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혼인잔치 속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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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1. 요한복음의 이적들의 시작
요한복음에서 2:1 - 12:50까지 공생애 사역.
공생애 사역 중 7가지의 기적 사건이 나옵니다.
그중 첫번째 기적의 사건이 바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사건입니다.
2.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1절)
가나라고 하는 지역에 혼례가 있었는데 거기에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굳이 마리아라고 명명하진 않지만 예수의 어머니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가 가나에 있는 혼인 잔치에 같이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마리아의 친척 관계에 있는 사람이 혼인을 하는 것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은 성대한 잔치와 함께 베풀어졌지만 지금처럼 결혼식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친척들이 잔치의 일손을 돕는 것입니다.
그곳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도 혼례에 가게 됩니다. (2절)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전까지 만난 5명의 제자들 즉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라고 추측되는 한 명, 빌립, 나다나엘 이렇게 였는지, 열 두 명의 제자들이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스토리의 정황상 아마 5명의 제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1.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3절)
여기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포도주가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잔치는 기본적으로 1주일 정도를 했다고 합니다.
결혼 의식뿐만 아니라 결혼은 동네의 큰 잔치였기 때문에 1주일치의 음식과 포도주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문화에서는 “체면”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결혼 잔치 약 1주일 동안 적절한 음식과 포도주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제공되지 않을 때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당시를 배경으로 한 유대 문헌 중에 재밌는 판결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유대인이 소송을 했는데 그 이유가 혼인 잔치가 끝나기 전에 음식이 다 동이 나버렸는데 이것으로 신부의 친척들이 신랑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는 문헌이 있습니다.
지금도 결혼식은 먹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여러분 아직 결혼 안하신 분들 많으니까 정말 T같지만 중요한 사실 알려드리겠습니다.
결혼식에서 하객들에게 중요한 것은 음식, 대중교통의 편리성, 주차입니다.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편하게 제공되는가? 대중교통으로 가기 편한가? 혹은 자체 주차장이 있고, 여유가 있는가?
그만큼 음식이 중요한거죠. 여러분들이 결혼식을 갔는데 음식이 맛없으면 기분 별로 안좋을걸요?
그런데 이때는 그것이 체면의 차원이었다는거죠.
맛있는 음식이 제공될 뿐만 아니라, 1주일 동안 그 음식이 잘 제공되어야하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포도주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물이 떨어지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물이 상당히 귀해서 포도주가 물의 대용이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음료수의 역할도 하는 것이 포도주니까 흥을 돋구는 음료수도 없는 겁니다.
포도주가 갑자기 떨어진다는 것은 신랑의 체면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일이죠.
2. 포도주가 없는 상황 속 마리아와 예수의 대화 (3-4절)
여기서 마리아는 본인이 결혼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척의 체면의 위기가 오자 함께 준비하던 자로서 위급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상당히 싸늘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서 “여자여”라는 표현을 오해하셔서 예수님이 부모 자식도 못알아보시는 분인가? 라고 생각하시면 안되고요.
“여자여”라는 표현은 상당히 정중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거리감을 두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자여”라는 표현보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대답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어머니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것을 최선을 다해서 돕는 것이 아들의 도리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성모로 여기고 일부 숭배하고 있습니다. 물론 카톨릭의 교리 역사를 잘 연구해볼 필요는 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마리아에게 “죄적으로 흠이 없다.”라고 하는 무흠 교리라던가 하는 교리가 있습니다. 마리아를 신성화하는 교리죠.
그러나 우리는 마리아를 우리와 같은 “죄인”으로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리들을 떠나서 마리아는 상당히 특별한 사람인 것은 맞습니다. 신적인 요소가 있다거나 그런 입장이 아니라 그의 삶이 참 특별하죠.
예수님이라는 분을 잉태해서 낳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분명히 예수님을 잉태하기 이전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리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실제로 낳은 아들 예수는 인간으로서는 엄마입니다. 직접 낳고, 키우고, 보호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 가운데 마리아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각하고 있지만, 자신의 아들로서도 인간적인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정”이겠죠.
