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설교X)

마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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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4:12-25
제목:
요즘 많이 쓰이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전략입니다. 고3수업생에게는 입시전략이 필요하고, 취준생에게는 취업전략이 필요합니다. 심지는 결혼전략도 필요한 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의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인데, 지금부터 인생 성공을 위한 전략을 세우더라구요. 공부는 안하고 전략만 세웁니다. 그런데 그 전략이 바로 스펙쌓기입니다. 생활기록부, 생기부라고 하죠, 거기에 많은 걸 써 넣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게 드라마의 영향도 있는 듯합니다. 스카이캐슬, 팬트하우스, 이런 드라마를 통해 생기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하는 대회란 대회는 다 출전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상장을 두개나 타왔더라구요. 포스터 대회에서 동상을 타오더니, 이틀 뒤에는 프로그램 코딩대회에서 은상을 타왔더라구요. 아내랑 저랑은 대회에 나가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상을 타왔더라구요. 또 사이버폴이라고, 학생경찰 수업을 듣고 수료증을 받아 오더라구요. 심지어 그분께서는 전교 부회장까지 역임을 하셨습니다. 지금 제가 제 아들 자랑하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욕하고 있는 거예요. 초등학교 6학년이 무슨 세상을 안하고, 이런 전략을 세우는지,, 차라리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공부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공부하면 죽는 줄 압니다.
기업도 그렇습니다. 기업 역시 기업의 수익을 창출해 내기 위해서 경영전략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업을 새롭게 시작할지, 기존의 사업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떤 사업은 수익율이 적어 저어야 할지, 전략적으로 대처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략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strategy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장군, 군대, 혹은 용병술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어 나온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이 단어는 전쟁 용어입니다. 그런데 왜 이 전쟁 용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속에 사용되고 있는가 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총성없는 전쟁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략을 세워야만 합니다. 전략이 없이는 절대로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전략을 세워야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의 승패가 정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교회에서도 이 전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어찌보면 기독교에서 이 전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단과의 영적인 영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영적인 전략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기독교 선교사역을 감당할때, 이 선교전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전략적인 선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과거 전세계적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할 시기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한지역에 너무나 많은 선교사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교사 파송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보니, 선교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한 이후, 기독교의 선교사역은 전략적 선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선교를 함에 있어서는 선교센터를 어디에 세우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이 선교센터를 중심으로 선교사역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전략적인 선교, 전략적인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기 앞에 그 사역을 어떻게 준비하시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떠한 전략으로 그분의 사역을 준비하셨는지, 그리고 그분의 사역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번째로는 예수님의 사역 준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갈릴리로 물러나셨다가 나사렛에 잠시 머무르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이동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특이한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향이셨던 나사렛에 머무르신 것이 아니라, 그곳을 떠나 가버나움에 머무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던 이유는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거절하고, 그분을 돌로 치려고 했기에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곳이 어디냐 하면, 바로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께서 그곳에 사셨다라고 기록합니다. 사셨다는 것은 잠시 머물렀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을 예수님의 선교센터로 정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곳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의 지경을 넓혀 나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가버나움인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사렛에서 어려움을 겪으셨다면, 나사렛과 많이 떨어진, 남쪽의 예루살렘을 예수님의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아도 괜찮을 텐데.. 왜 가버나움이었을까요?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4: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4: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바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15절과 16절의 내용은 이사야 9장 1절 2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땅에 메시아가 오시는데, 그분은 스불론과 납달리 땅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선택하신 이유는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준비해 가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취업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면접을 위한 전략도 세워야 합니다. 요즘은 정보 싸움이라고 하죠. 어떻게 전략적으로 공부를 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면접과 취업의 승패가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비전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전략을 세워야만 합니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전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저 멀리 있는 내 인생의 미래에 대한 전략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해 가는 삶이야 말로 내 인생에 최고의 전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략의 나의 전략보다 항상 더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실수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인생을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전략은 바로 말씀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우리의 인생의 목적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가,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호흡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치열한 세상속에서 살아내야만 하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어 오늘을 살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사명이라면, 그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의 최고의 전략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최고의 전략가는 바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이 또 하나 있는데, 15절에 보시면, 스불론과 납달리 땅을 바로 이방의 갈릴리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을 이방의 갈릴리라고 표현했는가,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점령하게 되는데, 이때 앗수르의 전략이 바로 이주정책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을 북이스라엘에 살게 하여 그들의 신앙의 정통성을 파괴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쪽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은 정통 유대인들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찾아가신 곳은 신앙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이방의 갈릴리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세상의 중심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변두리입니까?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관심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의 변두리에 있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세상의 변두리에, 이방의 갈릴리에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척박한 광야에서 들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예루살렘이 아니라, 초라한 이방의 갈릴리에서 주님을 대면하여 만나시는 귀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언합니다.
