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새) 하나님께 순종해요! (창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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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고백 : 내 생각과 달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한다.
지키기 어려운 말씀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순종한다.
신앙고백: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3) : 543(어려운 일 당할 때), 542(구주 예수 의지함이), 545(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기도 : 찬송가 545장 찬송하신 후에, 임석택 장로님 예배를 위하여 기도해주시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 창세기 22:1-18 (1-2, 10-14)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믿음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축구하면 손흥민이 유명한데
손흥민이 어릴 적에,
아버지가,
매일 6시간씩,
발 위에 공을 얹고 떨어뜨리지 않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유도 모르고,
미래도 모르고,
앞도 보이지 않는데,
매일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서,
매일 6시간씩,
발 위에 공을 얹고 떨어뜨리지 않는 훈련을 한 것이죠.
기본기가 중요하다.
손흥민 선수 아버지가 강조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기본기가 중요하다.
공을 발 위에 얹고 6시간 동안 떨어뜨리지 않는,
훈련을 매일 매일 거르지 않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축구를 하려면,
슈팅 연습을 하고, 드리블 연습을 하고,
실질적인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기본기,
공을 발 위에 얹고 6시간 동안 계속 떨어뜨리지 않는 그 훈련을 손흥민 선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때까지 쉬지도 않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믿을 때 가능한 것이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아멘으로 반응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하나님과, 그 시험에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글은 ‘내가 여기 있습니다.’
원어로는 ‘보십시오 나를’
나를 보십시오.
나를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 당신의 말씀에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까?
나를 보십시오.
나를 주목해 보십시오.
나에게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그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십시오.
나를 주목하십시오.
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42년 전에는 달랐어요.
실수도 많고,
실패도 많고,
여기저기 흠도 많고,
순종도 잘 못하고, 이리저리 의심많고, 그랬어요.
그런 아브라함이, 42년 동안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손흥민이 8살 때부터 16살 때까지 쉬지 않고 매일 매일 공을 발 위에 얹어 놓는 훈련을 했던 것처럼,
42년 동안,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그 말씀대로 살고,
넘어졌다고, 다시 일어나고,
42년 동안 쉬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훈련을 받은 것이죠.
*여러분, 다음세대가 말씀의 훈련을 받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반응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죠.
말씀이 가장 귀하고,
말씀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상황에 흔들렸죠.
목숨이 위험할 상황이 찾아오면은, 말씀보다 상황에 더 많이 반응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내가 너를 복 주고,
내가 너를 창대하게 하고,
내가 너에게 자손을 주겠노라 하신 말씀을,
믿음직하게 이루어오신 분이 하나님 아닙니까?
자기는 불신했는데,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게 말씀대로 실천해오셨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몸소 체험하고 경험했던 것이죠.
그러니,
순종의 대가,
믿음의 대가,
신앙의 대가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말씀에 반응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은 구체적인 명령이 없는데도,
이미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었어요.
1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구체적인 말씀이 없어요.
그냥 이름 부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하는 반응이 무엇입니까?
주여,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저를 주목하십시오.
이게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말씀에 대하여, 가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언제든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
그게 믿음의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인 것이죠.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 다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3번 부르십니다.
먼저는, 1절에서,
둘째로 11절에서,
마지막으로 15절까지.
총 3번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먼저, 1절입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첫번째, 부르심은 시험의 부르심입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라,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가리키는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올려라.
첫번째, 부르심은 시험의 부르심입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를 바쳐라.
모리아 땅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쳐라.
이게 첫번째,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 앞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절할 것입니다.
못합니다.
안됩니다.
하나님 왜 그러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순종으로, 불신으로 반응하며 거절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도 가지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산으로, 곧장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3절에는 ‘대화 장면’이 없어요.
고민했다거나, 근심했다거나,
예를 들어, 이스마엘 쫓아낼 때는, 아브라함이 굉장히 근심을 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보내라고 하시죠.
그러자 아브라함이 굉장히 근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갖다 바치는데,
전혀 근심하였다는 말씀이 없는 것이죠.
여러분,
이게 훈련된 사람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
이게 훈련된 사람의 반응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근심이 없습니다.
불면증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들은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했다는,
동사만 가득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말씀에 그대로 반응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 것이죠.
말씀에 그대로 반응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출발한 지, 3일 째 되는 날, 아브라함은, 멀리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장소를 바라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은,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면은,
분명히 준비하신 게 있을 텐데,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장소를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창세기, 22장 본문을 보면,
‘본다’라는 동사가, 2절, 4절, 8절, 13절, 14절, 14절.
총 6번이 등장합니다.
2절에서 하나님이 모리아 땅으로 가라 거기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모리아 라는 단어가 본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장소로 가서, 하나님께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본다 라는 뜻은, 하나님이 아시고 준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보시는 장소를, 멀리서 유심히 보고 있었던 것이죠.
