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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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여름수련회

요한복음 5:30–47 NKRV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35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가? (요 5:30-47)

제가 처음 교회 생활을 하고 나서 청소년시기에 한동안 저는 신앙의 방황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진리인 증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의심이 일어나고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 내가 의심하고 불신하던 부분들을 말씀의 증거를 통해서 분명하게 믿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마 우리들 중에도 저와 같이 이런 회의와 의구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모든 종교는 다 같다라고 합니다. 아무 종교나 한가지 갖으면 마음의 위로가 되고 삶의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보통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인간적인 분들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믿고 인간의 양심을 강조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기독교를 접근할 때 굉장히 인간적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성경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 38년된 병자가 살아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잇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들입니다. 이런분들은 기독교를 접근할 때 과학적으로 접근합니다. 이런 접근을 하는 사람들을 볼때 예수님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때에 이미 이런 도전과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공격을 받았을때에 우리 주님은 분명한 증거를 갖고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당당히 소개합니다. 세상 법정에서 그 사람의 진실을 판단할 때 2가지를 꼭 참조합니다. 하나는 증인이요 다른 하나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스스로 죄가 없다고 하더라도 증인과 증거의 도움이 없으면 그 사람의 진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증인과 증거를 제시하면 진실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알리바이가 분명하다면 결국 무죄로 인정받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 대해서 인간들은 제대로 반응을 하지못하는것인가요? 이 부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체적으로 우리들에게 그 이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모든 증거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1. 예수님에 대한 3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1-1 사람으로 증거를 세웠습니다. 5:33 “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요한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이 요한의 역할의 정확성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켜서 비취는 등불”(35절)이었습니다. 등불은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세례요한은 어두움의 사람들에게 참빛되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알렸습니다. 세상죄를 지고가는 연하고 순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요한은 가는 곳마다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 빛의 도구로서 그분을 위한 증거의 인생을 살다가 짧은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오직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삶의목적이 었습니다.말씀을 증거해도 예수님이 흥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레를 주는 것도 예수님이 흥하는 것이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목적을 이해하고 그 믿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습니다.자기의 목숨이 칼에 잘리면서 죽기까지 충성하였습니다.그 세대에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로 세대를 거스리고 담대하게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주님을 영접하도록 회개의 메시지를 증거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진리의 증거 주님을 드러내는 증거로 사용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여기에 구원받은 주님의 사람으로 나를 세운 이유는 바로 생명의 주님이 지금 여기에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이세상에서 가장 영광이 나타날때가 언제입니까? 사람들이 믿어줄 때입니다. 그런데 이런 귀한 일들이 교회에서 만들어지기 위해서 세례요한처럼 진리에 순종하는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우리가 아무리 세례요한처럼 주님의 순종의 도구로서 잘 믿고 빛을 발한다고 모두가 다 회개하고 예수님믿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내가 바로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증거가 되는 사람으로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1-2 주님의 기적의 역사하심이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36절 “내게는 요한의 즐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성경은 기적이 항상 소개됩니다. 구약에 수많은 기적이 소개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 앞에서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때에 기적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오신 예수님도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성경의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보통 3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기적입니다. 이미 요한복음 5장에서는 38년된 병자를 주님께서 고치셨습니다. 각색병에 걸린 자들을 주님께서 깨끗하게 고치셨습니다. 질병의 치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자입니다. 그 곳은 아픈 것이나 상하는 질병이 없는 온전한 나라입니다. 둘째는 귀신을 내어쫓는 기적입니다. 4복음서에 보면 귀신들린 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귀신들을 물리치시고 이기셨습니다.이것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셋째 기적은 자연을 다스리시는 기적입니다. 바다의 광풍을 잔잔케하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것같은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자연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주는 기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표적을 보여주었지만 사람들은 표적에만 관심있지 그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먼저 우리가 지금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부인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하도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땅에 오셨을때에나 초대교회시절에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아직 말씀이 없었던 때이기 때문에 주님의 증거를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지금도 말씀이 아직 자리잡히지 못하는 곳에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우리가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초신자들의 경우에 눈에 보이는 이적과 기적을 통해서 주님을 증거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찌무라는 일본의 유명한 크리스챤입니다. 하루는 그에게 어떤 대학생이 찾아와 심각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부활하셨다는 이야기들은 정말로 제 이성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황당한 이야기나 이해할 수 없는 기적들은 빼놓고 다른 내용으로만 성경공부를 하면 안될까요?“ 그러자 우찌무라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항생 성경에서 사람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적들을 다 제하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성경에 꼭 2가지만 남는다네. 그것은 바로 성경의 앞과 뒤표지뿐이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기적을 주님의 기적을 부인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극적인 기적을 구하는 믿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사실 우리들의 범사가 하나님의 도우심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일상적인 삶의 일용할 양식과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너무 기적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삶을 너무 극적으로 몰아가고 신앙을 너무 극적으로 몰아갈 위험이 많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는 기적은 부인하지 않지만 분명한 증거를 외적으로 찾지 않습니다. 