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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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전도서 5:4-7)
[들어가는 말]
디모데후서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도 바울은 말세가 되면 고통하는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죄가 가득한 세상이 오는 것인데, 언급한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배신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신하기를 밥 먹듯이 하고 약속한 것을 잘 어기며 신뢰할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젊은 남녀가 결혼할 때는 평생 함께 하기로 서약하지만 약속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나라 이혼률이 OECD국가 중에서는 9위이고 아시아중에서는 1위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서약이고, 믿지 않는 자들의 결혼이라 할지라도 평생을 함께 하기로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한 것인데 그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언제든지 이 약속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오늘의 시대정신입니다.
정치판도 보면 선거때만 되면 소위 공약이 남발합니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것처럼 사람들에게 약속하고 또 약속합니다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지켜지는 약속보다는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더 많습니다. 정책이라는 것이 쉽게 집행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표를 위한 공약을 남발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시대입니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책임을 지려는 사람보다는 무책임하게 회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대입니다.
[서원이란 무엇인가]
민수기 30장은 소위 ‘서원규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입으로 서원한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민수기 30장의 기본 메시지입니다.
민수기 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흔히 쓰는 말 중에 서원과 서약은 조금 다릅니다.
서원은 히브리어로 ‘네데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구두로 언약하는 것입니다. 서약은 좀 다른데 서원이 어떤 일을 하겠다는 약속이라면 서약은 스스로 어떤 것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히브리어 ‘아사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서원은 해 보겠다고 하는 것이고, 서약은 하지 않겠다고 언약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쨌든 둘 다 약속입니다.
중요한 것은 서원 또는 서약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어떤 일을 하겠다든지 혹은 하지 않겠다든지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엄숙한 구두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언어를 기억하십니다.
민수기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특별히 구약성경에는 서원에 관한 규정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는데, 레위기와 민수기에만 일곱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주로 사람이 하나님께 어떤 제물이나 집이나 가축을 드리는 서원이 있고 나실인과 같이 일정 기간을 정해서 사람을 드리겠다고 서원한 경우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서원의 예들]
이러한 서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의 서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 전 살펴본바와 같이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억지스럽게 가로챘고, 아버지의 장자의 복을 받아서 도망갑니다. 2~30대에 저지른 청춘의 실수가 아니라 당시 야곱의 나이 70세가 넘었을 때 형의 복을 가로채서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도망을 가던 길에 벧엘이라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돌을 가져다가 베개를 삼고 잠이 들었는데 신령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사닥다리가 놓였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늘 끝에 보니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야곱은 꿈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자손의 복과 땅의 복, 그리고 보호해 주시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서원을 했습니다. 나로 평안히 아비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세 가지를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이 돌을 세운 이 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기억하여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야곱은 이 벧엘에서의 서원을 일평생 기억하며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창세기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세기 34장에서 야곱의 가정이 딤나의 문제로 이웃 부족과 싸우게 되어 대대적인 살인을 하게 되어 큰 위기를 당했을 때 야곱은 다시 우리가 벧엘로 올라가자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벧엘은 서원의 장소, 즉 하나님과 야곱에 새롭게 언약의 관계가 된 회복의 장소입니다.
사무엘상 1장에도 한나의 서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가나라는 사람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브닌나와 한나였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을 많이 낳은 반면, 한나는 자녀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브닌나는 한나를 조롱하기 시작했고, 한나는 마음에 맺힌 게 많아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데 그저 입술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때 한나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드렸습니다.
사무엘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아들을 주셨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셨다는 의미의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라를 섬기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바친 한나에게 3남 2녀를 주셔서 자손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반면에 잘못된 서원의 예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사기 11장에 보면 잘못된 서원의 실례가 기록되어 있는데, 입다의 서원입니다. 입다는 기생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홍길동처럼 서자 출생이었던 입다는 어디서든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그는 군사를 이끌고 암몬족속과 싸웁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 암몬 족속에게서 우리를 구원할 자가 입다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판단하고 그를 찾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입다는 이 때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서원을 하게 되는데, 내게 암몬 족속을 붙여주셔서 승리하게 되면 돌아오는 길에 내 집 문 앞에서 나를 가장 먼저 영접하는 자를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사기 11:30-31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를 원해도 이런 서원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보통 언제 서원을 합니까? 분위기에 취해서 쉽게 말을 뱉습니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은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는 아차 하는 겁니다.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가장 먼저 맞으러 나온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자신의 무남독녀입니다.
그때 입다가 뭐라고 했을까요?
