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개관

BIble Stduy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96 views
Notes
Transcript

들어가면서

빌립보서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서신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바울이 그 고난을 초월하고 기쁨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험난하고 어려운 세상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견뎌내야 할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빌립보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유명한 구절도 많이 등장합니다.
빌립보서 1:6 DKV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빌립보서 1:21 DKV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4 DKV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4:13 DKV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런 구절은 한번쯤은 깊게 묵상해 봤을 법한 구절이라고 생각이 듭닌다. 유명한 이유는 우리의 삶에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명 구절들은 성경 내에서 많이 오해가 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조각들만 봤을 때,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오해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내게 능력 주시는 분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구절은 자칫 세상에서 말하는 능력을 구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으며, 기복신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책도 이와 동일하겠지만 빌립보서 또한 서신서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이해한 이후에 이 부분(조각)을 이해해야 합니다.

저자와 수신자

빌립보서의 저자는 바울(빌 1:1)입니다. 이 편지는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 감독, 집사들에게 쓰인 편지입니다.

저작 연대

바울의 저작시기는 저작 장소와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우리가 빌립보서를 옥중서신으로 잘 알고 있듯, 바울은 자신이 옥중에 수감되어 있다고 본 서신서를 통해서 말합니다(빌 1:7; 13; 17). 그렇다고 한다면 이 감옥은 어디 감옥인가? 전통적인 의견으로 볼 때 여기는 로마 감옥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서 시위대에 대한 언급 (빌 1:13)과 가이사 집 사람(빌 4:22)에 대한 언급을 이어나갑니다. 여기서 시위대는 왕을 호위하는, 고관이나 사령관을 보호하는 무리들을 말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시위대라를 뜻하는 ‘프라이토리온’(πραιτώριον)은 호마 황제 근위대를 의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었다는 단적인 예를 보여 줍니다.
또 가이사의 집사람에 대한 언급도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었다는 이야기를 지지해줍니다. 가이사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케사르'라는 로마 황제의 칭호를 말합니다. 이 율리우스 이후의 모든 칭호를 말합니다. 가이사의 집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바울이 바로 로마 통치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수감 기간의 활동이 보여주는 느슨한 제재 (행 28:16, 30-31)를 봤을 때 이곳이 로마라는 사실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사도행전은 자신이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머물게 해주었다고 말합니다. 또 맞이 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바울은 로마에서 가택연금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 시민으로 황제에게 상소한 미결수는 로마에 도착하면 황제의 근위대장에게 인수인계되어 황제근위대 감옥에 감금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근위대장은 바울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감옥 밖에, 가택연금의 형태로 따로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바울에게 이렇게 관대하게 대해주었는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이 역사하셨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은 감옥 밖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볼때, 다른 옥중서신과 마찬가지로 빌립보서 또한 로마에 1차 투옥되었을 AD 62- 63년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목적

바울은 당시 재판을 기다리며 빌립보서를 적게 됩니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 크게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자신을 걱정하는 빌립보인들에게 자신의 상황과 복음의 진보를 알리고 싶어서 였습니다 (빌 1:12). 바울은 자신 도리어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는 통로로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빌립보 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헌금을 보냈는데 이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빌 4:10). (3) 그리고 교회의 내분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마음이 되도록 권면하기 위해 빌립보서를 작성했습니다. (4) 마지막으로 거짓 교사들에 대응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빌립보의 특징

역사적 특징
빌립보는 B.C. 365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게도니아의 왕 빌립 2 세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빌립 2 세는 마게도니아와 이웃하고 있던 야만인들의 나라 드라케에서 땅을 빼앗고, 그곳을 빌립보라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는 BC 168년에 로마에 의해 점령되어 로마 제국의 일부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이후 BC 42년 로마에 내전이 일어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내전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로도 두 세력간의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내전은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이기며 종식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옥타비아누스는 세계 전체 평화를 회복한 통치자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그 유명한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빌립보에 안토니우스의 해산된 군대와 자신의 제대 군인들을 정착시키며 그곳을 콜로니아 율리아 아우구스타 필리펜시스라 명명랬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또한 로마와 같은 법적, 행적적 체계를 갖으며 로마의 신의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가령 특정 형태의 과세를 면제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에 대한 충성이 각별했습니다. 특별히 트라케의 야만족들에게 로마의 문명을 나타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리적 특징
빌립보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빌립보는 오늘날의 그리스 북쪽 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며, 데살로니가로부터 동쪽으로 약 100마일쯤 떨어져 있었습니다. 빌립보는 에그나티아 도로에 접해 있는 중요한 지역이였습니다. 에그나티아 도로는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할 때 간략하게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빌립보 또한 이러한 이점으로 아시아로부터 온 물건들과 해상 아가해로 들어온 상품들을 동시에 받아 볼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 특징
바울은 주후 약 50-51년에 이곳에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사도행전 16:6-10 에의하면 바울과 그 등료들은 마게도냐 사람이 도와 달라는 환상을 본 후, 처음 유럽으로 향해서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그 일행은 그곳에서 수일간 머물게 됩니다 (행 16:11-12). 그리고 그것은 유럽에 세운 최초의 교회가 됩니다. 그렇기 떄문에 빌립보는 유명한 전쟁이 많이 일어난 지역보다 ‘서구 기독교의 탄생지’로 잘 알려져 있는 도시입니다.

