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취한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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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속담에 게으른 두뇌는 악마의 공장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게으른 두뇌는 악마의 공장이다.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일정한 삶의 루틴 없이 게으르게 지내다 보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정확하게 꼬집은 말인데요. 사람은 태생 자체가 원죄를 전가 받아서 자범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전 인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죄를 얼마나 많이 짓는지, 죄에 대해서 얼마나 분별력을 많이 상실했는지에 관해서는 개인적인 차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대할 때, 다윗이 간음한 행위와 우리아를 모의 살해한 행위 두 가지로만 판단해선 안 됩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게으른 두뇌는 악마의 공장인데, 이것이 신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윗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사무엘하 11장 말씀을 살펴보면서, 게으름에서 비롯되는 죄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다윗이 죄를 어떻게 저지르고 있는지 함께 묵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무엘하 11장 1절 말씀 보세요.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밧세바와의 스캔들이 일어난 배경은 이스라엘과 암몬의 전쟁 기간이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전쟁을 치루기 용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봄이 돼서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는데,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압과 요압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터에 나갔는데, 다윗만 홀로 예루살렘에 남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전쟁을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내팽개치고 예루살렘에 남아서 혼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사무엘상 8장 19절과 20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에 왕정이 도입되기 전에, 백성들이 요구한 왕은 어떤 왕이었습니까?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우는 사람.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원하는 왕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무엘하 11장에서 예루살렘에 혼자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과거의 다윗의 모습과는 정반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8장 1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윗을 사랑했는데, 사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이 자기들 앞에 출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출입하다”라는 말은 “전투에 앞장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왕이 되기 전부터 전쟁터의 최전선에 나가서 전쟁을 이끄는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11장 1절에서는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고 온 이스라엘 군대가 출전해서 전쟁을 치루고 있는데, 다윗은 예루살렘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홀로 남아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2절 말씀은 다윗의 한가로운 일상을 보여줍니다. 우선 다윗이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다윗이 낮잠을 자다가 저녁에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깐 30분 정도 눈붙이는 것이 아니라 몇시간이고 아무런 걱정없이 편안하게 낮잠을 잔 것이죠. 자기 부하들과 백성들은 목숨을 걸고 전쟁하고 있는데, 왕은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전쟁에 나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군대가 전쟁하는 동안 기도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기도하기는커녕 낮잠을 즐기다가 저녁에 한가롭게 일어나서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다윗이 지내고 있는 왕궁의 지붕은 일반 주택가보다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엿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다윗의 게으름이 죄악의 동기로 작용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잤다고 하더라도 저녁에 일어나서 업무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저녁에 왕궁 옥상을 거닐고 있습니다. 걷다 보니 아름다운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다윗은 이때 스스로 멈출 수 있었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3절 말씀 보세요. 다윗이 사람을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합니다. 이 여인이 누구입니까.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입니다. 이 여인이 누구인지 몰랐을 때에는 이성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누구인지 팩트 체크를 했으면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다윗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어서 4절 말씀 보세요. 이제는 전령을 보내서 여자를 데려오고 동침합니다. 그 결과 밧세바는 임신하게 되고 다윗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전쟁터에 있는 우리아를 불러와서 전쟁 상황을 묻습니다. 본래 목적은 우리아가 밧세바와 동침하게 만들어서 임신 사실을 숨기려는 것이었습니다만, 아무런 명분 없이 부를 수 없었기 때문에, 전쟁과 관련된 부분들을 확인하는 척하는 것이었죠. 7절 말씀 보세요.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다윗이 세 가지를 묻습니다. 요압의 안부, 군사의 안부, 싸움이 어떠한지. 이렇게 세 가지를 묻는데,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이 세 가지는 “샬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요압의 샬롬과 군사의 샬롬과 전쟁이 샬롬한지. 이런 식으로 세 가지의 샬롬을 묻는 것입니다. 본인이 우리아의 샬롬을 깨부수고 있으면서 세 가지의 샬롬을 묻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요압도 문제없고 병사들도 문제없고, 전투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문제가 있는 곳은 아니나 다를까 다윗의 집과 우리아의 집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윗과 우리아의 집에는 샬롬이 없었습니다. 왜 샬롬이 없습니까? 샬롬을 묻는 다윗이 샬롬을 부숴버렸기 때문이죠.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보여주기식으로 다윗이 우리아를 불러서 샬롬을 확인한 뒤에 밧세바와 동침하게 만들려고 합니다만, 우리아는 다윗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우리아는 이날 집에서 잠을 청하지 않고 왕궁 문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들과 함께 잠을 청합니다. 이렇게 충직하고 신실한 우리아의 모습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서 홀로 유유자적하는 다윗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우리아는 비록 헷 사람으로서 이방인이긴 하지만, 우리아는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주인이 누구이며,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쉴만한 상황이 오더라도, 본인만 편하게 쉬고 누리는 것이 만족하지 않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윗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자 그래서, 우리아가 다윗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자 다윗이 우리아에게 술을 먹이고 밧세바와 동침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만, 이 방법 역시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우리아를 전투에서 가장 앞선에 세워서 죽게 만들죠. 이렇게 다윗은 자신이 지은 범죄의 결과를 모의 살해라는 방식을 통해 이 일을 덮어버립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요즘 시대로 말하자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우자 모르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죄악에 대한 분별력이 흐려지기 마련이지만,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은, 간음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되어있지 않습니다. 다윗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죄를 짓게 되었는지, 죄를 짓게 되는 배경부터 말씀이 시작됩니다. 왕들이 출전할 때, 다윗은 홀로 예루살렘에 남아있었고,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울 때 다윗은 낮잠을 자다가 저녁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서 충직한 부하의 처를 범합니다. 그 결과 밧세바가 임신하게 되고, 이를 덮어버리기 위해서 부부관계를 맺도록 유도하지만, 다윗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우리아는 계속해서 부하들과 함께 잠을 청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죠. 여기서 우리는 우리아를 동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신실하게 살았던 사람이지만, 불신자보다 악한 마음으로 범죄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스스로를 경계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교회에 자주 나오고 또 교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시는 것이 부담스러우시죠? 오늘 말씀에 따르면 시간이 남고 여유로운 것은 마냥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적당한 여유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만, 여유의 남용은 게으름을 촉발시키고, 게으름은 필연적으로 죄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신실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과 생명을 책임감 있게 감당하지 않고 안락하고 편안한 삶에 취하다 보면, 얼마든지 타락하고 범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하시면서 주님께 영광 돌리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규모 있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영적인 타락이 게으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다윗이 게으름을 피우며, 자신의 권력으로 간음한 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에 동일한 죄악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스스로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서 부지런히 살아가며 우리의 삶으로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