도대체 이 말씀을 하신 하나님이
무엇을 준비하셨을까?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순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은,
나보다 하나님이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섬김은, 나보다 하나님이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항상 나보다 하나님이 더 많이 하십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손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 순종은 손해인데,
순종하면 안 되는데,
이삭을 갖다바치면, 도대체 내 인생 어떻게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신다.
하나님이 더 많이 준비하신다.
하나님이 더 많이 주신다.
이런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순종의 자세를 갖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믿음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들 이삭이, 아버지에게 질문합니다.
아버지, 번제를 드리려면 번제물이 있어야지요?
번제할 나무는 있는데,
불은 있는데,
어린 양은 어디있습니까?
하나님도 알고, 아브라함도 아는데,
아들 이삭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아들에게 대답을 하는데,
믿음의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아,
그거 우리 문제 아니야.
그거 하나님 문제야.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셔야 해.
하나님이 더 다급하셔.
그러니까, 하나님이 친히 자기를 위해서 준비하실 수 밖에 없어.
그게 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아들아, 그거 우리 문제 아니야.
말씀하신 하나님의 문제야.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이 순종의 자원도 주시는 거야.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셔야 해.
아브라함은 다급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더 다급하게 만드는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더 다급하셔.
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만드셨거든.
그러니, 아들아, 두려워하지마. 무서워하지마.
걱정 말고 가자.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시리라
원어로 보면, 하나님이 그 자신을 위해 친히 보고 계실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본다 라는 단어가 등장하죠.
*여기까지가 첫번째 부르심이었다면,
두번째 부르심은 11절에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순종을 합니다.
그것도 즉각적으로 합니다.
하나님도 몰랐고, 이삭도 몰랐는데,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도 다급하게 하는 놀라운 순종이었습니다.
9절과 10절을 보니까,
3절과 똑같이 “대화 장면”이 없어요.
동사만 있습니다.
도착해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결박하고, 나무 위에 이삭을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각을 뜨려고 했다.
동사만 반복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철저히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내가 다급할 문제가 아니다. 이건 하나님이 다급하셔야 할 문제다.
이건 내가 두려워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기를 위해 준비하시고 보셔야 할 문제다.
그런 믿음이 충만한 아브라함은, 근심도 없고 걱정도 없고, 말씀 그대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다음세대 아이들이 하나님을 다급하게 만드는 인물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깜짝 놀라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것이 두번째 부르십니다.
11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장소가 중요합니다.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그를 불렀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땅에서 말하기에는 너무 다급했던 것입니다.
땅에 내려오기 전에,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브라함의 순종이 하나님을 다급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멈추어라.
더이상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나님을 다급하게 하는 순종,
하나님을 다급하게 하는 믿음,
그 믿음의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순종이 없어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셔서가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없어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방을 품는 분이신데,
우리는 내 자식 한 명 품기에 바쁘기 때문에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왜 바뀌었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었잖아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을, 열국을 품는,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 이름 뜻이 열국의 아버지 열방의 아버지 라는 뜻입니다.
열방을 품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순종은,
자기만을 위한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순종이고,
열방을 향한 순종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아멘으로 반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있어 믿음으로 순종하는 다음세대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그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을 다급하게 하며,
하나님을 조급하게 만드는 인물, 하나님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인물, 그게 아브라함이었던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러분, 성경에서 경외라는 단어는,
가장 사랑하는 자식조차도 아까워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도,
하나님 말씀 아래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가 사랑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경외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가장 중요시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가까이서 뒤를 바라보게 됩니다.
4절에서 멀리서 바라보았던 아브라함은,
순종의 그 순간,
가까이서 뒤를 바라보게 되는데,
드디어 하나님이 친히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는 제물,
하나님의 선물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13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르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드디어 보게 됩니다.
믿음으로 보았던 실상을,
순종의 그 순간에 아브라함은 실제로 보게 된 것입니다.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하나님이 친히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신 번제할 어린 양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하는 사람만,
믿음의 실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만, 말씀의 결과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의 열매를 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은 세번째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복 주십니다.
복을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겠다.
네 씨가 크게 번성하게 하여 주겠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충만하게 번성하게 해주겠다.
그리고 네 씨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세계열방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은혜에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게 15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함께 합독하시겠습니다.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과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믿음의 실상을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큰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고,
크게 번성하게 되는 사람이 되었고,
자기 뿐만 아니라 세계 열방을 복 주는, 복의 통로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요?
