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16)

에배소서 8-1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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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과 품성에 대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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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배소서 8 성품을 가꾸는 인생이 되라
최근에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많이 불려지고 있는 찬양 가운데, 민호기 목사님이 지은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곡입니다. 원래 이 찬양은, 자녀 교육용으로 지은 곡이라고 합니다. 내 자녀가 정말 이런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원래 가정 예배용으로 지어진 곡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들도 이 찬양을 부르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주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세상의 것 의지할 수 없으니
감사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기쁨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바울이 우리 성도들에게 부탁하는 그런 부탁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본문의 시작을 보니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엡4:1a 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두 가지를 보면 좋게습니다. 첫째는 주안에서 갇힌 내가,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로마의 감옥에서 바울이 에배소 성도들을 향해서 원했던 것이 무엇일까요? 이걸 메시지 성경, here's what I want you to do.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바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최근에 배운 찬양 가운데, 그 제목이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참 귀한 찬양인데요, 어쩌면 정말 바울이 이 로마의 감옥에서도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 일이 무엇일까요? 아니 지금 우리가 이 여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정말 원하고 바라고 기도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기 원합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도 원하고 바라는 기도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1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바울이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 것이 무엇일까요? 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자 말씀에 어떻게 기록하고 있ㅅ브니까?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먼저 본문에 보면, 이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강조가 반복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4절도 부르심이 나오고 있습니다. 엡 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저는 성도의 삶이 무엇인가? 꼭 하나로 정의하라면 부름받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학교를 들어갔을 때, 자주 부른 찬송가가 부름받아 나선 이몸이라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 찬송가가 이렇게 바뀌어 질때가 있었습니다.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그런데 부름받아 나선 이몸, 골라 골라 가오리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해야할 정말 중요한 성도의 삶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무엇으로, 어디에 불러주셨을까요? 성경에는 부르심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제가 이번 주, 부르심 이렇게 해서 좀 찾아보았습니다. 부르심이라는 단어를 치니까, 대략, 32군데에서 부르심에 대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다시 공통적인 것을 종합해서 보니까, 성경에서는 주로 5가지 중요한 부르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 성도로의 부르심, 둘째, 자유로의 부르심, 셋째, 한 몸으로의 부르심, 넷째, 선한 싸움으로의 부르심, 여섯째 거룩한 소명으로의 부르심. 저는 각자 하나 하나가 의미다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서로서, 제자로서의 부르심, 죄에 대한 속박에서, 자유로의 부르심, 무엇보다 주님의 몸된 교회안에서 한 몸으로서의 부르심, 그리고 선한 싸움을 위한 부르심, 마지막으로 서룩한 소명으로의 부르심, 저는 여러분들이 이 주님의 부르심을 잘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을 쉬운 성경이 잘 번역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엡 4:1 주님을 섬기다가 감옥에 갇힌 나, 바울이 여러분께 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의 백성으로 부르셨으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자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의 백성으로 부르셨으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사역하면서, 최근 개척을 한 저의 삶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2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되는 것과 다워짐”이라는 단어입니다. 무엇 무엇이 되는 것과 --다워짐, 이게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것이 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것 다워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남편이 되는 것은 쉽습니다. 남편이 되는 것은 결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믿음직한 남편다워지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쉽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된 부모가 되어서 아버지 다워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되는 것은 쉽다. 목사가 되기 위해 일정한 시간을 지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 다워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안수를 받은 지 벌써 십몇년이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목사다워졌는가는 늘 질문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번 선교때 참 기뻤던 순간이 있습니다.-- (신장로님) 언제인가하면, 둘째날 아침, 전주에서 저희는 한 국밥집에 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집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방금 사장님이 혼자 무엇을 자꾸 이야길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우리가 뭐 잘못했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여기 이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보통 단체로 이렇게 많이 오면, 늦게 국밥이 나오면 엄청 불평하며 이야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팀은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물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왔냐고> 그래서 교회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어디서 왔다고, 신동탄지구촌교회에서 왔다고 이야기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길 듣는 순간, 참 마음이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가 선교라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정말 중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는지?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답게 집사님 답게, 안수집사님답게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성품을 배워가는 인생이 되라
여러분, 우리가 정말 성도다운 성도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이 무엇일까요? 저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에배소서에 말씀하고 있는 바로 이 4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엡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자 무엇입니까? 겸손, 온유, 오래참음, 사랑.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실까요? 예수님은 겸손하시고, 마음이 온유하신 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실까요? 그 예수님은 오늘도 오래 참으시고, 사랑가운데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품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정말 힘쓰고 애써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성품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성품의 사람이 되었는가? 내가 어떤 인격의 사람이 되었는가?
