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개명(改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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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개명(改名)』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본문 : 창 17:1-8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성경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창 17:1-8] 입니다.
오늘 ‘거룩한 개명(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나누어 볼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출생하면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이름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이가 출생을 하면 좋은 의미에 이름을 지을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형제에 의해서 돌림자를 쓰기 때문에 정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상’자 돌림이라서 ‘상현’이 되었습니다. 상자돌림에 막내로써 상현과 상혁 중 택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 아픈 역사 가운데 하나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없어 다라는 것입니다. 개똥이, 칠득이, 순자, 말자, 영자, 미자, 명자...명확한 이름이 없이 살아갔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명확한 이름이 없었다라는 것은 그 사람에 인생이 뚜렷한 정체성없이 살아갔음을 어느 정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름을 신중하게 정하는 이유는 그 이름을 가진 대로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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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인들의 이름에 대한 관념은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몇몇 인물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1)모세는 ‘물로부터 끌어낸 자’입니다. 자신이 물에서부터 끌어냄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끌어내는 인생을 살았다.
2) 노아는 ‘안식,위로’이라는 뜻이다. 홍수의 심판 가운데 의인인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가 되었고 하나님이 노아를 보면서 안식했던 인물.
3) 야곱은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이다. 형 에서를 잡고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여 붙잡는 인생이었다. 라헬을 잡을려고 애쓰는 인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인생을 말해주는 이름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름, 고귀한 이름은,
4) 예수입니다. 히브리말로 ‘여호수아’이기도 한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고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름대로 그렇게 인생을 사셨습니다.
->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에게 이름이라는 것은 그 자신에 인생을 말해주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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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어 집니다.
그런데 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어야 했는가? 왜?? 도대체?
저에게는 그것이 질문이 되었습니다. 몇일을 고민고민을 하게 되었다. 책상에서 보고 또 보고 연구하다가 보니깐 저녁 7시쯤 책상에 앉아서 있다가 보디깐 해가 뜨더라고요...그런데 너무 감사했습니다. 왜? 아브람이 이름이 바뀌었는가에 대해서 이제 나누어 볼려고 합니다.
창세기 15: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이름이 변경되기 전에 아브람은 이미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았다. 그 믿음의 내용은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 15장에서 의로다함을 받았는데 자식이 안생겨서
16장에서 아브람이 여종 하갈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이때 아브람 나이가 86세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시작은 아브람이 99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시 한번 언약의 내용들을 상세히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인 창 17:1-5절 다시한번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13년후에 나타나셔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13년후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한 가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언약의 내용은 똑같이 말씀하시는데 13년후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름’을 바꾸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이제 ‘아브람’으로 부르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네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부르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름을 개명시켰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겠죠?
이름이 바뀌기전에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아브’는(아버지,조상,우두머리,선조)라는 뜻을 가진다.
‘람’은 ‘롬’에서 타생된 형태로 (높이, 높은 존재)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이름이 개명된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알파벳 ‘헤’가 붙습니다. 이 알파벳 ‘헤’가 ‘루아흐’에 쓰는 ‘헤’입니다.
‘루아흐’는 루아흐(j'Wr , 7306: 숨쉬다, 불다)에서 유래했으며, 그 기본개념은 '움직이는 공기'이며 '숨(호흡), 바람, 영'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730회 나온다. 신약에서 ‘루아흐’를 ‘프뉴마’ 성령으로 번역합니다.
구약에서 ‘루아흐’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관계되어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호흡’으로 사용된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속에는 ‘루아흐’ 곧,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숨이 후~~~~하고 들어간 것입니다.
아브는 ‘아버지, 우두머리’이고 롬은 ‘높은 존재’라는 뜻을 가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님만이 아버지이고 우두머리시며 하나님만이 높은 존재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부르신다는 것은 이제 너는 ‘내 호흡’으로 살아갈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5절에 ‘네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말은,
히브리어로 요드, 셈, 아브라함, 하야 인데,
요드(지속적으로) 셈(이름을) 아브라함(아브라함이라)-하나님의 호흡으로 하야(하리니..동사 ‘이루다’)이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영(호흡,숨)으로 이루어가리라”
아브라함의 인생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이루어 가실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뀌게 했던 것은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히브리인들의 이름에 대한 관념은 그 이름 자체가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제 아브라함의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곧, 믿음의 조상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아갔던 자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 15장에서 아브람은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17장에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는 것은, 마치 ‘오순절’ 사건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하나님의 영이, 호흡이, 숨이 후~하고 부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개명은 ‘성령 임재 사건’ 같았습니다.