말씀에 순수하게 반응하고,
말씀 그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을 다급하게 하는,
순종의 행위로,
이 복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다음세대가, 여름캠프를 준비하고 진행할 때에, 이 말씀에 반응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없어서, 순종의 사람이 없어서, 아무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으로 행동하고,
하나님을 다급하게 만드는, 우리 다음 세대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아브라함도 42년 동안 하나님의 훈련생이었습니다. 말씀에 반응하고, 또 불신하고,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이 모든 과정을 42년 동안 묵묵히 겪어왔던 것입니다. 우리 다음세대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붙잡아주시고,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훈련시켜주셔서, 하나님을 다급하게 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어서, 한 세대를 인도하고, 우리 한국교회와 세계열방을 품는 귀한 인재들 다 되도록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또한, 금요일입니다. 주일 사역을 준비하시는 담임목사님과,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담임목사님을 사용하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주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행하실 수 있도록. 각 부서를 담당하며 섬기는 부사역자들을 위해서. 순원들을 섬기는 순장님들과 각 부서 교사들을 위해서. 이 시간에 은혜를 구하며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
고마우신 하나님,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 하나님을 다급하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보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더 급하시고, 하나님이 더 많이 준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쁨과 담대함으로 순종하는 열방교회, 또 다음세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성도들의 생업을 지키시고, 병약한 자들이 치유와 회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금요일 새벽 기도제목:
여름사역을 위하여
담임목사님, 교역자, 순장, 교사들을 위하여
추가 해설
하나님의 사자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를 지칭하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단순히 천사가 아니라 종종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시 되는 분으로서 성자 하나님으로 여길 수 있는 분이다. 여호와의 사자의 등장은 이삭의 번제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부분은 14절에서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여호와의 사자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 연속으로 반복하여 불렀으며, 이렇게 부른 것은 하나님의 다급한 마음을 표시한다. 하나님의 부름에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의 부름과 아브라함의 대답은 1절의 하나님의 부름과 아브라함의 대답과 대조를 이룬다.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한 번 불렀고 11절에서 하나님은 그 시험의 결과를 말해 주기 위해 아브라함을 두 번 불렀다.
개요
1절 :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부르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명령(2절)
즉각적인 순종(3절)
믿음의 선포(5절)
이삭과 대화(7-8절)
믿음의 선포(8절)
최종적인 순종(9-10절)
11절 : 깜짝 놀라서 부르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명령(12절)
믿음의 실상을 보게 됨(13절)
여호와 이레(14절)
15절 :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려고 두번째로 부르심
아브라함을 축복하심(17절)
아브라함의 씨를 축복하심(17절)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천하 만민을 축복하심(18절)
아브라함의 순종을 칭찬하심(18절)
창21:8-21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실수로 낳은 이스마엘도 책임져 주셨음을 이미 경험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근심”한다.
바로 순종하지 못한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자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아브라함은 순종한다.
“내가 책임진다. 그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
이 사건 후에,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
아브라함에게
하지 못할 요구를 하시는 분
왜?
믿으니까
아브라함이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을 신뢰하니까
침묵하시는 분
순종의 자리에 있는 아브라함을 묵묵히 바라보시는 분
하나님은 미리 보시는 분
그러나 미리 알려주지는 않으시는 분
미래에 대한 지식을 주시지는 않지만
미래를 확신할 만큼 선하신 분
순종의 결정적 순간까지 침묵하시는 분
아브라함을 붙잡으시는 분
놀라시는 분
감탄하시는 분
이 모든 과정에서 훈련의 주관자 되시는 분
우리 아이들에게?
훈련시키시는 분
우리 아이들의 믿음을 훈련시키시는 분
영적인 훈련을 시키신다
하나님의 훈련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으로 민감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훈련을 시키시는지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선하신 분
하나님은 선하시다.
가장 악한 명령을 하시는 듯할 때에도 하나님은 가장 선하시다.
먼저 나쁜 것을 주시고 후에 좋은 것을 주시는 분.
쾌락에 친숙해지면 안 된다.
쾌락보다 순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쾌락보다 말씀에 민감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할수록 그 아이의 신앙은 오래도록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악하시지 않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말씀이 들려야 한다.
말씀에 민감해야 한다.
말씀이 들려야 믿고 순종할 수 있다.
Romans 10:17 NKRV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사역
10 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펴서 마아켈렛(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샤하트(제물로 잡다)하려고 하였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아브라함, / 그리고 말하기를, 보소서!(힌네), 나를
보라!
12 그가 말하기를, 너는 너의 손을 펴지 말라, 그 아이에게. 그리고 너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제야, 내가 알았다(야다),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야레). 네가 아끼지 않았다(하샤크 / 금하다, 아끼다, 남겨 두다, 저장하다), 네 아들(벤) 네 야힛(독자, 유일한, 외아들)도, 나에게.
13 아브라함이 그의 눈을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라아), 보라!(힌네), 한 숫양이 뒤에, 수풀에 그 뿔이 잡혀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취하여, 그것을 번제물(올라)로 올렸다(알라), 그의 아들을 대신하여
보라!
14 아브라함이 그 지역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 라고 불렀다, 오늘날까지 말하기를, 여호와 하르(산)에서 보여지리라(라아 / 니팔 미완료).
15 여호와의 사자가 불렀다, 아브라함을, 두번째로, 하늘에서
두번째
왜 두번째를 이야기하였을까?