저는 과거 대학부를 사역하면서, 성공하는 7가지 습관같은 자기 개발서 강의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이런 자기 개발서도 정말 중요하지만, 이런 자기 개발 못지 않은게 바로 성품에 대한 개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세계 1차 대전을 기준점으로, 미국을 기준으로해서 세계적인 자기 계발훈련들은 주로 두 가지 흐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성격윤리와 하나는 성품윤리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국 건국초기부터 약 150년간 미국을 주도한 것은 성품윤리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의 본질적인 성품을 바꾸어야 외면이 바뀐다는 것이죠, 그리고 반대로 1차 대전 이후, 그 흐름이 바뀌어져, 이제는 주로 성격윤리, 자기 캐릭터, 자기 개발서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안은 잘바꾸지 않고, 자기 캐릭터를 바꾸고, 밖을 치장하는 모습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시대가 너무 성공지향적인 성격윤리에 많이 치중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내면과 별 상관없이, 보여지는 캐릭터, 보여지는 능력, 보여지는 성격만을 강조하다 보니, 정말 중요한 성품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서점에 가도, 자기 개발서는 넘쳐납니다. 하지만 정말 내면을 키우고 성품을 키워가는 그런 책들은 생각보다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 단순히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말을 하고, 자기 캐릭터를 바꾸면 우리의 미래, 우리의 삶이 바뀌어질 수 있을까요? 저는 능력(성격)보다 중요한 것이 성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제가 읽었던 책 가운데 성품에 대한 귀한 추천서가 있습니다. 앤디 스탠리가 쓴 성품은 말보다 크게 말한다. 당신은 성품이야말로 당신의 참 모습이다. 당신이 평생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지는 성품의 영향을 입는다. 당신이 남들이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도 성품으로 결정된다. 당신의 모든 인간 관계는 성품 때문에 잘 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노력과 행운으로 얻은 재산을 당신이 얼마나 오래 지킬 수 있을지도 성품을 보아 가늠할 수 있다. 성품은 실패와 성공과 부당한 대우와 고통에 대한 당신의 반응을 결정짓는 내면의 각본이다. 성품은 당신의 모든 면과 맞닿아 있다. 성품이 미치는 범위는 당신의 재능, 교육, 배경, 인맥보다 넓다. 그런 것들로 문이 열릴 수는 있으나, 일단 그 문에 들어선 후 어떻게 될지는 성품으로 결정된다. 외모와 재산으로 결혼은 성사될지는 모르나, 결혼을 유지시키는 것은 성품이다. 하나님께 받은 생식 기관으로 자녀는 낳을지 모르나 자녀와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능력은 성품으로 결정된다. 여러분, 그러면 성품이 뭘까요? 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성품이란 일신상에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하나님 기준의 옳은 길을 가려는 의지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좋은 실력, 능력, 좋은 성격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성품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좋은 배경, 교육, 인맥, 재능을 통해서 여러분의 성공이라는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있지만,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성품으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좋은 자기 개발서도 훈련을 시키지만, 좋은 성품을 가진 자녀로, 예수님의 성품을 가진 자녀로 양육하고 키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교회 다음 세대를 생각할 때, 뛰어난 재능, 뛰어난 실력도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저는 우리교회 다음 세대 아이들이 성품이 좋은 아이들로 자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배려할 수 있는 마음, 감사하고 정직할 수 있는 마음, 무엇보다 책임감이 뛰어나고 창의성이 있는 좋은 리더들로 세워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먼저 져와 여러분이 좋은 성품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겸손, 온유, 오래참음, 사랑으로 서로 용납할 수 있는 좋은 성품의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삼위일체의 소명을 이루며 살아가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안에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게 바로 하나님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엡4:3-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자 말씀에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잘 보시면 앞으로 하나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마치 가족이 태어나면 이미 하나인 것처럼 영적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숙제는 그 하나됨을 잘 지켜가는 것입닙니다. 성경에 잘 보면 이게 쉽지 않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어떻게 지키라, 힘써 지키라...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우리 가운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니 성삼위로 계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신 정말 중요한 삼위일체의 소명이 무엇일까요?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이 요17장에 보면 마지막 기도를 하십니다. 거기에서 주님께서는 대제사장이 되어서, 우리를 위해서, 정말 꼭 필요한 것을 기도합니다. 뭘까요?