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_03:01-03:10_하나님을 향해 걷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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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하나님을 향해 걷는 성도”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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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배경 인물 상황
누가복음 21:5–6 (NKRV)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라고 말씀하신 성전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_주님께서는 이 성전 안을 걸어다니셨습니다. 가르치시고, 토론하시고, 때로는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뛰어내리라고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던 성전꼭대기는 여기입니다.
#_여기는 만남의 광장입니다. 친구끼라 만나든, 사업상 약속을 하든, 다 여기, 만남의 광장에서 모였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보니까 언제나 권리금이 비쌉니다. 상점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여기가면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으로 들어오는 문을 늘 좋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 나오는 백성을 아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87:2 (NKRV)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시온의 문들이란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들입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문마다 다 쓰임새가 달라서 아무나 아무문으로 들락날락할 수는 없었습니다.
#_여기는 제사장만 들어갑니다. 문이 3개로 되어 있어서 트리플게이트라고 부릅니다.
#_여기는 부자들만 들어갑니다. 그 쪽 방향의 동네가 부자동네였기 때문입니다.
#_여기가 오늘 기적이 일어난 미문입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문이 2개이기 때문에 더블게이트라고 부릅니다. 예수님도 가난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이 문으로 다니셨습니다.
#_미문으로 들어가면,
#_이곳으로 나옵니다.
#_그럼 옆에 양이나 염소를 파는, 종교용품전문대형마트가 있습니다. 여기가 예수님께서 때려엎으신 종교상점입니다.
#_오늘 사건이 일어난 미문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똑같은 문이 양쪽 입니다.
#_오른 쪽은 들어가는 문이고, 왼쪽은 나오는 문입니다.
#_그런데 종종 왼쪽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슬픔을 안고, 하나님께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오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이 사람이 왜 이쪽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그래서 서로 스쳐 지나갈때면,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조용히 서로 축원했다고 합니다.
conflict
conflict
_갈등
#_그 문 앞에 사람들이 앵벌이를 시키려고 데려다 놓는 본문의 선천적불구자가 있었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_베드로와 요한이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려는데, 문득 마음에 감동이 되었는지, 멈춰서서 앉은뱅이의 오른 손을 잡아 끌어당겼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_미문 앞에 있는, 만남의 광장에 바글바글 모여있던 사람들이 다 깜짝놀랐습니다.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_평생 미문 앞에만 있었던 앉은뱅이는 난생 처음 걷게 되자 미문 안으로 들어가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_미문 안쪽은 다양한 기술과 장식으로 굉장히 예뻤고, 화려했습니다. 두 발로 직접 걸어서 들어가는 미문은, 그야말로 그 분에게는 말 그대로 아름다운 문이었습니다.
event
event
_사건/심화
#_그런데 뜻 밖에도, 베드로는 이 사건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산헤드린 법정에 끌려들어갑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더이상 말하지 말라고 협박을 받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감옥에 갇히고 마는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킬 정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베드로에게, 왜 감옥에 들어가지 않는 능력은 나타나지 않을까요.
40년동안 한 번도 걷지 못한 사람을 뛰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분명히 있고, 그 능력을 체험도 하는데, 왜 현실은 감옥에 묶여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하나로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는 복된 약속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특권을 누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고백과 감사를 마음 속에 간직한 채, 베드로처럼 묵묵히 지신의 현실에 묶여서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 앉은뱅이는 40대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으니, 그 부모님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40살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지내는 자식을 보며 부모님은 얼마나 가슴아팠겠습니까. 내 아들이 걸을 수만 있다면, 나는 죽어도 좋다고 하나님께 매일같이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_부모님은 미문의 왼쪽으로 들어가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40년 동안 자신의 현실에 묶여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부활의 능력으로 온전해졌습니다. 굉장한 체험이고, 감사고, 능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두 발로 걸으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가 않습니다. 아직 남아 있은 자신의 현실에 묶여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직장에 이력서를 내야합니다. 여인을 만나 연애도 해야합니다. 대출받아서 집도 마련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공부하고, 기도하며, 성전에서 제사도 꼬박꼬박 드려야 합니다.
앉은뱅이에서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이제는 다 해내야 합니다.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거리를 날마다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럼, 그렇다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앉은뱅이로 사는 것이 더 좋겠다고 할 수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grace
grace
_갈등해결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향해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는 현실에 묶여있습니다. 굉장한 체험을 했고, 감사도 하며 살지만 우리 각자의 조건들은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_자신의 현실 조건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본인만의 무대입니다. 그 무대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십시오. 내 무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푸념만 한다면, 소중한 시간만 속절없이 떠내려갈 뿐입니다. 내 무대를 딛고, 그 위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십시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멋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누구의 무대가 더 좋은 무대인가 재보는 것은 쓸모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말 못할 슬픔을 안고 지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란, 아무리 열악한 무대에서 몸부림치는 어떤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인생을 영광의 자리로 이끌어주는 일에 거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가장 무자비했던 십자가 무대라 할지라도, 그 무대에서 부활을 시작하시는 분이 저와 여러분을 이끌어 가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일어난 우리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향해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심정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를 용납해 주신다는 진리를 경험해서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살아나는 보이지 않는 기적의 이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끝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묶여 있는 현실을 씩씩하게 지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드문드문밖에는 나타나지가 않습니다.
베드로에게 천지를 뒤흔드는 능력이 있었지만, 감옥에 묶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었지만, 자신의 십자가에 묶여있으신 것과 같습니다.
저와 여려분에게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있지만, 자신의 형편에 지금 묶여 있습니다. 그 조건 속을 두 발로 걸어내는 것이 하나님을 향해 걷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를 몰라보는 세상 사람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대로 밤낮 비웃을 것입니다.
아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평생 섬긴 사람의 형편이 겨우 그거야?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변변치가 못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이라면서 자기 승질하나 못 다스려. 다른 사람을 위로하겠다는 사람이, 본인이 위로받아야 할 처지에 있으면 어떻게!
이런 비웃음은 주님시대부터 지금까지 항상 있습니다. 바울이 들었고, 주님도 매일같이 들었던 말들입니다.
비웃음을 부끄러워 했던 바울
바울도 그런 형편에 있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런 모습으로 무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나, 내가 이 형편에서 무슨 좋은 소식을 전달하나. 자신의 현실에 대해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눈을 들어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면서, 더 깊은 은혜의 지평으로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로마서에 그 소감을 기록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우리 삶의 모양이 사람들 보기에 그럴듯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전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형편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우리 모두의 고백은 바울과 같아야 합니다.
나의 이 초라한 형편 빼고는, 다 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똑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현실모양에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고개를 들어 주님을 보고 평안을 얻으십시오. 모든 좋은 것이 다 주님에게부터 오는 것입니다.
outro
outro
이 세상에서는,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크게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잃었으, 그 자리에 주님께서 계십니다.
명예를 잃고나면, 비로소 주님이 가신 길이 보입니다.
건강을 잃게 되면, 그때서야 주님의 말씀이 피부로 와서 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축복은 세상의 눈으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랑하려는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그게 무슨 자랑이냐고 어이없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그리스도 함께 세상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각자마다 묶여 있는 자신의 형편과 현실을 씩씩하게 살아내시고, 결코 어떠한 손해도 보지 않고,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남은 시간을 부탁드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ray
pray
우리 같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하나님의 기적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축복으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묶여있는 세상의 형편 속에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잘 드러내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