16 내가 내 안에서 맹세하여 네움(말씀), 여호와께서 말하기를, 네가 이 다바르(말씀, 행동)같이 행동하였다, 네가 햐사크(아끼다, 금하다)하지 않았다, 네 아들, 네 독자도
네 아들 네 독자
12절
16절
ex) 2절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17 내가 네게 축복하고 축복하고, 내가 네 제라(후손)를 많아지고 많아지게 만들 것이다(라바 / 히필 이크톨), 하늘의 별처럼, 얌(바다)의 사파(언어, 바닷가, 입술)의 모래처럼, 너의 제라(후손)이 취할 것이다, 그의 오예브(적, 원수)의 샤아르(성, 성문, 성읍)을
18 또 그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너의 제라(후손) 안에서, 모든 땅의 나라들이, 네가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콜(소리, 음성, 메시지)를.
바라크
17절 x 2
18절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복을 받게 되었다.
라아 : 보다, 이해하다, 생각하다
2절 : 모리아
하나님이 보신다.
4절 :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은 멀리서 보고 있다.
8절 :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은 친히 보고 계셨다.
하나님은 ‘그 자신을 위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이건 하나님이 불리하다.
이건 하나님께 불리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해 친히 준비하실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을 별과 같이 많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13절 :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아브라함은 순종하고 나서야 ‘실제로 보게’ 되었다.
14절 :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지었다.
그 땅은 ‘하나님이 보시는 땅’이었다.
14절 :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될 것이다.
무엇을?
네 아들 네 독자 이삭
솔로몬의 성전
완전한 성전 = 예수 그리스도
묵상
하나님이 이름 불러주시는 인생이 되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나님처럼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 되자.
25년간 아브람을 훈련시키신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
말씀에 실패할 때,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
25년이 지나고, 이삭이 17세가 되었을 즈음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42년 동안 인도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죽으라고 해도 순종할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다.
불가능을 쓰신 하나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
약속대로 행동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지식”이 생김.
아브라함이 순종하고 있을 때, 하나님도 함께 움직이고 계셨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준비할 때,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준비하고 계셨다.
예화
손흥민의 순종도 대단하고,
손흥민을 키운 아버지의 노력도 대단하다.
개요
A. 아브라함의 슬픔 (22:1-8) 1. 명령 (22: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2. 순종 (22:3): 아브라함은 이삭과 두 종과 함께 모리아 땅으로 떠납니다. 3. 시련 (22:4-8) a. 이삭의 질문(22:7): "아버지?...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b. 아브라함의 대답 (22:8): "내 아들아, 하나님이 어린 양을 주실 것이다." B. 이삭의 복종 (22:9-10): 아브라함이 그를 제단에 묶는 것을 허락합니다. C. 하나님의 대리자 (22:11-24) 1. 아브라함의 제물의 성격 (22:11-13): 이삭 대신 가까운 숫양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2.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이름 (22:14): 아브라함은 그 장소를 "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공급하시리라")라고 부릅니다. 3. 아브라함의 후손의 수 (22:15-19): 여호와의 천사는 다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해변의 모래처럼 많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4. 아브라함의 가족에 관한 소식(22:20-24): 아브라함은 형 나호르에게 여덟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중 한 명은 리브가(이삭의 아내)의 아버지가 될 벧엘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3번 부르신다.
1절 : 아브라함아
11절 :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15절 : 아브라함을 불러
장면1
개념
아들

이스라엘 사회에서 아들은, 종족(가문, 혈통, 이름)의 보존이나 가정의 대표자이자 가계(家系)를 잇는 상속자로서, 또 토지 등 재산의 소유권자로서 그 권리와 책무가 동시에 주어지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장자(長子)는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었기에 희생제물로써 대속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고(출 13:11–14), 그가 가정을 대표해 여호와 신앙을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특히, 장자는 아들들 중에 온갖 우선권을 누리는 존재로서,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는 형제들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했고(창 43:33),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는 형제들보다 두 배의 재산을 차지하였다(신 21:17). 그리고 장자는 선친(先親)이 사망할 경우 집안의 대표로서 선친의 장례를 주도해야 했다(눅 9:59–60)

한편, ‘아들’을 뜻하는 원어를 보면, 히브리어로 ① ‘벤’(בֵּן) – 동사 ‘바나’(‘세우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서, ‘집을 세우는 자’, ‘가문을 일으키는 자’로서의 자식(창 4:17; 32:1). ② ‘제라’(זֶרַע) – 동사 ‘자라’(‘씨를 뿌리다, 심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줄기나 종족(사 6:13; 57:4). ③ ‘옐레드’(יֶלֶד) – 동사 ‘얄라드’(‘어머니로서 갖다, 아버지로서 낳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아들이나 자식(창 21:14), 아이(출 2:6), 남자(출 1:17). ④‘닌’(נִין) – 동사 ‘눈’(‘싹이 나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후손(창 21:23; 사 14:22). 이어서 헬라어로 ⑤ ‘테크논’(τέκνον) – ‘동사 ‘티크토’(낳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출생의 계통과 관련해 아들(마 21:28), 자식(마 7:11), 아이(계 12:4). ⑥ ‘파이디온’(παιδίον) – 70인역(LXX)에서 히브리어 ‘옐레드’를 대치하는 단어로 쓰여, 연령이나 출생과 관련해 아이(마 11:16; 막 5:39), 아기(마 2:8), 어린아이(마 18:2). ⑦ ‘휘오스’(ὑιός) – 70인역(LXX)에서 히브리어 ‘벤’을 대치하는 단어로 쓰여, 아들(마 1:21), 자식(마 23:15), 그리스도(요 3:16)를 가리킨다. 특히 이 단어는 상속자로서의 권한을 가진 자임을 나타낸다.

