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골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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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골 2:1-5)
<서론>
건빵만 먹은 여행자; 오래전에는 대륙간 여행을 하는 방법은 오직 배를 여행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더더구나 엔진이 아닌 바람에 의하여 항해하였기 때문에 몇달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여행하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서 간신히 미국행 범선의 티켓을 구입하고 나니 얼마 안되는 돈이 지갑에 있었습니다.
<opening image>여행자는 남은 돈으로 긴 여행을 위한 식량으로 건빵을 산더미 같이 구입하였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배를 타야할지 모르기에 여유있게 구입한 것입니다. 그렇게 여행준비를 마친 여행자는 부푼 굼을 가지고 거빵고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처음 건빵을 먹을 때는 갠찬았습니다. 공짜로 제공되는 물과 함께 한끼 해결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이틀사흘… 계속되는 건빵식사는 지겹다 못해 물릴 정도로 건빵이 싫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어느땐가부터 식사시간마다 식당에서 흘러 나오는 음식 냄새는 여행자를 거의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아~저 스프 한스푼만 먹을 수 있다면! 음~ 저 스테이크 한조각만 먹을 수 있다면… 식사시간마다 여행이 아니라 고문의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한달여 시간이 흐른 어느날 여행자는 큰 결심을 하고 갑판에서 일하고 있는 선원에게 다가 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보시오! 선원양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일을 대신해 줄테니 무엇이라도 좋으니 당신이 먹는 음식의 일부를 나에게 나눠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선원의 반응은 여행자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이런 구차한 부탁을 하는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한참을 처다 봤기 때문입니다. 여행자 생각에는 아마도 거지 같은 자기 부탁에 선원이 화가났거나 비웃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이 들자 낮이 뜨거워지고 ,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졌습니다.
의아한 표정을 한 선원은 더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이 배에 타기 위해 티켓을 구입했습니까? 그런데 왜 저에게 음식을 구걸하나요? 당신의 티켓에는 선상에서의 모든 음식 값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인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과 화해했고, 이미 영생의 복을 소유한 성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켓의 가치를 알기전의 여행자 처럼, 하나님의 부요함을 누리지 못하고 영적인 건빵만 먹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가진 구원의 비밀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영적으로 가난하고, 무기력하고, 속기까지 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론>
오늘 본문 골로새서 2:1-5은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춰진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유일한 비밀이기에 다른 비밀을 말하는 거짓 가르침에 속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너희’ 곧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물론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 특히 그 중에도 자신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성도들까지 자신이 그들을 위해 얼마나 힘쓰는지 알아주길 원했습니다.
여기서 ‘힘쓴다’는 것은 육상경기에 참가한 선수가 일등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너희를 위해 이렇게 수고한다”며 생색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을 지키는 삶의 힘겨움을 잘 알기에 그 어려움들을 넉넉히 이기도록 함께 기도하며 마음으로 애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고하는 목적이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성도들이 사랑으로 연합되어 마음에 위로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마음(kardi,a)은 단지 우리의 감정의 자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의 중심을 나타내며, 감정을 포함한 의지와 사고의 근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위로를 받게 한다는 것은 우리 존재(being)의 깊은 곳을 어루만져 인격(person)의 모든 영역에 따뜻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위로가 가능한 것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서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사심도 없는 진실한 사랑으로 서로 굳게 맺어져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통해 크게 마음에 위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성도들을 위해 수고하는 또 다른 목적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1:25-27에서 이방인들도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밀이며, 이 구원을 성취하시는 분으로서 우리의 영광스러운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또한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2:2에서 다시 한 번 성도들의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the full riches of complete understanding)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출생하시고, 죄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온 인류의 구주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사랑으로 연합해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해 힘을 썼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인지, 그 이유를 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다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무슨 신비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그 이해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는 실제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골로새교회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 외에 아주 비밀스러운 지혜와 지식을 주장하는 거짓교사들이 있었습니다(2:20-23).
그 한 부류는 초기 영지주의자들로 이들은 ‘영적 지식’을 통해 물질 세계로부터 영혼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직접 창조된 것이 아니라 어떤 중간적인 존재(an intermediary being, demiurge)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래서 물질세계는 불완전하거나 악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기 위해 신비한 ‘영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부류로 구약의 율법을 감춰진 지혜로 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2:16-19).
율법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구원의 길이 율법을 통해 열려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향해 참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춰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주와 인간의 운명에 관한 올바른 이해라는 보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겨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온 인류와 피조세계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짓교사들의 그럴듯한 속임수에 넘어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4).
예수 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는 그 어떤 주장에도 결코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5절에서 저들이 이런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도록 비록 몸은 저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심령 곧 마음은 언제나 저들과 함께 하고 있다며 저들을 격려했습니다(5a).
