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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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되려 하지 말라
선생이 되려 하지 말라
우리는 모두 실수가 있는데,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이 된다는 것은 더 높은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여러분이 선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하고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되지 말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선택이 아닌 명령입니다.
이렇게 선생이 되는 것을 강력하게 금지하는 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 보이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길 많이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왜 선생이 되는 것을 원했을까요? 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길 원했을까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높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보이기 떄문입니다. 좋습니다. 더 많이 알고 신앙 생활을 더 많이 하고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더욱 잘 알고 있다면 분명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자리와 위치에만 관심이 있고 그 자리에서의 책임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한다면 하나님께 더욱 책망 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직분자들은 더욱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에서의 영향력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게 되면 될 수록 더욱 커지기 때문입니다.
말을 조심하라
말을 조심하라
그런데 우리는 이미 너무 특별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태복음 5장 13-14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과는 다른 존재여야 하고 그러한 모습을 분명히 삶을 통해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를 소금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말고는 짠 맛을 낼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세상은 모두 어둠 뿐이라는 것. 분명하게 세상과 우리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겉으로 그런 척으로는 결코 다른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뼛 속부터 개그맨. 그들은 정말 심할 정도로 웃기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격적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웃길 수만 있다면 그 모멸감을 참아내고 웃기는 것을 선택합니다. 한 개그맨은 자신은 얼굴 못생긴 걸로 웃겨왔는데, 이제와서 외모 비하라는 이름으로 그런 식의 개그를 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하소연합니다. 아니, 내가 괜찮다는데 내가 내 외모를 개그의 소재로 삼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뼛속부터 그리스도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권을 모두 예수님께 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쁜 일에도 예수님처럼 반응하고 슬픈 일에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반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진짜 뼛 속부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나를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음식을 짜게 하려면 소금이 녹아야 합니다. 소금이 녹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계속하여 유지하고 있으면 음식의 맛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금을 음식에 넣고 잘 녹을 수 있도록,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잘 저어주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장 취약한 부분은 말이다.
말은 우리가 가장 넘어지기 쉬운 부분이며 동시에 우리의 생활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3-5절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말은 무엇인가? 말의 재갈, 배의 키, 작은 불
가장 강력한 힘, 가장 빠른 운송수단,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
엄청나게 커다란 배도 배의 아주 작은 부분인 키의 방향에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우리 몸의 각 기관 중에서 혀도 그러합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부피로 생각해 본다면 혀는 전체 몸의 1/500도 되지 않습니다. 무게로 따진다면 더욱 작은 비중이겠지요. 그런데 그 작은 기관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이렇게 위험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말에 대해 조심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죄짓는 말만 하는 것일까?
여전한 우리의 본성 때문입니다. 죄의 흔적들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들어오셨는데, 예수님을 우리의 왕좌에 앉으시라고 초청해 놓고 자꾸 그 자리를 밀쳐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인데
너무 오래 죄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거의 무의식에 가까울 정도의 일입니다. 내가 죄의 모습을 저질러 놓고는 도대체 내가 또 왜그랬을까?라고 한탄할 정도로 이미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새우깡
예수 그리스도의 언어 생활- 무엇인가?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우리의 혀는 축복받은 것. 왜냐하면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