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6:4-9
들으라, 이스라엘아. 이 단락(4–9절)은 유대인들에게 수세기에 걸쳐 들으라(‘주의깊게 들으라’와 ‘순종하라’는 의미를 함축함)는 첫 히브리어 낱말을 따서 ‘쉐마’로 알려져 왔으며, 신명기 11:13–21과 민수기 15:37–41과 더불어 ‘매일 기도문’(a daily prayer)으로 인용되어 왔다.
〈10–19〉이 절들은 이스라엘에게 6:4–9의 긍정 명령들은 쉽사리 부인되고 실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기능을 한다. 그에 따라 여기는 세 가지 차원의 중요한 경고가 있다.
그리하여 전체 단락의 수사적 효과는 여호와의 유일하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4–9절)과 그들을 구원하시며 보여 주신 그분의 사랑과 은총(20–25절)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두 단락 사이에 10–19절의 부정적 경고가 포함되어 있는 샌드위치 구조(sandwich)인데, 이런 효과는 신명기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다(Wright 1996: 101).
첫째 경고는 10–13절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창조에서 보여 주신 주님의 이전 사랑과 보살핌을 반영한다(창 1:1–2:25).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맹세를 기억하게 하는) 약속된 땅이라는 새 에덴에서 누리게 될 풍부하고 이미 주어진(ready-made) 관점에서 주님을 잊어버릴 위험을 강조한다.
둘째로 ~하지 말라는 명령은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려는 유혹을 언급한다(14절). 이것은 5:6–7의 첫 계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이제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 안에서의 우상 숭배와 연관된다
셋째로 ~하지 말라는 명령은 마실 물이 부족했던 맛사(Massah), 또는 ‘시험’하는 장소의 사건과 연관된다(출 17:1–7; 신 9:22; 33:8). 여기서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우리와 계신가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시험하다는 낱말은 이 절에서 두 번 사용되었는데, 광야에서의 보살피심이라는 동일한 문맥에서 시험을 시작하신 분은 여호와시라고 언급하는 8:2, 16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쓰였다. 그러나 여기 16절에서의 위험은 15절의 여호와의 위협을 의심(또는 시험)하는 것이다(Nelson 2002: 93).
본문 전체에 걸맞은 결론으로 5:1에서 처음 언급된 교육 프로그램(educational programme)이 6:1, 7에서 이어지고 6:20–25에서 절정에 이르며 이제 구체화된다. 이것은 문답 방식(question-and-answer)을 바탕으로 하여 다음 세대를 향한 신조 형식(catechetical)의 교훈으로 실행될 것이다.
신명기 6:20의 질문은 율법 전반을 언급한다(증거와 규례와 법도, 4:45에 처음 언급됨). 이것을 바탕으로 볼 때, 20절에서 24절로 바로 옮겨 가서 답변으로 이어지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우리가 왜 이 율법들을 지켜야 합니까?’에 대한 답변인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자녀의 질문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종살이라는 끔찍했던 사실로 시작하며(21절) 일종의 역사 신조(historical credo)로 답변된다.
바로와 그의 집안을 포함한 애굽을 향해 크고 두려운(라임[rā‘îm]) 기적적 이적과 기사를 보여 주신 것(우리의 목전에서)을 언급한다(22절; 참조. 4:34). 이후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호의를 강조하기 위하여 23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를 그분께서 이끌어 내셨다.’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이처럼 이 첫 부분의 답변은 애굽에서의 종살이, 이적과 기사, 구원, 그리고 마침내는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약속하신 땅의 소유, 언약에 대한 주님의 위대한 신실하심의 성취, 그리고 그것의 강조와 연관된다. 이처럼 자녀들은 24–25절에서 말하는 이 모든 규례와 이 모든 명령에 올바르고 적합하게 응답하도록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참조. 5:29; 6:1).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주의해서 지킬 뿐 아니라, 그분을 경외하면(5:29; 6:13), ‘잘 될’(또는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삶’(life)이 주어질 것이다(24절). 이것은 이스라엘의 의로움이 될 것이다(25절). 이는 ‘의롭게’ 여겨질 것이라는 뜻(수동), 또는 하나님과 의로운 언약 관계의 지속을 의미한다(9:4–6; 24:13을 보라; 참조. 시 24:4–5).
첫째, ‘여호와/우리 하나님/여호와/하나’
둘째, 마지막 낱말 하나(에하드[’eḥād])와 연관된다. 이 낱말을 형용사(‘한 [분]’)로 번역해야 하는가, 아니면 부사(‘홀로’)로 번역해야 하는가
(c)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NIV).
(d)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한 분이신 여호와이시다.
하나’(에하드)에 대한 ‘유일신론적’(monotheistic,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단일하며 다수가 아닌’) 이해를 강하게 시사한다
모벌리와 다른 학자들은 4절에서 여호와께서 한 분이시라는 말은 5절에서 여호와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응답과 따로 떼어서 이해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사랑은 야웨의 유일함을 유일신관(monotheism)이라는 신론에 이르는 지적인 훈련으로서가 아니라 고백 형식으로 확증한다(McDonald 2003: 209).
