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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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
지난주 설교가 어렵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떨지 기대가 되면서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세례 요한이라 불리는 사람에 대해서 입니다. 어떤 글을 잃을 때 인물이 등장하는 글을 읽는다면 인물의 성향, 말 등에 따라서 글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저자 요한이 요한20:31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에 기록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글입니다.
그러니까. 답은 정해진 읽기가 된다는 것이구요. 설교자나 신학자 어떤 사람이라도 글, 설교, 논문도 이 목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통해서 도달해야 하는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는 믿고 있는데 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이렇데 답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요한복음 만큼이나 어려운게 없을 것입니다.
먼저 본문의 맥락을 따라서 보면 세례 요한이 있는 이유가 세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했다고 시작합니다. 대부분 우리가 아는 이미지 광야, 낙타털 옷, 허리에 가죽 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듯 그의 모습을 묘사하는 곳은 마태복음입니다. 그가 전한 내용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입니다.
그리고 장에서 예수께 세례를 주게 됩니다.
마가복음도 유사합니다. 마가와 마태의 글이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하는 세례를 전파했다는 것이죠. 누가는 요한의 태어남 부터 이야기하는데 천사의 고지를 엘리사벳이 들었스니다. 그리고 천사가 이름까지 정해주었죠.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그리고 그가 빈 들에서 하나님의 말슴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임하는 사건은 구약 선지자의 대표적인 하나님 임재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의 임함, 곧 사역을 시작했다는 의미죠.
그런데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바든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그가 ‘요한이 그에 대하여 곧 예수에 대하여 증언’한다는 것이죠. 이 증언이 무엇일까요.
그 내용이 15절부터 나옵니다.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외쳐 이르되’ 라는 것이죠. 그의 증언은 이미 읽은 것처럼 놀라움 그자체입니다. 소위말해서 성경에서 제일 좋은 말들만 가득 담아 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은혜 위에 은혜를’ 처럼 할 때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하죠. 또 은혜와 진리 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온 것이죠. 18절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내용을 증언한 것입니다.
이정도 되면 요한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19절부터 유대인들이 예루사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여 네가 누구나라고 할 때도 요하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엘리아냐고 물을 때도 아니다. 선지자냐고물을 때도 아니다고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스도 곧 메시아죠, 엘리야, 그 선지자는 모두 구약에서 다시 오실 분으로 예표된 분들입니다. 사람들은 그 선지자라고 할 때 모세와 같은 선지자죠. 바로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정도 요한이라면 정말 대단한 인물입니다.
다음날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을 통해 32절에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눌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결과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요한이야 말로 요한복음에 중심 인물아닙니까?
이정도면 요한은 자기 할 일을 다한 것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요한3:24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에게 세례를 받던 사람들도 예수께 향하게 됩니다.
그런 요한에게 예수께서 5:33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는 자’ 35절에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었다’
10장40-42 에 사람들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에 서 요한이 한 말이 모두 참이더라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등장합니다. 요한3:30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의 말처럼 된 것이죠.
그런데 마태복음11:2-3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라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나옵니다. 그렇자 보내온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내가 한 일을 가서 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11:6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태는 요한이 옥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에 대해 일종의 의심을 품었던 모습을 보여주지만 요한복음에는 나타나지 않고 그가 완벽하게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은 자신의 말한 것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는 삶에 대해 많은 사람이 요한복음 10:40-42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그러니까. 요한이 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 15-18절의 내용이 믿음의 내용이라는 의미입니다.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우리가 다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 충만 프레로마 충만, 완성, 라틴어 사트리타스 - / 우리는 공허감을 느끼고 살기 때문에 무엇인가로 채워야 합니다. 어떤 채움은 그것으로 충만에 이르지만 어떤 채움은 쉽게 갈함이 되고 다시 채워야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넓어진 공간에 채우기가 힘듭니다.
이렇게 충만한 상태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죠. 그러나 오늘 우리 주변은 바로 너 자신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다독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온것이죠. 어떻게 아나요. 그분이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때 가능합니다.
다음 시간에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 볼 것입니다. 오늘 요한은 정말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았지만 한 때는 주님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던 모습도 보입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불안해서나, 의심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실력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결함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믿음 앞에서는 주님께 묻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요한보다 뛰어난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당신은 주님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십니까? 믿음의 경계는 남북한의 울타리처럼 구분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말뚝하나 박혀 있지 않은 바다에서 오로지 나침반에 의지해서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 나침반은 예수이시며 요한은 그 나침반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