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자막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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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샬롬. 반갑습니다. 안승은 목사님께서 소개해 주신 사랑부 백종빈 강도사입니다. 월요중보기도회 가족 분들을 만나게 돼서 너무 큰 영광입니다.
여러분. 제가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오전을 기도로 깨우는 성도님들은 많이 봤는데, 월요일 오전부터 나와서 기도하는 분들은 처음 봤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시는 월요중보기도회 가족 분들께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회복의 역사가 가득할 줄 믿습니다.
저는 지난 3년 동안 참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3년 전에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천국으로 먼저 이사를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했고, 3달 전에는 예쁜 딸이 태어났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아들의 역할, 형의 역할만 감당하면 됐었는데, 이제 남편의 역할, 아빠의 역할도 감당해야 합니다.
어느 역할, 할 것 없이 다 잘 해내고 싶은 게 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기란 쉽지 않더라구요. 제가 너무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관계에서 신실하기란 참 쉽지가 않습니다. 요즘 제게 있어,, 제일 힘든 관계는 90일 된 딸과의 관계입니다.
왜 힘들까요? 말이 너~ 무 안 통합니다.
제가, 사람이 너무 꽉 막힌 걸까요?
아직 제 딸이 할 줄 아는 의사소통 방법이 우는 거랑 웃는 거랑 약간의 옹알이 하는 게 전부라서 말이 안 통합니다. 뭐가 필요한지, 뭐가 불편하고 힘든지 바로 바로 알아채서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고 힘이 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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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제겐 저희 딸과 관련된 작은 소원이 하나 있는데요.
어떤 한 동영상을 보고 품게 된 소원입니다.
그 영상에 4-5살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 아빠 웨딩앨범을 보면서 엉엉 울고 있더라구요. 왜 자기는 아빠랑 결혼할 수 없냐면서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아,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게 딸 가진 아빠의 영광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딸이 자라서 왜 아빠랑 결혼할 수 없냐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아빠를 좋아한다는 증거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딸이 그렇게 말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정말 그렇게 떼를 쓰면,,, 그렇다고 제가 딸의 남편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죠.
저는 딸에게 아빠일 수밖에 없습니다. 딸이 결혼해야 할 때가 되면 보기 싫은 그 남자에게 보내줘야 합니다. 저는 딸의 남편이 될 수 없습니다.
딸과 저의 관계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 주고 싶어도 다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관계에서 제한이 없고 여러 역할을 감당하시며 성도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에게 모든 걸 다~~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양한 비유로 다가오십니다. 아버지로, 신랑으로, 스승으로, 친구로, 목자로 다가오시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버지도 되어주실 수 있고, 신랑이 되어주실 수도 있고, 스승, 친구, 목자도 되어주실 수 있습니다. 좋은 관계는, 다 맺어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 맺는 성도들은 관계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관계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관계를 맺으실 때 늘 하시는 게 있는데, 바로 언약을 세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 늘 내거시는 슬로건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 슬로건을 계속 띄워주시겠습니까?
여러분. 이 문구의 하나님 부분에 아버지를 넣으면 그 뒤에 백성 부분은 무슨 말로 바뀔까요?
그렇죠. 자녀가 되겠죠. 아들 딸이 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부분에 신랑을 넣으면, 그 뒤의 말은요?
그렇습니다. 신부가 되겠죠?
앞에 스승을 넣으면, 그 뒤에는? 제자가 되고,
앞에 목자를 넣으면, 그 뒤에는? 양이 됩니다.
이제 내려주셔도 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관계를 맺으면요. 서로에 대해 의무가 생깁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서 아버지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자녀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잘 양육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버지가 이 의무를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아버지에 대해 뭐라고 얘기합니까? 비난의 목소리가 엄청 거셀 겁니다.
자, 그런데 아버지에게만 의무가 있습니까? 그럼 세상 아버지들, 서러워서 어떻게 삽니까?
자녀에게도 의무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공경하고, 아버지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지키지 않는 자녀들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불효자라고 합니다.
여러분. 신랑과 신부 사이에도 의무가 생깁니다. 신랑은 신부를 목숨같이 사랑하고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무를 서로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서로에게 신실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이어지기가 힘들겠죠?
여러분, 이렇듯,,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도 의무가 있었습니다.
서로 언약 관계를 맺었으니 서로에 대해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언약에 대해 의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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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어주신 언약의 이름은 “옛 언약.” 입니다.
하나님은 이 옛 언약에 대해 의로우셨습니다. 모든 의무를 다 지키셨거든요?
