기 시작하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애가 이렇게 순간적이면서 금방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다가 저녁에는 사랑하는 감정이 없어지는 것은 진정한 인애가 아닙니다.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에게 조금만 안좋은 일이 다가오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 신실한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이 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뺏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웃사랑으로 섬겨야 하는 백성들이 오히려 자신의 부를 누리기 위해 이웃을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제사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 6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예배보다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되는구나”라고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예배를 드리되 하나님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는걸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 사랑의 마음 없이 예배만 드리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형식적으로만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는 드리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마음이 빠진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 시대의 큰 죄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와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껍데기만 남게 된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많은 제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감사하거나 사랑의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도 없고 사랑의 마음도 없고, 제사를 드리는 형식만 남게 되었기 때문에 제사를 원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돌이켜 가장 중요한 인애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고 예배 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애의 마음으로 예배 드리며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셔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의 내용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안식일에 관한 논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면서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보다는 율법의 규례를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율법의 형식만 따르는자들이 된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고 형식만 따르니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7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니라”
호세아서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비를 원하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자비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한 자비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10장에는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어떤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강도 만난자가 죽어가고 있을 때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나 죽을 지경이 된 사람을 피해갑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입장에서 보면 율법에 부정한 것에 손을 대면 안되기 때문에 가까이 가지 않고 피해갑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가던 길을 멈추고 강도만난 자를 도와 줍니다.
예수님은 누가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이 때 대답은 자비를 베푼자니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비를 베푼자처럼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의 형식이 아니라 자비를 베푸는 정신이 중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비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의 형식은 있으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이웃을 사랑으로 베풀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배를 드리는 자는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인애의 마음을 가지고 나와 믿음이 행함으로 나올 때입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나의 행함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수년간 다니고 횟수는 늘어가지만 나의 삶이 말씀 앞에 변화지 않는다면 호세아 시대 백성들이 드렸던 예배와 같은 모습입니다. 인애없는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나는 예배를 드렸으니깐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인애이며 자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 없이 의식적으로만 형식적으로만 예배를 드리고 마음은 점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책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자처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이웃은 누구입니까?
나의 가족이 될 수도 있고 교구의 성도 한분한분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파주 아웃리치를 준비하며 만나는 영혼 한분 한분일 수 있습니다. 주변의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고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깨닫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의 모습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결같이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포기하신적이 한번도 없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고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안에 진정한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라며, 늘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복된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길 때 이른비와 늦은비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새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신앙의 길에서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힘써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게 하시고 나의 모습을 통해 주의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주여 한번 부르짖고 말씀을생각하며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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