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쨋날 설교; 금쪽같은 너와 나(주제: 금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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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금쪽같은 내 새끼
서론. 금쪽같은 내 새끼
1. 물질적인 가치관 속에서 우리를 아무런 조건없이 귀하다 여기심
1. 물질적인 가치관 속에서 우리를 아무런 조건없이 귀하다 여기심
이 세상은 ‘돈이 되는가, 된다면 얼마나 되는가’로 한 존재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돈이 된다면 귀중한 물건이고, 그렇지 않다면 별 볼일 없는 물건입니다. 예를 들어서 다이아몬드는 희소성이 있습니다. 또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가격을 가조기 있죠.그러나 다이아몬드에 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휴대폰은 가치가 낮습니다. 물론 우리가 휴대폰이 없으면 못사는 사람들이지만 기계 자체가 갖는 가치는 낮습니다.
이 녀석이 처음에 출시되는 금액은 꽤 비쌉니다. 백만원이 넘죠. 제가 올해 바꾼 이 폰도 원하는 기종에서 저렴한 걸로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면 계속해서 금액이 떨어집니다. 계속 더 좋은 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가진 폰은 점점더 더 낡아집니다. 베터리 성능도 떨어지고, 휴대폰 곳곳에 기스도 납니다. 무엇보다 질리죠. 한년쓰고나면 다른 폰 쓰고 싶어집니다. 친구들이 더 좋은 폰을 갖고 자랑하면 휴대폰 바꾸고싶어서 폰을 막 바닥에 떨어뜨리고, 던지고, 막 사용합니다. 처음에 샀을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바꾸더라도 금방 애정이 식습니다. 나에게서의 가치도 떨어질 뿐더러 기계 자체의 가치도 떨어집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사람도 그 가치가 점점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물론 나이가 들어도 점점 더 자라고 있고 가치가 더 올라가지요. 하지만 나이가 더 들고 30만 넘어가도 점점 가치가 떨어집니다.
제가 결혼 전에 ‘결혼해듀오’에 들어가서 제 결혼 점수를 검사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평균 점수는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평균은 무슨 평균도 안되는 점수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직 취업도 하지 않은 상황이라 돈도 없었고, 내세울만한 자격증도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들을 찾습니다. 대학교, 직업, 외모, 집, 차 이것들을 소유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합니다. 남들과의 비교해서 더 많이 가진 것으로 통해 스스로의 가치가 더 높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외모를 가지고, 많은 돈을 벌어 좋은 집에 들어가 좋은 차를 산다해도 우리보다 더 가진 자들, 더 나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이런 현실속에 살면서 나보다 못난 사람들을 보며 ‘내가 재보다는 낫지’ 하며 안심하지만, 그런 안심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계속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싶어서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들인가요? 우리는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말할 만한 자랑거리가 있나요? 있는 사람이 얼마 없을 거에요.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가치가 높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그닥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잠깐 관심을 받을 때가 있다한들 그 관심은 금방 식습니다. 성적을 어떻게 하다보니 잘 받거나, 옷태가 잘 받을 때 그때 잠깐 관심이 오지 그렇게 우리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주 비관하죠. 난 왜이래, 왜 이 모양 이 꼴이야, 우리 집은 왜이래, 우리 부모님은 왜이래, 비교 속에서 낙담하고 좌절합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기쁠 일이 크게 없습니다. 좌절할 내용들뿐이에요.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택한 족속, 거룩한 나라 왕 같은 제사장,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란 분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시고, 왕과 같이 존귀하게 하시고, 제사장과 같이 특별한 역할을 맡기시고, 그의 소유로 삼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럴 수 있나요?
그 이유는 베드로 전서 1장 3-4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뒤 부활하셔서, 그 승리의 능력을 우리,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능력, 죽음에서 부활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고, 그 능력으로 우리 또한 죄에서 건짐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다시 태어남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이 땅에서 어려움을 겪고 인생의 마지막에 죽음을 경험하겠지만 예수님과 같이 생명을 얻고 부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마지막 날 우리에게 주어진 산 소망, 살아있는 소망 living hope, 언제든지 이뤄질 수 있는 소망이다. 우리 옆사람에게 축복하며 말해봅시다. ‘너에게 산소망이 있어’
맞습니다.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습니다. 죄에서 살아난 것처럼 우리는 죄의 결과인 죽음에서 살아날 것입니다. 4절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썩지 않고 더렵혀 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을 유업, 하나님께 약속 받은 유산, 재산’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구원은 우리가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부터 계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하나님은 이 땅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시기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시고 준비하셨다고 말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천지를 창조하시는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 구원할 능력이 없으시지 않습니다. 계획하신즉 이루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은 구원하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계획을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놀라우신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 그 어느 것보다도 귀중한 존재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짓는 것보다 먼저 우리의 구원을 정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우리를 향해 ‘너희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좋구나, 완벽하구나’라고 말씀하셨지요.