창세기 개관
하란: 12:1-3 세겜: 12:7 벧엘: 13:14-17 헤브론: 15:5, 18; 17:1-8
이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성품을 여러 번 시험하셨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시험은 이스라엘 가문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정화되고 강화된 경험이었습니다. 아래는 아브라함의 시험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각 장의 개요입니다. 성경 본문의 각 구절을 읽으면서 시험의 종류, 목적, 결과를 관찰하세요.
순종의 시험 (12:1) 가치관의 시험 (13:5-18) 사랑과 충성의 시험 (14:1-24) 믿음의 시험 (15:1-21:34) 가장 가혹한 시험 (22:1-19) 마지막 해 (22:20-25:18)
관찰
장면1 아브라함의 순종
장면2 : 하늘의 소리1
장면3 : 하늘의 소리2
주석
1 여기서 시험하셨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 즉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진실한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한 조치를 취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신뢰하는지 보고 싶어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순종할지 시험하고 싶어 하셨다"
"네, 기다리고 있습니다.", "섬기겠습니다.", "준비되었습니다.", "네, 무슨 일이죠?"와 같은 의미일 수 있습니다. FRCL은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2 당신이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하고 이삭을 희생하라는 요구의 가혹함을 강조합니다.
REB는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번역합니다. 물론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약속의 상속자입니다.
당신은 아들 이삭이 하나밖에 없고 그를 매우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데려가세요...."
3 다음날 아침 아브라함은 일찍 일어나 제물에 사용할 나무를 쪼갰습니다. 그는 이것을 당나귀에 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 이삭과 두 명의 젊은 종을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신 곳으로 출발했습니다.
4 셋째 날에는 여행이 거의 끝날 무렵으로 장면이 바뀝니다.
5 아브라함이 젊은이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들과 나는 저기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다음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당나귀와 함께 여기 남아 있어라."
7 내 아버지! 이 호칭 형식은 아들이 당황스러운 질문을 하기 전에 아버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아버지를 부르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상황에서 Speiser는 "이삭이 침묵을 깨고 아버지에게 말했다...."라고 번역합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내 아들아: 아들을 향한 아브라함의 응답은 1절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과 동일합니다.
1절 : 내가 여기 있나이다
7절 : 내가 여기 있노라
“우리에게 불과 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양은 어디에 있나요?
8 “직접 보실 것이다"
"하나님이 어린양의 필요를 돌보실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그 동물을 공급하실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1 그러나 주님의 천사: 그러나 영어에서는 아브라함의 행동과 이삭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열망을 대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 언어에서는 "갑자기", "아브라함이 움직이기 전에"와 같이 하나님의 개입을 나타내는 말로 11절을 소개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장소 또는 거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12 첫 번째 명령은 문자 그대로 "소년에게 손을 대지 말라"입니다. "그를 해치지 마라", "그에게 고통을 주지 마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그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지 마라.", "어떤 식으로든 해치지 마라."라는 말로 더 나아갑니다. 많은 언어에서 이 문장을 두 개의 짧은 명령으로 표현하여 상황의 긴박함을 보여줍니다(예: "소년을 해치지 마세요!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마세요!"
아브라함은 이삭을 기꺼이 희생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 주었으므로 1절에 언급된 순종의 시험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하나님을 존경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아들이 하나뿐이지만 당신은 그를 붙잡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를 하나님께 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당신이 항상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번역자는 주의 천사가 이 문장에서 3인칭으로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다음 문장에서 1인칭으로 전환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13 "아브라함은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다...", "놀란 아브라함은 ...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보고 놀랐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16 "이 아들은 당신이 가진 유일한 아들이지만 당신은 그를 붙잡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약속합니다...."
17 내가 참으로 네게 복을 주리라: 참으로 복은 히브리어 동사 "복"의 두 가지 형태인 "복을 주리라"를 나타내는데, 이는 축복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겠다" 또는 "내가 너에게 큰 복을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축복은 다산과 관련하여 언급되어 있으며, "많은 자손을 주겠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후손은 별과 모래에 비유됩니다.
이를 반복하여 강조하는 한 번역은 "네 자손은 매우 많을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해변의 모래처럼 많을 것입니다." 이 비유는 26:4과 32:12에 다시 등장합니다. 땅의 티끌(13:16)과 별(15:5)을 언급하며 비슷한 축복이 더 일찍 약속되었습니다.
