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목적(요7: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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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목적(요7:25-36)
초막절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 초막절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함을 상징. 올라가니 이미 예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함. 성전으로 직행하셔서 안식일 38년된 병자를 고친 일을 예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는 한 가지를 지적하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자체를 신앙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 구원받는다는 자기 의로움으로 나오는 것.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하라. (적용) 우리도 행위 중심.
깊어지는 갈등과 위기. 한 사람의 외침으로 불이 붙음 25-27절 이 사람이 그들이 죽이려고 찾는 자가 아닌가? 이제 내놓고 다니는데 왜 아무도 안죽이지? 진짜 그리스도라고 유대인들이 받아들인 것인가? 그리스도는 아무도 모르게 오는데 우리는 그의 출생을 알지 않는가? 어떻게 된 일인가? 28-29절 나의 출생은 땅이 아니라 하늘이다.
30절 다같이 이 말에 지도자들이 체포하려고 했지만 실패. 요한은 이 사건을 압축하여 과정은 생략 의미적 기록. 그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 적용)하나님의 때가 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준비한다고 해도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 유대인들이 잡으려고 현장을 급습했을 때 많은 사건이 있었을 것. 그러나 잡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로 요한은 봄. 아직 예수가 십자가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
그러면 예수님을 죽인 분은 누구일까? 유대인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다 준비되었는데도 죽이지 못함.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붙잡혀 죽으신 것. 빌라도의 재판, 제자의 배반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때를 조절하신 것. 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성경의 행간을 보는 것.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간의 손에 돌아가시는 것이 사명임을 아셨음에도 담대하게 명절 예루살렘으로 올라셨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때에 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음. 이번에는 죽지 않는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이해 못해서 낙심함. 부활을 경험하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깨닫고 목숨걸고 나감. 우리도 고통스러울 때, 울 때가 있고, 기다림에 지칠 때, 고독할 때, 인생에도 폭우가 쏟아져 당황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내 인생에 비추어 보면 오늘 나의 때는 누가 조절하고 있나? 오늘 나의 울음도 이유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분명한 것은 하나님. 울 때, 기뻐할 때, 심을 때 거둘 때, 죽음의 때, 부활의 때, 잃을 때, 얻을 때. 헤어질 때, 만날 때를 준비하심.
테스트와 시험. 목적 다름. 실력을 상승. 주체가 하나님, 시험은 죽이는 것. 주체가 사탄. 다 안다. 그런데 테스트와 시험 한가운데 들어가 있으면 우리는 시험인지 테스트인지 모름. 어떻게 결정될까? 우리의 반응에 따라 결정됨. 이 때를 어떻게 지나가야 할까? 제일 바보 같은 사람이 원망으로 보내는 것. 걱정하며 보내는 것, 사람 만나고 다니는 것. 여러분의 때는 하나님이 조절하신다. 하나님의 때 안에 있음을 믿으라. 피가 마르는 경험. 구구단 까먹고 오른쪽 왼쪽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때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상황을 조절하신 분이 누구인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 바람.
예수님도 두려우셨을 것. 31-32절 사람들의 동요가 더 심해지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아랫사람(성전수비대)을 보냄. 그런데 너무 담대하기 말씀하심. 33-34절 내가 조금 더 있다가 보내신 이에게 돌아갈 것. 거기는 너희가 오지도 못하고 나를 찾을 수도 없는 곳. 35-36절 함께 있던 유대인들도 못알아 들음.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게 말씀할 수 있었을까? 죽긴 죽을 텐데 오늘 죽을 것은 아니라서? 이렇게 여유?
예수님의 말씀에 답이 있다.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나라를 보았기 때문(29절). 죽음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나라가 뒤에 오고 있는 것을 봄.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무엇을 보고 계셨나? 진주문? 황금길? 큰 집? 바로 하나님. 예수님은 하나님이 나라와 하나님을 동일시하여 사용하고 있다. ‘내가 가는 곳’과 ‘보내신 자’ 나는 하나님 나라로 간다, 나는 그분께 간다. 예수님은 위기 앞에서도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던 이유는 고난의 길 뒤에 오게 될 하나님 나라와 그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기 때문.
바라봄과 신뢰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초막절에 올라가게 만든 것. 초막절을 완성하기 위해 올라가신 예수님의 발걸음 걸음걸음이 이 확신에 차서 올라가신 것. 십자가도 마찬가지였을 것. 내가 가는 걸음이 사망의 길이라도 이 뒤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하나님이 계신다. 고독을, 눈물을, 탄식을 이기는 힘이 여기서 나옴.
젊은 나이에 홀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암에 걸린 여집사님. 천사와 같은 사람. 그러나 돌아가심. 남편과 아들의 충격. 죽음 앞에 상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전 가족이 신앙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분 장례에서 하나님이 겨눈 사랑이라는 설교를 했던 기억이 있다. 충격이었고 아픔이었고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뒤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이 오고 계시는 길이었음.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만 알면 빨리 죽고만 싶다. 그런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오심을 보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이 왜 오실까? 셀카 찍으려고? 식사? 하나님이 오실 때 항상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뜻을 계시하신다. 모세에게, 이사야에게. 그전까지는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른다. “바다에 왜 눈이 내릴까?” 그러나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계획과 구조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목적과 계획과 뜻에 순종하면 길(홍해).
자녀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 우울증으로 정신병원. 깊은 중독 안에 갇혀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녀들로 고통. 죽음으로. 남편으로 매일 십자가에 못밖히는 경험, 돌아오지 않는 부모로 인한 아픔. / 여전히 아직 나에게 상처로 남아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고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오늘 말씀으로 하나님 위로 하신다. 지금 가는 길은 내가 허락해서 걸어가는 길이다. 이 길 끝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자신이 도래할 것이다. 그때 너희는 초막절 잔치 속으로 들어와 기뻐하고 춤추고 뛰놀 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 삶의 때를 조절하신다. 그리고 어느때 울때가 끝나고 웃을 때가 올 것.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에 들어오고 하나님이 내 삶 속에서 나를 만나주실 것.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이 때를 원망, 사람, 염려로 보내는 사람.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때를 조절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라. 봄이 되고 꽃도 필 것. 그때 하나님과 함께 목적과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이고 순종하면 길도 열릴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 담대하게 그 때를 기다리고 버티는 힘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위로가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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