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시리즈 (7) - 그리스도인의 Badge, 핍박과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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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팔복 시리즈 마지막 시간입니다.
팔복의 순서를 보면 그 순서 자체에 논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품,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8가지 characteristic 을 살펴보면 마태는 이 순서를 그냥 배열해 놓은 것이 아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무엇이었죠?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바로 겸손한자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것이 팔복을 누리는 핵심적이 키가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중간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심령이 가난하니깐 애통할 수 있고,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남의 죄를 가지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애통하기 때문에 온유할 수 있습니다.
온유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깃들여 지는 것인데, 말씀으로 인해 온유한 자가 되면 더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너무 귀한데, 나는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저 사람은 뭔가? 라고 질문하기보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마음이 일편단심 하나님만 바라보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7번째 복이 화평케 하는 자였죠.
여러분 혹시 주변 관계들을 화평케 하기 위해서 희생하고 노력했는데, 매 번 좋은 결과가 있던가요?
좋은 결과가 있을 때도 있고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오히려 화평케 하려고 애를 쓰다가 오히려 내가 욕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려서 순종하여, 사람들과의 관계를, 또 다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것 복음전파도 될 수가 있죠. 애를 쓰며 peacemaker 가 되려고 했는데, 오히려 욕만 바가지로 먹고, 의기소침해진 적은 있지 않으십니까?
그 뿐입니까? 겸손하게 살고, 애통하며 살고, 의에 주리며 목마르게 살고, 긍휼히 여기고 살고,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살아도..
세상이 우리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핍박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화평케 하는 자 다음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누가복음6장은 팔복의 미니 버전인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팔복은 계속해서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죠,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이게 어떻게 복입니까?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고, 우리 이름이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이 복된 것이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역설입니다.. 아닙니까?
이제는 핍박을 받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다룰 이 마지막 복은 팔복의 절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래의 말씀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핍박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핍박을 경험하는 것은 옵션이 아니라 MUST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핍박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는 핍박이 없습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원하지 않거나 갈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핍박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영적으로 살아있길 원하고 하나님 원하시는 대로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핍박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적당히 살면 핍박이 없습니다.
예수 이름 뻥끗 한번 하지 않고 살면 핍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핍박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살아갈 때 어둠이 들어나기 때문에 의를 위하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깊숙히 들어가기 전에 과연 내가 당하고 있는 핍박은 어느 것인가를 정확히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끔 우리는 자신의 실수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십자가를 지고 있다"라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이건 잘못된 것입니다.
벧전에 보면 2장 19-20절 고난에 대해서 잘 설명이 나와 있는대요,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19절에 보면 애매히 받는 고난이 있다고 합니다. 이건 무슨 고난이냐면, 난 분명히 운전을 조심히 했는데, 누가 와서 차를 들이 받아.. 난 분명히 불조심을 했는데 이웃집에서 실수해서 내 집이 불이타… 이런 것이 바로 애매한 고난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라고 합니다.
두번째 고난은 나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건 punishment 에 가깝죠, 20절에 보니깐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이건 아무 의미가 없는 고난입니다.
20절 후반절부터 21절까지 진짜 핍박,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대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진짜 고난이 어떤 것인가를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고난은 자원적이며, 선택적이며, 사랑함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입니다.
부득이 당한 고난은 의미가 없지만,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를 위하여 선택하는 그 고난, 그 핍박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의 때문에 선택적으로, 주님을 사랑하기에 핍박을 당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 복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 핍박이 어떻게 우리에게 복이 되는 줄 아시나요?
첫째, 핍박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의롭다 함을 증거해줍니다.
예전에 한국에는 굿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무당이 작두를 타고 막 그랬던 것이죠.
어느 한 목사님이 완전 깡촌에 교회를 개척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사역을 열심히 해도 사람들이 교회에 오지 않아서 너무 힘이 드셨다고 합니다. 가서 농사일을 돕고, 이사하는 것도 돕고, 간식도 가져다 드리고 해도 교회를 오지 않는 다는 것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마을에서 굿판이 벌어지면 거기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 됬다고 하죠.