하나님께서 너무나 완벽하게 너무나 귀하게 창조되었지만 사람은 그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벽이 생겼습니다. 죄가 생긴 사람은 거룩하시고 죄가 없으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어졌습니다. 자신의 보호자와 함께 할 수 없는 연약한 상태, 죽음의 상태에 놓여진 것입니다.
마치 갓난 아이가 사파리 사자 우리 한 가운데 놓여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를 지켜주는 보호자가 없는, 그의 생명을 결코 지킬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놓인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멀어졌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하시고자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계획하신 그 구원을 이루시고 그래서 다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바이블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없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아무런 자격없는 그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셔서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그의 손자 야곱에게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아들들을 통해 나라를 세우고 왕을 세워서 온 땅을 다스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야곱의 자손인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니가 내 말씀을 따라 잘 지킨다면 네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통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은 주변 이집트나 앗시리아가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gbs 시간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솔로몬의 잘못된 행동으로 이스라엘은 점차 패망의 길을 걷다가 무너지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 바벨론이라는 강대국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약속이 무너진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정하신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루십니다. 앞서 말했죠. 계획하신 즉 이루시는 전능하시고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망해가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그들을 세계 열방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33:6-9). 즉 과거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일을 다윗 가문의 후손을 통해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렘33:15-16).
구약의 이 놀라운 약속은 결국 500여년이 지난 뒤 베들레헴이라는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출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같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죄의 값을 당신의 목숨 값으로 해결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있어서 사랑하신 게 아니라 우리를 아무런 조건없이 당신의 아들로서, 딸로서 사랑하십니다. 과거 아담과 노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구원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이뤄졌습니다. 모두 우리를 위한 일입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열심으로 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입니다. 내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김태윤이라서, 남예준이라서, 남예찬이라서, 정희철이라서, 송은서라서, 박주은이라서, 박유수라서, 임예안, 김현경, 안신영, 김학윤, 강재우라서 은지성이라서, 이강호라서, 최민영이라서, 김주안이라서 그 자체로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당신께서 선택하신 귀한 백성이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거룩하게 구별하신 나라라고, 왕과 같이 존귀하고 제사장과 같이 구별된 특별한 존재라고, 당신께서 소유하신 백성이자 자녀라고 불러주십니다. 금이나 은보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금보다 더 귀한 존재입니다. 세상 어느 것보다도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평가와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우리를 보십니다. 세상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특별하게 봅니다. 그래야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돈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자격증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하고, 남들보다 잘 생기고 예뻐야 하고, 남들보다 학업 성적이나 학벌이 우수해야 귀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존재 자체를 세상 어느 것보다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물과 같이 귀한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벧전 1:19).
2.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그분의 은혜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그분의 은혜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의 방향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이제 우리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남들과 평생 자신을 비교하며 좌절하고 욕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아무런 기준 없이 ‘살아지니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귀한 이유는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과 같습니다.
원래 사람과 하나님이 에덴이라는 곳에서 함께 살았던 것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뒤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함을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토록 귀한 분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감히 아무렇게나 살수없을 것입니다. 이토록 소중하신 분이 우리 안에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따라 이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와 같이 죄를 따라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같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가야합니다(벧전1:13-16).
