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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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신약성경 안에서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요한이서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강조하는 바는 진리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리와 사랑. 이 두 가지의 개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시는 분들은 이 시간 함께 나누는 말씀을 통해서 진리와 사랑의 중요성을 깨달으시고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먼저 진리에 대해서 살펴볼텐데요. 첫째로, “진리”라는 것은 지체를 사랑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진리가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한이서 1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부녀와 자녀들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참으로”라는 단어는 이중적으로 번역이 가능합니다. 헬라어로 알레떼이아 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진리, 사실, 실제 등으로 번역이 가능한데요. 일반적으로 진리라고 번역됩니다. 요한이서 1장 1절에서는 “참으로”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원어로 읽으면 참으로 또는 진리 안에서. 이렇게 두 가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브라운이라는 학자는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사랑을 의미한다.
이 설명에 따르면 요한이서 1장 1절 말씀은,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요. 이런 식의 번역보다, 내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요. 라는 식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왜 이렇게 진리를 강조하는가 하면,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 두 번, 2절에서 한번, 3절에서 한번, 4절에서 한번. 이런 식으로 네 구절에서 총 다섯 번 씩이나 등장합니다. 이렇게 진리라는 단어가 자주 반복된다는 점에서 사도 요한이 진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사도 요한이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는 사도 요한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하면, 진리 안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합법적으로 행해야 할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만해서 사랑하는 것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사랑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사랑입니까. 사랑받을 자격 없는 우리가, 존귀하신 예수님께 받은 그 크신 사랑을 그대로 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요한은 자신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서두에서부터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사도인 자신만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바로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사랑하려면 진리 안에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둘째로, 진리 안에서 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선 진리 안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지체를 사랑하려는 사람이 먼저 진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본인이 진리 안에 있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고 백날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자 그래서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요한일서 5장 6절 하반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아멘. 요한복음 15장 2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두 말씀에 따르면 성령 하나님께서 진리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리가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진리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리 안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진리를 올바로 알고, 진리 안에 있어야 하는데, 진리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람이어야만 진리 안에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진리라는 것은 이웃이나 지체를 사랑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요소일까요? 진리와 관련된 내용 세 번째, 진리 안에 거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이서 1장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아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축복이나 기원은 바울 서신에서 자주 등장하는 관습적인 문구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울서신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개념일 뿐입니다. 요한 문헌, 다시 말해 요한복음, 요한 일이삼서, 요한계시록에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는 개념은 익숙한 개념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3절 말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요. 3절 말씀의 구조를 보시면,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우리가 받게 되는데, 어떻게 받는가 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있죠. 어떤 조건입니까? 진리와 사랑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진리와 사랑 가운데 라는 말은 1장 1절과 마찬가지로 “진리와 사랑 안에서”라고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자 그러니까 그냥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이름만 부르면 알아서 그냥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는 것은 그냥 무슨 어디 사은품 주듯이 떨이로 주는 그런 기본적인 축복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 세 단어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은혜라는 단어는 진실로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호의 또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부한 것에 대해서 형벌 받아야 마땅한데, 이러한 형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평강이라는 단어는 단순하게 다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지 행복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는 것이 진리와 사랑 안에서 거할 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겁니다. 엄청난 축복이죠. 자격이 없는데 선물을 받는 것과, 벌을 받아야 하는데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과,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행복하고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부여받는 것. 이러한 축복을 진리와 사랑 안에서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살펴볼텐데요. 요한문헌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요한일서에 따르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판단은 우리의 불완전한 지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죠.
자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요한이서에 따르면 진리와 사랑. 이 두 가지는 긴밀하게 연계되어있으며, 본질적으로 진리와 사랑은 둘 중의 하나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리 안에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이 분명하며,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진리가 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랑은 신앙적으로 무가치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요한이서 말씀을 통해 진리와 사랑의 중요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요한이서 편지를 보내면서, 그의 사랑을 담아 보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인 사랑이라는 것이 성도가 진리 안에 거할 때, 진리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성경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랑은 진리 없이 행할 수 없는 성경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할 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성도님들은 오늘도 진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까? 진리 안에서 지체를 사랑하고 계십니까? 진리와 사랑 안에서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충만하게 누리고 계십니까? 이 시간 함께 나눈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과연 내가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인지, 과연 나는 지체와 이웃을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인지,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지 돌아보시면서,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아멘.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이른 새벽에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진리와 사랑에 대해서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막연하지만 익숙하게 느껴지는 성경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 영원한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주님, 악하고 타락한 세상 가운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경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 차가운 세상에서 평안함을 허락해주시는 주님, 오늘도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오니, 주님 뜻대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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