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재난 문자

요한서신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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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삼서 1:1-15
제목: 영적 재난 문자
주제: 신앙의 위기에 디오드레베가 아닌 데메드리오를 보라.
목적: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증거한 데메드리오들을 보며 확신을 잃지 않게 하소서.
서론
요한3서의 배경도 우리가 저번 주에 봤던 요한1서와 같은 배경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거짓된 가르침으로 혼란스러웠고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가 2주 동안 배웠는데, 그게 바로 “사랑”이죠.
오늘 본문은 그 “사랑”을 잘 실천한 사람인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입니다. 요한은 곧 가이오를 만날 예정이었던 것 같아요. 13절 읽어볼까요?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요한은 여기서 편지를 더 길게 쓰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글로 쓰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펜과 잉크와 종이도 많이 필요하니까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차피 가이오라는 사람을 만날 것인데도 불구하고, 요한이 가이오에게 미리 먼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있었어요. 그만큼 긴급하고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긴급하게 알려주셔야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마치 재난문자 경보가 울리듯이, 영적인 재난에 처한 우리에게 급히 알려주셔야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선한 것을 본받으라”입니다. “선을 흉내내라”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길게 읽었지만 명령이 이거 딱 한 가지만 나옵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명령이라는 것이죠.
이 명령이 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명령인지 2가지를 통해서 알아볼 겁니다.
본론
첫 번째로, 요한이 왜 “선한 것을 본받으라”라고 급하게 명령했냐면, 선한 것보다 악한 것이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약에 취한 것처럼, 누가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악한 것을 따라하고 있기 때문이죠. 9-10절 읽어보겠습니다.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회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지도 못했고, 설교자도 부족했기 때문에 설교자들이 나그네처럼 순회하면서 설교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그 설교자를 반갑게 맞이하고 대접해주는 전통이 있었어요. 어렵게 먼 길 오셨으니까 당연했겠죠. 이 설교자들은 예수님의 직속 제자들인 사도들, 또는 그 사도들의 제자들이었어요. 여기에서는 요한과 요한의 제자들을 의미해요.
그런데 당시에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오늘 말씀에 의하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권력을 탐하는 정치꾼이자 선동가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사람이 사도 요한이 보낸 편지를 모두 버려버립니다. 왜냐면 이 사람은 성도들이 사도 요한이 아니라 자신의 가르침에 복종하도록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보낸 설교자들을 대접하는 것도 모두 금지시킵니다. 그 설교자들을 추방시켜버려요. 디오드레베가 그들을 “악한 말로 비방했다”고 나옵니다. 헬라어로는 “쓸데없는 말을 하다”, “험담하다”라는 뜻이에요. 궤변을 늘어놓고 선동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 요한이 이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요한은 디오드레베가 그랬던 것처럼 디오드레베를 비방하거나 험담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실관계만 작성할 뿐 디오드레베를 배척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선한 것을 본받으라”라고 하죠. 지금 자기가 몸소 본을 보여준 겁니다. 선으로 악을 갚으라는 겁니다. 자기처럼 디오드레베를 악하게 비방하지 않은 것처럼, 디오드레베에게 오히려 선을 행하라고 알려주는 거예요.
왜 이렇게 선을 행하라고 강조하는 걸까요? 왜냐면 악한 것은 선한 것보다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디오드레베가 어떤 사람인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했죠. 그러면 뭐가 필요하냐면 지지자가 필요합니다. 지지지와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비방과 선동이 필수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팩트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팩트폭력”이라고 하죠. 선동은 한 마디로 충분하지만 반박하려면 수많은 문서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죠.
그래서 정치권에서 보면 서로를 비방하는 겁니다. 거짓말이라도 밀어붙여야 자신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분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지지자들이 생기면 으뜸이 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남을 쉽게 비방하는 것, 여러분들이 뒷담화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을 고쳐주려고 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겁니다. 나의 지지자들을 만들기 위한 행위가 바로 뒷담화예요. 그러니까 뒷담화는 정치적인 겁니다. 예수님 편을 만드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편을 많이 만드려고 하는 것이니까 “쓸데없는 말”이라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니면 모두 쓸데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나이에는 친구를 비방하는 것에 쉽게 참여합니다. 물론 그 친구가 정말 잘못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를 비방하는 건 옳지 못해요. 왜냐하면 비방하는 것은 사랑이 없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요한1서에서 배웠죠. 사랑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겁니다. 계속 남을 비방하다가 보면 자신의 믿음을 잃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이 뒷담화를 하거나 남을 비방하면, 예수님 자리에 내가 올라가려는 마음, 으뜸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비방을 조금 해도 괜찮은 게 아니에요. 예수님을 부정하는 행동과 맞먹습니다. 제가 욕을 끊으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이 심각성을 알려주고자 요한이 이렇게 강조하는 겁니다.
내가 비방하는 작은 행동이 교회를 분열시키고 여러분의 믿음을 해체시킬 수 있다는 이 경고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명령이 신앙에서 중요한 명령이냐면, 우리는 복음의 증거를 쉽게 잊기 때문입니다. 12절 읽어봅시다.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반면에 디오드레베와 비교가 되는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합니다. 데메드리오입니다. 요한은 악한 것에 대한 본으로 디오드레베를 제시했지만, 선한 것에 대한 본으로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을 언급하고 있죠. 그러니까 데메드리오를 “흉내내라”라는 겁니다.
