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마주하다(민13: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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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7월 30일 주일 청년부
제목 : 광야를 마주하다
본문 : 민수기 13:25-33
결단 :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 설교 전 중보기도 제목
1) 예배를 위해서 : 주님의 말씀을 기뻐 받아 누리는 시간 되게 하소서
2) 이어진교회 모든 여름사역을 위해서 : 오늘까지 이어지는 청소년부 수련회와 다음주 있을 어린이부 성경학교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소서
1. 선택
1) 하루의 선택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 속에 놓여 있습니다. 교회를 올 것인가, 말 것인가. 또는 청년부 예배를 드릴 것인가, 말 것인가 등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던 중 인간은 총 몇 번을 선택하는가? 찾아보는 중에 또 재밌는 사실을 하나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총 몇 번 “생각” 하는지 아십니까? 캐나다 뇌과학연구소 발표 자료에 의하면 건강한 성인이라면 하루 총 6,000번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 그럼 우리는 하루 총 몇 번의 선택을 할까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총 150번의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저도 그래서, “과연 나는 하루 총 몇 번 선택을 하나?” 세어나보자 했는데, 너무 많아서 아침부터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눈 떴을 때, 일어날까 말까를 시작으로, 아엘이가 일어나면 바로 갈까 조금 더 있다가 갈까 등 수많은 생각을 하는게 우리구나 싶었습니다.
2) 선택의 결과
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사뭇 다른 결과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도깨비 보셨습니까? 저도 보지는 않았지만, 짤로 본 것 중에 공유가 어느 한 사람에게 샌드위치를 받고, 그 사람이 가려던 길을 막아 반대편으로 가도록 안내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청난 의인을 만나게 되지요.
드라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는 “선택에 따른 결과가 늘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나름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해 취직했지만, 정작 직장 내 사람들과의 관계적 어려움이 우리를 퇴사로 내몰기도 하고, 업무의 방향이 달라 퇴사하기도 하고, 알바도 나름 ‘돈’이 필요해 시작했지만, 정작 높은 업무 강도에 금방 그만두기도 하는 등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결과가 사뭇 달라집니다.
이번 휴가 중 기회가 되면 꼭 수련회로 가고 싶었던 장소기도 한 안도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너무 멀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여하튼 그곳에 할머니도 뵐겸 겸사 겸사 다녀왔습니다. 섬사람들 일정 특별히 뭐 없습니다. 낚시와 해루질, 농작물 관리 정도인데, 낚시에는 흥미가 없지만 해루질이 너무 기대가 되어 따라 나섰습니다. 분명 설렘으로 선택한 해루질인데, 바닷물에 빠져 6시간을 고동을 따고 멍게 따고 하니 ‘노동 착취’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전환되더랍니다.
이처럼 우리는 늘 어떤 선택을 하냐, 무엇을 선택 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방향이 달라집니다.
2. 광야를 마주하다
1) 광야인가 가나안인가
오늘 본문도 선택의 기로에 놓인 모세를 보게 됩니다. 너무나 잘 알다시피 열 둘 정탐꾼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탐했고, 그 결과를 보고 받아 광야에 남을 것인가, 그리고 가나안으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먼저 10명의 그룹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 당신 말대로 정말 젖과 꿀이 흐르더군요. 이 열매를 보십쇼.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요. 이 열매가 바로 그 땅에서 가져온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 땅은 갈 수 없겠어요. 왜냐하면 그 땅엔 너무나 강한 군사들이 있거든요.”
이에 다른 한 그룹,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리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 땅엔 젖과 꿀이 흐르고 열매마저 너무나 탐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뭇 다른 이 두 보고를 듣고 모세는 선택해야 합니다. 가나안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광야에 남을 것인가를 말입니다.
2) 광야에 원망하다
그런데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원망과 통곡을 하네요? 14장 1절부터 3절까지의 기록을 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에게 놓인 처지를 한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면 우리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광야 마냥 아무 것도 없어 원망하고 한탄하는 삶. “이게 필요합니다 주님, 저것도 필요합니다 주님” 아이처럼 보채는 신앙의 모습이 우리 아닙니까?
3) 광야로 이끄신 이, 하나님
그런데 광야로 이끈 이가 누굽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애굽으로 부터 벗어나 자유를 허락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그곳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를 채우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하신 이도 하나님인데, 늘 광야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입니다.