택한 족속인 이스라엘과 왕과 같은 제사장과, 그의 소유된 자녀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뜻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맡기신 약속을 따라 이 땅에 복을 전달하는 자들로, 이 땅을 복되게 하는 나라로 살아갑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들에게 맡기신 일을 수행합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냥 구원받고 거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시상식 때 상을 받아서 잘 되면 해야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삶의 뜻을 하나님께로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안에 계신 하나님과 같이 살아가는 삶, 같이 사는데 뜻이 맞지 않으면 결코 함께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뜻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을 믿기 이전과 달라야 할 점은 우리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적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찬양할 때만 예수님을 믿고 학교나 학원, 친구들과 있을 때는 예수님이랑은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교회를 정말 다닌다고만 말할 수 있지,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한 부분에서만 예수님을 믿고, 다른 부분에서는 예수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닌 나 중심적인 삶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하나님을 우리 삶의 기준, 전제로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산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국적을 두고, 대한민국의 법을 따릅니다. 그의 삶의 모든 전제가 법을 기반으로 둡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국가가 정한 법을 따라 의무적으로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20살이 넘으면 우리 남학생들은 군대에 갑니다. 직업을 가지면 세금을 냅니다. 이렇듯 우리는 직접 피부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나라가 세운 법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제사장, 그의 소유가 된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습니다. 한 예로 제가 미혼이라고 가정합시다. 제가 너무 외로워서 연애를 하고 싶습니다. 주변의 다른 친구들도 외로워서, 또는 아무 이유없이 남들 다 하니까 연애를 합니다. 그래도 아무랑 연애할 수 없으니 자기 눈에 예쁜 사람과 연애를 합니다. 연애의 목적은 나 중심적입니다.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나 아니면 그냥 하고 싶어서 합니다. 그래서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합니다. 외로워서 만났다면 안 할 이유가 없죠. 그럴려고 만났으니까요. 뭐 그게 아니라해도 꺼릴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좋으니까요. 그러다 마음이 식으면 어떻게 되나요? 우리 생각할 시간을 갖자. 왜 이딴 소리를 하는거지? 그냥 헤어지면 되지. 굳이 이런 말을 해서 상대방한테 혹시나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그 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진 않을까 괜히 기대나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럴 일없죠. 그래서 헤어지고 난뒤에 코노가서 무슨 노래 부릅니까? 정준일 안아줘, 백지영 이제다시 사랑안해, 이제 박재정이 유명하죠. 헤어지자말해요. 근데 슬픈것도 얼마 안갑니다. 세상 다 무너질것처럼 노래부르더니 일주일 뒤에 다시 보면 썸타고 있습니다. 이렇습니다. 기준이 없으니 그냥 막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이라면 연애를 할 때 어떻게 할까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기에 아무리 하나님 중심적으로 산다고 해도 외롭습니다. 그래서 연애를 하고픈 마음이 생깁니다. 저 또한 주형 전도사님을 만날 때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거제도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고양시 땅으로 덩그러니 올라오고 나니 너무나 외로웠어요. 근데 사무실에 딱 들어가니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요? 이건 못 참지.
하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됩니다. 연애를 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연애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에 대해 알아보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녀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남녀 관계에 대해 창세기 1-2장에 기록해두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연애에 기준이 되겠지요. 하나님은 남자를 지으셨고, 그가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셔서 서로를 돕는 베필로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남녀의 관계는 그저 외로움을 달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돕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성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여친-남친 관계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지향합니다. 하나님은 남녀가 만나서 부부라고 일컫습니다. 그저 쉽게 사랑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을 소망하길 원하세요.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외로움 만으로 이성교제를 해야할까요, 또는 아무런생각없이 그저 좋으니까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관계에서 진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의 이성교제가 결혼을 향할 수 있도록 서로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서 단순히 남녀 그 둘만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는 부부 관계를 통해서 그 가정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과 사랑을 드러내는 곳이 되기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성교제를 단순히 주변의 다른 친구들처럼 외로움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지켜나가고 싶다. 이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가정이 되고싶다는 목표로 이성교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이성친구를 사겨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지만 우리는 그런 감정에만 휩쓸려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이미 시작했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따라 신중한 이성교제를 해야합니다. 가정을 연습해야 하는 것이지요. 서로를 더욱 소중히 여기며 서로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지킬수있도록 해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중심적인 삶입니다.
연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 진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남들이 다 하니까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지를 고민하며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시든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자체가 소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첫 사람 아담에게 동산을 맡기신 뒤 그 곳을 경작하게 하셨다. 경작하다는 말은 예배하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곳에서 예배하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하듯 하길 원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듯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길 원하신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정신과 장인 정신은 모두 기독교적 사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예배 하는 마음으로, 코람데오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심을 믿으며 솔리데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을 예배하기 위해, 그런 마음과 자세로 우리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코 대충할 수가 없다.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이 되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가 결코 아무렇게나 살아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직업을 갖게 되든 우리를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께 하듯 최선을 다하라!
고등학교 시절 갓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확신이 생긴 후 정말 치열하게 살아갔다. 공부하다가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책상에 앉아서 쪽잠을 자고 난 뒤 등교를 하곤했다. 치열하게 살아가던 중 내가 가입했던 학교 기독교동아리 모임의 담당 선생님은 나에게 한 책을 선물해주셨어요. 그청년 바보의사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안수현씨라는 의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생을 치열하게 살다가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고 난 뒤 그분들의 지인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그의 일기와 기록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문구는 이렇다.
