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수련회]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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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7월 14일 금요일 청년부 여름수련회 저녁집회 두번째 설교
제목 :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본문 : 디모데전서 1장 15절
# 두번째 찬양
1. 나에게도 말씀하소서
2.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3. 회중찬양
4. 다시 일어나
# 성경봉독 : 디모데전서 1장 15절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 사도 바울의 자기 소개
1) 죄인 중의 괴수
성경의 표현을 빌려 여러분들을 표현한다면 어떤 표현을 빌려 사용하고 싶으십니까? 노아처럼 “당대 의로운 자” 라던지, 욥처럼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라는 표현을 빌려 쓰고 싶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고 싶습니다. 매 서신서 서두에 쓰는 “그리스도의 예수의 종”이 저는 개인적으로 참 좋습니다.
물론 제가 생각한 사도 바울을 가장 잘 설명한 내용은 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예수의 종”보단 오늘 본문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도 바울을 가장 잘 설명한 구절 같습니다. 바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실 이 표현이 먼저 대뜸 나온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나서 그 즉시 “주님, 제가 죄인 중에 괴수 입니다!” 라고 외친 것은 아닙니다. 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난 고백할 땐 “작은 자” 라 고백합니다. 그러더니 에베소서에 와서는 “주님 제가 작은 자 중에 작은 자 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너무 좋은 고백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와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순교를 앞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저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이 표현을 들으면 참 먹먹해 집니다. “나 하나 잘난 것 없는 사람인데, 매순간 내 스스로가 잘 나려고 노력했던가? 왜 나는 하나님을 높이기 보다 그 자리에 내가 앉으려 노력했을까?” 그래서 저는 이 사도 바울의 표현이 제 스스로에게 울림도 주고 먹먹케 합니다.
여하튼 어쩌다 사도 바울은 이런 표현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이 변화됨의 이유는 ‘복음’ 하나 입니다. 복음이 힘이요 삶의 근원이 된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주님 앞에 죽고 주를 생각하며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내게 된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의 삶을 바꾼 미쁘다
또 사도 바울을 표현하는 또 다른 표현이 본문 속에 있다면 이겁니다. “미쁘다”
미쁘다의 뜻은 이렇습니다. “진실하다”, “신뢰할만 하다”, “참되고 믿을만 하다”, “논란이 하나 없는 진리다”,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미쁘다”라는 표현이 무엇을 진실이라 말하고, 무엇을 신뢰할만 하다 선포하는가? 바로 앞 뒤로 나오는 내용인데, 사도 바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복음” 입니다.
사도 바울의 목회서신, 디모데전서와 후서 그리고 디도서를 보면 핵심 키워드가 “미쁘다” 이기도 한데, 이 미쁘다의 사용이 곧 “복음”을 위함이라는 겁니다.
보면 사도 바울의 삶이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지, 또 무엇으로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 입니다.
2. 복음으로 향하다
1) 복음을 알다
그럼 복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한 줄로 정리해 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오셨다.” 이게 바로 복음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복음에 사로 잡힌 삶으로 변화되는 첫 번째 스텝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복음을 아는 것” 입니다. 복음을 알아야 우리는 바뀝니다.
저는 보기와 다르게 책을 참 좋아합니다. 근데 예전에 보았던 책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나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책을 읽으며 밑줄 친 내용들을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어요. 비로소 그 내용들이 아는 내용으로 바뀌더라구요.
이처럼 복음을 듣는 거말고, 알아야 보여요. 비로소 복음이 “죄인인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이 이 논리를 이해하지 못해요. 왜요? 세상의 기준과 우리가 말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출중한 자를 높이기 급해요. 가능성 있는 사람을 키우기 급해요. 떡잎부터 다른 사람에게 가능성을 걸기 바빠요.
그런데 교회는 달라요. 교회는 찬양 잘한다고 더 이뻐해주고, 목사님 뭘 한다던데 도우러 가자! 이런 사람들 더 이뻐하고.. 그렇지 않아요! 교회는 그런 능력과 실력에 비래해 가치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요 이 곳에 참예하는 모두가 귀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에요.
어쩌다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먼저 낮은 자를 보시고 품으셨거든요. 죄 하나 없는 자가 죄 넘치는 자들을 품어 죽으셨거든요. 이는 시대가 흘러도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높아지고 바뀌어도 이 복음, 이 진리, 이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주님이 날 위해 죽으셨다”는 그 사실이 말입니다.
물론 복음의 착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아니까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어요.” 또 “예수님처럼 저도 연약한 자들을 섬기기로 했어요.” 여러분, 복음 일까요? 맞죠. 복음이긴 해요. 이긴한데, 복음의 핵심은 아닙니다. 이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삶이 바뀐거지, 삶이 바뀜을 복음이라 정의하면 안 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그 핵심으로 “내 안에 죄가 이렇게나 많았구나” 깨닫게 되고, “내가 하염없이 부족하고 자격 하나 없는 자구나”를 깨닫게 되는게 복음의 힘입니다.