성문을 점령한다는 것은 적의 도시를 정복하고 물리치고 점령하는 것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1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축복하신 것처럼 열방이 스스로를 축복해 달라고 구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내게 순종했으므로 네 후손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될 것이다."
1-2 아브라함의 신뢰는 상식, 인간적 애정, 평생의 야망, 사실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해 저울질해야 했습니다.
2 모리아는 문자 그대로 "여호와의 예견된 땅"을 의미합니다.
9-10 이것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세운 다섯 번째 제단이며 마지막 제단이 될 것입니다(참조: 12:7-8; 13:18).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했다는 것은 이 제사가 특별한 제사였음을 나타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그러한 제물에 결박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이삭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칼은 두 번째로 언급됩니다 (10 절; 참조 6 절). 이 히브리어 단어는 시체를 조각으로 자르는 데 사용되는 도구의 특정 용어이며(삿 19:29), 두 히브리어 단어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다음 구절의 천사에 대한 언급과 함께 단어의 유희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칼 : 마아켈렛
사자 : 말라크
11-14. 천사가 아브라함을 두 번 부른 것은 족장이 아들을 죽이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긴급한 신호입니다(11절). 천사는 또한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행동에 대한 결론을 말하고 족장의 행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을 주시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사실상 선언하는 평가적이고 수행적인 언어입니다(참조, 16-18절). 아브라함이 숫양을 알아차린 것은 하나님께서 제물을 주실 것이라는 그의 앞선 진술을 성취하는 것입니다(8절 참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산을 선택하셨음을 강조하며, 이 선택은 후에 예루살렘 성전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시 2:6; 78:68; 사 56:7; 57:13; 65:25; 66:20; 겔 20:40; 욜 3:17).
모리아 산 : 역대기는 솔로몬이 첫 번째 성전을 건축한 정확한 장소로 모리아 산을 제시합니다. 역대기는 주님의 "나타나심"(모리아)에 대해 동일한 어휘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정확한 네 개의 구절로 구성된 일련의 일반적인 진술에서 구체적인 진술로 유사하게 이동함으로써 창 22:2의 수사법을 사용했을 것입니다(칼리미, "모리아의 땅", 349-50; 몽고메리, "파로노마시아", 279).
15-18.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에 직접 기록된 유일한 신성한 맹세입니다. 맹세에서 하나님은 맹세할 더 높은 권위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맹세하십니다(히 6:13). 하나님의 맹세의 근거는 처음(당신이 ... 당신의 외아들을 보류하지 않았기 때문, 16절)과 마지막(당신이 내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 18절)에 모두 명시되어 있습니다. 맹세 자체는 세 가지를 약속합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이 많은 자손으로 복을 받을 것이며, 하늘의 별에 대한 비유를 반복하고(17절, 참조, 15:5) 처음으로 해변의 모래에 대한 비유를 추가합니다. 둘째, 약속은 아브라함의 특정 자손으로 옮겨갑니다. 영어 단어 자손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어 단어(문자 그대로 '씨')는 다수를 지칭하는 집합어일 수도 있고, 한 명만을 지칭하는 특정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특정 자손으로의 변화를 알리기 위해 동사 소유는 단수이며, 그의 적들(많은 영어 버전에서 '그들의 적들'이 아닌)의 다음 대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자손은 원수의 성문을 점령할 것입니다. 이 약속은 나중에 아브라함의 위대한 후손인 예수님에 의해 확장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가 음부의 문을 이길 승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마 16:18). 마지막으로, 마지막 약속은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특정 후손에 대한 초점을 계속 이어갑니다(18절). 따라서 이 세 가지 약속 중 마지막 두 약속은 본질적으로 메시아적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 성취를 찾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부활에 대한 믿음을 설명하면서 비유적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음에서 다시 살렸다고 언급합니다(히 11:17~19). 아브라함과 이삭이 산에서 내려올 때 그들의 귀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들의 큰 자손, 약속된 구세주가 승리하여 대적의 성문을 점령하고 그를 통해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22:17-18).
12 보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끼지 않았다",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보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일부 언어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당신의 외아들을 기꺼이 나에게 희생할 의향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와 같은 표현이 이에 해당합니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같은 관용구는 4절을 참조하세요. 이 문맥에서는 "올려다보았다"(NRSV, NIV)와 "둘러보았다"(TEV, REB)가 모두 적절한 번역입니다. '보라'는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등장으로 놀라움을 자아내는 것을 나타냅니다. 영어에서는 "아브라함은 갑작스러운 등장에 ...," "놀란 아브라함은 ...," "아브라함은 보고 놀랐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14 히브리어는 8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어린 양을 직접 [문자 그대로 '보시겠다']"고 말한 것처럼 "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 사용된 이름은 8절에 사용된 동사와 일치해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독자가 8절에서 아브라함이 말한 내용과 14절의 이름 사이의 연관성을 알 수 있도록 메모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17 반복을 통해 이를 강조하는 한 번역은 "너의 자손은 매우 많을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해변의 모래처럼 많을 것입니다." 이 비유는 26:4과 32:12에 다시 등장합니다. 땅의 티끌(13:16)과 별(15:5)을 언급하며 비슷한 축복이 더 일찍 약속되었습니다. 성문을 점령한다는 것은 적의 도시를 정복하고 물리치고 점령하는 것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18 땅의 나라나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구할 때 아브라함의 후손을 예로 들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축복하신 것처럼 열방이 스스로를 축복해 달라고 구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땅의 백성들이 복을 받을 이유는 아브라함이 "내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내게 순종했다", "내가 네게 명한 대로 행했다", "네가 내게 순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구절을 "네가 내게 순종했으므로 네 후손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될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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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리아. 여행에 2~3일이 걸리기 때문에(4절), 모리아의 위치는 브엘세바에서 반경 40마일(65킬로미터) 내에 있습니다.