우리 하나님(4절)과 네 하나님(5절)과 연관된 문제는 13–15절에서 뒷받침되는 대로 요단 강을 건너가서 맞닥뜨리게 될 수많은 이른바 경쟁 신들의 더 넓은 문맥에서, 이스라엘이 그들의 유일하신 하나님(또는 ‘한 분이시고 유일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배타적인 사랑을 보여드릴 필요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5절의 관점에서 4절은 실제로 ‘누가 정말로 우리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신가’는 질문에 대답하려 한다. 그 대답은 ‘우리의 유일하신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는 것이다(Nelson 2002: 90). 그러나 다른 중요한 차원에서 4절과 5절은 (‘누가 정말로 하나님이신가?’하는 질문[참조. 출 5:2; 15:11]에 대한 대답으로) 과거에 주님의 구원 행위(4:32–40; 5:6–7; 6:20–25)를 근거한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관적 고백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한 분이시다(유일하신 하나님); 그분 외에 다른 신은 없다’(4:35, 39; 5:6–7; Harman 2001: 88)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경우, 5절에서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4:37–38에서 이스라엘의 선택과 출애굽이라는 구원의 관점에서 주님의 선행하는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볼 수도 있다
6:4의 대안적 번역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13–15절에서 뒷받침되는 5절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한 분이시고 유일한’ 대상으로 여호와께 표현된 배타적 사랑의 관계뿐 아니라, 4절의 사랑을 (특히 4:35, 39로 둘러싸인 4:37–38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선행적 구원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서 성경의 ‘유일신관’의 전통적 진술이 되도록 이해하게 해 준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그리고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로 옮기는 편이 낫다(Friedman 2001: 586–587). 이 번역은 4절의 첫 부분에서 들으라는 명령의 영향이 히브리어 본문에서 어떻게 이어져서 이제 이 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연결되는지를 보여 준다. 더욱이 ‘너는 사랑해야 한다’는 절은 5–9절에서 명령의 의미에서 그리고로 이어진 일곱 개의 완료형(모두 2인칭 단수) 중 첫 번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요구는 여호와 자신의 유일하심에 대해 4절이 함축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4절의 주석을 보라). 여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해야(아하브[’āhab])한다는 요구는 오경에서 처음 등장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모세의 고별 설교의 한 부분인 그것은 주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때부터 지금까지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베푸신 모든 사랑과 호의(하샤크[ḥāšaq]; 4:37; 7:7–8, 12–13; 10:15; 23:5)에 걸맞은 결론이자 응답을 형성한다.
이제 명령의 형태로 이스라엘이 주님을 사랑하도록 권고 받는다. 비록 이 사랑의 증거로 특정한 태도와 행동이 기대되기는 하지만(13:3–4에 잘 요약되어 있음), 이것은 형식적이거나 법률적인 방식이 아니라 네 마음과(감정과 호의의 영역을 포함한 정신과 의지가 있는 곳) 네 뜻과(삶 자체의 원칙; 참조. 창 2:7b; 내적인 자아와 존재) 네 힘을(단호하고 강력한 참여) 다하여야 한다(참조. 왕하 23:25).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이라는 절은 신명기의 모든 가르침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모세가 지금 전해 주는 말씀을 의미한다는 것을 말해 줄 것이다. 이 가르침은 이스라엘이 주님의 명령을 늘 지키는 능력과 의지를 갖추기 위해서(5:29; 참조. 30:6, 8, 14; 렘 31:33), 네 마음에 새겨야 하며(참조. 11:18), 돌판에 새겨진 채 있어서는 안 된다(5:22).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8절과 9절 모두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각각 기초 본문인 쉐마를 담고 있는 경문(phylacteries, 마 23:5)과 ‘메주조트’(Mezuzot[문설주에 붙여 두는 상자])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신앙과 신앙 고백의 중심으로서 6:4–5의 쉐마는 이스라엘의 언약 신앙에 대한 본질적인 표현을 제공하면서, 특히 첫 두 계명을 확장한다. 따라서 쉐마는 여호와의 유일하심(‘누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가?’[즉 여호와])에 관한 진술로 이해될 수 있음은 물론, ‘오직’이라는 번역에 함축된 이 유일하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차원에서 4절과 5절은 ‘누가 정말 하나님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지난날 주님의 구원 사역(4:32–40; 5:6–7; 6:20–25)에 바탕을 둔 유일신관의 신앙 고백으로 볼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한 분(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 외에 다른 신은 없다’(4:35, 39; 5:6–7)이다.
이 바탕에서 5절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이스라엘의 선택과 출애굽의 구원이라는 관점(4:37–38)에서 주님의 선행적 사랑에 보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6절의 이 명령들(‘말씀들’)은 4–5절을 5장의 ‘열 가지 말씀들’(ten words)을 포함해서 이 시점(오늘)에 주어진 모든 것과의 연결을 뜻할 것이다. 그것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6:20–25의 신조 형식의 교훈과 더불어 틀을 이루며, 이스라엘과 그들 자녀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어야 한다.
여기서 다시금, 구속사(redemptive history)가 이스라엘 율법의 해석자가 된다. 결국, 10–19절은 세 가지 경고, 또는 ‘하지 말라’는 표현과 더불어 이 단락의 중심을 이룬다. 그것은 너희를 애굽, 곧 종살이하던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말라(12절), 다른 신들을 따르지 말라(14–15절), 너희가 맛사에서 했던 것처럼 주님을 시험하지 말라(16절)이다. 이 부정적 반응은 곧장 이스라엘이 6:4–9과 6:20–25의 긍정적 유익을 즐기는 것(positive benefits)을 무력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