이 목사님이 사모님과 단둘이 예배를 드리다가 마을에 또 굿판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예배를 마치고, 그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무당이 작두 위를 타려고 소리를 지르고 굿을 하고 막 작두를 타려다가..
잠깐! 여기 지금 예수 믿는 사람이 있어서 신 내림이 되지 않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이 목사님과 사모님을 알아보고는 그 곳에서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과 사모님은 그 깡촌에서 사역을 계속하였고,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훗날 이 분도 목사님이 되었는데..
이 아들은 자신이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 고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버지 목사님이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해주신 것을 기억하고,
마을에서는 여전히 가끔씩 굿을 하고 있었는데, 그 굿하는 곳으로 혼자 갔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많이 모여있었고, 무당이 신을 부르고 작두를 타려고 하는 순간,
“또 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이 있어서 신 내림이 되질 않아"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의 아들은 그 때 너무나 기뻐서, 저에요 예수 믿는 사람, 저에요 예수 믿는 사람 손을 들며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당연히 굿판에서 핍박을 받으며 쫓겨났죠, 그런데 그 아들은 그 곳에서 쫓겨나면서 아주 기쁨이 충만했다고 합니다.
아 나 하나님의 자녀가 맞구나, 구원받았구나, 예수님의 의가 내 안에 있구나.. 하고 안심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핍박은 우리가 예수님의 의를 가진 자라는 것을 증거해줍니다.
두번째, 핍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핍박이 없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시험이 없으면 우등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을 봐야 우등생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핍박과 시험을 통과할 때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심지어는 순교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의로 인해서 받는 핍박이 어떤 것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마태복음 5:11 (KRV)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핍박은 첫째로,
예수님 때문에 욕하고 핍박하고,
둘째로는 “거짓으로"… 즉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여러분을 모략하여 당하는 핍박이어야 복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직하게 살고 바르게 살아도, 거짓으로 믿는 여러분과 저를 걸어 넘어트리고 핍박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고통 당하는 것은.. 오늘 말씀 제목처럼 그리스도인의 배지입니다.
핍박을 당한다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명서입니다.
핍박은 당할 수도 있고 안 당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제 핍박을 마주할
15장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은 모두 핍박 당하고 순교하여 죽었습니다.
제자들은, 신자들은 평화의 사자가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핍박도 각오해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의를 위한 박해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지만,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합니까?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참된 신자로 살다보면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10년전쯤 신학교를 입학하면서 loan office 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아주 세상적인 회사였습니다. 일을 마치면 회식도 자주 있고, 회사에도 여행도 가고 그랬는데..
저는 신학생이라는 이유로, 또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는 다 교회 와야 하니깐.. 회식을 자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사장님이 저를 데려 가려고 작정을 하셨습니다.
아쉽게도 그날은 교회 모임도 없고, 특별히 핑계 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끌려 갔는데..
그 때 제 기억으로 저와 다른 한 분만 교회를 다니고 모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였는데..
술을 권하시는 거였습니다. 신학생인 걸 아는대도요,
제가 거부를 하면 더 강력하게 권하시고, 거부를 계속해도 더 강력하게 권하시는 거였습니다.
근데 저는 은혜를 받고 이런 자리를 몇 번 경험을 해봐서, 이런 자리에서 당황하지 않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잘 계속 거절 할 수 있는 스킬을 장착을 했었습니다.
사장님이 저에게 반협박도 해보시고 윽박도 지르시려고 했지만,
제가 생글생글 웃으며 잘 거부하니깐, 결국 포기하시더라고요.
세상에서 살면서 이런 핍박과 유혹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는 상기해야 합니다.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핍박을 피하는 길은 세상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세상이 하나님을 비웃을 때 잠잠하고,
세상이 좋아하는 죄악을 좋아하면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나치에 항의해서 투옥과 고문을 당하고 가족마저 협박과 위험을 당한 본회퍼는 1945년 4월 처형되었습니다.
