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2 양청] 29-30문

소요리문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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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을 지나 구원론[성령론]으로 들어간다. 지금까지 한 것들을 잠시 정리해보면, 큰 그림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1-3문까지 서론이 있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 그리고 성경은 무엇을 말하느냐에 대한 부분이었다. 4-12문까지 신론을 다루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존재하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가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13-20문까지 인간론에 대해 배웠다. 사람의 죄는 무엇이고 죄의 결과는 무엇이며 은혜언약에 대해 배웠다. 이어서 21-28문까지 기독론을 다루었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과 한 인격, 삼중직,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이제 29-36문까지 구원론을 다루고 37-38문은 종말론에 대해 배울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기독교신앙의 거의 전체가 담겨져 있는 것인데 종말론에서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에서 행하신 구원이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부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구원론을 다루면서 이를 성령론이라고도 하는데, 왜 구원론을 성령론이라고도 부르는가? 교재 2번을 보라.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원론은 전체적으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님의 사역은 일차적으로 은사가 아니라 구원과 관계있음을 기억해야 하겠다.
29문. 우리는 그리스도가 사신 구속에 어떻게 참여자가 됩니까?
답. 우리는 그리스도가 사신 구속에 그의 성령이 우리에게 효력있게 적용하심으로 참여자가 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사신”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요즘의 표현으로 바꾸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다" 혹은 “값을 치루고 사셨다" 라는 의미이다.
30문. 성령은 그리스도가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십니까?
답. 성령은 그리스도가 사신 구속을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심으로써, 그리고 이것에 의하여 우리를 효과적으로 부르실 때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심으로서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29문을 보라. 한글 번역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영어로 보면 3개의 ‘By’ 가 등장한다. 그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자면,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령님에 의하여, 우리에게 효력있게 적용하심으로 인하여.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3번의 A를 보라. 그리스도가 사신 구속이라 한다. 구속은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이다.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구원이지 내가 무엇을 행했기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
B에 성령이.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은 성령님에 의해서 우리 것이 된다.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복음을 깨달아서 구원을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어떤 판단력으로 내가 먼저 구원의 비밀을 깨달아 구원을 이룬 것이 아니다. 인간의 성향이나 의지도 전혀 포함안되어 있다. 우리의 구속이 이뤄지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눈을 여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 보게 하시고, 이것이 나를 위해 일어난 일임을 깨닫게 하신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는 모태신앙으로 자라온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분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신 분인지 늘상 들어왔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것이 깨달아지게 되던 때가 있더라. 뭔가 막연하게 들리던 것들이 실제적으로 다가오고 깨닫게 되고 고백하게 되는 때가 있더라. “아! 진짜 주님께서 나 때문에 죽으셨구나” 이 사실이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 안에 각인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C를 보라. 적용하신다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자격을 갖춰서 참여자로 참여하는게 아니라, 내가 참여자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어떻게? 성령님게서 이것을 효력있게 적용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반드시 나의 삶 가운데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에 내가 구속에 참여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4번을 보라. 구원론/성령론의 요점이 뭔가? 구원론은 인간이 믿기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과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데, 성부하나님은 뭘 하시는가? 이 구원을 설계하시고 작정하신다. 그것에 따라 성자하나님은 뭘 하시는가? 그 일을 실행하신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율법 아래 순종하심으로 의를 이루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이 구원을 이루신다. 그리고 성령하나님은 뭘 하시는가?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의 모든 택하신 백성들에게 적용하신다. 성삼위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구원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그런데 현대신학의 많은 경우에 삼위하나님의 사역임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여기에는 인간의 의지와 결단, 결심 이런 것들이 합작해서 이뤄진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삼위하나님의 사역에 인간의 공로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가? 예를 들어서 여러분 어릴 때 그런경험있는지 모르겠다. 부흥회나 수련회를 갔는데 강사가 말한다. “예수 믿기로 결단하는 분들은 강단 앞으로 나오라" 그래서 내가 믿기로 결단하고 앞으로 나갔다. 내가 예수 믿기로, 내가 예수 영접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회다니기로 결심하고, 내가 예수 믿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이는 비성경적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행하시지 않는다면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을 계획하고 결심하며 이룬 것 같아도, 우리보다 앞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일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결심을 하고 행동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먼저 행하시는 일, 이것이 바로 신학적인 용어로 중생이다. 거듭남이다. 내가 새롭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믿는 반응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5번을 보라. 성령께서 구원을 효력있게 적용하시는 방식은 크게 3가지이다. A를 보면,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심으로 진행하신다. 86문, 한참 뒤인데 그때 다시 한번 더 살펴볼 것이다. 두번째는 B에 효과적으로 부르실 때, 이것은 31문으로 다음주에 살펴볼 것이고, 세번째는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심으로서이다. 이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성령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적용시키신다.