아버지로서, 신랑으로서, 목자로서 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신 언약적 의무는 한 단어로 말하면,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을까요? 과연 그 언약의 의무를 지켰을까요?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옛 언약은 법적인 효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언약에 대한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받고 언약을 파기시켜야 했습니다. 그 둘의 관계가 완전히 깨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 언약에 대한 의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신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살 수 없겠죠.. 아까 하나님께서 지키신 언약의 의무를 한 단어로 하면, 구원이라고 했죠?
하나님의 구원 없이는 이스라엘이 세게 열강들 틈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 이야기를,, 백성들에게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렸는데, 그럼 구원은커녕 징계를 받게 될 것이고 살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백성들과 세운 그 언약을 깨트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법적인 효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셔도 됩니다.
그런데,,,,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절대 법적인 효력이 사라지지 않는 ‘새 언약’을 너희와 맺어주겠다. 라고 말이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지키시기 위해, 즉 끝~까지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고 싶으셔서, 끝까지 이스라엘의 신랑이 되고 싶으셔서 절대 깨지지 않는 새 언약을 맺어주신다고 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깨어진 관계가 새 언약 안에서 어떻게 회복하는지 크게 두 가지 관계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본론
첫 번째로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우선 31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한 것에 대해 징계를 하시긴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 새 언약을 맺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이어지는 32절에서 이 새 언약은 과거의 옛 언약과 다르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다른지 한 번 보겠습니다.
32절을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32절입니다. 시 작.
예레미야 31:32 (NKRV)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러분, 이 32절은 정말 애절한 로맨스 영화같은 분위기를 줍니다. 저는 이 32절을 보면서 결혼식의 행진 장면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 애굽에서 종노릇했지 않습니까? 32절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마치 애굽이라는 계모, 계부 밑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는 연약한 아이처럼 묘사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어주시길 자처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야 하니까요. 그래서 그 이스라엘을 계모, 계부로부터 구원해서, 결혼 예식을 거행합니다.
여러분, 결혼식에서 늘 신부와 신랑이 사랑의 서약식을 가지죠?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랑의 언약식을 가지십니다. 그리고 신부, 이스라엘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화려하게 행진해 나오십니다. 빰 빰빠밤~ 빰 빰빠밤~ 아름다운 행진곡 아래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자, 그럼, 이제 아름다운 나날들만 펼쳐져야죠?
그런데 신혼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신부 이스라엘은 신랑이신 하나님을 배신하고 외도를 일삼았습니다. 남편이신 하나님이 아닌 우상이 좋다며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혼인관계증명서를 가지고 와서 남편이신 하나님 앞에서, 그 혼인관계증명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립니다. 그 혼인관계증명서를 뭐 주민센터 가서 다시 뽑으면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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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옛 언약은 법적인 효력이 있었기 때문에 혼인관계증명서를 찢어버리면 그 자리에서 관계가 정말 끝이 나는 거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목숨 바쳐 사랑한 신부가 면전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면, 남편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신부가 뭐 한 순간에 돌변해서 관계를 정리하자고 했겠습니까?
아주 오랫동안 남편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말과 행동들을 보였을 겁니다. 남편은 외도하는 신부의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했을 겁니다.
너무 지쳤을 겁니다. ‘그래, 나도 참을만큼 참았어… 각자 갈 길 가자.’
이렇게 말하는게 정상 아닙니까? 이렇게 말해야 그나마 덜 구질구질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예레미야 31:33 (NKRV)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무슨 접속사로 시작하죠? ‘그러나.’입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이 어떤 짓을 했던간에, 어떤 말을 했던간에 다 덮어주시겠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절절한 마음이고,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입니다.
“네가 나와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우리 둘 관계를 깨트리고 싶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니?
그러나!!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어. 나는 여전히 널 사랑한단다.”
이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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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나도 안 세련됐죠? 심하게 말하면 구질구질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선 이렇게 사랑하는 이들을 향해 바보 같다고, 구질구질하게 왜 그렇게 사냐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고, 이게 기독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그 혼인관계증명서의 핵심은 이 문장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 문장이 출애굽기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사랑의 언약식을 거행하십니다. 그리고 혼인관계증명서에 친히 이 내용을 기록하십니다. 출애굽기의 6장 7절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시작.
출애굽기 6:7 (NKRV)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이 구절을 잠깐 띄워주시구요.
이 구절의 하나님 부분에 신랑을 넣고, 백성 부분에 신부를 넣어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시작.
“너희를 내 신부로 삼고 나는 너희의 신랑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신랑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애굽에 갇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관계 하나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과의 이 관계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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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찢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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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무 말 없이 그 찢어진 종이들을 주우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판에 혼인관계증명서를 다시 새로 기록하십니다. 새 언약을 맺으시는 겁니다.