“모성애”라는 것은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 본성입니다. 마리아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입니다.
이런 점에서 마리아의 삶은 조금 특별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녀에게는 항상 긴장감이 존재합니다. 자신의 아들인 예수로서의 측면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서의 측면. 이 두 가지가 항상 부딪히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면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그런 대답을 하셨을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는 마리아의 장남입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신의 장남을 자신의 남편의 대리자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고대 사회에서는 그 의식이 더욱 강합니다.
마리아는 장남인 예수를 자신의 남편인 요셉의 대리자로 생각했을 것이며, 어려움이 생겼을 때 장남인 예수에게 도움을 청해야한다는 생각을 항상 은연 중에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 긴급한 어려움이 생겼잖아요?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청했을 때 예수님은 그 마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요한복음 2:4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서 “내 때”는 어떤 때를 말할까요? 예수님의 하나님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때를 말하는거겠죠.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마리아는 인간적인 면에서의 자신의 아들인 예수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이 사건을 인간적인 면으로 해결하시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사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싶으신 겁니다.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1. 혼인잔치의 의미
성경 안에서 많은 경우에 혼인잔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의 의미를 가집니다.
보통 비유적으로 표현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부된 성도들과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혼인 잔치를 벌이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사용하죠.
그래서 오늘 본문은 사실상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는 달리 이 혼인 잔치에는 많은 부족함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그냥 상식적으로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면 부족함이 없고, 완벽한 곳으로 생각하기 쉽죠.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많은 결핍이 있고, 인간성이 있습니다. 완벽한 곳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죠.
먼저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일반적인 하나님 나라를 생각한다면 포도주가 떨어지면 안되겠죠. 부족함이 없으니까요.
또한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 아들로 여기는 부족함도 보입니다.
오늘 본문의 혼인 잔치는 하나님 나라라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이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도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인가요?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결핍과 부족함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이 살아가는 곳이 동시에 하나님 나라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도 여전히 결핍과 부족함이 존재하지만 하나님 나라이면서,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그곳도 여전히 결핍과 부족함이 존재하지만 하나님 나라인 것이죠.
오늘 본문의 배경은 결핍과 부족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 나라인,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와 같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제가 마커스 찬양 중에 “그가 다스리는 그의 나라에서”라는 찬양이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 가사를 좀 인용하려고 합니다 .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일까? 아픔과 슬픔이 없는 나라인가요?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은 걸 하나님 나라에 살고 싶어요
하나님 나라는 이곳이란다 여전히 아프고 슬픈 일이 있지만
행복과 기쁨이 여전히 있는 걸 우리가 하늘과 땅의 통로야
이 땅에서 하늘 뜻을 품고 사는 자들
믿음으로 하늘 뜻을 보여주는 자들
보내어진 자리에서 동참하는 자들
믿음으로 주님 보길 소망하는 자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가장 잘 보여주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는요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곳이죠. 물론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에 온전히 성취될 새 하늘 새 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곳이 여전히 하나님 나라인건데요.
하나님 나라는 이곳입니다. 여전히 아프고 슬픈 일이 있스니다. 결핍이 존재하죠.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그 천상의 기쁨과 행복이 여전히 우리에게 있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거죠.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문제는 결핍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겠죠.
포도주가 떨어지는 상황이 생기듯 우리의 삶에 결핍으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많은 결핍으로 인한 문제들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이 마리아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삶”이라는 “혼인 잔치” 속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같은 “결핍”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결핍을 느끼잖아요? 여기서 결핍은 그냥 단순히 영양결핍 이런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문제들을 야기하는 모든 부족함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이 궁극적으로 가지는 가장 큰 결핍은 무엇일까요? 바로 죽음입니다. 생명의 결핍인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마리아입니다.
제가 요즘 운동 열심히 하잖아요? 하루에 두시간씩 일주일 세 네번은 운동하는 것 같아요. 대략. 그것보다 좀 더 많이 할 때도 있고요.
