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 사무엘상 17장 (3)

다윗과 골리앗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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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사무엘상 17:45-47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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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은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듣게 되실 겁니다. 오늘 여러분이 듣게 되실 이야기는 성경을 근거로 하는 내용이며, 과학적인 근거가 뒷받침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히브리어 원어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성경 기자가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했었던 뉘앙스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성경 기자가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했었던 부분을 여러분께 알려드릴 것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성경 기자가 미처 깨닫지 못했었을 수 있는 부분을 함께 소개해드리며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 담긴 영적인 메시지를 듣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심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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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단순하게 이해하면 목동이었던 한 어린 소년이 거대한 전사였던 골리앗을 무찌른 이야기로만 이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면도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한 소년 목동이 거인을 물리친 이야기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존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리는 이 이야기의 심각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만일 블레셋이 엘라 골짜기를 차지했다면 베들레헴으로 가는 능선으로 진격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북쪽과 남쪽의 주요 도로로 나아가는 거점을 내어주게 되어 남쪽에 위치한 헤브론과 북쪽에 위치한 예루살렘, 그리고 사울의 고향 기브아가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블레셋이 이 지점을 점령했었다면 이스라엘은 사실상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따라서 사울과 그의 군대는 블레셋의 진격을 막기 위해 배수의 진을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춰서 쉽게 예를 들자면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과 연합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대치했던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말하지 않아도 한국을 알고, 당시 전쟁의 상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자명한 일입니다.
2.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 장소의 문제
몇몇 번역자들에 의해 다윗과 골리앗이 벌였던 전투의 장소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진영를 설명할 때 서로 다른 두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가 평평한 장소에서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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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7:2절에 언급되는 '엘라 골짜기'는 평평하고, 공간이 넓은 곳으로 '에메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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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삼상 17:3절에 언급되는 '그 사이에는 골짜기'는 좁고 가파른 협곡으로 '가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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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들은 이 두 단어를 동일하게 '골짜기'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가 넓은 장소에서 일어난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은 평지가 아니라 비탈진 좁은 골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삼상 17장 23절을 보면 나타납니다.
삼상 17:23절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한글 성경은 23절을 '그 전열에서 나와서'로 번역하지만 사실은 ‘올라와서’(came up)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즉 23절은 평지를 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사진 가파른 장소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전투의 정황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구절은 삼상 17장 25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에서 ‘올라온’으로 번역된 단어는 23절에서 ‘나와서’로 번역된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이러한 단서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은 골짜기 아래에 있었고, 이스라엘의 다윗은 골짜기 위쪽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블레셋은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갔고, 다윗은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3. 다윗과 골리앗 전투에 숨겨진 은혜
다윗과 골리앗 전투에 숨겨진 은혜란 무엇일까요?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릴 때 사용했던 무기는 물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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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물매를 새총 정로도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사실 물매는 고대의 실제 전투에서 사용되었던 무기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물맷돌 병사가 182m 떨어진 상대를 맞춰 불구를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또한 물매는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있는 무기입니다. 중세시대의 테피스트리 공예품에는 물매로 날아가는 새를 잡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따라서 물매는 나름 쓸모있는 무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물매가 쓸모있는 무기였다고 해도 어린 청소년이었던 다윗이 어떻게 거인이었던 골리앗을 쓰러트릴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세 가지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위치 에너지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골리앗은 골짜기 언덕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고, 다윗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처음부터 위치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지에서 던지는 물매보다 훨씬 더 파괴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마도 다윗이 서 있었던 위치의 위치 에너지가 더해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운동 에너지입니다. 이 운동 에너지 부분은 다윗과 골리앗 설교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인데요. 삼상 17장 48을 보시겠습니다.
삼상 17: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세 번째, 질량 에너지입니다. 엘라 골짜기의 돌들은 평범한 돌이 아닙니다. 이 골짜기의 돌들은 중정석이라는 불리는 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돌은 보통 돌보다 밀도가 두 배 정도 높아서 무거운 광물에 속합니다. 또한 날카로운 표면을 가지고 있어서 어떠한 물체라도 뚫고 파괴하기에 적합한 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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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러한 위치 에너지, 운동 에너지, 질량 에너지에 1초에 6-7번 회전하는 속도 에너지가 더해지면 물매는 초속 35m의 속도, 즉 시속 122Km의 속도가 나오고, 이 정도의 속도는 물리학적으로 따지면 45구경 권총과 맞먹는 파괴력을 나타낼 수 있게 됩니다.
다윗은 비록 골리앗보다 작은 체구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 그리고 질량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몰랐을 것입니다. 자신이 서 있는 그 위치가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가는 자신의 달음질에 운동 에너지가 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몰랐을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향하여 거룩한 분노에서 집어 든 돌에 엄청난 질량 에너지가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윗에게는 투구와 갑옷이 없었습니다. 칼과 창과 단창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볼 때 너무나도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은혜의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계곡 정상이 아니라 계곡 밑에 있었다면, 만일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 대한 거룩한 분노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또한 무심코 집어 든 물맷돌이 중정석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거인 골리앗을 쓰러트릴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다윗이 보기보다 약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는 불공평한 전투였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불리해 보이는 싸움이었지만 다윗의 거룩한 분노가 그를 움직였고,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에너지가 더해졌기 때문에 그 어려운 것을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이번에 새롭게 해석하면서 나에게도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이미 주신 에너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미 나에게 주어진 에너지는 모른 채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만을 손에 꼽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예) 약점은 약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누구는 강자처럼 보이고, 나는 약자처럼 보일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잠시만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약자란 무엇이고, 누가 약자일까요? 약자는 약점을 지닌 사람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시련과 역경에 직면한 사람들입니다. 돈이 없는 자들에겐 가난이, 대학을 못 나온 자들에겐 학벌이, 몸이 불편한 자들에겐 육신의 장애가 약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상황이 다를 뿐이지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는 약점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건강이 좋지 않으면 신체적 약자이고, 자녀가 사고를 치면 인간적 약자가 되는 것이며,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면 정신적 약자입니다.
따라서 약자와 강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은 정확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은 것입니다. 다만 세상에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사람과 그 약점을 약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적인 약점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지면 강점이 되는 것임을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됩니다. 우리는 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 있는 그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야훼께 속한 것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여기에 서 있게 하시고, 저기에 서 있게도 하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그곳이 불리한 곳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곳에 우리를 세우신 이가 하나님이시라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에너지가 있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일은 세우신 그곳에서 환경의 돌을 집어 주님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요. 문제의 골리앗을 쓰러트리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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