13 구약에서 동물 대속은 충분히 분명하지만(예: 장자 대속, 유월절), 고대 세계에서 동물이 인간을 대신하여 희생된다는 생각은 예상만큼 흔하지 않았습니다. 동물 희생이 행해지던 문화권에서는 사람들이 신을 위해 풍성한 식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때로는 제사장과 숭배자들이 함께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동물이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대신 사죄한다는 이론은 다른 문제입니다(창 22장에서도 희생의 이유로 범죄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고대 세계의 의식에 동물 대용이 포함되는 경우 일반적으로 마법의 맥락에서, 즉 의식을 통해 질병, 불순물, 악령 또는 주문이 동물에게 전달되어 도살되어 인간을 구제 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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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는 문자 그대로 "여호와의 예견된 땅"을 의미합니다.
"제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들어 올리다"라는 뜻의 알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들어 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들려지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끌어들이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들어 올리실 때 "이 말씀은 그의 죽음을 의미하심이라"(요 12:32, 33)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예수님이 못 박히실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처럼 자기가 누워야 할 나무를 짊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번제로 드리는 장소를 지정해 주셨다.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이다(2절). 후에는 그곳이 모리아 산으로 불린다(대하 3:1). 먼 훗날에 그곳은 성전이 세워진 곳이 되며, 시온산으로 불리게 된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고 있었다. 가까이에 많은 산이 있을 것이며, 또 마므레도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더 멀리 떨어진 모리아 산을 지정하셨을까? 그곳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리아(מֹרִיָּה)”는 동사 라아(רָאָה, 보다)의 분사형과 여호와의 약어인 야(יָהּ)가 합쳐진 단어로서 ‘여호와가 보시는 곳’이란 뜻이며, 더 나아가서 ‘여호와가 준비하신 곳’이란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8, 14절 참조). 하나님은 그곳을 성산으로 지정해 두셨다. 그래서 그곳을 “여호와의 산”이라고 부른다(14절). 그 이유는 그곳에 성전이 세워지기로 정해진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 15:4에 “네 몸에서 난 자가 네 후사가 되리니, 그 후손이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으리라”고 약속하셨다. 16장에서 이스마엘이 태어났지만, 17:18–19에서는 이스마엘이 아닌 앞으로 태어날 이삭이 언약의 후손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21:12에는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하시고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들을 믿었다. 만약 이삭이 죽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거짓이 되므로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약속에 의하면 이삭이 죽을 수 없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마음 편안하게 일찍 서둘러 이삭을 바치러 출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앞으로 본문 곳곳에 나타날 것이다.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7절). 제사를 드리기 위한 준비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물이다. 그런데 다른 준비물은 다 있지만 이 중요한 것을 챙기지 않고 예배하러 올라가는 것을 이상히 여긴 것이다.
아브라함이 대답한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 여기에 “준비하다”로 번역된 라아(רָאָה)의 원래 뜻은 ‘보다’이지만, 거의 모든 성경이 “준비하다(provide)”로 번역한다. 여기에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나타난다. 아브라함은 아들 대신 다른 것이 준비되어있다고 믿었다. 신약 히브리서 11장은 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말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을 받았을 때에 아들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에게 미리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고 하셨으니,” 이것을 믿었기 때문에 아이를 바칠 수 있었다고 말한다(히 11:17–18). 그 약속에 의하면 이삭이 죽을 수 없다. 만약 아이가 지금 죽으면 그로 말미암아 자손이 번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너무나 단순하다.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는 것이었다.