빌립보서의 특징

기쁨의 서신
빌립보서에서 ‘기쁨’, ‘기뻐하다'라는 단어는 무려 16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불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빌립보 상황을 본다면 무작정 기뻐하라고 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빌립보 인들은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후 8:1-2). 그들은 핍박과 가난과 내분이라는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던 것입니다. 또 바울 또한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는 입장에서 기쁨을 강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종합해 보면 저자나 수신자나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을 빌립보서를 통해 기뻐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기쁨과 관련된 단어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그리스도'입니다. 빌 2:6-11 에 있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임 받음에 대한 노래가 편지의 중심을 이룹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으로 오셨고, 이 땅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는 겸손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조

빌 1:1-11 인사말과 기도
바울은 독자들에게 인사하고 그들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 그들의 사랑이 풍성해지고, 그들의 거룩함이 더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빌 1:12-30 자신의 투옥에 대한 바울의 생각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자신은 비록 옥에 갇혀 있지만, 복음은 여전히 진보를 이루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은 구원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높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처지와 그에 대한 해석을 말한 이후에 독자들에게 고난중에도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빌 2:1-30 겸손한 섬김에 대한 권면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겸손한 섬김이 전형적으로 보여 주듯이 사랑과 겸손함으로 하나가 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예시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낸 이유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빌 3:1-21 대적자들로 부터 보호
바울은 이 장에서 다소 과격한 말로 유대교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분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의는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 단락을 통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의로움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난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갈라디아서에서도 이미 논쟁한 바 있습니다.
특별히 이 장에는 자신을 본받으라는 바울의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빌 3:17-21). 이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그리스도를 겸손하고 신실하게 섬겨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빌 4:1-23 결론적 권면과 감사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격려하며 화해, 기쁨 가득한 믿음, 절제된 생각을 요청합니다. 동시에 주 안에서 연합하며 (빌4:1-3), 믿음 안에서 기뻐하라고 (빌4:4-9) 권면하며 본 빌립보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의 주요 신학 주제들

성육신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으로 오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개념이 생기는 본문으 크게 2가지가 있는데 먼저, 요 1:1-18빌 2:6 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실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빌립보서 2:6 DKV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가령, 예수가 하나님의 형체이시고,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한 하나님만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완성하게 됩니다. 주후 A.D 325년 니케아 회의와 451년 칼케돈 화의를 통해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부, 성자, 성령의 본질은 하나이지만, 각각의 세 위격이라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양성론 즉, 예수그리스도에게는 인성도 존재하며, 신성도 존재한다 . 즉, 두 가지의 특성을 가진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A.D. 62-63년 경에 쓰여진 사실을 감안해 볼 때, 바울은 굉장히 이 개념을 초기부터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겸손
바울은 이 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겸손을 말합니다(빌:2:6-11).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어 이 땅 가운데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가장 겸손하셨던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하고, 그 마음까지 품으라고 권면합니다(빌 2:5). 바울은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빌 2:3-4).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겸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겸손은 낮은 자존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나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더 낫게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을 비워낼 때만 가능합니다.
바울 또한 자신이 내세울만한 가치들이 분명히 있었지만(빌 3:4-8), 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명예를 버리고, 모든 것을 비워내셨기 때문입니다.
고난
바울은 고난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고난은 인간이 피할 수 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죽음 너머에 있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라며 도리어 소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난이 왜 오는가? 그 이유를 분석하기 보다, 그 지금 있는 고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위로는 더 인상적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좀 더 좋은 처지나, 고난이 해결된 상황이 아니라 죽음과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는 로마 감옥 안에 있을 때, 이 위로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담대한 위로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바울의 고난은 도리어 그리스도를 전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에 진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빌1:12-14).
이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은헤로 간주하라고 말합니다. (빌 1:29)
교제
바울은 이 서신에서 그리스도인의 ‘교제'(fellowship,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ōnia, 빌 1:5; 2:1; 3:10])를 강조합니다.
이 서신에 접두어 신(syn-, 영어 접두어 co-와 유사한 “함께”[together]의 의미를 지닌)으로 시작하는 헬라어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싸우다”(빌 1:27)
“기뻐하다”(빌 2:17, 18)
“참여한 사람들”( 빌 1:7)
“뜻”( 빌 2:2),
“군사”(빌 2:25),
“본 받는 자”(빌 3:17)
이 모든 단어에 함께 라는 의미가 모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서로 협력하기를 바라는 바울의 숨은 마음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