분명한 증거는 우리 안에 내적인 증거입니다. 보이는 눈 듣는 귀 체험하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구하지 않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은 바로 우리 안에 새생명이 찾아오고 마음으로 믿고 확신하여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생명의 성령을 통해서 찾아오시고 역사하십니다. 1-3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증거입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은 구약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가장 주된 내용이 오실 메시야에 대한 언약의 말씀입니다. 구약의 족장들,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이나 모세,다윗,솔로몬왕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언약을 통하여 소개되는 예수님은 선지자로서 제사장으로서 왕으로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선지자의 기능을 감당하실 것입니다. 친히 제물이 되심으로 제사장이 되실 것입니다.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친히 몸으로서 보여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감언이설로 자신을 증명하거나, 우리를 감동시키거나, 우리를 놀라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못 알아 먹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최후의 방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 최후의 방법이 바로 나의 죄 값을 위하여 대신 죽으시는 것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입니다. 본문 36절을 다시 보십시다.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여기서 역사란 무었을 이루는 역사인지 아십니까? 바로 십자가의 죽음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증명하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주께서 하신 모든 일은 제자들에게까지도 이해가 다 되지 않았었습니다. 무었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잡혀가시자 도망간 것으로 증명됩니다.주님이 돌아가시고 장사지낸 바 되자 제자들은 모두 고기 잡으러 가버렸습니다. 무었 때문에 제자들이 다시 돌아 왔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 때문입니다.부활하셔서 열 두 제자들 앞에 차례로 나타나십니다. 그들은 옛날 것이 생각나서 돌아 온 것이 아니라 돌아온 시점에서 꺼꾸로 풀어 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 그때 그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구나!'이렇게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이 진리의 말씀을 자꾸 믿음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자꾸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통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가? 우선은 너무 성경을 쉽게 대충 알려고 한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상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책 수준으로 대충 읽거나 알려고 할때 성경의 진리를 발견할 수도 없고 깨닫는 역사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각을 이용해서 성경을 깊이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나누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지난번 제자훈련팀과함께 기도원에서 내적치유의 시간을 갖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분들이 내가 지금 행하는 것이 죄인지 모르고 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을 결단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 주님을 깊이 알고 그분의 뜻을 깊이 알게 되면서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2. 왜 증거가 있음에도 믿지 못하는가? 2-1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0절 그너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누구보다도 유대인들은 메시야 유기를 갈급한 사람들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제사는 있고 안식인을 지키고 헌금을 드리는데 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인정하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칭찬과 인정을 원하엿습니다. 그들 속에는 하나님을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42절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고 합니다. 이것은 비단 유대인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상당히 열심도 있고 신앙생활 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교회에 빠지고 마음에 불만이 가득하게 되고 부정적으로 변하는 분들을 봅니다.이유가 무언가? 그런데 잘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얼마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며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때에는 쉽게 자기의 길을 가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 한 두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바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교회를 자기 선택합니다. 교회가 많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순간에 교회를 옮깁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보다는 아첨과 인정과 헛된 칭찬으로 붙들어두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유대인들의 이런 죄성을 직시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그 죄성을 개혁해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핵심을 찌르면서 그들의 죄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44절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너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했습니까? 한마디로 자기들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을 인정하여 주지 않고 자기들을 높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주님께서는 왜 유대인들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하여주지 않았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바로 자기 영광을 구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단순히 내가 나쁜 짓만을 하지 않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죄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제대로 돌리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자기가 받는 것이 죄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칭찬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칭찬받기 위해서 그들은 자기를 높이는 행위들을 했습니다. 그들의 신앙행위는 오직 자기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자꾸 칭찬과 영광을 구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칭찬받을 만한 일이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만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런 칭찬과 인정이 올때마다 우리가 높이고 우리가 찬송하고 경배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 속에서 사람들의 인기를 구하고 인정을 구하고 칭찬을 구하고 사람들을 좇을때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머문 사람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인정을 구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사람은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고 자기 영광을 구합니다. 오늘 사탄은 필사적으로 교회를 변질시키려고 합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날 자꾸 교회가 사람들을 그냥 붙들어두기 위해서 아첨의 말을 합니다. 자기를 조금만 인정하여주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만날때마다 칭찬을 해주어야 하고 칭찬을 해주지 않으면 침체의 늪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교회 속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먼저 자기의 죄성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유댕니들의 문제는 자기들이 의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 찾아옵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우리의 죄성을 인정하고 십자가를 의지하고 나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내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의 칭찬과 박수가 아니라 내 자신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왜 내가 변화되지 않고 칭찬부터 받으려고 합니까? 