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4주일예배_창5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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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

Genesis 50:15–21 NKRV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이야기는, 앞의 이야기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요셉 이야기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성서의 전반적인 줄거리상 뒤에 이어지는 출애굽기와 가교를 놓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요셉 이야기는 동시에 창세기 이야기에 대한 결론이자 동시에 그 핵심을 함축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성품을 지닌 인물,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요셉의 행적은 창세기의 핵심적인 신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요셉의 삶을 들여다볼까요? 성서에는 요셉의 이야기가 방대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간단명료하게 그의 일대기를 돌이켜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요셉의 이야기는 일관된 경향이 있습니다. 요셉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계속해서 궁지에 몰립니다. 보십시오. 요셉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죽음의 위기상황에서 구출되어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가서도 유사한 상황은 반복됩니다. 유혹한 것은 주인의 아내였는데 거꾸로 요셉이 유혹자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폐기되지 않은 매우 중요한 물음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어째서 어려움에 처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시로 던지는 물음입니다. 그러한 물음의 극적인 주인공이 성서의 또 다른 주인공 욥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서는 항상 그 물음의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이 어째서 고난을 겪는지 묻는 데서 성서의 뭔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은 그런 물음을 안고 살아가는 한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곧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항상 궁지에 처한 요셉의 상황은 우리들 모두가 처한 상황입니다. 누군가를 배제해야만 자신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희생자가 된 사람이 요셉이며, 그 요셉은 그 상식적인 논리 때문에 벼랑 끝으로 몰리는 모든 사람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궁지에 내몰릴 때마다 그 상황을 역전시켜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시킵니다. 바로 여기에 요셉이 위대한 인물이 되는 진짜 비결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이 있습니다. 흔히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전기가 마련되지 않아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자신에 불리한 상황을 유리한 상황으로 바꿔놓는 재주를 가진 비범한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보는 소위 출세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 대부분은 말 그대로 ‘역전’입니다. 자신에게는 유리하지만 자신을 궁지로 몰았던 사람에게는 불리한 상황을 만드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는 항상 그 점에서 확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모두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바꾼다는 점입니다. 자기에게 유리하고 상대에게 불리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궁지에서 헤어 나오고 상대에게도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른 바로 그 요셉의 태도의 절정이요 대단원에 해당합니다. 요셉과 그 형제들은 이미 여러 차례 곡절을 겪으면서도 최종적으로 화해를 하여 이집트에서 유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집트의 총리로서 요셉의 배려를 형제들은 충분히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임종을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불안해합니다. 아버지가 안 계셔 혹시나 요셉이 자신들을 해할까 두려워합니다. 형제들은 사실인지 아닌지 아버지의 유언까지 거들먹거려가며 자신들을 용서해달라 청하며 요셉의 종을 자처합니다.
요셉은 그 청을 듣고 눈물을 쏟습니다. 아마도 여전히 자신을 의심하는 형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안도시키며, 형제들의 악의마저도 선한 일을 이루는 계기로 삼으신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 환기시킵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형제들은 악의를 품고 동생을 제거하려는 일을 저질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일을 선한 일을 이루는 계기로 바꾸어놓으셨습니다. 형제들과 화해를 이루게 하였을 뿐 아니라, 형제들로부터 배척당한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세우시어 기근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게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요셉 이야기의 중심 주제일 뿐 아니라 사실상 창세기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태초의 에덴동산을 벗어난 인간은 형제살해의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악행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이 등장하고 그 후손들이 계속 등장하지만, 형제들 사이의 갈등이 그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어떤 면으로 보나 결코 모범적인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끊임없이 회의하며, 끊임없이 갈등과 불화의 상황 속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그들을 돌보시고 아름다운 목적을 향해 인도하십니다.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의 손길을 펼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창세기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 이야기,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주제를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쭉 이어지는 창세기의 이야기는 인간의 현실을 압축하고 있는 동시에 인간의 진정한 희망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형제를 살해할 만큼, 인간 삶의 현실은 적대와 증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배척해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인간 현실의 철칙입니다.
창세기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간들의 갈등과 고통은 바로 그 현실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악한 의도마저도 선한 일을 이루는 계기로 바꾸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인간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그 철칙에도 불구하고 그와 전혀 다른 길이 있다는 희망을 나타냅니다. 요셉은 그 희망이 결코 좌절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인공입니다. 성서가 오늘 우리에게 살아 있는 말씀이 되는 것은, 바로 그 진실 때문입니다. 신실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세상의 철칙으로 짜여진 그물망을 뚫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새로운 인간이 다시 탄생하리라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이 세계와 지금 인간을 결코 이미 완결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세계의 창조는 이미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는 과정입니다. 신실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지금 그 과정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좌절하지 않는 삶, 진정으로 희망을 바라보는 삶을 누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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