6번을 보라.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신다” 하신다. 우리가 보통 믿음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신학자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인식하지 못하던 것을 인식하게 하는 내적 인식 원리" 믿음이 없을 때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믿음이 들어오자 보이기 시작하는게 있더라는 것이다. 영적인 시각이 생긴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믿음이 들어왔다는 증거이다.
B를 보라. 하나님은 은혜로 구원을 주시는데 믿음을 통해 주신다. 엡2:8-9 를 찾아보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이라는 것은 너희 안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은혜로 받은 것이라 하는가? 믿음으로 받은 것이라 하는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뭘까? 투표해보자. 은혜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여기서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고 말씀했는데, 교재의 B를 보라. “선생님이 정답을 이메일로 알려 주셨습니다" 여기서 내가 정답을 알게 된 주원인은 선생님인가? 아니면 이메일인가? 당연히 선생님이 정답을 알려주신 것이긴 한데, 내가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이메일이라는 수단을 통해서였다. 정리하자면 선생님이 나에게 정답을 주셨지만 그것은 이메일을 통해서 알려주신 것이므로, 내가 정답을 알게 된 주원인은 바로 이메일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데 은혜에 의하여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의 주원인은 무엇이다? 믿음이다.
우리가 지난 시간들을 통해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로 타락한 인류에 대해 다뤘다. 죄로 오염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에게는 사고할 수 있는 이성이나 경험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논리 등이 남아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때 믿음을 통해서 그 구원이 우리에게 적용되게 하시는데, 그 일을 하시는 분이 누구다? 성령님이다.
7번을 보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A를 함께 읽어보자.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갖는 연합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이것에 의하여 그들은 그들의 머리와 남편이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신비하게, 그러나 실제적으로 분리되지 않게 결합됩니다. 이것은 그들의 효과적 부르심 때 이루어집니다" 이 부분은 대요리문답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사람은 아담과 연합한 사람이다. 아담은 죄인이고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던 자이다. 그래서 죽어야 하는 인생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그리스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감격적이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아는가?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신다는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나는 여전히 죄인이고, 엄청나게 연약하여 계속해서 넘어지며 실패한다. ‘거룩’이라고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고 죄를 지은 적도 없는 예수님처럼 나를 보신다는 것이다. 성부께서 성자를 보시는 것처럼 똑같이 나를 보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이런 경험을 한다. “아이고, 경희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얼굴도 시꺼멓고 키도 작아서 시집이나 갈라나 모르겠다 했는데, 대학졸업하더니 다 큰 처자가 됬어! 이제는 시집 갈만 하겠어!”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는 당장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시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연약함, 나의 넘어짐, 나의 죄성들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완성된 영광의 모습으로 지금 나를 바라보신다는 것이다. 그 완성된 영광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연합해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이다.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그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이 동일하게 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방금 읽은 대요리문답을 보면 이 놀라운 은혜가 ‘효과적 부르심' 때에 이루어지며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는 분도 성령님이시다.
8번을 보라. 구원의 순서, 혹은 신학적인 표현으로 구원의 서정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완전한 구원을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적용하시는 것이 완전하시다. 표현이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이해하면 쉬운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뭔가를 더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완전히 이루셨는데, 이것을 누군가가 나에게 갖다 주셔야 한다. 예를 들어서 이연복 쉐프가 온갖 진귀한 중국 코스요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을 내가 먹으려면 누군가가 나에게 이 진귀한 음식, 완벽하게 차려진 밥상을 가져다 주셔야 한다.