제가 운동하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제가 챙겨먹는 영양제가 네개 먹거든요. 오메가3, 마그네슘, 비타민, 밀크씨슬
이것들 다 건강을 위해서 하는거죠.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살더라도 우리는 죽음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무릎 꿇게 됩니다. 왜죠? 죽음은 인간이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모두에게 존재하는 결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되죠.
결국 우리는 삶이라는 혼인 잔치 속에서도 포도주라는 생명이 떨어져 죽음이라는 결핍을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마리아처럼 인간성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죠. 인간인 장남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존하듯 각자 나름대로 죽음을 모면하기 위한 방법을 추구하죠.
물론 저도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고, 챙겨먹지만 이것이 사실 죽음을 극복하게 하지는 못하죠.
그러나 생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거죠. 물론 저는 그것이 죽음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죽음이라는 결핍 안에서도 그나마 남아있는 생명을 잘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혹은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연구하기도 하고, 나름의 합리화를 시도하기도 하죠.
그러나 모두 무쓸모이죠.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마리아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결핍을 극복하려고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합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2021년)
(사랑의 결핍, 인정의 결핍도 얘기할 것)
돌아오는 예수님의 대답은 이거겠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1. 마리아의 반응과 일어난 기적
마리아는 포도주가 결핍된 상황 속에서 인간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돌아온건 냉담한 반응이었죠.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무언가 마리아의 반응이 바뀌었습니다.
마리아는 인간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거절 받았습니다. 그러나 각성합니다.
예수님이 장남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내려놓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각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반응하죠. 하인들에게 명령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대로 행하라”라고요.
여러분 이것은 마리아에게 정말 힘든 일이죠. 의지할만한 믿음직스러운 장남에게 거절 당합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장남에게 원망하고, 더 집착할 것 같습니다.
혹은 아예 포기해버리던가요.
그런데 마리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명령합니다.
장남 예수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각성하고 깨우쳐 다시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보통 이 본문을 볼 때 예수님은 분명히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기적을 보여주실까? 예수님은 변덕쟁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있죠. ‘아 마리아의 생각이 바뀌고, 믿는 바가 바뀌었구나. 인간 예수를 의지하던 마리아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었구나.’
예수님의 때는 무엇이었습니까? 마리아가 인간인 예수가 아닌 하나님 예수를 믿기로 한 그 때를 말한거죠.
그 때가 이르니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라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라
아직도 결핍을 채울 것을 엄한 곳에서 찾고 있는가?
운동, 영양제 챙기기 나쁜 것은 아니나,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에게 많은 결핍이 있다. 생명의 결핍 뿐만 아니라, 사랑의 결핍, 인정의 결핍.
그 앞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결핍을 해결하려고 하는가?
인간성에 의존하지 않는가? 우리가 가진 것에 의존하지 않은가?
생명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육체의 생명을 의존하기도 하고, 혹은 헛된 종교를 의존하기도 하고.
사랑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나를 사랑해줄 혹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찾아 끝없이 사랑을 갈구해보기도 하고
인정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나를 인정해줄 사람을 혹은 직장을 혹은 어떤 공동체를 뭐든 해결해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을 채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 모든 결핍이 온전하게 채워진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와 저희 아내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결혼 전에 연애할 때 어떤 얘기를 하다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은 잘 나지 않습니다. (서로 진지하게 대화 중에)
그런데 사모님이 저에게 뭔가 바라는 것을 얘기했었어요.
그런데 사모님의 증언으로는 저는 잘 생각 안나는데, 상당히 매정하게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나는 그 바라는 것을 채울 수가 없다”라고요.
그래서 상당히 상처를 받았는데, 동시에 깨달은 겁니다.
이 사람이 앞으로 결혼할 대상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것들을 완벽하게 채울 하나님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그 채움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하는 것을 마리아처럼 각성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제가 상당히 매정하게 말했지만, 다행히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모님이 아주 중요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죠.
물론 부부 관계는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계속해서 닮아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심지어 결혼한 관계에서도 상대방에게 결핍을 채울 완벽한 것을 약속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상대방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 옆사람에게 말해봅시다. “마리아야! 예수님만 그것을 채울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