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들에게 말하라 렘1:11-19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6 views
Notes
Transcript
7월 7일 / 찬351장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 예레미야 1장 11-19절 (16-17) 다 그들에게 말하라!
예레미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이다. 선지자 중 가장 길게 약 41년 동안 사역하신 분이다. 백성의 죄악이 극에 달했고 바벨론 침공과 포로를 눈앞에 바라보면서 백성들을 경계하고 책망을 많이 한 선지자였다.
신학대학원 은사님 중 눈물의 선지자가 계셨다. 후배들인 우리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실 때 참 눈물이 많으셔서 우리 동문들이 예레미야라고 별명을 붙였다. 강단에 서기만 하면 우신다. 설교하는 중에 대성통곡 우시고 울리기도 하셨는데 예레미야를 대할 때 꼭 그 은사님이 떠오른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졌는데 그는 왜 울었을까? 백성의 고난을 보고 울었다. 지금의 고난이 아니다. 이제 장차 오게 될 고난... 어리석은 백성은 현재만 생각하는데 선지자는 미래를 보는 것이다.
아이들은 걱정이 없다. 전쟁 통에서도 엄마 품에서 평화롭게 잠든다. 아아들이 믿음이 좋아서 걱정 안하는 것이 아니라 뭐가 뭔지 모르는 것이다. 결혼 앞두고 있는 청년들 상담하다보면 자기 부모님이 믿음이 없다고 불평하는 청년들이 간혹 있다. 자기는 믿음이 좋아서 배우자 될 사람 믿음을 보는데 부모님은 안타깝게 형제의 스팩만 보려하시지 믿음을 안보신단다. 부모님이 믿음이 없어서 걱정하시는 줄 안다. 결혼해서 살아가다보면 알겠지... 왜 부모님이 그렇게 걱정하고 염려 했는지...
예레미야는 막연하고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결정적 미래를 들었다. 남유다가 처참하게 망하리라. 그 분명한 메시지를 듣고 전하는데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되겠는데 회개를 안한다. 지금 재미지고 좋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알아? 모르는데 뭐가 문제겠는가? 그러나 예레미야는 회개하지 않는 백성들이 어떻게 참혹하게 멸망할런지 분명히 안다. 아니까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고통까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경험하고 눈물로 전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공부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안 한다. 공부가 인생에 전부는 아니란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다. 공부만큼 객관적인 것도 별로 없고 하는데로 성과가 있는 것도 없다. 부모만 답답한 것이지 아이들은 답답할 것 없다. 오히려 못 놀게 하는 잔소리하는 것이 미운법이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실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조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보다 더 근본적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깊은 소명에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내려진 소명을 알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일만 하고 그 일로 수고하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다. 이거해볼까 저거해볼까 이리갈까 저리갈까... 마지막에는 아는데 늦다. 거기에 실패가 있는 것이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예레미야는 날 때부터 선지자이다. 선지자가 오늘 음성을 듣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복중에 알았고 구별하였고 선지자로 세우신 것이다. 인간의 뜻, 기호가 중요하지 않다. 고려되지 않는다. 강권적으로 일방적으로 본질적으로 부르셨다. 우리를 다 그렇게 간섭하시고 인도하신다.
말씀은 한쪽으로는 파괴, 한쪽으로는 건설한다. 무너지고야 깊은 통회가 있고야 구원이 잇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선지자의 말씀이 들리는 복이 있기를 심령이 가난해지길 원한다. 통회 자복하는 은혜가 있는 심령의 가난함 되길 소원한다. 배부른 사람은 꿀이라도 싫어한다. 말씀이 들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 죄의 결과를 내다보는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 예레미야 묵상 중에 뽑고 파괴하고 건설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 첫 번째 메시지이다. 계시의 방법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귀로만이 아니라 눈으로 볼 때가 있고 손으로 만지고 생활 속에서도 경험한다. 듣고 깨닫는 것! 논리적으로만 인식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다. 전인격적으로 감정, 느낌, 사랑, 두려움 생활의 모든 경험을 통해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확실하게 전하게 한다.
너는 나를 버리고 다른신에게 분향한 하는 저들을 두려워하지말라!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말씀을 맡은 사람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 받은 말씀을 전할 때에 이 말을 들을까 안 들을까? 걱정하지 마라! 좋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반역하고 저항하고 핍박하는 듣지 않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자는 구원이 되고 듣지 않는 자는 심판이 되는 것이다. 받는 것이 복이요 거부는 저주이다. 들려지지 않고 거부하는 것이 심판인 것이다. 느껴지고 깨달아지고 회개하는 옥토의 마음은 구원받은 심령이다.
살구나무와 끓는 가마의 환상이다. 살구나무는 성급한 나무 봄이 되기 전에 벌써 눈이 틔고 잎이 나온다. 그래서 날씨 추워지면 다시 얼어붙는다. 내가 네게 멸망의 징조를 보인다. 살구나무가 먼저 눈을 띄는 것처럼 너는 심판과 멸망을 먼저 알게 되는 것이다. 부글부글 끓는 가마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기울어졌다. 수평으로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끓는 물이 북에서부터 남쪽으로 쏟아진다.
진노가 북에서 남쪽으로 올 것이다. 바벨론의 큰 군대가 몰려올 것이다. 북방 모든 족속을 부를 것인즉... 바벨론은 내가 일으킨 것이다. 바벨론이 쳐들어오지만 하나님의 경륜과 경영 속에서 심판하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마라! 손해 끼치는 사람... 저사람이 나빠서일까? 원인은 내게 있을 수 있다.
쳐내려오는데 그 이유는 바벨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다. 모든 죄악을 징계하고 계시는 것이다. 진노의 막대기라 부르신다. 막대기를 원망할 것인가? 막대기를 든 하나님을 보아야지. 막대기는 막대기일 뿐이다. 하나님을 원망할 것인가? 맞을 짓을 하는 나를 돌아 봐야지. 원인은 바벨론도 하나님도 아니시다. 지금 어려움 중에 원망하고 싶으겠지만... 그 사람 때문인 것 같겠지만... 그 일 때문인 것 같겠지만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 저 사람과 그 일을 통하여 심판, 징계를 이루시는 것 뿐이다. 나의 나됨을 바로 세우시기 위해서... 느부갓네살, 바벨론... 원망할 것 없다. 왜냐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사람,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여 그들이 치나 이기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