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참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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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1. 도입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매우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어떤 사람
2. 복음에 참여할 때 예수님을 배반하는지 확인하십시오.
2. 복음에 참여할 때 예수님을 배반하는지 확인하십시오.
예수님이 복음에 참여한 사람들 중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제자들입니다. 특별히 가룟유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예수님을 죽이기를 원하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은30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예수님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가 된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긴 복음의 시각으로 생각해 보면, 가룟유다가 배반해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계획을 이룰 수 있었을 거라 평가하고 가룟유다의 행위를 어느정도 이해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다복음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가룟유다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즉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반면, 이 죽음에 일조한 가룟유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텐데"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예수님으로 부터 받습니다.
가룟유다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잡히실 때, 예수님을 떠나거나 배반합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 군사들에게 잡히시는 밤에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을 칼로 지킬 수 있었습니다. 5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 즉 베드로가 놀라운 칼 솜씨를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당시 모든 제자들은 칼을 차고 다녔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모든 제자들이 칼을 사서 들고 다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검을 들고 다닐 정도면, 어느 정도 검술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 검을 제자들이 검을 사용할 때, 예수님은 극구 제자들을 말립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성경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즉, 제자들이 예수님을 칼로 지켰다면, 예수님이 잡혀 죽어야 하는 성경의 말씀을 이룰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대 제사장의 군사들을 대항하지 못하게 하니, 제자들은 도망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제자들은 도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할하실 때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모두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갈릴리는 예수님이 처음으로 제자들을 불러 모았던 장소입니다. 부활하셔서 복음을 이루신 예수님은 이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을 맡기기 위해 처음 제자를 불렀던 의미있는 장소에서 제자들을 만나실 계획입니다. 이 예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제자들은 대제사장에게 잡혀도 안 됩니다. 무사히 도망가 숨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실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듭니다. 가룟유다나 그 외 다른 제자들 모두 예수님의 죽으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했는데, 왜 가룟유다만 박한 평가를 예수님으로 부터 받았는지 입니다. 우리는 가룟유다와 다른 제자들의 행동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가룟유다와 다른 제자들의 행위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만일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대제사장에 넘겨주지 않아다면, 예수님이 죽어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이루는 일이 늦어졌을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잡으로 온 대제사장의 군사들을 칼로 이겼다면, 역시 예수님이 죽어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이루는 일이 늦어졌을 것입니다.
또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돈을 받고 넘겨 줌으로 배반한 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강한 만류로 인해 칼로 예수님을 지키는 일을 포기하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점 때문에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룟유다만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정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세상을 그 분의 섭리대로 통치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행위대로 평가받고 심판 받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 질 때 어떤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 행동합니다. 서슴치 않고 예수님을 배반하는 가룟유다 처럼 행동합니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싶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들은 마음은 예수님을 지키고 싶고, 함께 기도하고 싶지만, 환경과 여건이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싶지만, 환경과 여건과 체력이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으로 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특수 훈련을 받은 그러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에 너무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벽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루어 나가는 것 보다, 오직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동기와 마음가짐, 하나님 말씀 대로 살려고 하는 태도를 인정하십니다.
반면, 내 욕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대형교회 목사님은 순전히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복음이 전파 되는 것으로 자신은 하늘의 상급이 크다 여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영예외 실지적인 이득을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파는 가룟유다와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않아야 될 사람, 아니 차라리 사역자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 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 자신을 살펴 보십시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3. 복음에 참여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지 확인하십시오.
3. 복음에 참여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지 확인하십시오.
또 예수님의 죽으심에 참여한 한 여인이 있습니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굉장히 이상한 행동입니다.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모리에 향유를 붓는 행위는 일반적인 사람이 보더라도 매우 이상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당시 문화에서는 그것을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식사중이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 보다, 그 비싼 향유를 모두 다 낭비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가나한 자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기독교인이 해야 할 덕목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보다 예수님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요?
예수님이 평가하십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이 여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행위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영원히 기념되어 질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이 여인과 가룟유다를 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둘 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입니다.
차이점은, 가룟유다는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였다는 것과 여인은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행동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 하십니까?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신앙생활 하십니까? 아니면 나의 이익을 위해서 신앙생활 하십니까?
4. 마무리
4. 마무리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결국 성경의 말씀을 이루는데 일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계획과 섭리 속에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역할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떠하든지 각 사람은 자기의 행위대로 댓가를 치르게 되어있습니다. 비록 가룟유다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일조하였지만, 그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으로 평가 받습니다. 반면, 값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한 한 여인은 복음이 전파 되는 모든 곳에서 그 여인의 행위는 기념되어져야 하는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과 성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역할을 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것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라 합니다. 그 섭리 안에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 가룟 유다와 같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반면, 비싼 향유를 깨뜨린 한 여인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념되어지는 영광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참여한 우리들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