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17)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4 viewsNotes
Transcript
에배소서 8 좋은 성품을 가꾸는 인생이 되라
최근에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많이 불려지고 있는 찬양 가운데, 민호기 목사님이 지은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곡입니다. 원래 이 찬양은, 가정 예배용으로, 자녀 교육용으로 지은 곡이라고 합니다. 내 자녀가 정말 이런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많이 대중화 될 줄 모르고, 내 자녀의 인생을 향한 바람을 적은 곡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주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세상의 것 의지할 수 없으니
감사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기쁨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바울이 우리 성도들에게, 또 하나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는 내용을 기록한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1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엡4:1a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두 가지를 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주안에서 갇힌 내가,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로마의 감옥에서 바울이 에배소 성도들을 향해서 원했던 것이 무엇일까요? msg, here's what I want you to do.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바울이 에베서 성도들에게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최근에 배운 이 찬양 한 주간의 저의 삶속에 또 하나 예배하는 찬양이 되었습니다.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자 그렇다면 바울이 이 로마의 감옥에서도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 일이 무엇일까요? 아니 지금 우리가 이 여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정말 원하고 바라고 기도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1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바울이 에배소 성도들에게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 것이 무엇일까요? 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여러분, 성도의 삶이 무엇인가?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성도의 삶이란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삶이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무엇으로, 어디에 불러주셨을까요? 성경에는 부르심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제가 이번 주, 부르심 이렇게 해서 좀 찾아보았습니다. 부르심이라는 단어를 치니까, 대략, 32군데에서 부르심과 관련된 직접적인 구절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다시 공통적인 것을 모아 종합해서 보니까, 성경에서는 주로 5가지 중요한 부르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1) 성도(제자)로의 부르심, 2) 자유로의 부르심, 3) 한 몸으로의 부르심,
4) 선한 싸움으로의 부르심, 5) 거룩한 소명으로의 부르심.
저는 각자 하나 하나가 의미다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무엇으로 부르셨는가? 성도로 불러주셨고, 제자로서 불러 주심, 그리고, 죄에 대한 속박에서, 자유로의 부르심, 무엇보다 주님의 몸된 교회안에서 한 몸으로서의 부르심, 그리고 선한 싸움을 위한 부르심, 마지막으로 거룩한 소명으로의 부르심, 저는 여러분들이 이 주님의 부르심을 잘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거기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을 쉬운성경이 잘 번역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엡 4:1 주님을 섬기다가 감옥에 갇힌 나, 바울이 여러분께 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의 백성으로 부르셨으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자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의 백성으로 부르셨으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저의 삶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2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되는 것과 다워짐”이라는 단어입니다. 무엇 무엇이 되는 것과 --다워짐, 이게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것이 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것 다워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남편이 되는 것은 쉽습니다. 남편이 되는 것은 결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믿음직한 남편다워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쉽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된 부모가 되어서 아버지 다워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되는 것은 쉽다. 목사가 되기 위해 일정한 시간을 지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다워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안수를 받은 지 벌써 20년이 되어가지만, 정말 내가 목사다워졌는가는 늘 질문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한번은 선교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교회 집사님이 구릉지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벼가 한창 자랄 시기에 어느날 자기 논에 나가 보니까, 자기 이웃 사랑이 자기 논에 물을 빼어서 자기 논에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되나? 그래서 본래대로 물을 다시 복구해 놓았는데, 물을 도둑맞는 일은 며칠을 두고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교회 목사님과 상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집사님, 집사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사님이 올바른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위대한 일을 하시는 집사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그날 밤 주님의 음성을 들은 그는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자기 논에 가서 자진해서 자기 논의 물을 이웃의 논으로 흘러가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자, 성령의 기쁨이 그의 마음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 더 이상 이웃은 그 집사님의 논의 물을 빼가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몇 날이 못되어 이웃이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스스로 내 논에 물을 대주었습니까? 나의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당신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자신의 간증을 들려주었고, 그 분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습들이 이런 모습들이 아닐까요? 올바른 일을 하기 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더 위대한 일을 해나가는 삶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니 정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정말 어떤 사람다워지는 삶이 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는 정말 성도다운 성도가 되고 있는가? 집사다운 집사가 되고 있는가? 새로운 한 주간, 하나님의 부르심앞에 응답하며 각자의 주어진 삶에서, 성도답게, 예수님의 제자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복된 한 주간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성품을 학습하라
여러분, 우리가 정말 성도다운 성도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이 무엇일까요? 저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에배소서에 말씀하고 있는 바로 이 4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엡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자 무엇입니까? 겸손, 온유, 오래참음, 사랑.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실까요? 예수님은 겸손하시고, 마음이 온유하신 분입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예수님을 체포하러 오자, 제자하나가 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베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귀를 낫게 하시며 하신 말씀, 이것까지 참으라라고 말씀하신 인내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분의 사역을 따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많이 힘써야 하는 것은, 두잉,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비잉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성품의 사람이 되었는가? 내가 어떤 인격의 사람이 되었는가?