지금 내 현실이 어렵다해도, 이곳으로 부르시고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허락하신 이가 누구십니까? 하나님입니다. 내 자의로 내가 원하여 이곳에 있는 것 아니고, 내 생명 연장케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광야에 놓인 것 같은 우리의 삶 마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란 거죠.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불편한 상황 가운데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따라 갈 것인가 아니면 내 편의를 위해 선택할 것인가를 말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은 무엇이었습니까? 지금 당장의 내 어려움을 회피하고자 편의를 선택합니다. 하나님을 저버리는 선택을 하지요.
또 열 명의 정탐꾼도 선택의 기로 앞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가나안 보다, 자신의 생명이 보장될 것만 같은 광야를 선택합니다. 즉 하나님보다 내 기준, 내 편의가 먼저 였던 거지요.
3. 하나님을 택하다
그렇게 하나님을 저버리고 내 편의를 택한 자들의 결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분노와 징계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선택의 기로 앞에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십니까? 나의 편의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바라옵기로는 어느 순간에도 늘 하나님을 선택하는 여기 모인 모두 되길 소망합니다.
1) 광야에 머물다, 인내
우린 이스라엘 백성과 다르게, 열 명의 정탐꾼과 다르게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또 모세처럼 편의가 아닌 하나님을 택해야 하는데,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먼저, “광야에 머물러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 시피 광야로 인도하신 이는 하나님 이십니다. 이들이 원해서 간 곳도 아니고 하나님이 인도해 내신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들의 고충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들으셨고 심지어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들은 매순간 원망하며 “광야는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통곡하며 울부 짖었지만, 아니요, 광야는 절대 잘못된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인도하셨기 때문에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뜻을 볼 때, 또 하나의 이유를 보게 됩니다. 광야는 “말씀(다바르)”과 “장소(멤)”의 합성어로, 뜻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 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이 40년간 거했던 광야를 잘못된 선택이었다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끄심과 계획을 인간이 부정하는 오류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광야는 절대 잘못된 선택이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광야가 있었기에 모세는 만물의 주인, 이 세상의 통치자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요즘 또다시 코로나가 피어 올라 여전히 조심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지난 3년 코로나로 참 어렵지 않았습니까? 저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걸 준비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음식들고 배달도 해보고, 위로하고자 간식도 사들고 학원도 가보고 참 많은 걸 했습니다. 모일 수 없으니 줌으로 모여보자 싶어 모이기도 했습니다.
인내하려 인내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인내의 시간을 보냈고 한 달 전, 인내의 결실이 있었음을 한 청년으로부터 전해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믿습니다. 여전히 어려움은 제 삶에 존재하지만 그 삶이 “헛되지 않으며” 오히려 주님께서 “이제는 마음껏 쓰라” 말씀하실 때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라옵기로는 광야에 놓인 우리 삶에 원망과 통곡하기보다 인내로 하나님을 택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의 인내를 하나님은 분명 보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 가나안으로 가다, 순종
하나님을 선택하는 방법 두 번째는 “가나안으로 나아가라는 것” 입니다. 모세는 어쩌면 “못해요”의 아이콘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곱게 순종하기보다 늘 못한다, 안된다가 기본 패시브 마냥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어떻게 고백합니까? 14장 5절,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리고 14장 9절,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두 그룹 모두 가나안을 보았지만, 선택이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모세는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합니다.
지난 주일, 제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하려 합니다. 주일에 교회가기가 싫었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배를 맛보게 하시고, 선교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하나님, 가나안이 나를 채웠습니다.
4. 결론 : 하나님을 선택하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의 삶이 광야에 놓인 것 같아 원망과 통곡,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먼저는 주님을 보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주님, 나의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우리의 삶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선택함에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전히 믿으십시오. 우리게 꾸짖지 아니하시며 후이 주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나아가십시오. 야고보서 1장 6절과 7절 어찌 기록합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의심치 말고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해 믿으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결단찬양 :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말씀을 가지고
1)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 되게 하소서
2) 의심치 말며 온전히 맡기고 나아가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 충만하심이
내게 허락하신 광야 속에서 원망하기보다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인내하기로 다짐한 자들과
그 속에서 매순간 나보다 하나님을 우선시하여, 하나님을 선택하기로 결단한 자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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