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31 새벽기도회 : 이사야 11:1-9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16 views
Notes
Transcript
찬송가 292장 함께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주의 시작을 하나님과 기도하는 기도회로 시작하게 하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가 있는 기도회가 되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완전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얻고 가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한 주간 살아가면서 항상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11:1-9 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11:1–9 NKRV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평화는 인간의 마음 한 구석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중 하나입니다. 평화로운 나라, 평화로운 삶, 평화로운 가정 등 인간은 평화롭게 살길 원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본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평화롭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고부 간의 갈등이 주였다면, 요즘에는 세대 간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이 주된 갈등입니다. 또한 여전히 현대에도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모습까지도 존재합니다. 예전에는 교사가 자신의 교권을 오용하고 남용하여 학생의 인권을 착취했다면, 요즘에는 학생의 인권을 높인다는 이유로 교사의 인권이 착취 당하는 역전된 모습이 보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평화를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면서도 이 인간 사회에는 항상 갈등과 착취의 모습으로 인한 분쟁의 모습이 존재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런 인간 사회를 구원해줄 구원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10장에서 이사야는 악한 통치자인 아하스와 앗수르 국가에게 임할 심판에 대해서 예고합니다. 그리고 이런 악한 통치자들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선한 통치를 가져다 줄 통치자가 있다고 11장에서 이야기합니다.
1절부터 보시면 이새의 줄기를 말함으로써 이사야가 9장 6-7절에서 다윗의 자손에게서 태어날 왕의 특징에 대해서 말하였었는데, 9장에서 말한 다윗의 자손과 11장에서 말하는 다윗의 자손이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윗의 자손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2-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영이 어떤 영이냐면,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시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영을 세 부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함, 이렇게 세 부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이 다윗의 자손에게 임하심으로써 나타나는 특징이 세 가지임을 뜻합니다.
첫 번째로 지혜와 총명의 영이 임하신다는 것은 그가 왕으로서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올바른 선택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략과 재능의 영이 임하신다는 것은 그가 실질적으로 사역을 할 때 놀라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반드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로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임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세 가지의 특징을 가지신 분에게 나타날 모습은 3-5절에 나옵니다. 3절부터 보시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자신의 눈과 귀로 경험하는 것들로만 심판하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다윗의 자손의 특징이 다른 모든 인간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자신의 눈과 귀로 경험하는 것들로 판단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올바른 판단,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연약함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보는 관점이 다르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다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입니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항상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언제든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생각한 것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다윗의 자손은 다릅니다. 이 다윗의 자손은 그렇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자신의 즐거움이 되어 눈과 귀로 경험하는 것들로 심판하고 판단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그가 여호와를 경외하시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하고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의 겉모습과 거짓 주장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대로 결정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나타날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바로 4절처럼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시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이십니다.
공의로운 통치로 인해 수혜를 받는 것은 가난한 자입니다. 그리고 정직한 통치로 인해 수혜를 받는 것은 겸손한 자입니다. 또한 공의와 정직의 통치로 인해 악인은 죽임을 당합니다.
10장 1-2절에서 이사야는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탁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있을진저라고 말하였는데, 바로 다윗의 자손은 이런 모습을 거슬러 하나님의 진정한 공의롭고 정직한 통치를 하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는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지만 다윗의 자손은 가난한 자를 공의롭게 대하실 것이며, 겸손한 자를 정직하게 판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통치로 인해 나타날 모습이 무엇입니까? 6-8절입니다. 6-8절은 참 독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자연 현상을 거스르는 모습입니다. 자연에는 명확한 먹이사슬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이것을 깨어버립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라와 양이 함께 사는 것도 놀라운데 이 본문은 한 술 더 떠서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리와 양, 심지어 그냥 양도 아니고 어린 양이 이리와 함께 같이 산다고 합니다. 이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7절 끝에 육식 동물인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8절은 갖난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치고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렇지 않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평화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자연의 먹이사슬,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모습이 깨어지고 강한 자와 약한 자가 공존하는 평화로운 나라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다윗의 자손께서 통치하시는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세상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평화를 유지합니다. 오늘 본문의 앞 장인 10장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앗수르가 있었습니다. 이 앗수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앗수르에게 평화가 찾아옵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나 권력이 있는 자들이 돈과 권력이 없는 자들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평화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이 다윗의 자손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평화는 다릅니다. 이 다윗의 자손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평화는 강한 자와 약한 자가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해치지도 않고 상하게 하지도 않는 나라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로 9절 하반절에서 말하듯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존하시며 높으신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모든 존재들은 그분 앞에서 낮아지며 서로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존귀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자손이 다스릴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다윗의 자손이 누구이십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심으로 그분의 말씀대로 공의롭고 정직한 판결을 내리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약자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분은 이사야의 예언처럼 성령께서 함께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을 통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승천하신 이후에 이런 그리스도의 통치를 맛볼 수 있는 곳을 남겨두셨습니다. 그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을 비롯한 예수님 이후의 다른 모든 신약성경을 보시면 교회에는 항상 사회적인 강자와 약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싸우고 다투고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강자가 약자를 보살피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약자들을 위해 구제하고, 서로 쓸 것을 내놓으며 통용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이루신 평화의 통치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만 구속하지 않으시고 서로를 물고 뜯고 착취하며 상대방을 지배하는 방식의 가짜 평화가 아니라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는 진짜 평화를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도 구속하신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며 우리도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즐거워 약자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주시고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심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항상 우리가 보고 들은대로 판결하는 것을 좋아하며 약자들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착취하려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저희도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짜 평화를 이 땅 가운데 이뤄가는 자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두고 기도하시고 자유롭게 기도하신 후에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