이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방인인 것은 확실합니다. 가이오와 요한은 이 사람을 이미 알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말씀을 보면 데메드리오는 많은 사람들, 특히 교회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다”는 것은 곧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진리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데메드리오가 진리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겼다고 했을 때, 그 진리의 말씀은 사도 요한을 포함한 예수님의 사도들이 가르친 말씀을 의미합니다. 사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직속 제자들이에요. 그래서 사도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언하는 내용들이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데메드리오가 신실하게 사도들의 증언,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했더니, 이웃을 사랑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교회를 화목하게 하고 있었던 겁니다. 데메드리오는 이러한 모습을 오랜 기간 변함없이 보여줬습니다.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 말이죠. 그랬더니 주변 사람들이 데메드리오를 보고 사도들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도들이 가르쳤던 예수님의 말씀은 서로를 화목하게 하고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었던 겁니다.
디오드레베와 비교해 봅시다. 디오드레베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부정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도 아니에요. 그러한 자의 가르침은 “쓸데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반면에 데메드리오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을 실천했습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던 증인들의 가르침을 실천했더니 교회에 평안과 안녕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례는 많습니다. 사도들의 증언, 그러니까 이 성경 말씀을 신실하게 실천한 역사적 인물들이 적지 않습니다. 많아요. 초대교회 성도들, 교부들, 종교개혁가들, 목숨을 걸고 선교한 선교사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도 많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을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 주변에 말씀을 신실하게 실천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본을 보이는 사람들을 흉내내며 사십니까?
우리 눈에는 교회의 선한 열매들보다 단점들과 실수들만 크게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디오드레베처럼 교회의 실수를 근거로 교회를 비판하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교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열린하늘문교회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의 선배님들이 데메드리오처럼 오랜 기간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고 그 말씀들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증언, 즉 성경의 가르침을 이어받았고 이 가르침을 실천하겠다고 고백하는 게 사도신경입니다. 이 가르침이 한 가지로 요약된다고 했죠? 바로 사랑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사랑이 없었으면 우리가 신앙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가 진리의 복음을 믿을 수 있게 된 이유는 우리에게 데메드리오와 같은 신앙의 모범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깝게는 여러분의 부모님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사랑이 없었으면 여러분에게 굳이 신앙을 물려주셨겠습니까? 믿음의 삶이 힘들기만 하고 기쁨도 없고 사회에 해악만 끼친다면 굳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줄 이유가 없는 겁니다.
복음에는 사실 단점이란 게 있을 수가 없어요. 학원 좀 빠지고 주일날 아침에 일어나야 하고 이런 것이 단점처럼 느껴지나요? 그러면 여러분은 디오드레베에게 속은 겁니다. 원래 복음은 데메드리오입니다.
물론 교회에 문제가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조금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2천 년, 구약부터는 6천 년의 역사 동안 교회가 지켜질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정말 보고싶으면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고, 실천하고 있고,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교회가 여전히 보호되고 있음을 보셔야 합니다. 디오드레베가 아니라 데메드리오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부모님의 신앙에도 사랑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신앙을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교회가 혼란스러웠을 때 사도 요한이 가장 먼저 전한 메시지가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두 가지: 첫 번째, 선한 것보다 악한 것이 전염성이 더 강해서, 두 번째, 참된 가르침을 쉽게 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어요. 첫 번째 이유는는 디오드레베로 상징되고요, 두 번째는 데메드리오로 상징이 됩니다. 교회가 디오드레베로 혼란스러울 때마다 데마드리오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실천했고 교회를 지켰습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혼란스러움이 많을 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그리고 교회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디오드레베가 아닌 데메드리오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데메드리오를 흉내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실천한 수많은 데메드리오들이 2천년, 구약부터 본다면 6천년 동안 교회를 지켰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어떤가요? 대부분의 종교들은 그들의 민족성을 상징합니다. 유대교는 팔레스타인, 힌두교는 인도, 이슬람은 중동, 불교는 아시아이죠. 하지만 복음의 원리는 “나그네”를 영접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항상 이방으로 향합니다. 민족적으로, 영적으로 척박한 땅에서 많은 데메드리오들이 교회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고 사랑을 실천하며 교회를 지켰습니다. 이런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밖에 설명을 못합니다.
수련회에 고민하는 친구들, 꼭 참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데메드리오들의 증언들을 듣기 때문이에요. 거기에서 우리는 서로 교제하며 화목한 것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에 참석해야 하는 겁니다.
또한 여러분이 믿음이 연약해 질 때마다, 여러분을 위해 중보하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실천하시는 목사님들과 부모님과 선생님들, 동역자들을 꼭 기억하세. 이분들이 복음의 증거, 데메드리오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어떤 데메드리오를 본받을지 정하셔서 그 사람을 흉내내며 사세요.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을 지키고 교회를 지킵니다.
데메드리오를 항상 기억하며 본받으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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