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30 주일 5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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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0 주일 5부 예배
흑암을넘어하나님의대안으로 (역하34:1-7)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시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 가득 넘치길 축원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요시야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듯이
남유다의 16대 왕으로 8살에 왕이 되어 31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왕이었습니다. .
특별히 통일왕국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나뉘게 되는데 그 과정속에서 39명의 왕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들을 평가하는 기준을 통치기간이나 정치적인 업적이나 경제적인 업적이 아님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의 평가기준은 단순명료했습니다.
바로 다윗의 길로 걸었느냐 그렇지 아니하였느냐 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신정국가로서 왕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가 되어
세상과 동일한 왕정국가 시스템이 아닌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 신정국가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왕들은 시편 23편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만을 자신의 목자로 삼아 부족함이 없는 삶
여호와 한분만으로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리통치자 왕들은 세상의 풍요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광야를 더 행복으로 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모델로 막중한 사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선왕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었고 기도의 사람으로 흑암이었던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안을 제시함으로 절망이 아닌 소망을 노래했던 자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39명의 왕들 가운데 요시야의 삶은 왕정통치를 넘어 신정통치를 잘 실천한 왕이었음을 알게됩니다.
현재도 수영로의 많은 성도들이 제 3국으로 선교여행을 떠났는데 입국할때 대한민국에 대한 감사와 감동을 많이 느끼는 것같습니다. 대한민국은 그 어느 선진국과 비교가 안되는 풍요롭게 극도로 발전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풍요속의 빈곤처럼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된 것같습니다.
내 나라 대한민국은 우리의 기대와 소망과 달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펼펴진 인본주의와 세속주의가 가득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아니 정의와 공의는 사라지고 자신들의 편의와 욕망만 잘 해결된다면 그만이라는 죄악이 넘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자살지수와 불만족지수는 높아진 마약과 우울증약으로 하루 하루를 전전긍긍하는 불쌍한 인생들이 많아진 나라가 된것입니다.
더 나아가 꿈과 소망이 사라지니 탈 한국을 꿈꾸며 이민을 목표로 조국을 떠나는 많은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시대 이런 나라에 우리를 살게 하셨을까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이시간 요시야의 삶을 통해 흑암같은 현실에 하나님의 대안으로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는 귀한 은혜의 시간되기 원합니다.
요시야가 남유다의 16대 왕이 된 상황을 보면 시대적으로 결코 녹녹치 않은 시대였습니다. 암흑이었고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왜냐하면 외부적으로는 이방 열국들의 위협이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왕권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요시야는 그의 아버지 아몬이 백성들의 반역으로 인해 죽게되고 급작스럽게 8살에 왕이 됩니다.
[대하33:23-25]
23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24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25 백성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라
아몬이 반역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여호와 앞에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고 세상과 연결되어 세상이 광명인냥 진짜 광명이 아닌 흑암을 소망하였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구절만 보면 므낫세가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므낫세는 결코 겸손한 왕이 아니였습니다. 그는 남유다를 55년동안 다스렸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세우고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여호와의 전 안팎의 뜰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심하게 우상을 섬기므로 바벨론에 의해 쇠사슬로 결박되어 끌려갔다가 하나님께 크게 겸손하여 기도함으로 다시 왕의 자리에 올라온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몬은 그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겸손하지 않고 아버지보다 더욱 범죄하였음을 기록합니다.
어린나이에 왕이된 요시야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 의해 폐위되고 세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하였기에 아마도 두렵고 떨렸을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 혼동스러웠을 것이고 많은 눈치를 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를 이용하여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패역한 인물들이 접근하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요시야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조를 보면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 의해 세워지기도 하고 폐위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하지만 남유다의 왕조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의 혈통을 따라 변하지 않고 지속됨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한 영원한 왕권을 허락하셨기에 남유다의 왕조는 사람에 의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세워가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삶 역시 우리의 임의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의해 계획된 삶입니다. 그것을 순간 순간 마다 깨닫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풍요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패역한 삶만 보고 따랐던 요시야 그는 당연히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을 따라갈수 밖에 없을 텐데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이 아닌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히스기야의 길로 행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 결과 57년의 이스라엘 역사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그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2절입니다.
[대하34: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본문의 1절과 2절은 요시야왕의 결론부에 해당됩니다.
그는 첫째,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을 행하며
둘째,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셋째,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삶을 살았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세상과 결탁하지 않고 끝까지 흔들림 없이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요시야가 영적으로 부패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울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의 삶이 여호와 앞에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엎드리는 코람데오의 삶 - 여호와앞에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몬은 여호와 앞에 겸손하지 않음으로 폐위가 되었고 그의 할아버지 므낫세는 겸손함으로 위기를 탈출하였고 요시야는 역대34장 27절틀 통해 여호와 앞에 겸손하여 살았음을 기록합니다.
겸손함이란 삶의 기준을 내가 아닌 하나님께 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낮추고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왕으로 모심으로 항복하고 복종하고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의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께만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삶입니다.
우리 삶의 행동의 기준은 누구입니까?
세상이 되면 세상의 기준에 따라 정의와 공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준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나의 삶의 기준을 하나님께 맞추어 살아가겠다고 헌신다짐한 사람입니다.
중생했다는 것은 세상에 죽고 하나님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행동반경의 기준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었음을 말합니다.
다윗의 길은 어느 길입니까?
다윗의 길이란 다윗의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나침판삼아 살아가는 방식으로써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 세상의 풍요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소망했던 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그의 중심이 말씀에 근간을 이루었음을 말합니다.