“잡으려”의 솨하트(שָׁחַט)는 ‘죽이려’로 번역할 수 있지만, 그러나 단순히 죽이는 것이 아닌 좀 더 강력한 ‘도살하다, 학살하다’의 의미가 있다. 앞에서 아브라함이 아이가 죽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하였다. 만약 아이가 죽을 수 없다는 믿음만 가졌다면 아브라함은 이쯤에서 회의가 일어났을 것이다. ‘이 아이는 죽을 수 없는데, 왜 하나님은 가만히 있는 거야?’라며 든 칼을 멈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절에서 아브라함의 행동은 주저함이 없다. 따라서 그가 죽을 수 없다는 그 이상의 믿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즉 아이가 죽더라도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이삭으로 말미암아 후손이 별과 같이 번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가 죽더라도 하나님은 살려내어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창 22:11) 여호와의 사자는 주로 땅에 나타났었다(16:7 이하; 21:17 이하; 32:1; 출 3:2 이하 등등). 그가 하늘에서 불렀다는 것은 긴급한 상황임을 드러낸다. 그의 이름을 두 번이나 연속으로 부른 것도 다급한 호출이다.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수양을 번제로 드리는데, 먼저 “눈을 들어 살펴” 보았다(22: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양을 드리라고 명령하거나 어떤 지시를 한 흔적이 없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살펴보았다. 왜 그랬을까? 앞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했다(8절). 아브라함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것을 찾으러 두리번거린 것이다. 과연 아브라함의 예측이 맞았다. 한 숫양이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바로 지금 와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이미 수풀에 걸려있는 숫양을 본 것이다. 이미 여호와께서 친히 준비해 두신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 숫양은 대속제물이 된 것이다.
대속의 원리는 나중에 나타난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은 모든 장자가 하나님께 바쳐지기를 원하지만, 짐승으로 대신 바치도록 허락하셨다(출 22:29; 34:20). 그러나 창세기 본문에서도 대속의 원리가 적용된 것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왜 하나님이 극악한 이교도들이 행하였던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시키셨는지 그 답을 얻게 된다. 아브라함에게 대속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그 대가는 죽음이다. 이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 한 것도 정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 다른 대속물을 준비해 두셨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었다.
Exodus 34:19–20 NKRV
모든 첫 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모든 처음 난 수컷인 소와 양도 다 그러하며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대속의 제물을 바쳤다. “모리아”는 “여호와께서 (대속물을) 준비하셨다”는 이름을 가졌다. 역대기서는 성전이 세워져야 할 장소의 정당성을 아브라함이 대속물을 드린 곳이란 데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본문에서 말하는 “오늘날까지”는 성전이 세워지던 솔로몬 시대일 가능성이 많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적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여호수아 때에는 가나안 족속일 수 있고, 이후 왕국 시대에 이르면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가 될 수 있다. 또한 제라가 순수하게 단수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후손, 즉 궁극적인 후손을 가리킬 수 있다. 이것을 메시아로 생각한다면 그 메시아의 세상을 정복할 것에 대한 예언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창 49:10 참조).
자손에 대한 약속에 이어 다음으로는 “복”에 대한 약속을 주신다. 이것은 창세기 12장에서 주신 세 가지 약속(땅, 자손, 복)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복에 대한 약속이 원래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하–3). 그런데 이 복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서 확대되어 후손에게로도 넘어간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22:18). 이 복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물질적인 복을 받는 것도 포함한다(12:3 주석 참조).
성경학교 예화 / 결론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이 모이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골을 넣어서 상을 받은 우리나라 선수가 있어요. ('손흥민 선수'를 보여주며) 바로 손흥민 선수예요. 손흥민 선수는 2021-2022 시즌에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려서 득점왕에 올랐어요. 손흥민 선수는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득점왕이 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사랑받게 되었어요.
손흥민 선수가 이렇게 뛰어난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에게 숨은 도우미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손웅정 감독) 그 도우미는 바로 축구 감독이자,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에요. 손웅정 감독은 아들이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기본기'를 가장 강조했다고 해요. (훈련 내용) 그래서 손흥민 선수는 축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일 훈련을 거른 적이 없었어요. 8살부터 16살까지 날마다 6시간 동안 발등에 공을 올리고 40분 동안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 훈련을 계속했어요. 그러다 보니 손웅정 감독이 아들을 괴롭힌다거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오해를 사람들로부터 종종 받았다고 해요.
여러분, 손흥민 선수는 공격수예요.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골키퍼가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날카로운 슈팅을 해야 해요. 그렇게 강한 슈팅을 하려면, 당연히 슈팅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손흥민 선수는 공격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슈팅 연습을 18살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해요. 놀랍지 않나요?
만약 여러분이 손흥민 선수라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런 훈련이 이해가 되었을까요? 제가 만약 손흥민 선수라면 아무리 아빠의 말이지만, 따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공격수가 슈팅 연습 을 해야 하는데, 오랜 시간 다른 기본적인 훈련만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 같아요.
만약 손흥민 선수가 이해되지 않는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면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요? (대답을 들은 후) 그래요. 이해되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을 잘 따랐기 때문에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아브라함은 이해되지 않는 명령을 받았을 때 어떻게 했나요?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했어요.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내 생각과 달라도 믿음으로 따르는 것을 말해요. 그 결과 아브라함은 믿음의 시험을 통과하고,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지키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힘들고, 이 해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 지키기에 부끄럽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믿음의 사람은 내 생각과 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 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요.
(4과 외울 말씀을 보여주며)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히 11:17).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해요. 그런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함께 외쳐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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