아주 유능한 배민 라이더라도 막 지어낸 따끈따끈한 음식 그대로 집앞으로 전달해줄 수는 없겠다. 비오는 날 튀김이 눅눅해지기도 하고, 뜨거운 음식이 식거나 차가운 디저트가 녹기도 한다. 그러나 막 지어낸 따끈따끈한, 완벽한 음식을 조금도 식지 않게, 조금도 흘리지 않게, 우리집 앞까지 배달해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을 완전하게 적용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효력있게 적용하신다는 표현의 의미이다.
B를 보면, 구원의 서정이라고 했는데, 이를 쉬운 말로 구원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구원을 설명하는 단어가 참 많은데, 부르심, 중생, 회심(회개와 믿음), 칭의, 양자됨, 성화, 견인, 영화 등이 있다. 다들 한번씩은 들어보셨을 단어일 것이다. 물론 생소한 단어도 있겠지만. 구원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크고 광대해서 이 요소들을 하나하나 공부하게 될 때 ‘구원’이라는 것이 담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방대한지를 깨닫게 된다.
방금 읽었던 구원의 서정의 요소, 부르심, 중생, 회심, 칭의, 양자됨, 성화, 견인, 영화 등이 있는데 이를 순서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논리의 순서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렇게 진행된다는게 아니다. 이 모든 과정들이 단번에 일어날 수도 있다. 윌리엄 퍼킨스라는 16세기 청교도 목사님은 이를 가리켜 구원의 황금사슬 이라고 표현했다. 체인을 생각해보라. 앞 체인이 나오면 그 다음 체인이 쭉 이어져나온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서정 역시 사슬처럼 쭉 이어져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까지나 논리적인 순서이지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부르심, 중생, 회심, 칭의, 양자됨, 성화, 견인, 영화의 순서가 있는데, 이 순서는 여러분 가능하면 외우시면 좋겠다.
적용을 보자.
첫째로, 신자의 구원은 전적으로 성삼위하나님의 사역이므로 완전히 안전하다. 만일 이것이 내가 이뤄낸 것이라면, 이것이 내가 얻어낸 것이라면, 내가 뭔가 컨디션이 좋을 때, 내가 믿음이 좋을 때, 내가 좀 은혜를 누릴 때는 그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내가 좀 흔들리고, 시험에 들고, 약해져있다면 그 구원이 불확실해진다. 주님이 이루신 구원을 내가 붙잡은 거라면 내가 힘이 없고 약해질 때 이 구원을 어떻게 유지하겠는가? 그러나 성령님께서 완전한 구원을 우리에게 완전하게 적용시키셨다. 성삼위하나님이 이루신 것인데 누가 우리의 구원을 취소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믿음이 작은 자라도 그 믿음이 확실하다면 그 구원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바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안에서 확실히 안전하다.
둘째로, 구원을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은 종합적이고 완전하여 우리의 구원을 완전히 보장한다. 비슷한 말이다. 구원의 서정, 구원의 순서를 우리가 이제 배우게 되면 우리의 구원이 이렇게 확실하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에 빠진 사람을 생각해보라. (손목잡기) 성령님이 나의 손을 잡으셨다. 여기에 나는 믿음으로 반응을 한다. 어느날 내 믿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마주잡은 손을 놔버렸다. 그런데도 성령님은 여전히 내 손을 놓치지 않고 계시더라. 그러다가 다시 믿음이 회복되었다. 그래서 나도 다시 주님의 손을 잡는다. 주님께서 나를 잡으시고 나도 주님을 잡으니 뭐가 생기는가? 확신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확신이다. 이러한 성경의 설명을 놓치면 내가 붙잡은 것처럼 여긴다. 내가 붙잡은 것이고 내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결국은 마지막에 가봐야 아는 구원이 되는 것이다. 죽어봐야 내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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