왜 자기 안에 무서운 정욕과 교만은 그대로 두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합니까?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사람들은 칭찬하지 않고 인정하여주지 않으면 그냥 교회를 떠납니다. 그때 꼭 이런 말을 합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정말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 속에서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인정적인 칭찬을 남발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나쁜 색소가 많이 든 아주 맛이 자극적인 불량과자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격려한다고 칭찬하는 것이 도를 지나서 결국은 영혼의 무서운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은 가장 미련하고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기 감정을 믿지 마십시오.오직 말씀에 비추어 내 마음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으로 새로워진 마음이어야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알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주님에게서 특별대우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유대인들은 죄인들과 같이 대우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주님께서 조금 특별하게 유대인들을 대하고 받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그러나 만약에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더 이상 복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속에서 특별대우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직분자라고 특별대우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교회 속에서 세상의 어떤 권세로 특별대우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속에서 내가 더 많이 봉사하는 것으로 더많이 헌금하는 것으로 더 많이 은사가 있는 것으로 특별대우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같이 대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운 로마서에서 자기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모든 믿는 자에게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 모두를 공평하게 대우하여주었듯이 우리 교회가 모든 사람에게 같이 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질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나를 위한 것입니까? 오늘 이 지상을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의 칭찬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기뻐합니다. 그는 자기 안에 자기의 가능성이 없음을 압니다. 사람들이 칭찬해도 그들이 나를 잘 알지 못해서 그렇게 하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을 구합니다. 사람들의 사랑 인정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사랑 칭찬을 오직 구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영성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믿지 못하는 자들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45절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여기 주님은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모세의 고소를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모세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잘 알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모세를 존경하고 따르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고 따르고 존경하는 모세가 그들을 고소할 것을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고소한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최후 심판때에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때에 모세의 고소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결정적인 실수가 무엇입니까? 율법으로 자기들이 의롭게 된다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율법은 그들을 완전히 정죄할 근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유대인들에게 왜 율법을 주셨습니까? 유대인들을 구약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유대인들을 그리스도에게도 인도하기 위한 몽학선생이엇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통해서 자기들의 무능함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자기들의죄악됨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왜 율법을 못지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은 마치 지도와 같습니다. 그 지도는 천국을 소개하고 가게 하는 정확한 지도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갈 때 정확한 지도가 있으면 얼마나 도움을 받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율법이라고 하는 지도를 받은 사람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까막눈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다보니까 그 율법을 볼 수 없고 그래서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율법을 볼 수 잇는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의 상태, 인간의 무능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죄성을 분명히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자기들이 대단한 사람들이고 그것을 지킬만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민의식으로 율법의 외적인 것을 대충 지키고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자기들 스스로 교만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이런 분들의 경우에는 이미 심판을 받고 있고 앞으로 끝날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을때 비록 처음에는 미약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끝이 더욱 아름다운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주님의 백성들은 끝에 결코 심판의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미 용서받았고 앞으로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의 의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결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어도 영광의 죽음이요 마지막으로 갈수록 영광과 평안의 천국이 보장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끝이 우리의 마지막이 주님 때문에 보장받고 우리가 소망 속에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6.25 동란 중에 한 미국인 군목이 전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적과 싸움을 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을 위로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들 중 전쟁터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한 미국 병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나에게 한가지만 요구한다면 당신을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이때 미군 병사는 군목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햇습니다. ’나에게 내일을 주십시오”.그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불안감 두려움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자에게는 내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장차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자기 의를 따라 산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고소를 당할 것입니다. 그때 공의로우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를 낱낱이 판단받고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오늘 내일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믿음으로 나의 미래 내일을 준비하는 삶이 될 때 우리의 삶은 소망이 넘치게 되는줄로 믿습니다. 혹시 아직도 예수님을 의심하고 주님을 불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믿음으로 그분을 나의 마음에 영접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바로 결단함으로 하나님의 은혜,하나님의 구원을 받으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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