2) 복음의 감격을 누리다
또 복음으로 사로잡혀 바뀌는 삶 두 번째 스텝은 “복음의 감격을 누리는 것” 입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교회 오래 다니면 복음의 감격을 더 크게 누릴까요? 아까 신앙의 연차를 물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6년 신앙 생활한 슬비자매보다 모태신앙인 재영자매가 복음의 감격이 더 크다 말할 수 있습니까?
단언컨데 교회 오래 다닌다고 복음의 감격이 크지 않습니다. 복음의 감격은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그 사실에 울림이 있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로 내가 감격하는 겁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를 보러 오셨습니다.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 죄인이 저고 여러분 입니다. 그 사실을 믿으십니까? 또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길 소망하십니까?
뜨거운 현상? 체험?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체험이 있어야만 복음의 감격을 누렸다 말하고, 주님을 만났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정할 수만 있다면 디모데는 예수님 안 만난 거예요. 디모데는 그저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복음을 들어 알았고 그 감격으로 제자가 되었어요.
체험 없어도 됩니다. 현상 없어도 되요. 그런거 바라지 말고, 그저 “예수님! 예수님! 나를 만나주세요. 나를 주님으로 채워주세요!” 간구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만나러 오신 주님에 “네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응답하시고, 주님이 부르시는 죄인이 “네 주님! 제가 바로 그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이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3) 회심의 허락
복음으로 사로잡혀 바뀌는 삶 세 번째 스텝은 이제 “회심” 입니다. 회심이 뭡니까? 회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일생일대의 단 한 번 있는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회심의 사건은 뭘까요?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 아니겠습니까? 그때부터 사도 바울의 인생이 바뀝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도 회심은 했지!” 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회심한 여러분, 매일의 찔림이 있습니까?” 회심 했다면, 매순간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왜요? 매일 죄를 범하며 살아가는게 우리 삶인데, 말씀을 벗어난 삶을 사는데 “찔림”과 “아픔” 있어야 하는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저는 요즘 정말 아픕니다. 열심히 일적으로 달려서 육체적으로 아픔도 있고, 목도 쓸만치 써서 아프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아픈게 제 마음입니다. 제가 너무 죄를 많이 범하는 죄인이라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이게 회심한 자의 반응이에요. 자랑하는게 아니라, 회심한 자의 삶은 매일 아프고 매일 찔림에 있습니다.
이 중 “어? 내 삶은 괜찮은데? 난 죄 안짓고 하루 정도는 살던데?” 생각하는 분 계십니까? 진짜 죄송한 이야긴데요, 죄인인 우리 삶에 죄가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면 “내가 진짜 회심했나” 점검 해야 합니다. 우린 매일 아파야 해요.
4) 회개의 노력
그리고 그 아픔으로 끝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해요. 하나님께 끊임 없이 나아가야만 합니다. 이제부터는 회개로 가는거예요. 회심은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회개는 매일에 일과고, 회개는 매순간의 싸움이어야 합니다. 이게 마지막, 네 번째 스텝입니다.
제가 아까 매일 아프다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매일 기도하면서 죄송한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법한게 없어요. “이런 나를 주님은 살려서 뭐하시나?” 이런 생각도 들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나를 또 사랑하시어 아직 하나님의 쓰임이 내게 남았지!” 라는 생각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게 회개입니다. 여러분, 회개는 아픔으로 끝나지 않아요. 회개를 통해 승리를 선포해 가는 겁니다. “그래!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지! 내게 아직 맡긴 일이 여전히 남아있지!” 이게 회개의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의 저녁집회가 그런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이제 제가 주님 앞에 갑니다. 내 죄악 가득한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주님 앞에 민낯을 드러내겠습니다. 이제 주님 앞에 깨끗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서 있길 소망합니다!” 고백하는 시간이자 그렇게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사랑과 나를 부르셨음에 확신으로 찬양하는 한 사람, 한 사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결단찬양 1 :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 합심기도 1
1.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길 소망합니다. 이 시간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보는 시간 되게 하소서
2.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허락하심에 감사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특별한 존재로 부르셨지만, 매일을 특별하다 여긴 적이 없던 지난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매일이, 날마다 주님의 은혜로 특별한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 결단찬양 2 : 나에게도 말씀하소서
# 합심기도 2
3. 이제 주님의 음성을 듣길 소망합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말씀하시어,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나아가게 하소서
4. 주님의 음성이 내 안에 죄성들을 아프게 하사, 그 아픔을 모른체 지나길 이제는 원치 않습니다. 이제는 그 아픔을 회개함으로 도려내게 하소서
# 결단찬양 3 : 다시 일어나
# 합심기도 3
5. 복음을 바로 알길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 더 큰 복음이 없음을 알게 하소서
6. 내 삶에 그 복음이 적용되게 하소서
7.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누리길 원합니다. 먼저 그 사랑을 내 안에 주셔서 누리게 하시고, 그 누림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게 하소서
# 결단찬양 4 : 그 사랑
# 합심기도 4
8. 반응하면 할수록 내 안에 담긴 죄가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이제는 그 죄를 깨부수 길 소망합니다. 나의 민낯을 주님 앞에 드러내게 하소서. 내 안에 감춘 판도라의 상자를 이제는 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