우리 왕하23:25절입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얼마나 멋진 왕입니까?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던 순종의 왕 겸손의 왕이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계명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이시간 하나님만 뜨겁게 사랑하는 시간되기 원합니다.
아니 내 평생 하나님만 사랑하며 하나님과만 동행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슬픈 말입니다.
남유다의 멸망원인이 무엇입니까?
예레미야를 묵상하다보면 알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남유다 땅에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그러하였기 때문에 요시야 사후 이스라엘은 멸망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하나님의 사람 요시야의 행보는 이스라엘의 멸망의 시간을 유보하였습니다.
성도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유보하는 자 왜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고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를 경험케 하셔서 돌이키기 위해서입니다.
[대하34:3-5]
3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4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5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성경은 그가 8세부터 16세가 되기까지의 8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말하고 있지않지만 통상적으로 유다의 왕들은 13세가 되기까지는 작은 왕으로 여겨져 섭정을 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기록합니다.
하지만 그는 영적인 부분까지 섭정당하지 않고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찾았음을 알게됩니다.
특별히 역대하34장을 읽다보면 찾다 혹은 묻다 라는 말이3절, 21절 26절 세번 등장하는데 원어적 표현으로 동일하며 요시야의 삶을 모습을 통해 그가 누구를 찾고 누구에게 물었는지 우리는 알게 됩니다.
성도는 모든 순간 순간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묻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위기 순간 우리가 제일 먼저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그의 첫시작을 하나님을 찾으므로 하나님께 물으므로 그의 첫 단계를 시작하였고 하나님을 자신의 최우선 순위로 삼는 사람임을 드러냈습니다.
찾는다는 것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습관을 말하며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사하시고 고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역하7:14)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요시야의 삶은 하나님을 찾는데서 부터 오는 개혁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을 때 이스라엘의 모든 부패함이 사라짐을, 정결케 됨을 보게 됩니다.
요시야는 위기상황!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왕으로써 자질을 준비할 때 그들의 역사를 보았을 것이고
여호와를 찾는 왕과 그렇지 않은 왕들의 결과를 알았을 것입니다.
다윗과 아사 여호사밧과 히스기야를 통해 그는 여호와를 찾을 때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지키신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겸손하면 사는 것이고 교만하면 죽는 것입니다.
[잠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아멘
우리가 왜 구속의 역사 성경의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합니까? 이 안에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였기 때문에 다른 왕들에 비해 요시야의 이야기는 광범위하게 다루어지면서 성경을 읽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듭니다.
상황이 그를 사라잡고 있다 할찌라도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으로 인해 그는 옳음과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의 통치 12년해인 그의 나이 20세가 되었을때 그의 아버지의 짧은 통치 기간에 세워졌던 모든 우상 숭배 기념물을 제거합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흔드리는 풍전등화와 같은 이스라엘의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돌이킬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던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어 스스로 겸손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거부하고 있있던 이스라엘을 위해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다가 드디어 요시야라는 약속의 사람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 열왕기상13장 2절입니다.
[왕상13: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분열된 북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함이 벧엘에 단을 세우고 서서 분향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람이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분향하는 제사장들을 심판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시야는 약 300년전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약속된 약속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원하셨지만 그들은 스스로 돌이키지 못하고 점점 멀어져 감으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정의 능력을 상실한 이들에게 300년이라는 시간동안 참으셨던 하나님께서 이 모든 우상을 철저히 부서뜨릴 한 사람 요시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는 사력을 다해 아버지가 세웠던 많은 우상들을 철저히 파괴하고 정화하는 작업들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300년전에 약속하셨던 대로 악한 제사장들이 심판받게 됨을 보게됩니다.
우리 5절-7절입니다.
5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6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7 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요시야는 약속의 사람이었고 개혁의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말만 던지던 자가 아닌 직접 행동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행동은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는 삶이었습니다.
부정을 정결케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오직 말씀에서 이루어집니다.
특별히 그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는 말처럼 그는 이스라엘 왕으로써 율법을 배우면서 정결케 하실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하나님은 정결한 삶을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결케 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상황만 정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적인 정결을 말합니다.
즉 마음의 가죽을 베는 시간으로 죄를 고백하고 죄와는 작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만 물으며 정결한 삶을 살뿐만 아니라
정결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가는 삶입니다. 즉 말씀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창세전 하나님은 우리를 이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왜 보내셨을까요?
이 시대의 어려움에 대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세상이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오직 겸손함으로 여호와만을 찾으며 여호와께 묻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나라는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안이며 최종병기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무너져가는 이 땅이 새로워지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누구의 다스림을 받아야 할까요?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우상의 다스림을 받으며 즐거움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진짜 다스림을 받아야 할 분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임을 알게 합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의 싸움을 벌이는 이 시대를 살아갑니다.
우리의 통치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팍팍한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삼으신 이유는 ?
왕같은 족속으로 내 삶의 방식이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꿈이 우리의 비전이 하나님의 꿈이 되기 원합니다.
내 욕망으로 내 삶을 채우는 세속적 그리스도인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으로 흑암의 시대에 하나님의 대안이 되길 소망합니다.
흑암같은 이 세상에서 나의 환경에서 하나님의 대안이 되길 귀한 한주되기 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
오늘 이시간 흑암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광명을 소망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그리함으로 말씀으로 이 시대에 문제를 해결하고 말씀으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되게 하셔서
썩어져가는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사명과 비전과 꿈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