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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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사도행전 13:13–31 (NKRV)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오늘 말씀 본문은 바울 일행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때는 안식일이었고, 장소는 유대인의 회당이었습니다. 16절 말씀에 바울이 말하는 바를 보면 그곳에는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이스라엘과 구별되어 사용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당시 유대인의 하나님을 예배했던 이방인을 가리키는 용어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더불어 이방인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회당 안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말을 두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면 구약과 신약이라는 파트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17-22절은 구약적이며, 23-31절까지는 신약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인 배경을 기준으로 나누어본 것입니다. 23절에 나오는 것처럼 다윗의 자손 구주 예수께서 오신 것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를 나누어본 것이죠.
바울의 의도가 혹시 보이십니까? 바울은 복음이 단순히 새롭게 나타난 어떤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과 분리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의도적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대상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두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약적인 배경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약을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가 어떻게 구약의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을 통해 내려왔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또한 구약을 떼놓고 신약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구약을 어렵다고 느끼는 많은 분들이 의도적으로 신약만을 읽고 들으려 합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역사일 뿐이라고 말하거나,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말하면서 구약은 보지 않고, 신약만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경은 구약과 신약을 합친 66권 전부를 말합니다. 신약 뿐 아니라 구약도 하나님께서 기록케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만약 구약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구약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을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나갈 때에 우리는 일부를 빼놓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골고루 잘 배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이방인 개종자들도 구약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의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회당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어떤 신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찬란하게 나타나셨던 그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그들은 구약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셔서 행하신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심을 어떻게 드러내셨는지를 알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앞으로 또 어떤 선하심을 베푸실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갈망으로 살게 만들어줍니다. 홍해를 가르셨던 그 하나님이 내 삶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환난을 갈라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그 일들을 우리가 알고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깊이 묵상하며 지금의 삶에도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비록 이스라엘 민족은 아닐지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께서 행하신 역사를 깊이 알아가며 하나님을 기대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으며 핵심 적용점 두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가지는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고 배우고 할 때 어떤 부분이 어렵다거나 불편하다고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66권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어떤 부분을 배제할 권리가 없습니다. 또한 신구약은 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어느 한쪽을 깊이 이해할수록 다른 쪽과 또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하고 싶다면 당연히 어느 한쪽을 멀리해선 안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셔서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 그리고 나의 과거에 말씀 가운데 찾아오셔서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기억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기억하며 지금도 여전히 역사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살아계심을 오늘도 경험케 해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