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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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룻기는 보화 같은, 조개 속에 숨어 있는 진주와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그 진주를 발견하지 못하고, 판단과 교훈의 말씀으로만 사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러나 룻기는 교훈하기 위해 사용하는 책이 아니다. 룻기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담긴 책이다. 결코 교훈적 선포를 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룻기를 어떻게 우리가 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저자의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말씀에서 말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럼 룻기를 한 번 보도록 하자.
룻기의 배경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다. 룻기 이전에 사사기니 연대적으로 사사가 활동하던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사사가 활동하던 때에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가서 거류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 무리들이 소개된다.
엘리멜렉, 나오미, 말론, 기룐.
이들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압 지방에서 두 며느리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들의 이름은 오르바와 룻이었다. 그렇게 거주한 지 10년이 되었을 쯤에 어찌된 영문인지 나오미의 남편과 아들들이 다 죽어 되었다.
이상하게 저자는 이들이 겪은 수난에 대해 아무 언급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에 대해서 저자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했다면 다루었을 것이다.
그저 친가족을 읽은 나오미는 모압 지방에서 자신의 백성을 돌보아 양식을 주셨다 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나오미는 막상 가려고 하는 찰나에 며느리 둘은 같이 안가는게 좋겠다고 말한다.
왜일까? ..
그들은 이방인이라 그런걸까?
그들이 짐으로 여겨져서 그런걸까?
아니다. 말씀을 보면 그녀들은 나오미를 선대하였다. 이 선대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사랑하는 것. 헤쎄드.
그리고 축복까지 해줬다.
게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재혼하라 말한다.
이말은 듣자 그녀들의 반응은 눈물 흘리는 것이었다.
좀 전에 이야기한 헤쎄드는 그저 신실한 충성이다. 내 마음이 어떻던 상대방을 위해 충성된 삶을 살아내는 것 뿐이다. 그것이 헤쎄드다.
그런 그녀들의 마음을 나오미는 알았나보다.
고향으로 돌아가 재혼하라 말한다. 여자로서 행복하게 살라 축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가지 않으려 했다. 한 번 거절을 했으나 나오미는 강경했다.
왜냐하면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 나오미는 예상을 어느정도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늙었고, 애들 낳을지라도 며느리에게 그 아들을 준다 할지라도 뭘 할지라도 답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
고난을 겪는 것은 나 하나면 된다는 마음이었을까?
아까 말한 것처럼 나오미는 이들이 처한 상황과 그녀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또 울게 된다.
어쨌든 오르바는 떠나게 된다. 입을 맞추며..
그런데 룻은 확 밀착하여 나오미를 따라간다.
여기서 붙좇았다. 라는 뜻은 밀착인데,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몸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한 몸을 이룬다에 사용 되는 단어아. 그러니깐 뗄레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룻이 나오미에게 밀착했다는 것이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룻의 행동에 나오미는 오르바의 백성과 오르바의 신을 언급하기까지 하며 돌아가라 한다.
그런데 룻은 나오미의 어조를 그대로 맞추어 강경하게 말한다. 그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나의 조상이 될 것을 고백하기까지 한다. 저주까지...
그래야만 했을까.... 허허 ㅠㅠ
결국 나오미는 그 결심을 보고 그만 돌아가라 하기로 한다.
그렇게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에 들어간다.
온 성읍이 그들에게 나오미가 아니냐 수근대었으나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라 부르라 한다.
나오미는 즐거움
마라는 쓰다.
못먹을만치 쓰다.
출애굽 당시 마라의 샘을 먹지 못해 마라라 부른 그곳. 하나님께 불만을 표현한 그곳. 생명이 없는 곳이라 생각했다. 마라의 뜻은 생명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녀의 처한 상황을 보면 나오미라 부르기엔 한 없이 비참 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에 더 나아가 자신의 처지는 하나님의 응답이고, 그분이 내게 악행을 저지른 결과값이라는 것.
신앙인이 볼 때에 나오미는 믿음이 없다 말할 수 있을까? 정죄 받아야할 대상일까?
나오미의 상황을 어느 누가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을까?
나오미가 하나님을 탓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말로 그렇다 해서 나오미를 정죄할 수 있는가?
다르게 질문.
하나님은 나오미를 정죄하고 있는가? 책망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벌을 주셨다고 룻기에서 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처음에 말했다시피 저자는 의도를 가지고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었다.
다음 절을 보면 어떤 정죄나 판단이 아니라.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다고 말하며 1장을 마무리 한다.
정말 하나님이 그들에게 벌을 내리신거라면 이에 대해 진노하신 하나님이 벌을 내리셨다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에는 보리 추수를 말한다.
보리 추수는 한 해 동안 수고하고 땀을 흘린 결실을 맺을 때를 말한다. 풍성한 한가위를 말한다.
지금으로 치면 부모님의 월급 날이 온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보리 추수는 설날이었다. 추석이었다. 왜냐하면 용돈을 많이 받으니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