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주님은 (시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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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1–6 NKRV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이 이끄는 기도

우리는 계속해서 시편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23편의 말씀을 같이 나누고 생각하면서 기도하기 원하는데요. 오늘부터 기도의 기도방법에 대한 설명처럼, 오늘은 말씀 자체를 놓고 말씀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기 원합니다.
말씀속에 시인의 고백과 “시인은 왜 이런 고백을 했을까?”를 함께 묵상하면서 시인의 고백 속에 하나님을 함께 느끼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가운데 새겨져 기도하는 시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시인은 여호와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은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이 표현은 목자가 양을 돌보듯, 자기 백성을 돌보고 보호하심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특별히 고대 근동에서 ‘목자’는 왕들, 지도자들을 표현할 때 쓰이던 표현입니다. 시인은 단순히 나를 먹이고 재우는 수준이 아니라 여호와를 ‘왕’으로서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왕의 백성으로 있는 나는 결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시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의 왕이 되신 그분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는 우리를 풀밭, 쉴만한 물 가에 ‘두시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건조한 지역이라 우리가 생각하는 풀밭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쉴만한 물가도 그리 많지 않죠. 지역의 특성상 5-9월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겨울에 비가 몰아 내리는 등의 상황으로 물가와 풀밭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항상 물가와 풀 밭이 있는 곳으로 자기 양들을 이끌고 가야합니다.
시인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인생이 마냥 푸른 풀밭 같고, 쉴 만한 물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시인인 목자이신 주님은 언제나 자신을 풀밭으로, 물가로 인도하시고 누이시는 분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죠.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주님은 그렇게 메마른 땅을 걸어가는 우리를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것을 넘어서 그 분은 우리의 육적인 만족을 넘어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그런 자신의 영혼을 살리시는 목자를 바라보는데 그 분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 바른 길로 자기 양들을 이끄신다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번역상 ‘자기 이름을 위하여’가 마치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길 원해서 우리를 돕는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이기적인 왕처럼 느껴지는 문장이지만, 시인의 이 고백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원어를 살펴보면 위하여~ 로 번역된 이 단어는 ~위하여 뿐만 아니라, ‘때문에’, ‘~를 이유로’ 등의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시인의 고백은 이런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 때문에, 그 이름을 이유로, 우리를 살리시고 먹이시고 이끄시는데 그 분의 이름은 무엇이죠? 여호와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샬롬이시고,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이레이시며, 우리를 치료하시는 라파 이시고 늘 우리곁에 계신 삼마이십니다. 그 외에 수많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표현하는 주님의 성품들이 있죠.
이 모든 성품을 하나로 요약하면 ‘신실함’ 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가지는 그 성품은 신실하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왕이 되신 여호와는 신실함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먹이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길은 신실하신 여호와의 이름, 그 성품이 이끄시는 길이기에 바른 길이며, 의의 길이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메마른 땅 같은 삶일지라도 여호와는 그 분의 이름이 자신을 이끌기에 가장 올곧고, 가장 풍요롭고, 가장 쉴만한 길로 여호와께서 자신을 인도한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골짜기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골짜기가 많아 길을 지나는 여행객들을 습격하는 강도들이 숨기 좋습니다. 이러한 행태를 잘 묘사하는 것이 예수님의 비유 중 강도맞은 자를 도운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볼 수 있습니다. 또 음침하다는 것은, 앞이 안보일 정도로 어두운 상황을 보여줍니다.
당장 앞이 안보일 정도로 어두운데, 경사가 심한 골짜기에서 발을 헛디딘다면 죽을 수 있는 위기와 답답하고 위험한 상황들을 묘사합니다. 시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처럼, 나의 삶을 위험하게 만들 위기들, 앞이 안보이는 두려운 상황들 앞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기 때문입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는 왕이신 주님의 통치하심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목자로서 지팡이는 양들의 길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것이라면 막대기 아래로 양을 지나게 하는 것은 목자가 양의 수를 세는 방법입니다.
시인의 고백은 주님은 우리의 모습 하나 하나를 막대기로 양의 수를 세듯이 알고 계시며, 그 분의 지팡이는 언제나 우리를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인도하고 계신다는 고백이죠.
시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인은 여호와를 목자에서, ‘주인’으로 시선을 전환합니다. 주인이신 주님은 손님에게 상을 차려주십니다. 그 손님은 온갖 원수의 괴롭힘속에서, 지칠대로 지친, 그 원수의 앞에서 주인은 그 손님을 기꺼이 맞이합니다. 고대근동에서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관례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주인이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집에 들인 손님을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선언과 동시에 책임이 주어집니다.
원수앞에서 지칠대로 지쳐버린 우리를 주인이신 여호와는 기꺼이 우리를 맞이하십니다. 그리고 맞이하는 것을 넘어 상을 차려주시고 원수의 바로 앞에서 보호하시며 먹이시고 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고난에서 지칠대로 지칠때에도 시인은 자신을 맞아주시는 주인이신 여호와 앞에서 쉼을 얻고 보호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하지만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손님인 것처럼 느꼈던 시인은 목자되신 하나님과 주인되신 하나님의 결국을 깨닫게 됩니다.
시인은 손님이 아니라, 가족으로, 자녀로 지금 여호와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죠. 고통의 삶의 순간 마치 잠시 위로를 얻으러 가던 주인 집이 아니라, 내가 항상 머물 수 있는 나의 집,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깨닫습니다. 자신은 그저 스쳐가는 여호와의 손님이 아니라 여호와의 백성, 그 분의 자녀라는 것, 그래서 ‘영원토록 그 분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인은 수많은 삶의 현장속에서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깨닫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선하심과 인자하심, 여호와의 ‘헤세드’가 변함없이 나를 따랐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헤세드’는 변치않는 사랑, 신실하신 사랑을 말합니다.
왕되시고 주인되시고 아버지 되시는 그 주님이 여전히 변함없이 신실한 그 사랑으로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여전히 주님은, 메마른 땅 같은 우리의 인생에서 변함없이 한결같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끝내 위로와 평안으로,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여전히 주님은, 답답하고 암울한 골짜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의 모습 하나 하나를 보시며 가장 안전하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여전히 주님은, 지칠대로 지치고, 원수 앞에서 무너질대로 무너질 때에도 가장 안전한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시고 상을 차려주시는 아버지십니다.
시인은 결국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바로 변하지 않는 그 사랑이 나를 붙들고 있었구나, 그리고 결국 시인이 바라보고 의지할 곳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여호와’ 사랑하는 나의 주님, 나의 왕이시고 아버지되시는 그 분의 품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잠시 시인의 고백을 떠올리며 오늘의 말씀을 마음가운데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찬양
주님은 나의 좋은 목자되시며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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