그는 처형되기 전에 쓴 글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고난은 진정한 제자도의 배지이다. 제자도는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에 밀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고난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것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기쁨이요, 은총의 표시이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믿음 때문에, 예수 때문에 고난을 당했습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참된 예배를 드리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고통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엘리야와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간신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았고요,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세상사람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과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고난과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사를 보면 두 아들을 잃은 손양원 목사님, 신사참베를 거부했던 주기철 목사님, 북한의 순교자들은 모두 핍박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과 중세의 진실한 신자들과 청교도들과 신사참배 자들은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닌! 형식적인 신자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누구를 핍박할까요?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핍박합니다.
믿음을 지키려는 자를 핍박합니다.
경건하게 살려자는 자를 핍박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를 핍박합니다.
진리를 타협 없이 전하는 자를 핍박합니다.
6. 부흥을 위해 쓰임 받는 자를 핍박합니다.
7. 마귀의 왕국에 위협이 되는 자를 핍박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배지, 핍박과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 앙심을 품거나 복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 분개하지 말아야 합니다.
- 낙담하거나 신세타령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핍박자들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핍박을 받는 것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도리어 우리는 핍박을 받을 때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또한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사행 5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병든자를 고치고,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대제사장과 성전 맡은 자들에 제자들을 공회 앞에 끌어와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27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듣냐 이거죠,
그러자 베드로가 사도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리고 몇 마디 더했다가 죽을 뻔 하지만, 가말리엘 덕분에 위기를 모면합니다.
죽이는 대신 채찍질을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아주는데, 사도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40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랑하는 대학청년부 여러분, 저는 설교 초반 부분에 기독교 신앙생활은 역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채찍찔 당하고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는 제자들이 모습이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무시를 당하고, 물벼락을 맞고, 문전박대를 당해도.. 기뻐할 수 있는 신자가 진정한 신자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11 (KRV)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고난으로 그치지 않고 기쁨이 됩니다.
저는 요새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하루에 아기 우유병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아이를 재우고, 기저귀를 갈고, 놀아주고.. 육신적으로는 너무나 힘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아이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고난으로만 있지 않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우유병을 다 설거지 하고 소독하면 얼마나 기쁜지, 아이를 재우면 얼마나 기쁜지, 기저귀를 새것으로 갈아주면 얼마나 기쁜지,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
신자든 불신자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핍박에도 신자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난 다음에 오는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난 다음에 오는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있습니다. 그 상급을 생각하며 기뻐하로 오늘 말씀에서는 이야기 합니다.
마태복음 5:12 (KRV)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핍박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역설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이야기를 잠깐 읽어볼까요?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마지막, 순교자의 대열에 동참하는 영광이 있음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순교자의 대열에 동참하는 영광이 있음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12 (KRV)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전에 있던 너희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 하였으니 지금 너희가 핍박 당하는 것은 순교자의 틈에 끼이는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내가 좀 희생하고 손해 봤는데, 그것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구속사역에 동참했다고 count 해준다면 얼마나 영광된 일입니까?
사랑하는 대학청년부 여러분,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던지,
그리스도를 잠잠하게 하던지,
그리스도를 잠잠하게 하면.. 아무런 핍박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면 핍박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선지자처럼 순교자의 대열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끼여주시기 때문이고,
다른 누구의 고난이 아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찰스 핫지라는 19세기에 살았던 신학자이자 프린스턴 신학교의 학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래의 삶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한 비중에 따라 복이 달라진다. 사랑을 적게 하는 자는 적게 봉사하고, 적게 봉사하는 자는 적게 누린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을 당할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거룩한 수고와 주님의 일에 동참하여,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사랑갈 때, 우리가 누릴 천국의 삶은 주님과의 intimate 한 교제로 풍성한 상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