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수인가?
삼대지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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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views기드온 300용사를 하나님이 남긴이유는 무엇인가? 왜 많은 백성이 아니었는가?
Notes
Transcript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서론
-예화
-문제제기
▣ 예수님만 보고 걸으면
어떤 마을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폐쇄된 철교를 건너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철교를 건너다가 어지럼증으로 강물에 빠지는 사건도 발생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통통하고 배가 볼록 튀어나온 아이는 끄떡없이 철교를 잘 건너다녔습니다.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다른 아이들은 철교를 건너다가 밑을 내려다보면 어지러움증이 생겨 밑으로 빠지는데 배가 볼록한 이 아이는 밑을 내려다볼 수 없기 때문에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파도를 보면 파도 속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으면 파도 위를 걸을 수 있게 됩니다. 날 삼키려고 찾아오는 악한 사탄도 밟고 넘어갈 수 있고 시련의 파도도 밟고 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본문 연구
-본문설명
-본문의 진리
-본문에 나타난 교리
오늘말씀은 기드온의 300용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기드온의 용사가 300명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기드온의 용사는 32000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22000명이 돌아가고 10000명이 남았습니다. 10000명은 다시 300명이 되었습니다.
32000명에 비하면 300명이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적은 사람입니다. 적군에 비하면 그것은 전쟁에 이길수 없을지도 모르는 숫자입니다. 왜 하나님은 구지 이렇게 까지 하셨을까요?
쉽게 할수 있는 싸움을 구지 어렵게 하셨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4대 1의 싸움은 순식같에 450대 1이 되었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길수 없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소수를 택하여 자신의 구원과 축복을 맛보게 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오늘 본문에서만 이와 같은 일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노아의 홍수를 보면 노아와 그의 가족은 심판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소수였습니다. 또 출애굽한 성인들가운데 약속의 땅을 밟았던 자들을 생각해보면 여호수아와 갈렙뿐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이들 역시 소수입니다. 이렇듯 믿음의 눈 소망의 눈을 가진자들은 늘 소수였다는 것입니다. 그이유가 무엇이겠냐는 것입니다.
왜 300명 소수를 남기셨는지, 그이유를 깨닫게 되는 시간 되길 축원합니다.
첫째 스스로 무너질까 하여입니다.
스스로 무너진다는 말은 무슨말입니까? 내가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무너지는 일들이 바로 나로 인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면 두가지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자,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비교합니다. 비교하면서 스스로 무너집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탐할때 그들은 자신과 그들을 비교하였습니다. 자신을 보고 메뚜기와 같다라고 표현하며 그들은 장대하고 큰 체구를 지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망없는 모습은 전이가 되게 되어 서로를 해롭게 하였습니다. 그결과 많은 이들이 정말 메뚜기와 같이 오래살지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미디안 백성과 그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약함을 보고 그들의 강함을 보고 위축되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럴것이 미디안 백성들은 강한 군사력을 지녔었습니다. 7년동안 한번도 지지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처들어왔다는 것은 그들의 강한 군사력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또한 강한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의 많은 군량들을 빼앗게 되었습니다. 파종때마다 처들어와서는 갖가지것들을 토색하여 가져갔습니다. 군사력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싸움이 안되었습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은 또 어떻습니까? 조그마한 일이 생겨도, 어려운일이 닥치기만 하여도 죽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믿음없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나 자신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사람에게 전염시키는 위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한사람이 죽겠다고 하니, 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듣고 괜히 그러게, 죽겠네라고 하는것입니다. 또 그보다 상황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사람도 그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니 나도 죽겠네 하더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그러한 얘기를 듣기전 괜찮았던 사람이었는데 아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해지고 또 전해지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도 그러한 얘기가 나오게 되더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없는 말은 나를 스스로 무너지게 합니다. 믿음있는 말을 해야합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은 또 교만합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것을 의지하면서 교만합니다. 32000명의 전우가 있으니 그래도 4대1이지만 승리할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조금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싸움이야라고 하는것입니다. 7년동안 졌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눈물 콧물 다흘렸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그러한 실수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면서도 그러한 분들이 계십니다. 세상것 의지하다가 실패했는데도, 나에게는 그래도 뭐가 남았어! 그래도 나에겐 남들보다 나은 머리가 있어, 그리고 물질이 있어, 외모가 있어 하면서 위로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무너지는 교만한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들을 무리로부터 이탈시켜 돌려보냅니다. 그들의 함께함이 도리어 이스라엘의 멸망의 지름길이요, 죽음이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합니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을 비교하지 아니하고, 믿음있는 말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때 무너지지 않습니다.
