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3. 주일3부예배. 살아나고 Ⅱ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Notes
Transcript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7장
17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2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
3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4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6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7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8 또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 스마야와 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도비야와 도바도니야 등 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저희와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었더니
9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서론
서론
예배가 먼저 살아나야 다른 모든 것이 살아난다. 예배가 살아야 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예배가 먼저다. 예배는 심장이고 엔진이다.
지난 주에는 예배가 살아나기 위해 우리 안의 우상을 찍어 내버리고 우상 숭배를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어느새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되버린 것, 하나님보다 더 크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게 된 것을 찍어 내버렸는가?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나님만 섬기며 살아가겠다고 한 결단을 잘 지켜왔는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수많은 설교자들이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부모님들도 주일 성수만큼은 타협하지 않고 꼭 지키도록 엄하게 대하시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이다. 계속해서 이런 말들을 듣다 보면 생각이 든다. 대체 왜 예배해야 하는가?
오늘 이 주제를 다루려던 것이 아니지만, 짧게라도 명확하게 하고 넘어가야겠다. 우리는 왜 예배해야 하고, 왜 예배가 가장 중요한 것인가?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활동의 주된 목적은 언제나 참된 예배자를 찾는 것이다.
영원 전, 세상과 사람이 창조되기 전부터 예배가 있었다. 모든 천군과 천사는 세상과 사람이 있기 전부터 이미 있었는데, 그들은 어떤 활동을 하는 존재였는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성경은 지금 천군과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창조되었을 때부터 그들의 활동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 동산은 사실 최초의 성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아담과 하와는 제사장으로서 성전을 관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맡았다. 그랬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말을 들어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거절하여 타락한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맡았다.
또 구약의 백성들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실 때 그를 통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보라.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레위기 구성 -
신약의 백성들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들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셨다. 십자가에 오르셔서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이루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 아닌가?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계시록에 이르면 역사가 끝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에 무슨 일이 있는가? 요한은 영원한 예배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영원한 예배의 시작 말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에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예배가 우리가 창조되었고 또한 구원받은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성경의 주제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주된 목적이다. 그러므로 예배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우선순위이다. 만물에게 예배가 가장 중요하듯 우리에게도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구원받은 감격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런 감격이 차면 찰 수록 하나님을 열심히 예배하고 싶은 거룩한 열정이 우리 안에서 더욱 솟아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주에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는 구원의 감격을 소유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온전히 그리고 열심히 예배하고 싶은 열정이 있기에 우상을 찍어 내버리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열심은 언제나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예배에는 언제나 주와 종이 있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과 예배를 드리는 자가 있다는 말이다. 참된 예배의 기준은 누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의 뜻에 맞는 예배와 예배를 드리는 자의 기호에 맞춘 예배, 둘 중 어느 예배가 온전한 예배일 것 같은가?
다들 학교에서 숙제와 과제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나도 목사고시를 보았다. 문제를 낸 자의 의도와 뜻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적었어도 합격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의 뜻에 맞지 않으면 우리의 열심히 아무리 크다 한들 하나님께서 그러한 예배를 기뻐하실 수는 없다.
성경에는 그런 예배에 대한 기록이 가득하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우리는 자주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인격적인 분이신 것을 잊는 것 같다. 마치 예배를 수행해야 할 퀘스트 정도로 여기는 것 같은 모습이 너무나도 많이 눈에 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며,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하나님께서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하시는지 생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듯, 예배를 받으시는 분의 뜻과 중심을 알아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여자 떡볶이 좋아함. 여자친구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마다 떡볶이만 외친다면 그 관계가 오래 갈 것 같은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 뿐이다.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또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 스마야와 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도비야와 도바도니야 등 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저희와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유대인들은 성경을 타나크라고 부른다. 그들이 성경을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그 앞글자를 따서 합친 말이 타나크이다. 각기 토라, 느비임, 케투빔이라고 부르는데, 토라는 모세오경, 느비임은 예언서, 타나크는 성문서를 뜻한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여호사밧 왕은 관리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각 지방에 보내서 백성들을 가르쳤다. 그들이 무엇으로 가르쳤냐고 기록되어있는가? 여호와의 율법책이다. 원어로 읽으면 세페르 토라, 토라의 책이 된다. 곧,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모세오경을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대인들이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가르쳤던 부분은 어디일거라 생각하는가? 놀랍게도 레위기이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이 다섯 살이 되면 신앙의 양육을 시작하는데 자녀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책이 레위기이고, 자녀들은 레위기를 달달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암송하며 배운다. 우리가 보기에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레위기를 유대인들은 가장 큰 열심으로 읽고 묵상하고 외우는 것이다.
레위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거룩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레위기에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수십, 수백 가지의 법들이 적혀 있다. 너무 복잡해 보이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가지 키워드로 묶어낼 수 있는데, 아까 말한 거룩이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위기는 끝없이 이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으려면 예배자들 또한 거룩해야 한다. 그렇다면 거룩이란 무엇인가? 설명하기가 어려운 단어가 거룩입니다.
거룩과 반대되는 단어를 생각하면 거룩의 뜻을 알 수 있어요.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거룩의 반대는 속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거룩하거나 속되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을 다른 모든 피조물로부터 구별시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외에 어떤 대상도 스스로 거룩하게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거룩은 사람과 물건과 장소에도 사용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거룩한 무리, 성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있는 강대상과 의자를 성구라고 부릅니다. 또한 우리는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는 성소와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속된 사람과 물건과 장소일지라도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을 때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1–10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임재해 계시는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로부터 이스라엘의 삶은 시작된다.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예배하고(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죄 용서함을 받는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그들은 율법을 범하고 부정함에 접촉되어 거룩함을 상실할 수 있다. 그때에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정결함을 회복시키심으로써 다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죄가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교제를 단절시키지만 하나님께서는 제사제도를 통해서 그 교제의 회복을 허락하고 계신다. 레위기에서는 다섯 가지의 제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모든 제사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앞에서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통하여 거룩함을 회복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제사제도를 통해서 백성들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확인하게 되고 다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제물 그 자체나 그 제물의 죽음(피)이 죄를 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제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면서 나아오는 백성들을 그 제물을 받으시고 용서하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정하게 되었을 때나, 죄를 범했을 때에 하나님의 용서를 믿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막에서의 제사, 즉 예배를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바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삶이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 말씀하신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율법을 기록하기 시작한 11:44, 45부터 거룩함에 대한 명령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