■ 두번째로는 예수님의 첫번째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의 갈릴리 지역을 예수님의 사역의 전초기지로 삼으시고, 그때부터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첫번째로 선포하신 메시지가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 메시지는 세례요한의 메시지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메시지와 예수님의 메시지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했던 자로서, 그의 메시지는 회개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회개치 않으면, 도끼에 찍혀 버려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메시지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메시지의 초점은 회개가 아니라,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제자 공동체 사이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개인적인 천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하는 영적인 공동체임을 말씀해 주고 잇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 설교때에도 영적인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을 두루 다니시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함께 감당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 띄었던 두 사람이 있었죠. 그 사람은 바로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였던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절입니다.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지금 니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 이런 질문입니다. 지금 너는 돈을 따라가고 있느냐, 성공을 따라가고 있느냐, 세상을 따라가고 있느냐, 그런 그들에게 누구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까? 바로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을 따라올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 목숨걸고, 세상의 말에 복종하지 말고, 세상의 것을 좇아가지 말고, 예수께 목숨걸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을 따라갈 것을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불러주신 이유이자 사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세상속에서 성공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서 인플루언서가 되어라는게 아니예요. 돈을 많이 벌어야 함도 아닙니다. 취업을 하라는 것도 아니예요. 시험에 합격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더 큰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명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자꾸만 놓치게 됩니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보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보다, 지금의 현실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풀리지 않는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한청년으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아요” 시간이 멈춰버렸다는게 무엇입니까?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늘 같은 자리, 늘 같은 모습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길이 열리지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 주님의 비전과 사명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문제 아닙니까?. 현실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내야만 합니까?”
여러분, 20절과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고 있습니까? 20절과 22절입니다.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0절에는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22절에는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들은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죠. 여기서 그물과 배, 그리고 아버지가 의미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현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현실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현실과 담을 쌓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도 버리고, 자식이길 포기하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현실보다 중요한 것을 발견했기에, 그것을 뒤로 한채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아니예요. 그러나 우리의 현실세계보다 더 중요한게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과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인생에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본 사람은 현실을 뒤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따르다 라는 단어는 헬리어로 아콜루데오인데, 이단의 의미는 동행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현실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세계는 잠시 잠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외로운 세상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위대하게 쓰임받는 축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세번째로는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그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23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시며, 그들을 고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3대 사역이라고 합니다. 가르치는 사역, 전파하는 사역, 치유하는 사역, 이 세가지가 바로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인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선교 전략입니다.
이 예수님의 세가지 사역은 독립적인 사역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큰 그림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입니다. 그러나 이 선포만으로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천국복음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치는 사역인데, 그 가르치는 사역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태복음 5장부터 나오는 산상수훈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어떠한 곳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통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23절과 24절에 보시면,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절입니다.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모든’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는 것은, 그분이 단순히 치유의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야 말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온전하게 고치실 수 있는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 세가지 사역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결국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24절입니다.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그의 소문이, 예수님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온지역을 넘어서서 이방 수리아 지역까지 퍼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 신기한 것은 이 예수님의 소문이 남쪽인 예루살렘으로 퍼져가는 것이 아니라, 북쪽 이방 수리아 지역으로 퍼져갔다는 것입니다. 왜 성전이 있는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가는 것이 아니라, 북쪽 이방 수리아 지역으로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갔을까요?
물론, 갈릴리 지역에 이방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화려한 성전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 지도자들로 인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화려한 성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이 북쪽 수리아로 퍼져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3대 사역으로 인해 그분의 소문은 온 갈릴리 지역과 이방 지역까지 퍼져나가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영향력이 어느정도였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요즘은 인플루언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심지어는 인터넷 녹색창의 한 카테고리에 인플루언서라는 항목이 있는 것을 보고.. 아.. 이게 대세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영향력을 펼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짓말과 사기를 치면서까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유튜버 영상의 조회수가, 구독수가, SNS의 조회수와 댓글수가 그 사람의 영향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들 역시 세상속에서 인플루언서가 되어야만 합니다. 영향력이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떠한 영향력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말로 표현자면, 예수님께서 인플루언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분의 능력으로 치유함을 받기 위해서 모여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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