여러분, 마음에 기록된 걸 찢을 수 있습니까? 못 찢습니다.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이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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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새 언약을 맺은 결과는 이렇습니다. 3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예레미야 31:34 (NKRV)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배신 당하고 나면, 배신 당했던 옛날 일이 생각 안나겠습니까? 이따금 계속 생각나면서 그 사람이 너무 미울 겁니다.
하나님은 안 그러셨겠습니까? 신부 이스라엘이 한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배신하고 외도를 일삼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안 그러셨습니다.
정말 그들의 모든 악행을 사해주시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걸 어디서 증명해 내셨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증명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수혜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고 싶지 않으신데, 우리는 계속 죄를 짓죠?
그래서 그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시고 단번에 희생의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우리의 죄는 다 용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잊어버리시고, 결혼식 행진할 때 나를 따스히 바라봐 주셨던, 그 미소 그대로 저와 여러분을 바라봐 주십니다.
매 순간 여러분을 그렇게 바라보십니다.
그런데 뭐가 두렵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의 신랑 되어주시고 나와의 관계를 지키시기 위해 예수님을 내어주시기까지 했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두려워 할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함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주시는, 신랑 되신 하나님께서 신랑으로서의 의무, 구원을, 매순간 여러분 삶에 이루어 주실 겁니다.
그 진리를 믿으시고 날마다 하나님 사랑을 잘 누리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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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새 언약 안에서 회복된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에만 옛 언약을 세워주신 게 아닙니다. 사무엘하의 7장에서 다윗과도 옛 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사무엘하의 7장 14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사무엘하 7:14 (NKRV)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여기서 말하는 ‘그’는 사실 솔로몬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하나님이 솔로몬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솔로몬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왕은 백성들의 대표였습니다. 즉, 솔로몬을 아들로 삼아주신다는 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자녀로 삼아주신다는 겁니다.
자, 그럼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 아버지의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자녀의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만 의무에 신실하셨고, 이스라엘은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의 3장 19-2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예레미야 3:19–20 (NKRV)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들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들 중에 아름다운 기업인 이 귀한 땅을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지키시기 위해 아름다운 기업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방 나라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속이고 떠났습니다. 하나님과 자신들의 부자 관계를 증명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살기 싫다고 그 분을 떠났던 적이 없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도통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씨름하고 씨름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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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하나님 자녀로 살기 싫다고, 울분을 토했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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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잊어벼렀던 사실이 생각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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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나님의 친자식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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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된 양자였습니다. 원래 가족관계증명서엔 제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친자이신 예수님이 저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걸 깨닫자 하나님이 제 마음 속에 오셔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의 이름을 이미 내 마음에 새겼는데, 네가 무슨 수로 나와의 관계를 끊어낼 수 있겠니?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너를 향한 내 사랑을 끊을 수 없단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죄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양해 주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요?
하나뿐인 친자, 예수님을 십자가 지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떤 한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친자녀를 죽여야 한다면, 어떤 부모가 입양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게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입니다.
친자식의 목숨까지 바쳐서 얻어낸 여러분인데, 여러분의 삶을 내버려 두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목숨같이 여기실 겁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주님의 목숨같이 생각하며 지키실 겁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으로 인해 새 언약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새 언약은 그 누구도 찢을 수 없는 우리의 마음판에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증명하는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는 마음판에 저장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삭제시킬 수 없습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월요중보기도회 가족 여러분.
놀이터에 아빠를 대동시키는 어린 친구들을 본 적 있으십니까?
그 아이들 얼굴 표정이 어떨 것 같으십니까?
아주 자신만만해 보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뻔뻔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자신만만해 할까요?
자기는 아빠가 그네를 밀어주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아빠가 미끄럼틀 밑에서 자기를 받아주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형아들이 시비를 걸어도 아빠가 막아줄 거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아빠가 도와주시고 힘 주실 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나아가는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빠 아버지가 되어주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인생의 연수가 다하면 나를 떠나지만, 혹은 나를 버리는 아버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히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힘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등을 밀어주시고 여러분을 받아주실 겁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 험한 세상으로 나아가실 때,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를 의지하며 나아가십시오.
그 관계의 슬로건이 뭐라고 했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일평생토록 이 슬로건을 기억하시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신랑이 되어주시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신부라는 사실.
이 진리를 평생토록 기억하시며 살아가십시다.
그 때 우리 마음 속에서 살아갈 힘과 은혜와 평강이 가득 넘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