‘내게 오늘 진료를 받으러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으로 여길 수 있을까?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오신 예수님, 노인의 모습을 하고 오신 예수님, 청년의 모습을 하고 오신 예수님, 나는 매순간 나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다’
마태복음 25장에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을 묵상한 뒤 그가 나눈 내용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을 대하듯이 대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순간이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순간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감히 함부러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예배하는 마음, 예배하는 자세는 결코 무른 자세가 아니다. 분명하고 열정적인 자세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 이것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 왕 같은 제사장, 그의 소유된 자녀의 삶이다!
3. 우리는 금은 보다 귀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3. 우리는 금은 보다 귀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세상은 우리를 결코 귀하게 보지 않는다. 설령 우리가 남들보기에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될 지라도 세상은 우리를 인정하기는 커녕 우리를 깎아 내리려고 안달이 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하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귀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 사실이 여러분에게 도전이 되고 위로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전능하신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런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 나라에 살아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기도문의 고백처럼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넓혀나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의 모든 행동과 방향, 비전이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두고 살자. 나의 공부, 나의 목표, 나의 꿈, 나의 희망사항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로 부르시지 않았다. 백성, 나라, 족석이라는 단어는 한 집단을 가리킨다. 나만 귀한 존재, 나만 선택받은 사람, 나만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받은 사람들, 구원받고 거룩해진 공동체, 하나님의 소유된 교회이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임과 동시에, 함께 구원받은 공동체인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배를 중심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구원받은 자들의 삶이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간다면 자연스럽게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예배 중심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 예배를 지키고자 일주일의 삶을 허투로 보낼 수 없다. 출애굽기에서 안식일에 대해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너희가 엿새동안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안식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라’ 주일에 과연 아무것도 안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물론 급한 일정이 생긴다면 예배 후에 일을 봐야합니다. 시험전날인데 공부를 안할 수가 없잖아요? 열심히 해야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히 예배와 교회에 집중하기 위해서 나머지 육일을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죠. 예배와 교회의 일에 집중하는 것. 예배 중심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 이런 삶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갈 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구원에 감사하며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자. 이와 더불어 거룩한 공동체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배 중심적으로, 교회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자. 우리의 정체성은 세상의 흐름을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며, 교회 중심이다.
결론: 금쪽이의 삶
결론: 금쪽이의 삶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 우리를 창세전에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놀랍게 구원하셨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기 원한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자. 이런 은혜를 받은 우리의 삶은 결코 아무렇게나 살수없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 하나님 중심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자. 모든 삶의 자리에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자. 그렇게 할 때 이 땅에서 택한 족속, 거룩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제사장, 그의 소유가 된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나타내며 이 땅에 복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각자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런 삶을 나타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금쪽이로 불러주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늘 힘을 다해 감사의 삶을 살아내자.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실 주님!
기도
기도
1. 내가 중심되었던 삶을 회개합시다.
-세상의 비교 속에서 좌절하며, 욕하며 삶을 비관했던 우리를 회개합시다.
-비관주의에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깔려있습니다.
'왜 나는 안되'는 말에는 나도 할 수 있지 않나? 왜 나는 못하지, 내가 인생을 잘 살아가야지, 내가 해야지 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내 힘으로 나 중심적으로 살았던 과거를 회개합시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날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모른척하고 살았습니다.
회개하오니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삶의 주님으로 모시며 살게 해주십시오. 이시간 함꼐 회개와 간구의 기도를 드립시다.
2. 우리의 삶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 나의 삶의 방향이 그저 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모시지 않았3던 삶의 부분들에서 하나님의 주님으로 모시며 살기 원합니다.
연애, 학업, 진로, 가정 등 하나님을 배제하고 외면하고 살았던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살아가기 워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3. 우리는 하나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개인적이지 않습니다. 족속, 나라, 백성은 복수의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 공동체를 사랑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위대한 뜻을 세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인생 어느 부분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안닿는 곳은없습니다. 우리를 이 하림교회로 불러주신 뜻이있습니다. 이곳의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우리를 함께 부르신 하나님을 믿으며 서로를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 원한다고 함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삶이 하나님 중심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뎌마
-우리의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위대한 뜻을 세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인생 어느 부분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안닿는 곳은없습니다. 우리를 이 하림교회로 불러주신 뜻이있습니다. 이곳의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우리를 함께 부르신 하나님을 믿으며 서로를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 원한다고 함께 기도합니다뎜
하나님, 우리 삶이 하나님 중심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다하나님, 우리 삶이 하나님 중심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며 살았던,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살았던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을 더욱 믿으며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며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중심의 삶을 학교와 학원 가정에서 살게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한 공동체로 부르셨음을 믿기 원합니다. 우리 공동체를 더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의 교회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게 깨달아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