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로 입증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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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기도의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양한 어구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말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4차 산업 혁명 시대, 비대면시대, 최근에 가장 뜨거운 인공지능 시대까지...
이러한 표현들의 기저에는 이성과 합리라는 인간 중심적 사유들이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풍조는 우리시대 또 다른 흥미로운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을 전달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멘토 문화입니다. 이들의 가르침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거나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멘토를 찾고 따릅니다.
우리 시대 속 멘토들은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의 말에 걸려 넘어지고 잘못된 행동으로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의 처음 목적이 변질되었거나 애초에 선한 의도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면 자멸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시대를 비유로 말씀하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선하시고 좋으시며 절대적으로 신뢰하실 수 있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듣고 배웠고 그리고 믿음을 받았기에 예수님에 대해 이러한 고백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시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어떤 부류는 주님의 사역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에 대하여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마11:16-17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예수님의 비유에는 상반된 두 부류의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장터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다른 친구를 불러 그와 즐겁게 놀기 위해 피리를 불었으나 함께 춤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먼저 있던 아이들이 슬픈 일로 인하여 가슴을 치며 슬퍼하였지만 이번에도 초대 받은 아이들은 이들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비유 속 아이들의 상반된 행동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찾아 정확한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비유에 이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우리는 왜 이러한 비유를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배척받는 지혜 그러나 결국 옳다 함을 얻는 지혜

마11:18-19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은 기쁜 소식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자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기쁜 소식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은혜의 소식이자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께서는 죄인된 우리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 복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피리를 불어 죄인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춤추기를 거부하였던 아이들과 같이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고집스럽게 거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던 세례 요한은 금식과 회개를 촉구하던 이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상태를 깨달은 존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여 회개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와 같이 많은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귀신들렸다 말하며 회개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함께 기뻐하기 위해 피리를 불어도 기뻐하지 않고 슬피 울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슬퍼하지 않던 예수님의 비유 속 고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이 세례 요한의 회개와 예수님이 전하시던 복음을 거부하던 유대인들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고집스럽게 거부하였으나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한없는 사랑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에서 옳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지식은 무너지고 뒤집히며 끝내 사라지나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 사랑이라는 결과를 통하여 지금도 많은 이들을 옳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거부하였던 유대인들에게 보이는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 본연의 특징이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판단하고 싶은 대로 평가했습니다. 성경의 곳곳에 이러한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며 회개를 촉구했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많은 선지자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회개할 것을 선포할 때, 유대인들은 되려 평화와 회복을 말하는 거짓 선지자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그 속에 안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선악과 사건 이후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사람들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행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과거의 한 사례가 아닙니다. 여전히 죄라는 저주에 갇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매여있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 고집스럽게 지혜를 거부하는 멸망으로 향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 저주를 끊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안다고 해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다는 것, 이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는 고백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의 왕되신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살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우리 안에 이 믿음이 있는 줄 믿습니다. 반면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고집과 약함이 있다는 것 또한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자로 부름 받아 이곳에 모였지만, 우리 가운데 여전히 버리지 못한 고집스러운 모습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 연약한 부분은 어쩌면 평생토록 나를 힘들게 하는 가시와 같고 매순간 주저 앉게 만드는 약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이는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멍에를 주께서 대신 져주시기에 우리의 고집과 약함은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로 우리는 쉽고 가벼운 주님의 멍에를 주와 함께 짊어지고 믿음의 경주에 기쁨으로 동참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성곡의 성도 여러분!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임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매일 거할 것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영원토록 선하거나 변하지 않고 옳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보냄 받은 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들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되 그것을 하나님의 지혜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변치 않는 진리, 영원토록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 안에 나타나는 결과로 입증되는 지혜란?

마11:19 “(중략)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 우리가 주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를 인도하시는 지혜로 말미암아 ‘옳음’이라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옳음’이 나의 옳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가 주님의 형상과 같이 거룩하게 변화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 믿는 자가 확신하게 되는 것은 내가 옳았다는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옳으시다.’라는 참진리의 깨달음과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십자가 사건입니다. 멸시와 시기, 조롱의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짊어지셨을 당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읽고 배워서 주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사건인지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존귀한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까지 도망쳐버리지 않았습니까? 한 순간이었겠지만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에 대한 평가와 그의 행함과 가르침 모두 틀렸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3일 후 말도 안되는 기적으로 판도를 뒤집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불가능할 것 같던 죄의 삯인 사망으로부터 승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모든 죄인들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결과로 나타나 ‘하나님만이 옳으시다!’라고 입증된 사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 일을 통해 입증된 하나님의 지혜는 지금도 성도들의 삶 속에서 살아서 역사합니다. 이제는 십자가라는 결과가 우리 안에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행함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이끄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저 받게 되는 선물이자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에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열매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 거하는 것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와 친밀함 가운데 함께 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원하고 바라시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께서 맡기신 작은 일에 순종하고 충성할 때 보이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세상 무엇으로도 비할 수 없는 기쁨을 그의 자녀들에게 전달합니다. 그 기쁨을 사모하시고 그 은혜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

예전에 저는 스스로를 드러내려고 교회에서 악착같이 무엇이든 열심히 하던 어리석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정말 어리석게도 하나님은 받으시는 분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교회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고 믿음 있는 척 하려고 열심으로 그것을 위장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가 스스로를 쥐어짜며 열심을 내니 그 인생이 얼마나 공허했겠습니까? 그때 당시에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블랙홀이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 했습니다.
그런 커다란 공허함을 가진 자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한 것이 5년 정도된 듯합니다. 그 후로 제 안에 소망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묵묵히 마음을 다독이며 순종함으로 나에게 맡기신 작은 일을 할 때,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 교회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며 소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곡의 성도 여러분! 세상을 주관하시며 지금도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은혜와 기쁨을 누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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