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을 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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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1-18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새 지도자, 새 땅, 같은 하나님)
주제: 은혜와 행동 – 담대함의 원천
담대함. Bold.
담대함을 위한 훈련?
담대함의 근원? 원천? 믿는 구석이 있다.
본문의 상황. 여호수아가 처하고 있는 상황은 강하고 담대함이 절실하게 필요한 장면.
여호수아는 굴지의 지도자 모세를 모시고 도운 존재. 그러나 그가 떠났다. 그의 빈자리는 고스란히 여호수아의 몫이 되었다.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를 이어서 이제 이백 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입성할 사명이 여호수아의 어깨 위에 지워졌다.
평생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 땅을 향해 걸어왔던 이스라엘. 광야 40년을 종결짓고 이제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전쟁이 시작되는 상황.
이 때 여호수아의 마음이 얼마나 눌렸겠는가? 저 역시도 지교회 개척 1호라는 타이틀이 주는 중압감이 적지 않았고 여전히 그러하다. 저 뿐만 아니라 장로님들도,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우리가 담대함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 비단 교회를 시작할 때 뿐이겠는가? 인생사 걸어가는 길에 언제나 담대함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는 것.
명백한 것은 큰 일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며, 그런데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코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삶에 주어진 사명의 길을 완수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서부경향교회를 중심으로 원당과 검단을 비롯한 이 지역 사회에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담대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구절은 7-9절일 것입니다.
“7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절에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데 이어 한번 더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시면서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모세를 떠나보낸 후 새롭게 지도자로 등극한 여호수아로서는 걱정과 염려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잘 인도를 받아 가나안 입구까지 도착했는데, 이제 가나안 입성과 전쟁을 위해 지도자로 서야 할 자신으로 인해 혹시나 일이 잘못되면 어찌하나..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가나안 입성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앞에 두고 염려와 두려움으로 눌려있는 여호수아에게 ‘걱정하지 마라! 내가 성공을 보장해 주마. 다만 나의 종 모세가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으면 된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 점령을 위해서 무언가 새롭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잘 지키기만 하면 성공보장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여호수아로서는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고심할 필요는 없게 된 것 같아 보입니다. 여호수아는 그저 “이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평탄한 길을 얻고 형통함을 누리게 될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재차 강조하시면서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미리 겁먹을 필요도 없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저 내 말만 기억하고 그대로 지켜 순종하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말씀 밖으로 벗어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만 따라가면 된다!
그런데 정말 쉬운 길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지 않는 일 말입니다.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곧 율법대로 그대로 올곧게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결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즉 하나님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급박한 순간에, 두려움의 순간에, 때로는 방심하는 순간에 하나님 말씀을 떠나본 경험이 전혀 없는 분이 계십니까? 아니요. 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실제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시절과 매 한 가지로 가나안 점령의 행보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떠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여 다 지켜 행하면” 네 길이 평탄할 것이요 네가 형통할 것이라는 일면 조건이 달린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까? 조건이 달려 있다는 것은 우리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조건이 제시된 이상 강하고 담대하게 되기보다는 도리어 더 두렵고 속된 말로 더 “쫄리는”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조건을 제시하신 이상 그렇다면 가나안 입성과 그 성공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조건을 제시하셨으니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우리의 행동,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성공이 결정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건’을 말씀하기지 전에 반드시 ‘은혜’를 선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이 마치 ‘이러 저러한 조건들을 잘 지키면 내가 널 형통하게 해 줄게’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은혜가 먼저 선행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은혜 없이 조건만 남는다면 아마 인생 중 그 누구도 형통을 누릴 수 없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본성을 지닌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며 그 말씀 안에서 조금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5절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우리가 당장 보기 좋고 듣기 좋은 ‘형통하리라, 평탄케 되리라, 차지하리라’는 말씀보다 더 주목해야 할 말씀이 바로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심이 곧 은혜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명하신 이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친히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까지 함께 하실 뿐 아니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은혜언약 때문에 우리는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지도자가 바뀌었습니다. 그들이 차지하는 땅도 광야가 아닌 정착의 땅 가나안, 새 땅이었습니다. 지도자도 바뀌고 그들의 삶의 터전도 바뀌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약속이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주는 것 아닙니까?
때로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져서 믿음으로 이겨내지 못하고 불신앙과 타협을 했을지라도, 말씀 밖으로 벗어나면 안되는 것을 알지만 죄의 본성을 이기지 못하여 죄악에 쓰러지고 넘어진 부끄러운 인생일지라도, 죄로 물든 세상에서 여전히 쓰러지고 실패하여 쓰라린 맛을 경험하는 인생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과연 내 인생이 성공할 수 있을까? 과연 서부경향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성취하며 교회를 세워갈 수 있을까?”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연약한 인생일 뿐입니다.
이처럼 연약한 인생을 의지하면서 강하고 담대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어두운 밤, 캄캄한 시골길에 누구라도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없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동행하는 누군가가 만약 든든한 사람이라면야 두말 할 필요조차 없는 일 아닙니까?
약골 지석진 vs 호랑이 김종국.
하물며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고 이미 수백년 전부터 약속하시고 인도하신 온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며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다면, 이 은혜의 언약이야말로 진실로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원천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광야 40년 세월 동안 한결같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불신앙의 길을 걸을 때가 어디 한 두 번이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백성들에게 인생 채찍과 사람 막대기로 연단, 즉 훈육과 훈련을 병행하셨지만 그 또한 함께 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신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경향교회가 지나온 5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얼마나 파란만장한 일들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을지로 개척시절 월세 미납. 신림동 부지 사기 사건. 교회건축 시기에 터진 IMF. 교회 분란 등등.
