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9 주제: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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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ㅓ론;이불밖은 위험해
ㅅㅓ론;이불밖은 위험해
배경: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배경: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그때도 바람은 계속 불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배위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눈치채시고 즉시 몸을 피해 홀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내려오시면 바로 이동할 수 있게 배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바다는 언제 날씨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무서운 곳입니다. 그래서 베테랑 어부들조차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죠. 그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갈릴리 바다도기압차로 인해 갑작스런 풍랑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도 그런 날 중에 하나였어요. 그들이 있었던 곳은 요단강물이 바다로 합류하는 구간이었기 때문에 소용돌이치는 물살 위에서 머물러 있는 것도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제자들은 거친 풍랑과 소용돌이 치는 물 위에서 힘겹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물살이 너무나 거칠어서 제자들은 도무지 예수님을 데리러 물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연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풍랑은 계속 일고 있었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멀리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그 거친 바다 위를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오전 3-4시 짙은 어둠이 깔린 새벽, 여전히 거친 풍랑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그들은 저 바다 멀리서 그들을 향해 오는 예수님을 보고는 귀신으로 착각해 겁에 질려 소리를 쳐댔습니다.
이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나다, 놀라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들을 수 있는 명확한 목소리로 그들을 진정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폭풍으로 겁에 질린 그들에게 도무지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어떻게 저 거친 바다위를 걸으실 수 있는가? 저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배위에 있던 베드로는 바다 위에 계신 저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되고는 예수님께 ‘제가 그쪽으로 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어요. 배위나 예수님 곁이나 풍랑은 계속 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가고자 했습니다. 베드로의 말에 예수님은 흔쾌히 ‘그래 와라’라고 말씀하셨어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다에 뛰어 듭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어난 것이지요.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걸으며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러나 얼마를 가지 못하고 자기 앞에 여전히 불고 있는 거친 바다를 보고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러자 그의 발이 물 밑으로 빠져들기 시작했고 결국 온 몸이 물에 잠겨서 허우적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부였던 그도 거친 바다에 빠지자 겁에 질려 아무 것도 헐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즉시 다가오셔서 그를 구해주셨습니다. 그 뒤 그 거친 바다 위를 예수님과 베드로가 함께 걸으며 배로 오셨습니다. 그들이 배에 오르자, 풍랑은 멈췄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본론: 찾아오는 시험 가운데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다.
본론: 찾아오는 시험 가운데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다.
1) 나의 만족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1) 나의 만족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바다에서 풍랑을 경험한 바로 그날 제자들은 다섯개의 떡과 두개의 물고기로 수천명이 배불리 먹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먹고 사는데 전혀 걱정이 없겠구나 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세상적인 만족을 채워줄 수 있는 분으로 보았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려고 했죠. 그러나 거친 풍랑 앞에서 그들의 이런 믿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도 없었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습니다. 귀신으로 착각했지요.
예수님은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를 너희의 만족을 채워주는 사람으로 믿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로 믿느냐?’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그가 단순히 이 땅에서 그들의 필요와 만족을 어느정도 채워주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적인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즉 어느정도의 평안함, 어느정도의 힐링을 채우기 위해서? 또는 어느 정도의 자아성취, 어느정도의 인간관계, 어느정도의 종교행위, 어느 정도의 믿는 구석? 불안할 때 기도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거친 풍랑과 같은 무거운 시험이 찾아 올 때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찾지 않았고, 그들에게 다가오신 주님을 귀신으로 착각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믿음은 거친 위기가 찾아올 때 쉽게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러한 시험과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2)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은 베드로
2)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은 베드로
우리 인생에 풍랑은 계속 불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기말고사가 끝이 나고 어느 정도 잠시 평안한 시기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또 다시 삶의 어려움을 경험할 것입니다. 방학이 이제 곧 시작되겠지만 방학이 지나면 중간고사와 모의고사가 곧 찾아오겠죠, 필기 시험 말고도 우리 인생에 얼마든지 어려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방학 중에도 어려움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제가 저번주에 갑작스레 허리가 아팠던 것처럼 말입니다.
인생의 풍랑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고, 오늘 제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풍랑을 맞은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바다 위의 예수님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배위에나 예수님 옆이나 바람은 똑같이 불고 있어서 어느 쪽이든 다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풍랑 가운데 서 계신 주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풍랑을 이겨내고 자신을 구원해줄 구원자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우리가 주님을 단순히 죄책감을 덜어줄, 인생의 어느 정도 평안을 줄 정도의 존재가아니라 우리 인생의 구원자로 믿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분께로 피한다면 우리는 시험을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께 ‘우리는 힘이 없으니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험에서 구하소서’를 외치며 달려갈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인생의 구원자로 믿고 의지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능력을 베푸시고 바람이 거세게 불고 파도가 몰아치는 그 바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혼비백산을 겪으며, 두려워 떨었던 그 바다를 걷게 해주십니다. ‘오라!’ 우리가 가고자 할 때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믿읍시다. 시험이 찾아올 때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의지합시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3) 의지하고자 할 때도 넘어질 수 있다..그럼에도
3) 의지하고자 할 때도 넘어질 수 있다..그럼에도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다해도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분명 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믿고 그를 향해 달려갔지만 자기 앞에 보이는 풍랑때문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이제 그에게는 파도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배도 없고, 같이 힘써줄 동료들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건지신 뒤 그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그는 의심했습니다. 그는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의심이 들어서 ‘저분이 정말 나를 구원해주실 수 있을까? 저쪽보다는 배가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혼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흔들리게 되었고, 그는 시험을 견디지 못해 물에 빠졌습니다.
