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3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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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3:42–52 NKRV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파 하였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가? 복음, 다시말해 좋은 소식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2:10-11
Luke 2:10–11 NKRV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바울은 안디옥의 회당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욱 이야기 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분이 과거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임을 선포하였다. 그러면서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의롭게 된다는 것을 회당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바울의 설교가 끝나자 사람들이 회당에서 나오면서 다음주에도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래서 그 다음주에도 바울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였다. 44절에 보면 다음주가 되자 온 시민이 거의 다 바울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복음을 듣기 위해 그 지역의 거의 모든 사람이 모였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는 총 3편의 설교가 나온다. 2장에 베드로의 설교, 7장에 스데반의 설교 그리고 오늘 본문의 바울의 설교이다. 이 세사람의 설교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그 역사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로 맞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는 3천명이 회개를 하였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는 사람들이 귀를 막고 스데반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바울의 설교를 듣고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설교를 비방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설교자로서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른다. 진리를 전해도 그것을 진리로 못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사역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설교를 하고 나서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개인적으로 중요하였다.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기 정직히 듣기 좋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그러한 반응이 없을 때 이다. 아쉽고 서운한걸 떠나서 내가 잘 못했나? 라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보면 특히 같은 내용의 설교를 베드로와 스데반 바울이 하였지만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 이었다. 그래서 설교후의 사람들의 반응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 영역이 아닌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하여도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은혜가 안되는 것이고 아무리 부족한 설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듣는 사람들이 간절함이 있으면 은혜가 되는 것이다.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니느웨는 3일 동안 걸어야 할 작지 않은 성이었는데 요나는 하루동안만 다니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그 말은 요나는 대충 전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요나의 메시지의 니느웨의 모든 사람들은 회개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입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시면 또 그 메시지를 듣는 사람의 마음 밭이 옳바르다면 누가 어떤 설교를 한다 할지라도 은혜를 받는다.
그렇다고 설교를 대충 준비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에 자유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바울의 메시지를 비방한 사람들의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 45절을 함께 읽겠다.
Acts 13:45 NKRV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의 메시지를 비방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고 그 이유는 그 무리를 보고 시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기서 말하는 유대인이라함은 평범한 유대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의 메시지를 비방하는 유대인은 어떤 사람들이었겠는가? 성경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유추해서 알 수 있다. 그들은 바로 바울과 바나바처럼, 평소에 회당에서 설교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설교를 할 때의 반응과 다른 반응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43절을 보면 설교후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는 온 동네의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말씀을 들으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존에 말씀을 전했던 사람들이 시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비방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하면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내가 성공하지 못한 부분에서 다른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보거나 내가 원하고 갈망한 인정을 다른 사람이 받는 것을 볼 때 모두는 아니겠지만 정직히 함께 기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시기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시기하는 마음을 품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것을 어떻게 품지 않을 수 있는가?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루종일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아는가? 아침에 눈을 뜨고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만약에 우리가 생각한 모든 것을들 마음에 품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생활 할 수 있겠는가? 수 많은 생각들 중에 우리가 선택해서 마음에 품는 다는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성령으로 새롭게 된 사람은 이렇게 살라고 몇가지를 권면한다. 그 중에 하나가 분을 내는 것이다.
Ephesians 4:26 NKRV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말씀을 보면 분을 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분을 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분은 낼 수 있지만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질 때까지 그 분을 품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시기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더더욱 시기의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기의 마음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중단하려 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사역과 삶에 집중 할 필요가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그것을 시기하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는 시기나 질투가 많은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정의 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시기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이미 내게 주어진 것을 볼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다시말해 이미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 할 수 있고 만족 할 수 있어야 한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Philippians 4:11–12 NKRV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 비결이 무엇인가? 그 다음절에 나온다.
Philippians 4:13 NKRV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그 주님은 못할 것이 없으신 능력의 주이시기에 그분이 원하시면 우리에게 능히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족 할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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