세계 1차 대전을 기준점으로, 미국을 기준으로해서 세계적인 자기 계발훈련들은 주로 두 가지 흐름을 가졌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성격윤리와 하나는 성품윤리입니다. 두 개의 차이가 참 어렵지만, 성격- 개인의 특징, 성향, 행동방식을 나타내는 특성,
성품(인격): 개인의 도덕적 가치, 윤리적 원칙, 행동의 올바름, 사람 됨됨이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국 건국초기부터 약 150년간 미국을 주도한 것은 성품윤리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의 본질적인 성품을 바꾸어야 외면이 바뀐다는 것이죠, 그러나 반대로 1차 대전 이후, 그 흐름이 바뀌어져, 이제는 주로 성격윤리, 자기 성향, 행동 양식을 바꾸면 내가 바뀐다라는 것으로 전향이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기 개발서입니다. 저는 둘 다 일리가 있고, 어느 것이 꼭 옳다라고만 말할 수 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소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바로 성격보다, 성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여지는 행동약식도 참 중요하지만, 보여지지 않는 내면의 가치, 사람의 됨됨이, 이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mbti 가 무엇인가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성품(인격)의 사람인가, 이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제가 읽었던 책 가운데 성품에 대한 귀한 추천서가 있습니다. 앤디 스탠리가 쓴 성품은 말보다 크게 말한다. 당신은 성품이야말로 당신의 참 모습이다. 당신이 평생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지는 성품의 영향을 입는다. 당신의 모든 인간 관계는 성품 때문에 잘 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노력과 행운으로 얻은 재산을 당신이 얼마나 오래 지킬 수 있을지도 성품을 보아 가늠할 수 있다.
성품은 당신의 모든 면과 맞닿아 있다. 성품이 미치는 범위는 당신의 재능, 교육, 배경, 인맥보다 넓다. 그런 것들로 문이 열릴 수는 있으나, 일단 그 문에 들어선 후 어떻게 될지는 성품으로 결정된다. 외모와 재산으로 결혼은 성사될지는 모르나, 결혼을 유지시키는 것은 성품이다. 하나님께 받은 생식 기관으로 자녀는 낳을지 모르나 자녀와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능력은 성품으로 결정된다.
저는 특히 이 부분, 재능, 교육, 배경, 인맥으로 문을 열수 있지만, 일단 그 문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는 성품으로 결정된다. 저는 우리 신동탄의 성도님들이 정말 좋은 성격도 중요하겠지만, 좋은 성품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질적으로 좋은 성격을 가지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그안에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 무엇보다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이런 좋은 성품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 사람 또 만나고 싶다. 저 사람 참 같이 있고 싶다. 제가 이번 주 한 모임에 갔는데,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인생이 이런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누군가 같이 있고 싶어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하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예수님을 닮은 좋은 성품의 사람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삼위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며 살아가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안에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게 바로 하나님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엡4:3-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자 말씀에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잘 보시면 앞으로 하나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마치 가족이 태어나면 이미 하나인 것처럼 영적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숙제는 그 하나됨을 잘 지켜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잘 보면 이게 쉽지 않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어떻게 지키라, 힘써 지키라...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우리 가운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니 성삼위로 계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신 정말 중요한 삼위일체의 소명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요17장에 보면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가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이 하셨던 기도입니다. 그 예수님이 정말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뭘까요?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제가 이 구절을 읽고 정말 크게 영적으로 눈을 뜬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러분,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힘쓰고 계신 사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됨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동시에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들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거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이 영적인 하나됨을 지켜가는 것이 아닐까요? 반대로 마귀가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교회와 가정에 공격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틈을 내려는 것입니다. 나누고 분리하고 당을 짓게 하는 일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우리 가정이 이 영적인 싸움에서 이번 주간도 싸워 승리하길 축복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됨을 힘써 지켜나가는 가정과 교회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무리, 반주, 전북 김제에 가면 금산교회라는 아주 유명한 교회 하나가 있습니다. ㄱ자 모형을 가진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는 초창기에 특별한 간증이 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조덕삼이라는 분과, 이자익이라는 분입니다. 조덕삼은 선교사님의 메시지를 듣고 은혜를 받고 자신의 사랑채를 내어주면서 가정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곧이어 아내, 머슴 이자익, 같은 동네 사람들과 예배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세가 커지자 장로를 선출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레 교회안에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이 천거됐습니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투표였다. 조덕삼은 교회 건립의 중추역할을 했고, 양반이고, 대지주였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이자익보다 열두살이나 많았다. 반면에 이자익은 먼 경상도 출신의 미천한 마부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고 보니, 누가 되었을까요? 이자익이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선거 당일 순간 교회가 술렁였습니다. 어떻게 될 것인가? 교회가 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실제 당시 서울에서는 백정과 갖바치가 장로로 선출되자 양반들이 별도 교회를 설립해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때 조덕삼이 일어나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이자익 장로님을 받들어 더욱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성도들의 마음에 참 감동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박수가 터졌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조덕삼은 2년 뒤 장로가 되자 이자익을 평양신학교로 보내며 학비와 생활비 일체를 지원했다. 이자익이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해서 평생을 깍듯이 모셨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전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조덕삼 장로의 예수님 닮은 성품, 그리고 또하나, 하나되려는 마음, 아니 하나됨을 지켜가려는 마음, 왜 그러가 이상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 보다 훨씬 큰 주님의 교회의 하나됨이 아니었을까요?
여러분, 지금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도 이런 하나됨을 이루어가는 노력들이 아닐까요? 출신 배경, 생김새는 다 다르지만, 가정안에서, 목장안에서, 교회안에서 하나됨을 이루어 가려는 노력 이게 아닐까요? 제가 얼마전에 참 감동이 되었던 순간이 있습니다. 교회 사무총회를 하는데, 웃으면서 박수치면서 사무총회를 마친 일입니다. 그날 주제가 건축이었습니다. 여러분, 사실 건축 이야기하면서, 박수가 나온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게 참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교회에 더 맣이 필요한 일이 바로 이런 하나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성 어거스틴을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관용을, 모든 것을 사랑으로....저는 우리 교회가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를 하지만, 비본질적인 것은 관용으로 품을 수 있는 교회, 무엇보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할 수 있는 교회, 그래서 영적인 하나됨을 놓치지 않는 복된 교회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