참 재밋는 것은 그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그는 동료들을 찾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가 물 위를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베드로는 거리상 예수님보다 배 쪽에 더 가까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걷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를 지른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흔들려서 바다에 빠져버린 베드로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즉시 그에게 오셔서 그를 건져주십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거친 바다 위를 걸으십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베드로의 믿음은 참 강한 것 같다가도 정말 약해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을 책망할지언정 외면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를 믿고 찾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에 대해서 4종류의 밭에 뿌린 씨앗 비유로 설명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농부가 밭주인의 명령을 따라 씨앗을 뿌립니다. 그 씨앗은 길가에도 뿌려지기도 하고, 돌밭에도 뿌려지기도 하고, 가시밭에도, 그리고 좋은 밭에도 뿌려집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말씀을 듣자 마자 악한 자가 바로 와서 그 말씀을 도로 빼앗가 버린다고 합니다. 씨앗이 땅에 심겨질 시간도 없이 말씀을 빼앗아 가서 믿음이 생길 여지가 없어집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과 믿음으로 받지만, 뿌리를 잘 내릴 수 없어서 어려움이나 유혹이 올 때 넘어집니다.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은 말씀을 듣고 뿌리를 내리지만 그 싹이 가시덤불에 막혀 세상의 염려와 유혹 때문에 열매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밭의 주인은 자신의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길 바랄 것입니다. 그는 함부러 그 씨앗을 아무데나 뿌려서 낭비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 씨앗들이 좋은 열매 맺기를 기대하고 농부에게 밭에 씨를 뿌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명령에 따라 농부들은 길가, 돌밭, 가시밭, 그리고 좋은 밭에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달랐습니다.
세상에 처음부터 좋은 밭이 있을까요? 씨앗만 뿌리면 지 알아서 싹이 트고 열매 맺는 땅이 있을까요? 그런 곳이 간혹 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모든 밭은 다 안 좋은 돌밭이거나 가시밭입니다. 주인은 모든 밭이 다 좋은 열매를 맺길 바라는 마음으로 농부들에게 씨앗을 뿌리게 했습니다. 가시밭이든 돌밭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 밭들이 좋은 밭이 되기 위해서는 그 밭이 말씀의 씨앗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말씀의 씨앗이 자기 마음 밭에 심겨지도록 그 씨앗을 잘 품어야 합니다. 말씀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싹을 틔운다면, 주인은 농부들에게 그 밭을 갈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의 행동을 제외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하나님 100% 나 0%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100% 나0%도 아니고, 하나님 50% 나 50%도 아닙니다. 하나님 100% 나 100%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행동과 성품이라는 좋은 열매가 생기길 바라고 또 믿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언제나 100%의 믿음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어려움이 올 때 50%, 10%, 0%가 되어버립니다. 평안할 때는 100%가 되는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자라려고 할 때 돌뿌리를 만나서 자라지 못하게 되고, 가시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어느 정도 자라고 봤는데 가시가 그 믿음을 막아서 더이상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삶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 자라나길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헛투로 씨앗을 뿌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분명한 의지와 목표를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처럼 믿음이 흔들리고 의지가 흔들려서 결정장애를 겪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향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를 짓기 전부터 우리인생에 대한 놀라운 계획을 이미 정하신 분입니다. 에베소서 1장의 말씀처럼 우리를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분입니다.
EPH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 됩니다.
우리가 싹을 틔우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밭을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밭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시험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친구들 중에는 인생의 풍랑을 경험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분명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주님께로 피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의 말씀처럼 시험을 당할 때 영원하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잠재우시고 우리의 인생을 반드시 책임지시는 분이심을 믿으며 그분께 피합시다. 그분을 달려갑시다. 베드로는 풍랑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께 달려가자 바다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분께 달려갑시다. 그분을 의지합시다. 배 위든, 바다 위든 다 위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품이 안전합니다. 시험을 피하고 이기는 길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께 가고자 할 때, 그분을 의지할 때 혹여나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지라도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시는 그분께서 구원하시고 다시 우리에게 바다위를 걷는 능력을 허락주실 것입니다. 좋은 밭이 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걷고 있음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MAT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거친 바다를 다스리시며 그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는 그 능력의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결론: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자.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신다.
결론: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자.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신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시험이 찾아올 때, 주님을 의지합시다.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전능하신 분으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으로 믿읍시다. 그렇게 할 때에 그분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금방 사라집니다. 수천명을 먹인 떡과 물고기는 풍랑을 맞았던 제자들에게 없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을 붙잡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하나님을 그정도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나를 어느정도 만족시켜주시고, 나의 우울감을 어느정도 힐링해주시고, 나의 인간관계 중 하나를 더해주셔서 외로움을 달래주시는 그정도의 하나님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세상의 모든 풍파보다 더 강하셔서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믿읍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붙잡읍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