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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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제가 아동부 전도사이다보니 아이들에게 한번씩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너희들은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쁘니?
그럼 아이들이 이런 답변을 합니다.
축구할 때가 제일 기뻐요! 부모님이랑 놀 때가 제일 기뻐요! 맛있는 것을 먹을 때가 제일 기뻐요!
어떤 친구는 예배할 때가 제일 기뻐요!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예배에 함께하고 계신 분들은 언제 가장 기쁘신가요?
만약 우리가 어떤 스포츠를 하는 것이 가장 기쁘다면, 하루 일과가 그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데 많은 초점이 맞춰질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것이 가장 기쁘다면, 오늘 하루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그 시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지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가장 기뻐하는 그것은 내가 하루를 살아가는 방향성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쌓여서 우리의 삶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칭함을 받는 교회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어찌보면 아주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가장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주 단순하고도 쉬운 이 답변대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기뻐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오늘은 ‘염려'에 대한 부분을 다루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염려와 걱정에서 자유해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신앙의 본질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염려와 걱정이 없는 ‘새로운 삶’으로 이끄셨는가를 나누기 원합니다.
새 이스라엘인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을 보면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가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니까요.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구해주시고 나서 그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신 후에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시내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들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염려를 다루시는지 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학대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은 처음에 애굽의 노예 신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 왕 바로의 핍박 아래에서 크게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더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 나일 강에 빠뜨려 죽이라고 까지 합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며 살았습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이때를 학자들이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렇다할 기계도 없는 그 시대에 이집트의 큰 문명을 건축해내는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냈어야 했으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들은 그저 이집트인들의 도구였습니다.
이집트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에어컨, 아니 선풍기도 없었던 그 시대에 이스라엘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이 끝났다고 집에 들어가서 편히 쉴수나 있을까요? 지금 같이 의료도 발달되지 않았던 그 시대에는 그들이 고된 노동으로 생겼던 상처와 병들을 고스란히 앓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매일 자신들이 죽지는 않을까? 병이 들지는 않을까? 내 가족이 괜찮을까? 오늘 일은 또 어떻게 감당하며 내일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 수많은 염려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원하는 단 하나는 무엇일까요? 이 학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집트인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군사력이 대단한 이집트를 자신들의 힘으로 이겨내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울부짖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이야기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이야기 중 하나인 출애굽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출애굽 과정에서도 이스라엘의 염려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매일 보았던 바로는 고대 근동을 평정했던 가장 힘이 쎈 왕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주신다고 말씀하실 때 그들이 잠시 기뻐했다가도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불안에 떨며 염려하는 모습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염려가 무색하게도 당시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 바로를 눌러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는 이집트와 바로를 하나님의 힘으로 눌러버리십니다.
특별히 구약에서 이집트는 사람의 힘을 상징합니다. 이집트가 추구하는 우상이 바로 압도적인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이 신뢰하는 그들의 힘을 꺾어버리십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해 바로와 이집트인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엄청난 힘과 능력을 지니고 계신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와 바로가, 그리고 이스라엘이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두려워하며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장 강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고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보았지만, 아직 하나님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집트 땅에서 10가지 이적을 보고도, 홍해가 자신들 앞을 막고 있을 때, 온갖 원망과 고통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절정인 홍해를 가르시는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셨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진짜로 사람으로서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기 원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애굽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애굽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향한 그들의 염려를 가져가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이집트의 압제와 핍박, 학대는 끝이 났습니다. 보통의 이야기는 여기서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모세가 찬양할 때, 이스라엘은 함께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미리암이 소고를 들고 찬양할 때, 이스라엘은 함께 주님을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제 그들을 푸르른 초장이 반겨주었나요?
아니요. 그들 앞에 놓여있는 것은 풀 한포기 찾기 힘든 광야였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좀 더 잘 설명해주기 위해서 구글어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 그 땅의 상태가 어떤지를 보여주고는 했는데요.
그 프로그램을 통해 지도를 살펴보면 그 땅의 상태를 아주 잘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살았던 고센땅은 현재도 나무와 밭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지도에서 그 땅을 보면 아주 푸르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마주하게 된 땅은 지금도 풀한포기 없는 사막과 같습니다. 물도 없습니다. 습기를 머금지 않은 아주 건조한 베이지색, 마른 흙색 모래만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왜 이런 상황으로 인도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는 것을 기뻐하는 분이라서?
아니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엄청나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목적은 그들이 예배해야 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그들로 경험하게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른 것으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까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들은 이제 학대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주 척박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십니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셨으며, 채우고 계시며, 채우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풀한포기 없는 광야로 나와 사흘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물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물을 발견하는데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를 못합니다. 그러자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염려합니다.
염려하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께서 쓴 물에 나무 하나를 던지게 하심으로 단 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지혜와 방법으로는 생각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필요를 완벽히 채우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다른 거 걱정하지 말고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면 된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너희에게 질병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무엇을 마실까 염려할 때, 그들의 염려를 지우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들에게 질병에 걸릴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한다면? 너희가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고 나서 바로 그들을 물과 나무가 가득한 엘림으로 인도 하십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때 어떠한 풍성한 생명이 있는지 직접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이제 엘림을 떠나서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경 때문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말합니다.