거기에 더해 저들이 복음의 진리 곧 올바른 복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고 믿음에 굳건하게 서 있는 것을 기쁘게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5b).
이상과 같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첫 번째 사실은,
I.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술이나 담배를 완전히 끊기가 어렵고, 약물이나 도박중독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고, 가정폭력이나 언어폭력 등과 같은 옛 습관을 고치지 못해 힘겨워합니다.
때로는 불신가정에서의 제사문제도 큰 도전이 되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또 다른 구원의 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행과 참선(參禪)을 통해 열반(Nirvana)을 추구하는 불교가 독선적으로 보이는 기독교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있습니다.
이런 유혹들은 사실 이 시대의 교회 안에서만 발견되는 새로운 도전이 결코 아닙니다.
사도들이 아직 살아 있던 AD 1세기 후반부의 교회에도 유사한 유혹들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지만 헬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초기 영지주의적인 가르침이나 여전히 율법을 붙들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의 가르침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원과는 관련 없고 그것들은 그저 사람들의 종교적인 호기심을 채우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교묘한 말로 성도들을 속이는 속임수였습니다(4).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사도바울의 주장 이전에 예수님의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두신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영생하도록 계시는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자신 외에 구원에 이르는 또 다른 비밀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행 4:12)고 설교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사도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속아 마치 구원의 길이 다른 곳에도 있는 것처럼 현혹되지 않도록 저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왠지 고상해 보이는, 신비하기까지 한 거짓된 가르침이 아니라 비밀 중의 비밀 되시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는 그 복음의 비밀 속에 견고히 서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캐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배타적이고 독단적으로 보이는 기독교의 진리보다 다른 종교의 주장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예수님 외에도 하나님께 이르는 또 다른 길이 있을 것처럼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서 그런 위험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우리를 점점 더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라는 기독교의 진리가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우리가 이것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절대적인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라는 이 진리를 붙들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되는 두 번째 사실은,
II. 예수 그리스도 외의 또 다른 비밀을 말하는 그 어떤 가르침에도 속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가진 독특한 특징 중에 하나가 호기심입니다.
일전에 소개해 드렸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도 결국 인간의 호기심 때문에 그 상자가 열렸습니다.
그 결과 온 세상에 슬픔과 질병, 가난과 전쟁, 시기와 증오 등과 같은 악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판도라(Pa/ndw/ra,, pa/j + dw/ron)’라는 이름은 ‘모든 재능을 다 가졌다(all-gifted)’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처럼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로부터 가장 많은 선물을 받은 여인이 바로 ‘판도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다 채워지지 않는 호기심이 인류의 불행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신화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잘못된 호기심이 빚어낸 불행한 결과를 창세기의 역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의 과실을 먹게 된 것도 지적 또는 영적인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뱀에 속긴 했지만, 한 번 먹기만 하면 정말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될 것 같은 호기심이 발동해 그만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창 3:5-6).
그리고 그것이 영적인 불순종과 교만으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출산의 고통이 찾아왔고, 수고하며 땀 흘리는 노동이 심판의 한 단면으로 인식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오늘 우리도 때로는 복음의 진리 외에 무슨 또 다른 신비한 것들이 있는 지 호기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나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길이 있고, 과학의 발달이 왜곡된 사회현실을 개조하고, 억압받는 인류를 구원할 비밀 또는 비법인 것처럼 우리를 속이는 그런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속임수들에 그렇게 쉽게 속고 사는 것일까요?
이단인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는 왜 이렇게 급성장하며, 과학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와 실용주의가 학교와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와 우리의 안방, 심지어 우리의 가슴 깊은 곳까지 점령하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우리가 진리 안에 견고하게 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굳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비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곳에서도 구원이 있는 것처럼 기웃거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데 마치 이단들이 풀어내는 엉터리 같은 성경 해석 속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우리가 진화론과 과학에 속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는 계속해서 최적의 모습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것들에 기초한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와 실용주의에 우리 모두 깊이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무신론자들은 한결같이 다윈(Darwin)의 진화론을 신봉하며, 하나님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고, 종교 특히 기독교가 모든 것을 다 망가뜨린다고 선전하고 다닙니다.
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관점에서의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모든 고통의 문제와 불확실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렇게 외치며 다닙니다.
그런데 과연 거짓종교가 진화론과 과학의 발달이, 물질의 풍요로움과 고립된 섬에서 즐기는 개인의 행복이 인류를 가난과 질병에서, 전쟁과 재앙에서, 도덕적 타락과 무관심에서, 소망 없음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까요?
