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개관

BIble Stduy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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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로마서는 하나의 논문과도 같습니다. 수많은 어려운 신학적인 문제가 복잡 다양하게 집대성된 책이 바로 로마서 입니다. 구원과 칭의 하나님의 의 등 듣기만 해도 졸린 신학적인 문제가 다양하게 나옵니다.
우리 공동체 수많은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였지만 크고 작은 수많은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기 위해 우리가 정한 규칙와 약속들이 있었습니다. 그 규칙들은 기존의 리더십의 야망을 위한, 욕심을 위한, 그 예배를 독점하기 위한 규칙과 약속이 아니라 오직 이 예배를 위해서 지키기 위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약속들은 불편하더라도 그 불편함을 감소하면서 까지라도 그 규칙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희생하며 규칙을 잘 지키며 교회를 유지해 나가던 중 갑자기 명령이 떨어집니다.
담당 교역자로 부터 개척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지금 있는 리더십 모두는 당장가서 특정 지역에 가서 개척을 하라는 사명을 전해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리더십은 또 하나의 사명을 가지고, 그 지역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돌아 옵니다. 그렇게 그 교회는 개척에 성공해서 더 이상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는 자립 교회가 되었고, 이제는 복귀하라는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공동체 리더십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로 서서히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를 보니 아주 다른 교회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리더십들은 이를 보고 참지 못해 분노를 터뜨립니다. 너희가 진정 그리스도인이냐, 교회를 사랑하느냐 너희가 사랑한다면 이것만은 지켜야 하는 것아닌가 등의 이유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남아있던 분들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너희가 없는 동안 우리도 예배를 위해 만든 규칙이며, 우리도 하나님 사랑해서 이렇게 교회를 힘들게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뭐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존의 리더십과 새로운 리더십간의 묘한 긴장감과 이것이 바로 로마교회 안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적 배경

A.D 49년경 로마에는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로마 교회 자체의 기원을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추정컨대 로마교회 안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크레스투스의 소동’으로 로마의 황제 글라디우스는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합니다. 그럼 ‘크레스투스는 누구인가?’. 크게 세 가지의 의견이 있습니다.
첫 번째, 크레스투스라는 사람을 정치적 선동가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1세기 유대인들의 정치적 상황은 매우 불안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메시아적 희망이 불타올랐고, 유대인들은 세계 통치를 위해서 투쟁을 시작했고, 그중 선동가 한명이 바로 크레스투스라는 견해입니다.
두 번째, 크레스투스를 종교적 선동가를 보는 것입니다. 만약 이 견해 또한 당시 정치적인 상황이 매우 불안정했다는 전제를 가집니다. 그런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안정화 하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하려고 했고, 그 과정 중에서 폭력을 썻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가설은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은 맞지만 과연 누가 로마 제국에서 정치적 선동을 할 수 있었냐는 것입니다. 가령 지금 미국 워싱턴에서 정치, 종교 선동은 과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선동은 곧 죽음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의견은 설득력을 잃습니다.
세 번째,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는 이 크리스투스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단지, 철자법의 차이나 잘못들어서 기록이 실수로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견해에 동의합니다. 크레스투스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그 소란을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의 선교활동과 연관을 짓습니다. 이들은 다수의 회당에 들어가서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 논쟁이 있었고, 신학적 논쟁은 결국 심화되어 폭력을 동반한 소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교의 일부 지도자들이 로마 당국에 고발을 하였고 로마 당국은 소동과 관련한 유대교 유대인과 그리스도교 유대인 모두를 로마에서 추방하게 됩니다. 이것이 현재까지 조사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견해입니다.
이렇게 A.D 49년에 발생했던 크레스투스 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A.D 54년 경에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던 크레스투스는 죽게 되고 추방되었던 유대인들은 로마교회 안으로 서서히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복귀하는 것과 동시에 묘한 긴장감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이방인들의 모습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긴장감은 곧장 갈등이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등장합니다. (1) 이방인과 로마인들이 어떻게 하면 교회 안에서 하나를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분열의 문제들을 복음으로 하나되게 할 수 있을까에 해당하는 목회적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이어 또 다른 목적이 나타납니다. 로마서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울은 로마교회 사람들에게 스페인 선교를 위한 지원을 요청합니다. 바울은 로마가 스페인의 선교기지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에 대한 글을 쓰게 됩니다.
정리하면,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갈등을 복음으로 해결하기 위해 로마서를 썼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옥과 같은, 복음의 진수라고도 할 수 있는 로마서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로마의 교회가 갈등이 잘 해결되어 스페인 선교의 전진기지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구조

로마서1:1-17 하나님의 의의 계시로서의 복음
로마서 1:18-3:20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로마서 3:21-4:25 하나님의 구원의 의
로마서 5:1-8:39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결과로서의 소망
로마서 9:1-11:36 이스라엘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의
로마서 12:1-15:13 일상생활 속에서의 하나님의 의
로마서 15:14-16:23 바울의 선교를 통한 하나님의 의의 확대
로마서 16:25-16:27 하나님의 의의 복음에 대한 마지막 요

주요 신학적인 주제

하나님의 의
로마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하나님의 의’일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17 을 통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17 DKV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돼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기록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기 위해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을 주셔서 그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 기쁜 소식을 말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계시하였다, 나타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나타내실 때, 크게 신실하심과 긍휼하심이라는 특성을 통해서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 주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신실하다’라는 것은 언약을 지키시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면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신실함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기댈 수 있습니다. 긍휼은 사랑을 기반으로 불쌍히 여기거나 측은이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특별히 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언약은 옛언약과 새언약이 있습니다. 옛언약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라면 새언약은 렘 31:33 입니다.
예레미야 31:33 DKV
여호와의 말이다. 이것이 내가 그날들 후에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이다. 내가 내 율법을 그들의 생각 속에 주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옛언약이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옛언약이 깨어져 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새언약을 맺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메시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는 먼저 유대인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언약의 성취를 유대인에게만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5:8 입니다.
로마서 5:8 DKV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하심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그 사랑을 입증되었습니다.
로마서 5:6 DKV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작정된 시기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경건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과 그 불경건한 사람들을 화해시켜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
칭의는 갈라디아서에서도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칭의란 법정적인 개념으로 그리스도인을 더 이상 죄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 즉 의롭다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롬3:26롬 4:6-8 입니다.
로마서 3:26 DKV
지금 이때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자신이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분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 진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보편성
앞서도 말했지만 바울은 먼저 유대인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에게만 내려졌던 하나님의 복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DKV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요,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헤로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말합니다. 즉,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며 여기에 인간의 공로는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이러한 구원의 보편성을 오해하여 방종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구원파 입니다.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으니 이후의 모든 행동에서 자유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로마서 9-11 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 이스라엘의 복음 거부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신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하게 여길 사람과 아닐 사람을 선택하시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이런 선택은 복음이 세상에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롬 11:11-24) 그래서 유대인들이 일시적인 실족의 상태로부터 결국 회복이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1:26 DKV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록되기를 “구원자가 시온에서 나와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제거하실 것이다.
신자의 삶
바울은 로마서 12 장 첫 단어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통해서 신자의 삶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권세에 복종할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13:1 DKV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십시오. 무슨 권세든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고 이미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위정자들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때론 다른 성경 구절과 부딪치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믿음이 약한 자를 수용하라고 합니다. 롬 14:1
로마서 14:1 DKV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들이되 그의 견해를 논쟁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그 행동도 성숙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행동이 맞다 틀리다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는 고린도후서의 우상의 제물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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