->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갔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 아브라함은 성령의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아갔던 조상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너희 후손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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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창 17:6-8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도, 믿음으로 성령으로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의 조상이 보여준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겼습니까? 재산과 땅을 남겼습니까? 아브라함이 후손에게 남긴 것은 ‘믿음과 하나님의 영으로 호흡으로 살았던 삶’을 남겼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브라함처럼 후손들에게 ‘믿음과 하나님의 영으로 호흡으로 살았던 삶’을 유산으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유산은 삶에서도 이어집니다. 우리 ‘교육자 사무실’ 겸손을 유산받다. (담인,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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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6장과 창17장은 굉장히 대조되는 장입니다.
아브람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16장은 이전에 이름인 ‘아브람’입니다. 육적인 숨을 쉬면서, 육적인 호흡으로 살아가는 아브람이라면,
17장은 개명된 이름인 ‘아브라함’입니다. 육적이 아니라 신적인 숨을 쉬면서 신적인 호흡으로 살아가는 아브라함입니다.
17장부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아브라함을 이끌어 가시고 이루어 가신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래도 사라로 변경하십니다. 여기서 사래도 사라로 변하면서 ‘헤’가 붙습니다. 사라의 이름안에도 하나님의 호흡이 후~하고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간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간 ‘사라’ 사이에서 언약의 대를 이러갈 약속의 아들 ‘이삭’이 나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맛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호흡들이 들어간 부모에게선 나온 ‘이삭’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신 다는 것입니다.
-> 굉장히 영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자식들도 후손들도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브람’으로 살아가십니까? ‘아브라함’으로 살아가십니까?
여러분들은 ‘사래’로 살아가십니까? ‘사라’로 살아가십니까?
-> 여러분들의 자식과 후손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살아가길 원한다면, ‘아브라함’으로 또는 ‘사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름이 개명되면서 그들의 인생은 ‘생리가 끊어졌지만’ 임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의 영과 호흡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일어난다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숨을 쉬고 사는 자들에게는 기적을 베푸신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 없네”♪
한 가지만 나누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도 베드로(반석)를 보시고 베드로라고 부르신다.
이것은 너는 베드로라 이름 하리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시몬”, 아람 "게바", 헬라식 "베드로"
베드로의 이름의 뜻은 “반석”이다. 반석이라는 것은 “바위”란 뜻이다.
구약에는 “돌” 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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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벤은 야곱,모세가 제단을 쌓어서 기름을 부을 때 관련이 있다.
2) 수르는 돌, 바위이다. 바위는 지탱하는 것을 말한다.
3) 셀라는 반석, 바위라는 뜻이고 장소를 뜻한다.
4) 에두트는 증거판이다.
제단과 성전, 말씀은 돌(증거판)과 관련이 있다.
구약에 돌은 제단과 성전 그리고 말씀과 연관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반석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약속이었다.
반석이라는 것은 “지탱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를 지탱하는 것은
1) 야곱과 모세처럼 삶의 제단 고백이 담는 것이고,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싸워 이긴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삶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제단이 지탱되어야 한다.
2) 증거판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탱되는 곳이 교회이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호흡, 숨 , 영으로 지탱하는 곳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호흡이 숨쉬는 공간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숨을 쉬는 곳이다.
그런데
교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호흡이 쉬지 않는 교회들로 전략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믿음으로 의롭다 받았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욱적호흡을 쉬는 “아브람”같은 교회가 되고 만다.
-> 아브람에 13년은 마치 하나님이 숨쉬지 못하게 하나님의 코와 입을 손으로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교회가 육적인호흡만 가득하다면 교회가 때때로 하나님의 코와 입을 막고 있는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코와 입을 막고있던 육적인 손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이 편하게 숨을 쉴수 있도록 하십시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아브라함의 이름처럼,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아가시고 하나님의 호흡으로 예배하며 하나님만이 나의 아버지 되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우두머리이시며 하나님만이 높은 존재임을 고백하는 삶이 되어지시고
부모님들은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시고 자녀들은 각 처소에서 믿음의 유산을 증거하는 삶의 예배의 고백이 고백되어지는 삶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우리의 삶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호흡으로 가득한 삶되시길 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 마음껏 호흡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 가운데 마음껏 호흡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호흡이 숨이 가득한 삶, 교회되게 하여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