둘째 두려워떨기 때문에입니다.
오늘본문에서 나타나는 3절의 두려워하는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레~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시편에서 경외하는 또 전도서에서 무서워하는 그리고 다른곳에서는 각각 떨다 놀라다 무서워하다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소수가 남게 되었던 이유는 바로 두려워함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의 진지를 목격하고 심히 놀라게됩니다. 그것도 그럴것이 13만5천명이나 되는 숫자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얼마나 그 수가 많겠습니까?
제가 알기론 1동탄의 인구가 대략 13만5천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동탄의 아파트가 1층으로 해서 그것이 펼쳐져 있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숫자가 되겠냐는 것입니다. 고대근동의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만은 인구가 전세계에 있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당시의 13만이 넘는 숫자는 한 국가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당시의 군대는 정탐하는자들을 의식하여 자신들의 위용을 뽐내고 과시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또 상대방의 전위를 상실하게 하기위한 계책으로도 그리하였습니다.
그들이 잘못 본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이 있었습니다.
보아야 할것을 보지 못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한것입니다.
그들은 미디안의 군사력을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세상것을 가치있게 바라보았습니다. 그결과 그들은 전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이탈되게 된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위축되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가 될까? 내가 할수 있을까? 그 사람은 그렇게나 지식이 많고, 가진게 많고, 못할게 없어보이는데 내가 상대가 되겠어?
보아야 할것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두려워하지 않게됩니다. 나의 연약함을 바라보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과함께하는 군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 뒤에 숨겨진 그 수많은 놀라운 축복을 바라봅니다. 승리할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기드온도 우리와 다를게 없는 사람입니다. 연약했습니다.
큰 용사여!! 내가요? 큰 용사여! 아 그러니까 제가요?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할때 어떻게 합니까? 징표를 보여주시면.... 아 하나론 부족합니다. 하나더 보여주시면,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나더 보여주시면......
오늘 7장에서 그것이 내면적으로 나타나지만, 기드온도 마음에 근심이 있었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하나님은 넘겨줬다 말씀하십니다. 그것에 대한 반응은 기쁨이 아니죠? 곧바로 두려워하거든이라 나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자 두려워하지 않게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알고계십니다. 기드온이 약함도 아셨습니다. 그를 들어쓰셨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왜 소수만 있게되었습니까? 두려워하였기때문에, 보아야 할것을 보지 못하기때문입니다. 보아야 할것을 보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실패하면서도 이유를 모르게됩니다.
두려워 떨지 말고 보아야 할것을 볼수있길 축원합니다.
셋째 남은자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어떨까요? 제한이 없습니다. 흔히 우리의 욕구는 한계가 없습니다. 가지면 더가지고 싶고, 더 소유하고 싶고,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채워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시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축복도 무궁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누리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다? 남은 자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고자 모였지만, 그중에서 승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축복을 누린자는 300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론 우리를 구원의 확신을 위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우리를 버리시기 위함이 아니라, 더욱 강하게 하고 또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승리를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300명이 아닌 다른 숫자가 남았다 한들 그들이 전쟁에서 실패하였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 적은 숫자가 남았어도 결코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어떤분들에게는 In & out을 하자 합니다. 하이파이브를 가자고 합니다. 누리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남은 자들은 축복을 누리기때문에 우리의 한계없는 욕구가 그분이면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남은자들은 무리의 범주에 파묻혀 교회에 나가는 자들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제자로서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삶을 꾸려나가는 자입니다.
오늘날은 어떠할까요? 오늘날도 이와같이 알곡을 쭉정이에서 가려내기 위해서 믿음있는 소수를 통해서 구속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면서 소수의 반열에 들어야합니다. 이유가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우리의 축복을 막게해서는 안됩니다.
기드온의 300용사들은 말도안되는 전쟁을 통해 승리를 누렸습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로 전쟁을 어떻게 이깁니까? 그런데 이깁니다. 나팔불고 항아리 깨고 횃불을 드니 미디안백성들은 서로 싸웁니다. 도망갑니다. 그 많던 적군이 300명에 의해 지게 되는 일이 내 앞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말도 안되는 축복이 나타나게 된것입니다. 경험하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누리는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진리를 취하면 유익한점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거나 교만하거나 하나님의 일에 두려워 떠는 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안에 거하는 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소수를 사용하시는 이유인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방법
-버려야할 것
-현실에서 해야할 것 2~3가지
우리는 이와 같이 선택받은 소수에 포함되는 영예를 누려야 합니다.
결론
-전체요약
-중요한 간증과 권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함당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님 영광을 위해 쓰임받을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