내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옆에 앉아 있었을 때 참 좋았는데, 내가 떡을 배불리 먹었던 그 때가 참 좋았는데, 차라리 내가 거기서 하나님 손에 죽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을, 모세 너와 아론이 우리를 괜히 인도해서 우리 모두가 여기서 굶어 죽게 됐다.
이번에는 그들이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오 그런데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주십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그들에게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는 방법을 통해 더 세밀히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 이스라엘에게 경험적으로 알려주려고 하십니다.
만나는 매일 내려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당 하루에 2리터 정도 되는 양의 만나를 가져가게 하십니다. 그 정도의 양은 한 사람이 하루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적지도 않았으며, 많지도 않은 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내일도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실 것을 신뢰하고 오늘 주어진 것만 가져갔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만나를 내려주실 것을 신뢰했어야 했습니다. 그들 중에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내일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며 염려하면서 만나를 더 가져가면 여지 없이 그 다음날에는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들에게 하루 필요한 양의 만나를 신실히 내려주셨습니다.
한편, 여섯째날에만 만나를 갑절로 거두게 하셔서 일곱째날 안식일에 먹을 것까지 미리 거두게 하셨습니다. 일곱째날에는 만나를 주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여섯째날에 거두어 먹고 나서 다음날을 위해 남겨놓았던 만나는 냄새도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일곱째날에도 혹시 내려주시지 않을까 싶어 욕심 부리며 거두러 나간 자들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셨을까요? 그들이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후에 사십년동안 광야를 떠돌게 되는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40년동안 매일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이뿐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40년동안 그들의 의복과 신발이 닳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뿐인가요? 이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 바로 다음에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터뜨려 마실 것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한번 물을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시내산까지 가는 여정에서 아말렉을 만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경험을 합니다. 모세가 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상황을 보며,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대적을 무찌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이스라엘에게 알려주고 싶으셨을까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제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아무 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들이 마실 물을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먹을 양식을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입니다. 대적이 그들을 막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대적을 쓰러뜨리실 것입니다. 그들은 평강과 안정을 위해, 다른 것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주님께만 붙들려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이제 이스라엘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스라엘은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들에게 주어진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삶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에 주목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를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온지 3개월 됐을 때, 드디어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에 도착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초청을 받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 사람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보게 하셨으며, 그들을 시내산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엄청난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 다 내 것이다!
온 우주에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포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나와의 관계에서 신실하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될 것이다.
여기서 소유는 히브리어로 세굴라,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소유를 말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이스라엘도 이미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실하면 하나님이 그 소유 중에서도 가장 소중히 여긴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시는지 더 발견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첫사람 아담에게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던 첫 사람 아담. 그는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면서, 그 관계를 깨뜨리면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먼저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로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실할 때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제사장은 두가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신실해야 했으며,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진실로 사랑해야 진정으로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든 나라에 대하여 제사장이 되도록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모든 나라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삶을 통해여 그것을 드러내기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명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그들의 말과 행동, 삶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드러내야 했듯이 그들은 그들의 삶으로 하나님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선교적 소명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제사장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이집트와도 달라야하며, 풍요와 쾌락을 추구하는 가나안과도 달라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에 갇혀 염려해서는 안 됐습니다.
이집트는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힘을 키워나가고 압도적인 힘을 얻기 위해 이집트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가나안은 자신들이 더 풍요로워지며 그들의 평강이 흔들리지 않도록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근원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염려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경험한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세상의 대적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구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방법으로 채우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고 말씀하시며 그 중에서도 내가 너희를 가장 소중히 여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걱정해야 할까요? 이스라엘이 무엇을 염려해야 할까요?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만으로 충분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제사장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온 민족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런 초청에 ‘알겠습니다!’ 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이 때 ‘알겠습니다’라고 고백했던 사람 중에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이해가 안되잖아요. 왜요? 도대체 왜? 그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행사를 경험하고도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했을까요?
결국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이 새로운 삶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어떤 사람이었나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회막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 회막 사건은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이스라엘 하나님께 회개하기 위해 진 밖에 회막을 두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일입니다. 이 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눕니다. 여호수아 외에도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들이 회막에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분과의 교제를 통해서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동시에 그 일이 이루어지는데 어떤 염려도 갖지 않아도 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나서 걱정과 염려와 원망이 가득한 이스라엘을 향해 자신의 옷을 찢으며 이렇게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이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가나안 땅을 차지할 때, 동일하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은 동일하게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염려하는 것은 이방인이 하는 것입니다. 이집트가 그랬으며, 가나안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온 땅의 주인이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며 실제로 그 필요를 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를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붙들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로만 향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셨으며,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그런 주님께서 앞으로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말이 우리의 게으름과 안일함을 부추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여호수아처럼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더 엎드려야 합니다. 걱정할 시간에 더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를 보화로 여기시는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그분의 사랑에 압도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음미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아버지의 일을 보이시면 우리는 그저 기쁨으로 순종하며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삶입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만 전념할 수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께로만 몰두해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주님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모세, 다윗, 다니엘, 사도 바울 등 하나님의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가 염려를 손에서 놓아버린 사람들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주님이 이미 행하신 일에 감사하며, 앞으로 주님께서 행하실 일에 헌신되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염려를 없애는 것이 새로운 삶을 살며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염려가 올라오나요 걱정이 가득한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하나님께로 인도했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개인의 회막에 초청하십시오. 동일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그분 앞에 엎드리세요.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세요. 주님의 일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십시오. 행하십시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데 귀한 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동일하게 사용하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