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너머 계신 예수
Notes
Transcript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1. 빌립
43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벳세다 사람이며 베드로, 안드레와 이웃 사촌 사이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43절)라고 말씀하시자 받아들인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된다.
2. 나다나엘
빌립이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믿게된 후 가장 친한 나다나엘을 찾아가고 예수님에 대해서 전도한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이때 전도의 내용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다”(45절)였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이다.
3. 나다나엘의 반응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46절)
나사렛은 실제로 이방 국가의 영토와 가까워서 이방 취급 당했던 변두리 동네.
또한 메시아의 예언에는 나타나지 않는 동네.
그렇기 때문에 나다나엘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나다나엘의 생각처럼 유대인의 상식에서 나사렛에서는 결코 선한 것, 좋은 것이 나올 수 없다.
4. 나다나엘의 상식과 선입견을 깨게 된 원인 (46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나다나엘이 가지고 있던 나사렛에 대한 상식과 선입견을 깰 수 있게 된 이유는 빌립의 “와서 보라”(46절)라는 한 마디 권유였다.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상식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상식과 선입견을 벗어나는 일들이 존재한다. 사람은 그 상식과 선입견을 벗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상식, 선입견을 깨기 싫어할까?
심리학적으로 고정관념은 사람들이 생존하기에 유리한 방식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창의력을 가져다주고 긍정적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고정관념은 인간이 생존하기에 유리한 사고 방식이다.
왜냐하면 상식이 바로 고정관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상식이란 우리의 뇌에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경험하거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데이터가 쌓인 결과이다. 그래서 많은 인간이 상식을 공유한다. 만약 비상식적인 일이 너무나도 많이 발생한다면, 인간은 그들의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아기가 태어나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부모님이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중요한 고정관념이다. 그래서 눈을 떴는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리고 위협을 느낀다.
물론 이것이 나중에 성장해서는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는 학습을 통해 깨질 수 있지만 그전까지 이것을 스스로 깨기는 너무 쉽지 않다.
이와같이 사람들의 상식, 선입견은 결코 깨기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생존에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표현하자면 고정관념은 양날의 검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그 고정관념이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고정관념이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나다나엘도 마찬가지이다. 나다나엘에게 별볼일 없는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의 생존에 위협을 준다.
왜냐하면 나다나엘이 바라고 있던 메시아에 대한 이상이 존재하고, 그것은 나사렛에서 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면, 그가 그전에 믿고 있던 선입견을 다 깨부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생애의 가지고 있던 모든 상식을 깨부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깨기 어려운 선입견을 깰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가서 보는 것”이었다.
가서 보아야 한다. 자신의 상식을, 선입견을 깨는 그 두려움을 넘어서고, 직접 가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이라는 분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
그것이 메시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5.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7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공식적인 표현이다.
다른 말로 지칭할 수 있으나(저 사람, 저 자 등) 보통 공식적인 모임이나, 회의 같은 곳에서 유대인을 지칭할 때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특이한 것은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을 염두한 말이다.
야곱은 그 이름의 뜻부터 “속이는 사람”이다. 야곱은 간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것들을 취해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나다나엘을 지칭하여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의 마음 가운데 야곱과 같은 간사한 마음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나다나엘이 “와서 보라”라는 말에 원래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아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즉 나다나엘이 옛 조상인 야곱과 달랐던 것은 비록 야곱과 같은 사람으로서 나사렛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빌립의 권면을 따라 메시아를 보기 위해 나아왔기 때문에 그를 간사한 것이 없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6. 간사한 것이 없는 자에게 내리시는 복은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
그러자 나다나엘은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 묻는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그러자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부터 그를 보았다고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의 문화에서 유대교 학자들이 율법에 대해서 연구할 때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꼭 연구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다나엘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의 율법과 선지서에서 예언하는 메시아에 대해 고민하고 있거나, 그에 관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딱 그 순간을 얘기하고 계신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보지 못했던 것을 알고 계시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메시아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던 나다나엘을 알고 계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다나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메시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과거의 자신을 이미 알고 계신 분은 메시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게 된다. 이때 고백은 무엇인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믿고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아들인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며, 우리의 왕으로 믿는 것이다.
비록 선입견이 있더라도, 간사함 없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믿게 되는 것이다.
적용)
1. 우리는 항상 우리의 선입견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거부하려고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끔 선입견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 선입견은 우리의 생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끔 유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 사이의 긴장감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 선입견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나,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종종 거부하는 경향으로 이끌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예배에 나아올 때 우리는 정말 많은 선입견이 우리를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방해한다.
예배에 나아오면서 어떤 마음으로 나아오는가? ‘아 오늘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누리고 싶다.’,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고싶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가?
아마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 오늘 설교 좀 짧았으면 좋겠다.’, ‘아 오늘 좀 피곤한데..예배 가기 싫다. 얼른 예배 끝나고 좀 쉬고싶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은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하산해도 된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지 않을 것이고, 예배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하여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다.
마치 나사렛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다나엘의 선입견과 같다.
그런데도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와서 보라”라는 권유에 대한 응답이다.
먼저 자리에 나아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선입견을 부수고 새롭게 가진 새 마음 가운데 하나님은 또한 새롭게 말씀하신다. 그 순간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신다.
아닐 수도 있지만 여기 있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수련회를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수련회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수련회가 매번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다나엘과 같이 나아가는 마음이다.
수련회에 참석해보지 않고, 참석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다면, 수련회에 참석하지 못하게끔 하는 그 부정적인 마음을 우리는 한번 새롭게 해볼 필요가 있다.
그 마음이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끔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새로운 마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새롭게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