그러나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은혜를 인하여 언제나 기적적인 승리를 맛보지 않았는가?
서부경향교회도 꼭 마찬가지.
우리가 잘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에 이 땅을 점령하고 말 것.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다는 사실을 이 땅에 수놓게 하실 것.
경향 1세대 예배당 건축.
경향 2세대 서부경향교회 설립
서부경향 1세대 – 이토록 놀라운 쾌거들을 연이어 이루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을 확신함으로써 강하고 담대하게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다짐하고 결단해야.
#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공동체는 피차 서로를 격려하며 이끌어주는 사랑 공동체, 위로 공동체, 협력 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며,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은 여호수아는 10절에 “이에”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광야 40년, 지도자 모세 밑에서 잔뼈가 굵은 관리들을 향해 이제 “요단을 건너 여호와 하나님께서 차지하게 하실 땅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라고 강하고 담대하게 지시를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특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지파들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땅, 즉 모압과 암몬으로부터 차지한 땅을 이미 분배받은 지파들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 자기들 땅은 확보했으니 요단강을 건너 서편 땅을 차지하는 일에는 좀 느슨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게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일단 내 배가 고파야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이미 땅을 차지한 세 지파의 경우 남은 정복전쟁에서 충분히 요령을 피울 법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너희가 받은 그 땅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기억하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민 32:24-27에 보면 이 세 지파는 자신의 가족들과 어린 아이들, 가축 떼를 요단 동편 땅에 머물게 하는 대신에 자신들은 요단 서편 땅을 차지하기까지 온 힘을 다해 싸우겠다고 모세의 생전에 조건부로 청원을 했습니다.
본문은 여호수아가 그들의 청원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듣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꼬일 수도 있는 말이었습니다.
아니, 이제 지도자가 됐다고 우리한테 뭐라고? 너네가 한 약속 꼭 지켜라? 그럼 우리를 못 믿는다는거야? 우리가 이런 약속을 재확인시켜줘야 할 이유가 뭐야 도대체?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모세하고 약속을 한 것이지 당신과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오리발을 내밀면서, 그래도 정이 있으니 우리가 조금은 도와줄 수 있다는 식으로 타협할 여지도 있던 상황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지도자로서 그들에게 처음으로 지시한 명령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16절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순종한 것처럼 당신에게도 순종하겠다고 기꺼이 서약한 것입니다. 순종서약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니 18절에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토록 강력하게 순종을 외쳤던 것은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즉 지도자가 여호수아로 바뀌고, 삶의 자리가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변하였지만 하나님은 결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시오 함께 하시며 버리지 않겠노라는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만을 확신했던 까닭에 이 백성들은 “기꺼이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새롭게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를 향해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라고 큰 격려까지도 해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너희를 결코 버리지 않겠노라고 약속해 주신 것만으로 큰 힘과 용기가 되었을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마저도 “염려하지 마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소서”라고 격려해주니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공동체는 이처럼 피차 서로를 강하고 담대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가운데 오직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만 이루기 위해 담대하게 나아가야만 합니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사람의 처지와 형편만 보면서 적당히 현상 유지하려는 사역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려는 각오와 결단이 바르게 된 성도 한 사람은 교역자에게 주는 용기와 격려, 힘이 엄청난 것이 됩니다.
상상해보십시오. 교인 눈치만 살살 보면서 자기 자리만 지키려는 교역자와 선한 일을 권면하는 교역자를 귀찮게 여기는 교인으로 가득찬 교회를 말입니다. 과연 어떤 교회가 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을 그대로 전하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교역자와, 그런 교역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가운데 순종하는 교인들로 가득찬 교회는 어떠하겠습니까?
이처럼 피차 서로를 담대하고 용기 있고 힘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변화시키는 교회는 실로 요단을 건너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새 땅을 차지하고 정복해가는 승리의 교회로 쓰임 받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서부경향교회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음은 그 명령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을 차지하라고 명하시는 그 하나님은 그 일을 마치기까지 함께 하시며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선행적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여호수아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나안 입성이라는 축복의 성취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소망의 순간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오늘 서부경향교회가 맞이한 상황도 꼭 같습니다.
인천 서구 원당동,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라는 큰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현재 조성되고 있는 검단신도시 1기와 앞으로 조성될 2기와 3기까지 무려 7만 세대를 향하여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가르치고 세우는 교회로 함께 지어져가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 일을 명하신 이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 두려워할 일이며 염려가 앞설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교회야말로 최후 승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증해주셨을 뿐 아니라 서부경향교회의 첫 걸음이 열악하고 힘겨운 환경에서가 아니라 성도들을 담을 그릇이 준비된 예배당에서 시작하게 하심이 바로 우리가 받은 은혜이지 않습니까?
이처럼 서부경향교회는 두려움과 염려의 소재가 아니라 이 교회를 중심으로 원당과 검단이, 서부지역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을 소망의 이름입니다.
지도자가 바뀌고 사역환경이 변하였지만 그러나 이를 명령하시는 하나님이 동일하시기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인하여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곳은 우리 각자만 아니라 이 지역과 열방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커나가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질 축복의 통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 신실한 약속을 확신하는 가운데 예수 복음화를 위한 생명운동에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동참하여 피차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감으로써 복음의 통로요 축복의 통로로 귀히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