과연 그것들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무슨 감춰진 비밀이나 비법 곧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비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난과 질병도, 전쟁과 재앙도 도덕적 타락과 무관심도 다 하나님의 눈으로 재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와 부조화가 예수님 안에서 다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이미 복음과 함께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학의 발달이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굶어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외쳐야 하고, 비도덕적인 사회를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 우리의 외침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는 참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게 되는 세 번째 사실은,
III.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이 사실을 늘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각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성숙한 신앙인격체로 세우는 수고를 어떻게 감당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에바브라가 전해준 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의 소식을 듣고, 비록 얼굴을 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이 복음의 진리 위에 견고히 서 있도록 기도했을 것입니다(2:1).
복음의 일꾼이자 교회의 일꾼으로서 힘을 다해 수고하는 사도바울은 실제로 매를 맞고, 돌에 맞고, 파선의 위험을 겪었으며, 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고후 11:23-27).
마치 운동선수가 이기기 위해 경기에 임하듯이 그렇게 수고했습니다(골 2:1).
그들이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위로를 받고, 확실한 이해의 풍성함을 통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게 되도록 기도했습니다(2).
심지어 비록 육신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심령 곧 마음으로는 저들과 함께 있기까지 하면서(5a), 다시 말해서 그들의 삶의 형편을 속속들이 이해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영적 유혹과 도전의 현장에 마치 자신도 함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고(4),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캐는 저들을 생각하며(3) 그 규모 있음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인해 기뻐하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5b)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위한 저와 여러분의 헌신입니까?
무엇이 공동체의 지체들을 위한 우리의 수고입니까?
물질은 당장 내가 쓸 것도 부족해 함께 나눌 마음의 여유조차 가질 수 없다면, 과연 무엇이 복음과 교회를 위한 저와 여러분의 소중한 희생일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교회의 지체들을 담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그들이 세상의 유혹에,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 외의 그 어떤 다른 것들에 빠져들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자식이라는 우상, 아내와 남편, 내 가족이라는 우상에 빠져들지 않고, 거짓종교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고, 과학의 편리함에 속지 않고, 성공이 주는 잠시의 달콤함에 분별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름을 불러가며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유일한 비밀이라는 이 사실에 늘 붙들려 살아가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이 사실을 늘 붙들고, 이런 복된 삶을 힘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Applicatio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유일한 비밀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이제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것일까요?
먼저, 잘못된 영적 호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물론 호기심이 주는 많은 긍정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지적 호기심은 우리의 지식을 풍성하게 하고, 사물의 현상이나 작용에 대한 호기심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게 합니다.
또한 과거의 잘못된 논리나 이해를 바로잡아 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전인미답의 세계에 우리 인간을 옮겨 놓는 것도 다 호기심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영적 호기심은 우리의 영원한 삶을 왜곡시킨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달콤한 이단의 사설에 속는 것은 우리가 얻은 영생을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의 진리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 생활을 이어가고, 교회 안에서 제공되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우리의 신앙적 지식을 조금씩 더 키워가다 보면 영적 호기심도 서서히 해소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도와주시도록 기도하며 기다릴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도 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천국에 가서 알아보겠다는 여유와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잘못된 영적 호기심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 마음으로 함께 하는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사도바울이 하는 고백이 무엇입니까?
육신으로는 떠나 있지만 심령으로 다시 말해서 마음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5a).
그래서 심지어 저들이 얼마나 질서 있게 살고 있는지, 얼마나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기쁘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5b).
사도바울의 이 마음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늘 성도들을 위하는 마음,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도록 기대하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견고한 믿음 안에 서가도록 기도하는 이 마음을 저와 여러분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랑하는 지체들의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고, 지체들을 언제나 기쁨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나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우리 지체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주는 그런 저와 여러분이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CONCLUSION:
(Closing Image) 만약 여러분이 흙 바닥에 앉아서 노는 어린 아이 하나를 보게 되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신나게 놀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노는 아이들의 옷은 온통 진흙투성이이고, 때로는 흙을 입으로 가져가 먹기도 하고, 자신의 손과 발, 얼굴에 흙을 문지르기도 합니다.
흙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장난감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우리 자녀들이 진흙바닥에 앉아 놀면서 흙으로 자기 몸을 비비고 있다면, 아니면 그 흙을 입으로 가져가 먹으려 한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그 아들이나 딸이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나이라면 진흙바닥은 더 이상 자신의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진흙바닥에서 놀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곳에서 놀며, 그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매 주일 교회로 와서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복음의 비밀에 대해 배우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흙바닥이 더 이상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Closing Repetitio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자기 안에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이미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거짓 종교와 과학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와 실용주의의 거짓 가르침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더 이상 진흙 속에서 뒹굴지 않아야 합니다.
진흙은 더 이상 우리의 장난감이,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제는 우리가 사랑하는 지체들이 그런 유혹들을 넉넉히 이기도록 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신앙적 분투 속에서 함께 섬기는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 교회가 더욱 건강하게, 아름답게, 소중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복음에 뿌리를 둔 공동체적 가치가 우리를 더욱 온전한 신앙인격체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세워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유일한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 속에서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캐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