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제가 이 구절을 읽고 정말 크게 영적으로 눈을 뜬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힘쓰고 계신 사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됨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동시에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들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거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이 영적인 하나됨을 지켜가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지난 시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씀으로 설교를 했었습니다. 세 가지를 강조한 것을 기억합니다. 첫째, 몸이 성장해야 내가 성장할 수 있다. 몸에 붙어 있어야 주님께 붙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몸이 가야 주님이 가실 수 있다. 여러분,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됨이 아닐까요? 몸이 성장해야 내가 성장할 수 이는데, 영적으로 하나되지 못한 몸, 여기에 무슨 성장이 있을 수 있을까요? 몸이 가야 하는데, 영적으로 전혀 하나되지 못하는 몸, 여기에 무슨 성장을 찾을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 지금 우리들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영적인 하나됨인 줄로 믿습니다. 부부가 하나되고, 목장이 하나되고 교회가 하나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던 중에, 한국교회 역사 가운데 있었던 귀한 간증하나를 듣게 되었습니다. 전북 김제에 가면 금산교회라고 있습니다. ㄱ자 모형을 가진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는 초창기에 특별한 간증이 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조덕삼이라는 분과, 이자익이라는 분입니다. 조덕삼은 선교사님의 메시지를 듣고 은혜를 받고 자신의 사랑채를 내어주면서 가정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곧이어 아내, 머슴 이자익, 같은 동네 사람들과 예배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이자익과 동시에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었습니다. 결국 1908년에는 조덕삼은 돈과 땅을 내놓아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교세가 커지자 장로를 선출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레 교회안에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이 천거됐습니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투표였다. 조덕삼은 교회 건립의 중추역할을 했고, 양반이고, 대지주였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이자익보다 열두 살이나 많았다. 그런데 반면에 이자익은 먼 경상도 출신의 미천한 마부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고 보니, 누가 되었을까요? 이자익이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선거 당일 순간 교회가 술렁였습니다. 어떻게 될 것인가? 교회가 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실제 당시 서울에서는 백정과 갖바치가 장로로 선출되자 양반들이 별도 교회를 설립해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때 조덕삼이 일어나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이자익 장로님을 받들어 더욱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성도들의 마음에 참 감동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박수가 터졌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조덕삼은 ‘머슴 장로님’을 지극하게 섬겼고 그의 설교를 들을 때에도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는 2년 뒤 장로가 되자 이자익을 평양신학교로 보내며 학비와 생활비 일체를 지원했다. 이자익이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금산교회 목사로 청빙해 깍듯이 모셨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에도 이런 아름다운 간증들이 많이 많이 나타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대지주였던 이자익이 머슴 조덕삼을 섬길 수 있었던 이유,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의 영광이니 하나됨을 지켜가는 헌신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도 이런 하나됨을 이루어가는 노력들이 아닐까요? 출신 배경, 생김새는 다 다르지만, 목장안에서 교회안에서 하나됨을 이루어 가려는 노력,
여러분, 오늘 한국교회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하나됨이 아닐까요? 아니 정말 이 시기 우리 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이 이런 하나됨의 마음들이 아닐까요? 목장원과 목자가 하나되고, 목자와 목자들 사이에 하나가 되고, 무엇보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하나되어, 섬기어 나아가는 것, 제가 얼마전에 참 감동이 되었던 순간이 있습니다. 교회 사무총회를 하는데, 웃으면서 박수치면서 사무총회를 마친 일입니다. 그날 주제가 건축이었습니다. 사실 건축 이야기하면서 어려울 수 있고, 힘들 수 있는데,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여주시고 박수 치면서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게 저희들에게 참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교회에 더 맣이 필요한 일이 바로 이런 하나됨이 아닐까 그래서 일찍이 성 어거스틴을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관용을, 모든 것을 사랑으로....저는 우리 교회가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를 하지만 비본질적인 것은 관용으로 품을 수 있는 교회, 무엇보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할 수 있는 복된 교회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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