사사기 11: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결국 입다는 하나님께 한 서원을 지켜 딸을 번제로 드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서원했으면 반드시 이뤄야 하고, 이처럼 비극적인 결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서원은 신중하게 기도하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들을 보면 서원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원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경우]
또한 민수기에 보면 서원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여자가 서원을 했는데 나이가 어려서 아버지 집에서 살 때 한 서원의 경우입니다. 그래서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서원이어서 그의 아버지가 판단을 해서 서원을 취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무 말이 없으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둘째 아내가 서원을 했는데 남편이 듣고 허락을 하지 않으면 서원은 취소될 수 있습니다.
셋째 혼자 사는 여인이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 서원을 무효시킬 수 있는 만자가 집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서원을 하고서 마음이 바뀌었을 때 남편에게 부탁해서 서원을 취소하도록 해달라는 경우입니다. 남편이 그 서원을 지키지 말라고 명령하면 아내는 서원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아내의 서원을 무효화 시킬 때에는 남편이 그 짐을 대신 져야 합니다.
민수기 30:15 그러나 그의 남편이 들은 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하게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
따라서 무효화시킨다고 해서 무조건 그 서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편 혹은 아버지가 그 서원을 지키지 않는 죄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서원의 말씀을 통해 하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서원했으면 깨뜨리지 말고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원을 해야 할까요]
첫째로 감당하지 못할 서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약속을 할 때 제일 무책임한 말 중에 하나가 믿음으로입니다. 믿음으로 했으면 그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지켜지지 않으면 그냥 어슬렁 넘어가 버립니다. 그 믿음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막연한 기대입니다.
전도서 5: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서원을 의무로 말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명령형으로 권하지 않습니다. 서원은 제사로 치면 화목제이기 때문에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자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서원하면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반드시 서원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 힘을 다해 서원을 지킨다면 하나님의 칭찬과 응답은 실로 차고 넘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서원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약속을 드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을 다해 수고하는 자의 삶을 하나님은 존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 만 앞서는 경우, 서원하고 무책임하게 지키지 않는 것을 싫어하시고, 서원을 힘들어도 지키는 자에게는 합당한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둘째 서원을 했으면 지킬 수 있는 힘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급한 마음에 혹은 분위기에 취해서 일단 말을 했는데 정신이 돌아오고 나면 눈 앞에 캄캄해 집니다. 그때부터 어떡하면 말한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될까를 생각합니다. 오늘 전도자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전도서 5: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서원을 지킬 수 없을 때]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말과 약속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삶이란 다 똑같지 않습니다. 삶이 정말 너무 힘들어서 내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운 경우가 있기도 하고, 도저히 지키고 싶지만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서원을 무책임하게 회피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떡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회개하고 탕감 받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한 마음을 쏟아 놓고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음을 눈물로 고백하고 대신 사는 날 동안 서원을 갚는 심정으로 주를 위해 살겠다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자기 자녀에게 화를 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중심을 헤아리시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그 회개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입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딸을 제물로 바친 입다의 서원의 이행은 박수 받아야 하지만 그 서원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저는 입다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고 하나님이 그 서원을 기뻐하셨을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딸을 죽여 서원을 갚아야 했던 만큼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와 연약함을 이해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물질이나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의 것을 더 필요로 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진정성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쉽게 변질될 수 있기에 그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사람들은 하나님을 능욕합니다.
레위기 27:9-10 9 사람이 서원하는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가축이면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10 그것을 변경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가축으로 가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왜 이런 말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집안에 재산이라고는 소밖에 없는데 소가 시름시름 앓는 것입니다.
"하나님! 소를 살려주시면 이 소가 새끼를 낳을 때마다 한 마리씩 1년간 키워서 드리겠습니다" 서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되찾고 새끼를 4마리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마리가 1년이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마음이 변해서 그 죽은 소가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단 문제가 해결되면, 소가 살아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정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우열간에 바꾸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기로 했으면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행해야 하는데 죽은 소가 원래 하나님 소였다고 변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며, 우리도 약속을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까지 서원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죽으실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비워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의 값으로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서원은 이처럼 희생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약속의 권위가 점점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가 되면 하나님이 일하시기 참 어렵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지켜가시는 방법으로 우리 가운데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약속하셨고,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복과 평강이 있을 것을 약속하셨는데, 사람들이 약속에 대한 신뢰도를 점점 잃어가니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큰 분이 없기에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것을 신실하시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그 길을 닦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시면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자원함으로 약속하면 그것을 귀히 여기십니다. 약속하고 그것을 지켜가는 모습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섣부르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마음, 그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서원을 하고,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약속을 귀히 여기는 성도들에게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시며 삶을 복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