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6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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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1:1–18 NKRV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프레임은 사전넉으로 ‘틀', ‘테두리'라는 뜻이다. 심리학에서는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이라는 본질을 프레임 안에 담아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프레임 안에 비본질이 채워지면 차별과 배척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으로 갔다. 예루살렘교회 내에는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할례자들이었다. 이 말은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제 삼은 것은 베드로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식사했다는 점이다. 이때 누구와 함께 먹었느냐보다는 어디서, 무엇을 먹었느냐가 문제가 된다. 유댕니은 정결법이나 음식범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이방인을 자기 집에 초대해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방인의 집에 초대 받아 갈 경우, 율법에 따르도록 통제할 수없는 요인이 너무 많아진다. 제사의식적 부정은 접촉을 통해 전달된다. 이방인의 집에 앉아 그 집에서 쓰는 그릇에 이방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담아 먹는다면 거의 확실히 제의적으로 부정해진다. 누가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함께 식사했다고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베드로가 거기 며칠 머물렀고 그동안 거기서 식사했으리라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정한 곳에서 부정한 그럿에 담긴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은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율법을 어긴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도 비난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다르지 않게 생각했음을 솔직하게 말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얄팍한 지식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거부했었다.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까지 율법을 지키려 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베드로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말씀으로 세 번이나 반복해서 명령하셨다.
이 반복되는 말씀을 통해 주께서 베드로에게 전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베드로에게 전한 주님의 가르침은 정결함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전통, 장로들의 교훈이 아니라, 깨끗함과 속됨을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베드로는 물론, 베드로를 비난하는 모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위에 두었던 것이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부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베드로는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물세례를 금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에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즉 자기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도하신 일이라는 말이다. 유대인 성도들은 그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이례적이게도 기뻐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정도로 이방인이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충격이었다.
요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라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을 명령하셨다. 하지만 요나는 그렇게 하기 싫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니느웨는 앗수르의 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앗수르는 당시 이스라엘을 밥먹듯이 침략해서 괴롭히던 나라이다. 그러니 요나 입장에서는 이들은 악인이다. 나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구원받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 할 것을 선포하라고 하신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갔을 때,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때 강한 빛을 보아 바울의 눈이 안보이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은 아나니아라는 사람에게 나타나 바울을 데려와 안수해 줄 것을 명령하신다.
Acts 9:10–15 NKRV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아나니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가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아나니아는 그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다.
혹시라도 누군가를 향한 고정관념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과 상관없고, 복음을 들을 사람이 아니고, 믿음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치부해 버린 이가 주위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를 위해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할 준비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사람에게도 생명을 얻을 수 있는 회개를 주실 수 있으심을 믿고 기대하며 기도하자.
그것으로 한층 더 성숙하고, 한층 더 주님의 뜻에 합당해지는 사람이 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구한다.
복음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우리의 좁은 시야로 제한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영광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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